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난 줄거리
의병대장 장 지현은 의병 2천여명을 거느리고 추풍령고개를 방어하고 있는 방어사 조경의 관군 오백여명과 합세하여 왜군 5만 대군과 대치 일전을 벌리는데 의병대장 장 지현의 기지로 군사를 사방으로 흐터 잠복케 하고 저녘에는 불을 피워올려 엄청나게 많은 병력이 고개 위에 포진한 것처럼 하여 적의 선봉부대를 무찌른 신출귀몰의 전법을 구사한다.
왜군 제삼군의 선봉이 추풍령 푸르게 우거진 산기슭에서 일진이 꺾이고 보니 왜병들은 겁이 버럭 나서 다시 계속해서 고개로 기어오르지 못하고 추풍령아래 금산(지금 김천 앞벌) 넓은벌에 퇴진을 하고 우리 편 군사의 동정을 살펴 보고 있었다. 해가 뉘엇뉘엇 서산에 질 무렵 의병대장은 방어사에게 품해 사뢴다.
「병법에 의병을 두어 적의 군사를 연혹시키라 하였사온데 다행히 우리편 군사들은 두분 장군의 크나큰 힘으로 적의 선봉을 시살하였읍니다만 적병은 오늘 밤에 우리의 허실을 알기 위해서 반드시 야습을 할 것이 올시다 우선 해가 떠러질 무렵에 군사들을 흐트려서 이곳저곳 수백군데서 밥을 지어 먹게하고 밥짓는 나무를 열갑절되게 해서 우리편 군사의 수효가 훨씬 많은 것처럼 해보이게 하는 것이 마땅한 줄로 아뢰오.」
의병대장 장 지현의 말을 옳게 여겨서 임시로 밥짓는 부엌을 수백군데 만들게 하고 저녁밥을 짓게 하니 푸른 연기는 십리에 뻗혀서 추풍령 고개 으스름 황혼 위로 꿈틀거려 사라진다.
장 지현은 다시 군사들에게 밥을 배불리 먹게 한 뒤에 한사람 앞에 횃불 다섯 자루씩을 만들게 하여 석양이 완전히 꺼지고 밤이 칠흑같이 찾아와서 추풍령 긴 고개를 어둠 속에 삼켜 버렸을때, 군사 한 사람이 햇불 다섯 자루씩을 일제히 불켜대니, 산마루는 불야성의 장관을 이루었다.
밤이 자시가 훨씬 넘어 축시에 가까울 때다. 만물은 고요하고 병마는 잠속에 들었는데 고개 밑 금산에 진을 치고있는 왜군 수천명은 가만 가만 숨을 죽이고 살금 살금 고개를 기어 오르기 시작했다.
야습은 왜군들이 가장 잘하는 전법이다. 그들은 밤에는 조총을 사용하지 아니하고 단검들을 허리에 차고 산비탈로 기어 들었다. 자시가 놈어 축시가 접어들었을 때
산 아래서 망을 보던 병졸이 황급히 진영으로 들어온다.
「적병들이 어둠 속에서 움직이기 시작하였읍니다.」
하는 급한 보고다.
의병대장 장 지현은 투구를 다시 어루만지작 거리다가 자리에서 벌떡 일어나서 조방어사에게 군례를 드리다.
「나가서 적을 맞아 싸워야 되겠읍니다」
한마디 던지고 진문 밖으로 걸어나간다. 방어사 조경도 갑옷투구를 다시 정돈하고 일어 서면서 의병대장을 따른다.
의병대장은 장대 앞에 말을 달려나간 뒤에 전군을 모아 놓고 명령을 내리다.
「우리 전군은 추풍령 중턱을 중점으로 해서 열대로 나누어서 좌우편 산길에 매복해 있다가 나의 신호에 따라 행동을 개시해야 한다.」
「네, 알겠읍니다.」
모든 장졸들은 일제히 씩씩하게 대답한다. 믿음직스런 장수의 훈령이라 군사들은 산 보다도 더 중요하게 여겼다
「그러면 너희들은 빨리 행동해서 각각 부서로 돌아가서 군호를 대기하고 있으라.」
그러자 숨돌릴 사이도 없이 적진앞에 있던 보발군사가 급하게 뛰어와 아뢴다.
「적병은 지금 오륙천 가량 까맣게 산고개를 오르기 시작하였읍니다.」
「적병이 절반쯤 산을 오르거든 다시 보발을 달려라」
의병대장은 엄숙하게 명한다.
일각 이각 숨가쁜 시간이 지난다.
보발군사가 또 다시 헐레벌떡이며 달러와 아뢴다.
「지금 막 적병이 산중턱에 당도하기시작 했읍니다.」
「오냐, 알겠다. 너희들 보발은 전부후방으로 물러서거라.」
하고 잠시 의병장은 장수들과 작전회의를 가진 뒤 행동을 개시하게 되는데
그것은 이러하였다.
첫번째로, 돌격대장 정기룡이 오십기의 기병으로 적선봉을 흐너트리는 동시 산 아래 매복해 있는 삼백여 명의 기습부대로 하여금 적 후방을 교란시키는 것과
둘째로, 한바탕 전후에서 공격하다가 중과부족의 정세를 여실히 느끼고 후퇴를 감행하는 양 매복 군사는 고개 양쪽 산속으로 퇴각하고 정 길롱의 기마병은 계곡길을 따라 고개 위로 퇴진하는 것이다.
세째로, 이와 같이 퇴각하게 되면 왜군은 기습당한 격분과 환호로써 물밀듯이 처올라 오게 된다. 이때 골짜기 양쪽 절벽 위에 쌓아 놓은 돌벽을 무너트려 적의 기세를 좌절시키자는 것이었다.
이윽고 일성포향이 천지를 진동하면서 돌격대장 정 길룡이 한길이나 넘는 장창을 왼손에 잡고 바른 손에는 긴 칼을 휘둘러 적토마를 달려 돌격하고 적을 무찌르니 또한 매복부대는 일시에 기름 칠한 햇불 작대기에 불을 살려 우굴우굴한 적병을 향해 던지고 지지고 하는 육박전을 후방에서 전개하니 적은 질서를 잃고 우충좌돌 혼비백산이 되어 저희들끼리 찌르고 넘어지는 것들도 부지기수였다.
이렇게 적 선봉을 한참 교란하는 중 또한 포향이 울리자 삽시간에 정길룡의 기병과 매복 부대는 퇴각을 해버리니 이젠 왜군이 한숨을 돌리면서 참패의 격분을 참지 못하여 전후사를 생각치 아니하고 소리소리 지르며 계곡을 따라 물밀듯이 고개마루를 향해 처올라오기 시작하는 것이다.
그러자 또 한방의 포성이 울렸다.
적병의 주력이 완전히 계곡이 당도했을 때다. 계곡 양측 절벽위에 매복해 있던 군사들은 석벽사이에 군데군데 질러놓은 지렛대를 일제히 어깨에 메고 무너트렸다. 순간, 「와그루루」 쏟아져 내리는 호박덩이 만한 돌덩어리는 사정없이 어둠속에 와글거리는 적병들의 머리통을 부서대는 것이였으니 그 경지는 아비규환이요 생지옥을 방불했다.
수천명이 돌에 맞아 즉사했고 또한 달아나는 놈들이 자기편 병졸을 밟아죽인자 또한 헤아릴 수 없었다.
이렇게 두번이나 참패를 당한 왜군은 계곡을 빠져나가 다시 전열을 가다듬는지 고개마루는 칠흙 같은데 정적이 흐르기만 하였다.
이틀 동안이나 싸움이 없었다.
의병대장은 장수들을 모아 놓고 작전회의로 열었다.
「여러 장군들 지난번 싸움으론 대승을 거두었지만 우리 군사도 그간 천여명이나 잃었소. 그리고 앞으로는 적을 대량 시살할 묘안이 없구려. 다시 말하여 이 고개를 사수하는데 큰 몫을 했던 돌덩이도 다 없어졌고 하니 말씀이요.」
시름에 찬 노안에는 오직 눈동자만은 빛나고 있다.
「의병대장! 참으로 훌륭했소. 장수의 병법은 길이 길이 병사에 빛날 것이요. 또한 앞으로의 싸움은 돌격장 정 길룡이 맡아 할 것이오니 의병장께서는 뒷일을 맡아 하실 일이 중하오니 선봉을 양보하여 주셔야 하겠읍니다.」
하고 말하는 청년장군 정 길룡은 기상이 늠름하다.
하루가 또 지났다.
왜진에는 별안간 전투명령이 내렸다.
선봉·중군·후군의 부대를 나누지말고 전군이 총출동하라는 명령이 내렸다. 오만명 군사를 뫃아 놓은 앞에 나타난 왜군의 총대장 흑전장정은 명을 내린다
「지금 고개 위에서 우리를 막고 있는 조선군사의 수효를 조사해 보니 참으로 가소로운 것이다. 이젠 천여명 밖에 않되는 것이다. 오십배의 군사를 가지고 다시 고개를 점령하로 간다 만약 고개 아래로 쫓겨 내려오는 자가 있다면 나는 뒤에서 너희들의 목을 베어 죽일 것이다. 너희들은 추풍령 고개만을 점령해라. 만일 한 놈이라도 후퇴를 하는 놈이 있다면 고개아래서 내 푸른 칼이 용서하지 않을 것이다.」
총대장 흑전은 이렇게 목이 터지도록 엄한 훈령을 내렸다.
「돌격! 돌격」
고함 소리에 왜병은 까맣게 고개를 향해 진격한다. 인해전술을 펴는 것이다
한편 고개 위 조선 진에서는 연거퍼 왜적의 선봉부대와 기습부대를 이겨서 져으기 마음은 통쾌했으나 원체 우리편 군사의 수효는 적고 왜적의 수효는 오만명이나 되니 왜병이 만약 전군을 휘동하여 쳐들어 온다면 아무리 기이한 병법과 신출귀몰한 묘책을 쓰는 명장이 있다해도 중과부족인 판국이다.
왜병이 호호탕탕하게 대군이 별안간 급하게 움직이니 우리편 보발은 급하게 장대에 보고를 올린다.
「왜병 오만이 돌격해 쳐올라 옵니다」
의병대장 장 지현은 벌떡 일어나 투구끈을 졸라매고 마상에 높이 올라앉아 천여명 군사앞에서 급한 훈령을 내린다
「왜적은 우리군사 천여명의 목숨을 앗아가려 한다. 왜군은 기역코 다른 길로 가지 아니하고 이 고개를 점령하려 한다. 최후까지 싸우다가 죽는 한이 있어도 이 고개만은 내 목숨이 붙어있는한 적에게 내 줄수는 없소. 우리 의병은 오늘 나와 함께 이 고개위에서 죽을 것을 맹세하라. 죽을 힘을 다해서 싸우다가 죽는다는 것은 자손만대에 내려가면서 겨레의 추앙하는 별이 되리라. 그대들은 내 뒤를 따르라.」
장엄한 어조로 명을 내린 뒤에 의병장은 돌격대의 우익이 되어 친히 군사를 지휘하니 방어사 조경이 말타고 관군 백여명을 거느리고 정기룡의 좌익이 된다.
왜병의 대군이 조총을 어지럽게 쏘아대며 고개마루에 당도했다.
조선진에서는 최후의 명령을 내린다
「진영의 성벽을 무너트려라」
고함을 지르고 난 뒤 산개하여 매복해있면 의병은 일제히 돌격해 내려갔다.
눈덩이 처럼 뭉그러저 내려오듯 쏟아져 오는 왜병들과 백병전을 벌렸다.
왜적들은 조총을 둘러메고 짜른 칼을 들고 육박해 들어온다.
의병장은 천여명 군사를 지휘하여 허연 백발수염을 바람에 휘날리면서 정신없이 적을 무찔러 나갔다.
그러나 싸우는 시간이 갈수록 군사의 수효는 점점 줄어들었다. 모두 대의를 위해 죽을 각오다. 의병은 어느듯 이십여명의 군사 밖에 남지 않았다.
의병장은 완전히 적진 중에 포위되어버렸다. 그러나 단 의병대장은 최후까지 싸울 것을 각오한 바 있어 어떻게나 활을 쏘앗던지 엄지 손가락이 달아서 새빨갛게 벗겨지고 살점이 흐물흐물 떨어져 나갔다.
이 때 의병대장의 종제 호현이 형님을 도와서 역시 의병으로 싸우다가 형님의 말꼬삐를 붙들었다.
「형님, 우선 적진을 뚫고 나가서 다시 군사를 모아서 싸웁시다.」
하고 간곡하게 권하였으나 장지현은 아우의 말을 듣자 소리를 높혀서 아우를 나무란다.
「너 이놈 아버님의 말씀을 잊었느냐 충과 의로 세상에 살고 청백한 것으로 집안의 도를 전하라하시던 말씀을! 나는 충과 의를 위해 이곳에서 목숨을 다하련다.」
결연이 말을 끝내는 순간 쳐들어닥처오는 적병 오륙명을 단칼에 시살해 버린다.
효현이 또다시 의병대장에게 달려들어
「형님! 잠깐만 피하십시요」
애걸하다 싶이 권하였으나 의병대장은 눈을 부릎떠 아우를 꾸짓는다.
또한 정 기룡은 또다시 큰 소리로 외친다.
「장군! 어서 피하십시오」
그러나 의병대장은,
「나는 군사들에게 고개를 사수하기로 결의했소. 이천여 군사가 내 앞에서다 죽어 넘어졌는데 늙은 나 혼자만 살아서 의리를 저버린단 말이요」
노장 장 지현은 이렇게 말을 한후 또다시 적진을 향해 돌진하는 순간 적의 조총탄환에 맞아 그만 마상에서 힘없이 떨어져 순절하고 만다.
이를 지켜본 동생 호현이도 이를 악물고 적진속으로 뛰어들다가 또한 적탄에 맞아 쓰러지고 마니 의병군 2천여명은 의병대장을 비롯 마침내 전원이 추풍령 고개를 사수하려다 충과 의를 다하여 순절하고 말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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