저 남산에 가 돌을 깨니
정이 남음이 없네
정도전과 남은이 방원의 손에 죽을 것을 미리 예언한 동요로서 남산은 남은을 가리킨 것이며 정은 정도전을 가리켰고 남음이 없다는 남은을 뜻했다 전해진다.
한양에서 이 동요가 불리울 지음의 이야기다.
여기는 함흥 태상왕 행재소이다. 찾는 차사는 살아 돌아가지를 못하였다.
한사람의 차사가 왔다.
「태상께 금상으로 부터의 문안이오!」
「문안이라고? 세자를 없앤 것이……뉘없느냐? 저놈을 당장에 참하여라!」
태상의 말이 떨어질 겨를없이 차사는 달려온 근신의 칼에 쓰러졌다.
「금상으로부터 태상께 문안이요!」하고 행재소 뜰에 부복하였다.
「이 고얀것! 방석, 방번, 그리고 내사위를 죽인것이! 내 아직 활을 잡을 힘이 있거늘!」
명궁 태상의 손에 활이 잡히자, 차사는 퍽하고 땅에 머리를 박고 쓰려졌다.
살아 돌아갈 수 없는 길이었다.
그런 길이언만 방원은 차사를 보내었다. 태상이 지치고 굽히어 오는 날을 기다리며 그 입가에 모멸에 찬 웃음조차 띠며 하는 것이었다.
태상은 그 방원의 가슴팍에 독기 찬 활촉을 박고 있었다.
뜰안에 나무잎이 하나 둘 소리없이 떨어진다.
(나도 저 고목에 붙은 잎사귀가 아닐고! 땅위에 떨어져야 할……)
태상은 수삼년래 퍽 노쇠하였다. 가끔 허전한 심사에 사로잡힐 때가 많았다.
아들 방원과의 대립에도 지쳤던 것이다.
올 여름 무학대사가 왔을 때도 못이기는체 하고 따라 나섰던 것도 그런 연유에서였다.
금강산을 거쳐 오대산을 지나서 양주 소요산까지 와서 막상 장안으로 들어가려고 하니 발길이 옮겨지지를 않았다. 함흥을 떠날 때 굳이 마음을 먹은 것이 장안 앞턱에 오니 방원의 괘씸한 생각에 분통이 터져 나왔던 것이다.
태상은 소요산에 행궁을 지었다. 머물러 마음을 가라 앉히려 했다.
태종은 의정 조순, 김사형들을 소요산으로 보냈다. 모두 태상을 모시던 늙은 신하들이라 태상의 노여움을 풀어보자는 의도였다.
태상은 방원의 이런 처사에 더 분노했다.
(어이하여 자신이 나와 마중치 못하고…… 사람을 보내어 달랜다고?)
태상은 방원의 그 고집이 싫었다. 방원의-짐이 금상으로 어이 굽힐 수 있으랴!-하는 이 고집은 전날 젊은날의 태상이었다.
아들을 아는 사람은 아비였다.
방원이 계모 출생의 동생 방석을 없이한 것도 모르는 배는 아니다. 형인 방원을 두고 동생을 세자로 책봉한 것이 못마땅 하였던 것이다. 더구나 방원은 개국공신이었다. 고려말의 검은 풍운을 아비를 도와 싸웠다. 그래서 의당 되어야 할 상감이었다.
그러나 태상은, 방원이 아비에게 배반한 자라 하였다. 난을 일으킨 자였다.
부자는 그 고집을 서로 꺽이려 하지를 않았다.
늙은 신하들을 행궁안에 들이지 못하게 하였다. 태상은 신고를 겪은 오랜 신하들을 대하고도 싶었으나 그들이 지금 방원을 받든다는 생각이 들자 미웠다.
방원의 분부를 받들고 온 노신들은 행궁안에 한발도 들여놓지 못하고 서성거렸다.
「태상께 아뢰어라. 상감의 분부 받잡고 온 우의정 조순이니라.」
「뵈올 수 없오이다.」
「전날 태상을 모시던 조순이다. 문안이라도 드리려 하네.」
「태상을 모시던 선비가 오늘날 금상의 우의정으로 어인 연유로 이 행궁으로 찾으시오? 물러 가시오.」
태상의 근신은 삯대질까지 하였다. 근신들은 방원이 보내는 사람이란 말만 들어도 당장 칼을 뺄 기세였다.
「굳이 뵈옵고 싶네. 그리하여 금상의 심금을 아뢰고자 하네.」
「어서 비키시오. 태상께서 풍양행궁으로 거동이시오,」
「거동?」
조순은 이 기회를 놓치지 않고
「여보게, 행차도중에 태상께 아뢰올 틈을 주게. 태상을 오래 모신 사람이니 태상의 흉중을 모를 리 없어 다시 부자지정을 맺고자 하네.」
하는 조순의 눈에는 이슬조차 맺히었다.
조순을 측은히 본 근신은 교를 길 한가운데 와서 멈추게 하였다.
「어이하여 세우는고?」
태상은 포장을 들치었다.
근신은 태상의 앞에 와서 부복하더니 아무말 없이 머리를 논 한가운데로 돌리었다.
논바닥에는 흰머리의 늙은 신하가 부복하고 있었다.
머리를 쳐들어 태상을 우러러 보는 그 신하의 눈에서는 눈물이 넘쳐 흐르고 있었다.
(오-조순!……)
태상은 나오는 말을 삼키었다.
(조순도 백발이 되었고나! 이대를 걸치어 허물 많은 부자를 섬김이 오죽이나 허랴!)
태상도 코언처리가 시콘거려 옴을 어쩔 수가 없었다.
태상은 고개를 돌리어 근신에게 길을 재촉토록 하였다.
이를 본 조순은 무릎걸음으로 달려와서,
「장안, 장안으로 듭시오이다!」
하고 교를 붙들었다. 태상은 장안이란 말에,
「경은 어느날까지 역대의 공신인고? 장안은 뉘의 장안이던고? 방원이 그 아비의 명을 어기고 정도전, 남은을 하루밤 사이에 없애고, 그리고, 세자마저 베인 대역! 경은 어이하여 그런 심부름을 나섰는고? 물러가라!」하고 나무랬다.
그러나 노신도 지지를 않고 있었다.
「그러하오나 금상은 태상마마의 핏줄이오이다 어이하여 태상께옵서는 그 팟줄기를 끊으려 하시오니까! 골육지정은 예로 못끊는다 했아오이다. 이어 나라 만년지계를 세우사이다!」
「계모의 아들이라 하여 아비가 세운 세자를 못마땅히 여기고 내 살아 생전에 뼈아픈 짓을 한 녀석, 집안을 망친 녀석이어늘! 내 어이 본다던고? 물러가라! 당장에 그 가슴팍에 활촉이 밝혀야 알아 차리겠는고?」
태상의 눈에서는 불길이 일어났다.
태상은 함흥 행재소로 돌아왔다. 소요산까지 갔으나 방원을 사할 수는 도저히 없었던 것이다.
행재소의 근신들은 사나워졌다. 이제 한 사람의 차사도 살아 돌아가지를 못하였다.
목숨이 붙어 돌아가지를 못하여도 방원은 차사를 떠나 보내었다.
태상은 차사를 하나씩 베일수록 신상은 초췌해갔다.
태상은 자식을 베이는 괴로움을 느꼈던 것이다. 방원은 이를 알면서 보내고 있었는지도 모른다.
차사를 보는 태상의 눈에는 익선관을 쓴 방원으로 보였다. 아비를 거역하고 보위를 빼앗은 대역에게 활촉을 박았던 것이다. 그러나 그 뒤에 오는 공허감은 뼈를 깎았다.
말 우는 소리가 시끄러웠다.
「저것은 어인 소란인고?」
근신은 근처 농가의 새끼 말이 운다고 한다. 밤이 오니 더 울었다.
「어제 그 어미 말이 딴곳으로 갔다하오이다……어미 말 그려 우는가 보이다.」
근신은 이렇게 아뢰었다.
말의 우는 우리는 애절하였다. 잠시도 그치지를 않았다.
「어미말을 그려 운다고? 어미를 불러?」
「하찮은 짐승도 어미를 아나보이다.」
「새끼가 그 어미를 안다고?」
태상은 버럭 소리를 질렀다. 그리고 태상의 얼굴은 점점 사나운 빛으로 변하였다.
「…‥내 가슴에 칼을 꽂았거늘……그 녀석이…… 그 새끼말의 목을 베어라!」
태상은 마음을 가라 앉히지를 않았다.
새끼말의 울음소리는 귀밑 바닥을 떠나지 않았다.
방원이 있는 쪽을 보는 것도 싫었다. 한 자식을 잃고 눈 감으리라 했다. 어서 하루 속히 세상을 떠나는 날을 기다리고 있었다.
그렇건만 방원은 차사를 보내고 친히 행재소를 찾지 않았다.
태상앞에 나서는 방원을 그냥 두지 않으리라는 것을 아들은 알고 있는 터였다.
활촉이 아니면 철주로 대할 아비였다
부자지의를 단념한 태상은 무료히 앉아 지붕에서 눈 녹아 떨어지는 소리를 듣고 있다.
땅위에 내리는 눈은 풀리고 있었다. 얼었던 가을도 봄을 맞이했다.
밖에 말방울 소리가 나더니 학신의 노인이 들어섰다.
(박순이 아닌고!)
박순은 판중추로 태상과 죽마지우였다.
방원이 박순으로써 차사로 보낸 것은 태상이 해치지 못하리라 믿었기 때문이다.
박순도 나라에 마지막 힘을 보태는 마음으로 길을 떠났던 것이다.
태상은 이 고우를 마루까지 나아가 맞았다.
「어서 올라 오오.」
「옥체 만강하시오니까?」
박순이 마루밑에 부복한다.
「올라가지.」
태상은 박순을 부축하고 방으로 들어왔다.
태상은 기쁨을 참지 못하며
「이 얼마만인고?」
「이미 뵈오려 하였아오나……황공하오나 해소가 또 도저 늦었아오이다.」
「그대는 그 해소가 항시 말썽이야.」
「태상께서 보내신 봉산밀 요긴히 썼아오이다」
「봉산을 지나다 밀이 해소해 잘 듣는다 하기에……별로 효력이 없지?」
「약효를 보았오이다. 워낙 뿌리가 깊어 이제는 어이할 수 없나 보오이다」
하고 박순은 클럭거리기 시작하였다 얼굴은 검버섯이 피었고 가죽이 말라붙어 여생도 얼마남지 않아 보였다.
「……어제 같거늘……동산 눈길에 싸움놀이하던 날이…… 어서 자리를 편히해.」
하고 태상은 위로한다.
태상과 박순은 각기 한편의 장수가 되어 잘 싸웠다.
자라서 여정에 있을 때에도 태상과 더불어 왜구를 물리치는 고전에 말을 나란히 하였다.
왜적이 전 경상도를 휩쓸때 일이다.
함양 운봉등의 힘에 의거할 때에 태상의 위를 구한 것도 박순이었다.
「황산이었겠다. 산허리에 이르렀을 때 불시에 한놈이 뛰쳐 나왔지. 그대가 아니었으면 그것의 칼을 받았었지 우리는 그 시 좇기고 있었던걸……」
태상은 황산싸움을 회고하고 있었다.
「……차라리 그 시에 죽었더라면……」
태상은 문득 이런 말을 하였다.
박순은 황공한 말에 몸 둘 곳을 몰라한다. 천만군마를 질타하던 이 어른에게서 이런 말이 나올줄이야! 태상의 심중을 모르는 바는 아니다. 그러기에 천리길 개의치 않고 온 것이다.
박순은 두 무릎을 모으며,
「그 어인 말씀이 오니까?」
겨우 이런 말을 하였다.
태상은 한참을 말이 없다가
「아니야 박순, 살아 욕이었어!」
하는 말은 거의 신음소리에 가까웠다. 마침, 사양을 받고 있는 태상의 얼굴은 쓸쓸해 보였다.
술상이 나왔다.
「내 부질없이……어서 이리 오오.」
태상은 박순에게 술잔을 권하였다.
옛친구를 만난 태상은 기쁜 모양이었다. 얘기는 모두 어릴 때의 일이다. 잔을 거듭하던 태상은 이런 말도 하였다.
「박순, 우금도 보여를 못잊나?」
「잊은지 오랜 일이외다.」
「세월이 갔다고 잊을 수 있을는지」
「그 얼굴도 떠오르지 않습니다.」
「기억할 수 없다고? 그러이도 못 잊고 앓어 누웠더니……박순은 이생에 그 하나이 한일일 것을 하하하……」
하고, 태상은 소리 높여 웃었다.
보여는 판전객사사 신우의 딸이다. 혼처도 정한 처자였다. 태상은 이를 못잊고 자리에 누워 앓고 있던 박순에게 놀러 왔던 것이다. 그때 달을 두고 박순은 바깥출입을 하지 않았다. 그럴 무렵 활을 잡게 한 것은 태상이었다.
산골의 달은 어느새 떠올라 이 두 사람을 환히 비추어 주고 있었다.
박순은 자리를 바로하고
「고요한 산중이오라 얼마나 무료하시오니리까?」
「……」
태상은 취하여 눈을 감고 있다.
「태상께 아뢰올 말이 있아외다.」
박순은 한팔로 방바닥을 내리 짚었다
태상은 눈을 퍼떡 뜨고 박순을 쏘아보았다.
이상히 빛나는 눈, 박순은 이런 태상의 눈을 여러번 보았다.
「자네도 또한 자네의 상감의 심부름으로 와겠다?」
태상의 살기 띄운 말이 떨어졌다.
「그것의 심부름이렸다?」
「태상! 이 늙은 것이 마지막 나라은혜에 보답하는 길이었아외다」
「당장 끌어내어 베일 터이다. 차사는 아니렸다! 박순!」
「죽사와도! 차사로 왔어외다. 태상! 돌아 가오소서. 장안으로, 그리하여 백성들의 우수에 찬 미간을 풀어 주옵소서! 여염집에서도 부자 불합이 오면 패가망신이라 하더이다! 태상!」
「패가망신?」
「태상! 나라를 어이 망치려 하시오니까?」
「그 녀석에게 일러 그런 헛소리는 ……」
「어서 뜻을 정하오소서. 시내의 물도 위에서 흘러내려 오거늘, 금상을 사하시와 새나라의 만년대계 이루오소서!」
「베일 것이니라! 박순! 헛말을 그만두지 못할까!」
버럭 소리를 지르는 태상의 찢어진 눈에서는 불이 일고 있었다.
「태상! 업디어 바라옵나니 장안으로 다시 드사이다. 그리하여 부자지정을 온전히 하오소서.」
박순의 얼굴은 눈물로 뒤범벅이다.
「그런 말을 말래두! 박순! 말아주오!」
태상도 어느듯 흐느끼는 듯 보였다.
다음날 돌아가는 박순의 마음은 편치 않았다.
태상의 심중을 아는 사람은 박순이었다.
더구나 태상이 자기로 인하여 괴로움이나 더하여 지지나 않았나 내심 송구하였다.
돌아가는 길은 멀었다.
눈 녹은 질길이었다. 발꾼들은 몇번이나 신발을 고치었다.
산마루에 남은 눈 바람이 행인의 볼을 매혹하게 때리곤 했다. 박순의 해소도 도졌다.
박순은 길막에서 쉬어가기로 했다.
근신들은 태상을 의아히 여겼다. 차사가 떠난지 한나절이 되어도 어인 영도 내리지 않았다.
지금까지 없었던 일이다.
해가 기울어졌다. 근신들은 태상이 잊은 것이라 했다.
근신 하나가 안으로 들어갔다.
「태상께 아뢰오! 오늘 떠난 늙은 차사를 어이 하오리까?」
「박순을?」
「우금까지 차사는 한사람도 살려 보내질 않았나이다. 지금 달려가 베겠나이다! 어이 차사를 살러 두오리까?」
태상은 망서렸다. 그러나 망서림도 잠시었다.
박순도 차사였다.
「그렇지! 내가 장안으로 가서 방원을 만난다고? 어서 쫓아가」
「베!」
하고 나가는 근신에게 태상은
「허나, 용흥강을 이미 넘었을 것이니라……
강을 넘었으면 살려 보내라!」하였다
박순을 베이고 싶지는 않았던 것이다.
박순이 용흥강은 넘었으리라 믿었다.
근신들은 밤이 깊어서야 돌아왔다.
「태상께 아뢰오! 박순을 막 용흥강 상에서 베이고 왔나이다.」
「뭣이?」
「강을 미쳐 넘지 못했나이다.」
「시가 지체 됐거늘 어이하여 여태 강을 넘지 못하고……」
「가는 길에 해소로 길막에서 지체하였다 하나이다.」
「물러들 가라!」
근신을 물리친 태상의 처소에서는 곧 통곡소리가 나왔다.
「박순! 박순!」
목을 놓아 우는 태상의 울음소리는 열흘이 넘어도 그치지 않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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