가족공간/여행

경주 역사 기행으로 2박 3일 - 글 보다 가이드의 설명이 최고

양화산장 2019. 10. 12. 22:4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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수학여행 때 다녀오고 기억에 남는 건 불국사 정도. 큰아이의 교육 목적으로 떠난 그곳 감상평부터 쓰자면 글로 읽고 공부하고 가야 스토리로 듣는 것만큼 기억에 남는 건 없는 것 같습니다. 또한 어린아이가 있을 경우 자전거 여행은 다시 한번 생각해 보는 것이 좋겠습니다. (자전거 전용도로가 거의 없었습니다)

3시간 30분을 달려 도착한 첫 번째 코스 국립경주박물관입니다. 어린이박물관이 옆에 있어 애들에게 좋을 것 같아 바로 그곳으로 향했습니다.

아이들을 위한 시설이라 그런지 막내는 좋다고 하고, 초등생 큰아들은 시큰둥해 보였습니다. 역시나 인기가 많은 활 쏘는 곳입니다. 남자애들은 뭐가 달라고 다른지 우리 아이들은 호랑이를 잡아야 한다고 쏘고. 다른 애들은 cctv를 맞추겠다고 하고 이해가 잘 안 되는...

박물관 곳곳을 다니면서 스탬프 기계로 완성하는 엽서가 있는데 큰아이가 가장 좋아했던 것 같습니다.

가장 궁금했던 에밀레종(성덕대왕신종)을 보며 소리 한번 들어보고 싶다 생각했는데 20분 간격으로 스피커를 통해 소리가 나옵니다. 한번 들어보시면 여운이 남는 것 같습니다.

박물관의 내부는 어디를 가나 비슷하기에 ^^ 애들은 역시나 몸으로 하는 걸 좋아하지 보는 건 아닌 것 같습니다. 징징징. 외부로 나와 주변을 돌아보면서 기억에 남는 것은 단 하나였습니다.

머리가 없는 부처님상. 이건 뭐지? 괴물이 잘라갔냐고 아이들은 바로 질문합니다. 설명을 보니 조선의 억불 정책에 의해 머리를 잘라 우물이나 연못에 던져졌다고 합니다. 20여 개가 쭉~ 이어져 있어서 안타깝기도 하고 무섭기도 하고 ^^ 

첫날은 박물관에서 3시간 정도를 보내고 숙소로 이동하고 마무리하였습니다.

둘째 날 첫 번째 코스 대릉원 되겠습니다. 천마총을 가려면 거쳐가야 하죠. 무덤을 어찌나 크게 만들어 놓았는지 작은 동산 같습니다.

이번 여행에서 큰 기쁨은 이곳에서 시작됩니다. 다른 분이 고용한 사설 가이드의 이야기를 듣다가 끝까지 따라가게 되었죠.

이미지 출처 : 네이버 지식백과
이미지 출처 : 네이버 지식백과

가이드님 말씀은 돌무지덧널무덤 때문에 도굴을 방지할 수 있었는데 나무로 만든 틀이 썩어서 무너져 내리기 때문에 덮여있어 어디에 뭐가 있는지 찾을 수가 없고 또한 돌과 진흙으로 덮었기에 무척 딱딱했다고 합니다.

그러면서 하시는 말씀이 신라가 왜 불교가 번성할 수 있었을 것 같으냐? 질문에 답은 신라는 엄격한 계급사회였기 때문에 민초들의 삶은 언제나 힘들도 고단했다. 누군가 죽으면 강과 바다도 없는데 돌을 계속 주어다 만들어야 하는데 크기나 작으냐 평생을 무덤만 만들어야 했을 것이라면서 부처에게 더욱 의지했을 것이라는 말씀을 해주셨습니다. 

그리고 바로 이어 순장이 나쁘다고만 볼 수 없었던 이유가 있는데 그 당시에는 모시던 분이 죽으면 같이 죽을 수뿐이 없기 때문에 정말 지극정성으로 보필하고 모셨다고 합니다.

천마도

천마총 하면 천마도인데 이번에 완전 충격이었습니다. 천마도는 벽화가 아니라는 사질 무덤이 무너지게 되어있기 때문에 벽화는 존재할 수 없다! 말의 안장 밑에 장식이었다는 것. (그동안 왜 난 천마도가 벽화라고 생각했던 것일까...)

대릉원을 나와 차길만 건너면 있는 첨성대 큰아들은 어찌나 이것을 보고자 했는지. 높이는 27단이고  돌의 개수는 362개 방향은 동남쪽 줄줄 외우고 있었습니다. 개인적으로 뭔가 주변에 있을 것 같고 거대하고 웅장할 것 같은 모습이 아니어서 아쉬웠습니다. 그리고 주변에 있는 인왕동 고분.

첨성대 주변은 아주 넓은 화단이 있어 사진 찍기 좋은 곳이었습니다. 평일인데 견학 온 학생과 일반인들이 많던지 ^^&

점심을 먹고 본격적으로 자전거를 빌려 여행을 시작합니다. 시작은 좋았으나 정말 맘이 불안하고 힘들었던 기억이 다시 나네요...

계림을 지나 보고 가야 하는 석빙고. 산을 올라가며 왜 내가 옛날 냉동실을 보러 가야 하는 것인가 하는 맘은 긍정의 힘 그래 애들에게 산 교육을 시켜주기 위함이지 하며 위로합니다.

다시 발걸음을 돌려 조금만 내려오면 보이는 월정교 참 멋있습니다. 이층으로도 올라가 볼 수 있습니다만, 밖도 볼 수는 없고 전시품이 조금 있는 정도입니다. 

경주 교촌마을은 뭐랄까 상업시설이 있는 지역 같은 느낌이랄까. 대충 그냥 지나처 버렸습니다. 유명한 교리 김밥집은 정기휴일이라 못 가봤습니다.

다음 코스로 경주 오릉을 향해 달려갔습니다. 뭐 그냥 입구까지만 갔다가 둥근산만 본들 애들에게 무슨 추억이 있으랴 그냥 자전거 타고 싱싱 달려보자 하고 다시 첨성대까지 돌아왔습니다.

지금 사진은 넓은 곳에서 안전하기에 사진을 찍은 것이고요 나머지 도로는 정말 인도도 폭이 작아서 아이들과 자전거 타기는 비추합니다.

다시 역방향으로 첨성대에서 분황사로 출발~ 모든 도로가 딱 이곳의 자전거 전용도로만 같다면 좋겠습니다. 가는 길에 보이는 황룡사지가 있어 그곳부터 들렸습니다.

아쉽게도 입장시간이 마감되어 그냥 밖에서 9층 목탑 모형만 보고 발길을 돌려야 했습니다. 여기서 또 자전거 대여시간이 3시간이 이다 보니 그 시간마저 다가와 분황사도 못 가고 다시 오던 길로 돌아갑니다.

아이들은 몇 번을 비슷한 곳을 왔다 갔다 했더니 지도도 그릴 수 있을 것 같다고 합니다. (지도 없이 그냥 가보자고 한 잘못)

저녁을 먹고 다음 코스로 동궁과 월지. 대학교 전통조경 시간에 배우고 가보고 싶었던 그곳을 와보니 너무나 좋았습니다. 여기서 의문이 생긴 것은 안압지라고 배웠는데 갑자기 동궁과 월지라니? 

(나무 위키에 보니 래 안압지라는 이름으로 많이 알려져 있는데, 사실 안압지라는 명칭은 신라 때 썼던 이름은 아니고, 조선 초기의 기록인 동국여지승람 동경잡기 등에 기록된 것이다. 조선시대에 이미 폐허가 되어 갈대가 무성한 이곳 호수에 기러기 오리들이 날아들자 안압지(雁鴨池)라는 이름을 붙였다.

그러나 1980년에 안압지에서 발굴된 토기 파편 등으로 신라시대에 이 호수를 월지(月池)라고 불렸다는 사실이 확인되었다. 이러한 명칭은 반월성(半月城)(경주 월성)과 가까이 있었기 때문이며, 임해전의 이름도 원래는 월지궁이다. 이러한 사실을 반영하여 최근 이곳의 정식 명칭도 오랫동안 써 왔던 '안압지' 대신 '동궁과 월지'로 변경되었고 각종 안내문에서도 변경된 명칭을 따르고 있다. 그러나 워낙 안압지로 알려졌었던 기간이 길어서 아직도 안압지라고 부르고 표기되어있기도 하다.)

경주박물관에서 찍은 모형도 입니다. 동궁과 월지의 특징은 회랑(지붕)이라고 합니다. 비 나 눈이 와도 맞지 않고 어느 곳이든 다닐 수 있다. 가이드님 말에 의하면 금장식이 되어있어 낮에는 정말 번쩍번쩍했다는데 복원한 것은 그렇지 않다. 유물은 전시관에 있는데... 라며 말을 끝내셨던 기억이 납니다.

경주의 마지막 날 불국사. 여기서도 좋은 여행사 가이드님을 만나게 됩니다.(다른 분들 설명하는 곳에 같이 끼어서 들었습니다)

가이드님은 이 계단을 가리키며 얼마나 공무원님들께서 공부를 열심히 하셨는지 계단 숫자도 안 세어보고 33단이라고(불교의 33천(天)을 의미한다) 안내판도 만들었다고 하다못해 방송도 그렇게 나왔었다면서 하지만 지금은 역사학자분들께서 지적하셔서 34단으로 표기하고 내용도 보강했다면서 이야기해주셨습니다.

불국사의 특징 중에 하나는 자연을 그대로 이용하고 있다. 그리고 자연의 돌 사이이 위에 각진 돌을 놓는데, 그 돌을 깎아서 올려놓았다 돌은 화강석이라 엄청 단단하다 그리고 돌과 돌 사이는 돌 못이라고 해서 지진이 일어나도 건물이 흔들리지 않게 만들어졌다 그래서 1300년 동안 한 번도 무너진 적이 없다.

불국사 앞에는 큰 연못이 있었다 하지만 옛날에 국회의원께서 학생들이 많이 오면 쉴 곳이 없지 않느냐란 말에 연못을 없애 버리고 나무를 심었다고 합니다. 역사학자들은 그대로 복원을 해놓아 한다고 합니다.(가이드 말씀)

다보탑의 동물은 몇 개였을까요? 4개. 그런데 왜 1개만 남았을까요? 못생겨서. 동물의 이름은? 사자. 여기서 궁금한 것이 그 옛날 tv나 사진이 없는데 사자를 어떻게 알았을까요? 무역을 했다는 의미죠~(가이드 말씀)

석가탑의 정식 명칭은 불국사 삼층석탑이며 무영탑이라는 이름은 이 탑을 만든 것으로 전해지는 백재의 아사달의 애틋한 사랑 이야기 때문에 많이 알려졌다. 아사녀는 남편인 아사달이 탑을 무사히 잘 만들고 돌아오기만을 기다리는데 나오지 않자 불국사의 연못으로 뛰어들었다고 합니다. 하지만 여기서 이야기를 이렇게 흘러가죠 탑의 그림자가 그때 연못에 비춰집니다.

이야기를 해드리는 것은 석탑을 가장 먼저 만든 나라는 백제입니다. 그전에는 흙으로 만들고 목재로 만들었지만 그 후에는 석재로 만들었다

맨 꼭대기 동글동글 하게 되어 있는 부분은 복원 당시 모양을 몰라서 다른 곳에서 보고 비슷하게 해 놓은 것이다.

(가이드 말씀)

극락전 복돼지 이야기를 해주시면서 공무원님들이 불국사를 그렇게 외치면서도 잘 모른다는 겁니다. 관광객이 사진을 찍고서 현상을 하다가 이 돼지가 뭐냐고 불국사에 전화를 하면서 알려지기 시작했다고 합니다. 불과 10여 년 전 일이라고...

불국사는 다른 절과 다른 특징이 있습니다. 바로 회랑(지붕)이 있어 비를 맞지 않고 이동할 수 있습니다. 절이라는 것이 평지가 아니라 산속에 있기 때문에 평지처럼 생각하지 않는데 이곳은 평지처럼 조성하였습니다. (가이드 말씀)

생각해보니 다른 절들은 그냥 건물만 있던 것 같네요.

터무니없는 녀석을 찾아보라는 가이드의 재미난 이야기도 들었습니다. 문 중간 기둥입니다. 이제 마지막 종 착지 문무대왕릉을 보러 떠납니다. 가는 길에는 감은사지가 있는데 시간상 그냥 도로에서 보고 지나갔습니다. 멀리서 봐도 커 보였습니다.

안내판은 괜찮아 보이지만 현실은 ㅡㅡ 허무함. 그냥 바다에 있는 바위섬입니다. 저희처럼 끝으로 오는 부모님들이 많은지 아이들이 무척 많았습니다. 그중에는 이제 바다 봤으니 박물관 가자 하시는 부모님이 계시던데 애는 싫어 여기서 놀 거야 하며 때를 쓰네요... 우린 마지막이라 다행~

경주 여행에서 기억에 남는 거 어떤 게 있어하니. 1초의 생각도 없이 바다. 헐~

피곤하기도 하고 집으로 바로 가고 싶었지만 부인은 돌아가는 길에 분황사에 있는 모전석탑을 못 보면 너무 아쉬울 것 같다고 해서 들려서 갔습니다. 원래 모습이 있었다면 참 멋있었을 텐데 하는 아쉬움이 남았습니다. 여기서 기념으로 애들은 타종을 한번 하고 갑니다.

다음을 기약하며 경주여행을 마무리하였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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