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IT/옛날 이야기

옛 이야기(고전) - 대도 장팔이 (상)

by 양화산장 2018. 7. 12.

암흑칠야의 삼경 바람처럼 달려와서 역시 바람결인양 날렵하게 높은 담벼락을 훌쩍 뛰어넘은 장팔, 쥐새끼 걸음으로 소리 없이 당대의 세도가 엄청난 우의정 정시우의 집 안채 비밀창고로 다짜고짜 덤벼들었다. 이곳간에는 소문데로라면 금은보화가 가득할 것이다.

장팔의 눈은 어두울수록 오히려 빛났다. 고양이 눈처럼…
창고에는 굉장히 다부진 자물쇠로 잠겨져 있다고 했다. 과연 처음 보는 맹꽁이 자물쇠가 걸려 있었다. 참으로 훌륭하게 만들어진 자물쇠였다. 장팔은 냉큼 그 맹꽁이 자물쇠를 매만지면서 감탄해마지 않는다.
근래에 웬만한 곳간이나 다락을 자기 집 드나들듯이 횡행하는 도적들이 있어 간담이 서늘해진 양반집에서들은 다투어 튼튼한 자물쇠를 구하게 되었거니와 하물며 우의정 정시우 같은 재보를 가진 집은 특별히 만든 서양 맹꽁이 자물쇠를 잠그지 않고는 잠을 잘 수 없었다. 때문에 정시우 정승은 어떠한 도둑이라도 그 열쇠를 갖지 못하고는 맹꽁이 자물쇠를 절대로 열 수 없다는 다짐을 받고 맞추어 곳간을 채우게 된 것이다.

맹꽁이 자물쇠라고는 하나 서양에서 만든 자물쇠를 사들인 것은 아니고 그저 서양에서 새로 들여온 강철로써 특별히 견고하고 묘하게 만들어낸 신식 자물쇠였다.
(과연 잘 만들었군 웬만해서는 꿈쩍도 안한다. 어지간히 열기 힘들겠군)
장팔은 자기 나름으로 만든 특수 쇠못을 열쇠구멍에 꽂고서 서너 번 비틀어보고는 혀를 차며 중얼거렸다.
다른 예사 자물쇠 같으면야 서너 번까지도 비틀 필요도 없이 쇠못을 구멍에 끼우기가 무섭게 짤캉하고 자물쇠가 열려지게 마련인데 과연 이 맹꽁이 자물쇠는 도무지 손끝에 아무런 감각이 전해 오지를 않았다. 강철로 만들었으니 딴 구멍을 낼 엄두도 내지 못한다. 이 자물쇠는 어디까지나 재간으로 열 수밖에 없었던 것이다.
(절대로 안 열릴가 없으렸다. 양국 강철이라야 한껏 견고할 뿐이지 열쇠 열개 짜임새까지도 다를 수 없는 법이니라 이따위 자물쇠쯤을 못딴다 해서야 어찌 장팔이 대도라 할 것인가)
오밤중 냉기가 어지간히 싸늘하지만 장팔은 이마에 비지땀을 홀리면서 일심 전력으로 쇠못을 가누어 댔다.

이 쇠못은 장팔이 스스로의 재주와 온갖 정성을 다하여 만든 만능 열쇠로써 굳지도 않고 무르지도 앓고 알맞은 강도를 지녀 자물쇠를 열기에 안성맞춤인 쇠못이다.
장팔은 이를 악물고 서너 번째 쇠못을 비틀면 웬만한 것은 짤캉 소리를 내고 열리게 마련이련만 이놈에 자물쇠는 도무지 손끝에 감각조차 전해 오질 않는다.
(으흥! 이놈은 정말 다부질세)
도대체 걸리지를 않는 것이다.
(이렇게 찔러도 안 걸리고 그럼 요쪽으로 요렇게 비틀고 여기를 눌러서 이래도 안되다니……그거참)
장팔은 손등으로 이마의 구슬땀을 쓱쓱 문질었다. 주위는 물 속처럼 고요했다. 이렇게 고요할수록 쇠못을 조심스럽게 움직이지 않으면 소리가 퍼져서 들킬 염려가 있었다.
(내가 세상에서 이름난 도적으로써 후세에까지 이름을 떨치고 안 떨치고는 모름지기 이 맹꽁이 자물쇠를 여느냐 못 여느냐에 결판이 달려 있으렸다. 양지꼴 길보가 분명히 말했겠다. 아무렴! 장팔은 지금까지 숱한 곳간을 털었다는 걸 뉘 모를까. 놀라운 재주에 나는 머리를 숙이네마는 오늘날까지 떨어낸 자물쇠로 말하면 노리개 같이 우스광스러운 장난감이나 진배 없으리로세. 아무리 날고 뛰기로서니 장동 재상댁 비밀 곳간 맹꽁이 자물쇠만은 어림도 없을 것이라고 했것다)
장팔은 속으로 길보가 깔보며 말하던 꼴을 되새기면서 자물쇠에 매달려 온갖 비술을 다쓰고 있다.

양지꼴 길보는 이제는 손끝이 무디어서 직접 도둑질을 못하지만 열놈이나 되는 졸개를 거느리고 그 훔친 재물로 우쭐거리고 행세하는 두목녀석이다.
장팔은 외톨백이 협도로 다만 도둑끼리의 의리라는 것을 생각해서 가끔 양지꼴 길보집으로 놀러가기는 하지만 무엇을 들고 가는 법은 한번도 없었다.(그 녀석한테 갔다줄 재물이 있으면 비록 한푼이라도 끼니를 굶주리는 빈민들에게 나누어 주리라)
장팔은 이런 뱃장이기에 길보와는 이십 년이나 터울이 지는 연배지만 팽팽하게 터놓고 지내려 했으며 길보로서도 장팔의 건방진 태도가 속으론 달갑지 않았으나 그의 신묘한 재주에 눌려서 그런 아니꼬운 터수를 눈감아주고 지내왔었다. 그러나 젊은 졸개들은 여간 못마땅한게 아니어서
『두목 장팔녀석을 어째 내버러두슈, 그냥 두고보자니 눈꼴이 사나워서…
그 녀석 좀더 있으면 정말 왕이라도 된 듯이 아니꼽게 거짓말을 펑펑 터뜨릴테니… 일찌감치 끝장을 내버립시다』
『그래도 장팔은 너희들 따위와는 물건이 다르니라, 한번에 오백냥이나 되는 엽전을 마치 제것인양 의젓하게 빼오지 않어, 재주 있고 통크고 늠름한 품이 너희들관 판이 다르니라, 너희도 장팔이에게 배워야 한다』

길보 두목은 일쑤 장팔을 두둔했다. 장팔이가 자기 졸개가 되어준다면 하고 못내 아쉬움을 느끼는, 거추장스럽지만 그런대로 아끼는 보배와 같았다. 때문에 길보 두목은 장팔이가 건방지게 굴어도 좀처럼 화를 내지 않았지만 졸개들은 막무가내였다.
『여하튼 두목! 녀석이 우리 집에만은 못오게 하슈』
『왜!』
『녀석이 집에 오면 아주머니가……』
말끝을 맺지 못하고 입을 다물었다. 두목의 안색이 변했기 때문이다. 하기야 말하지 않아도 두목은 너무도 깡그리 잘 알고있는 사실이었다. 길보의 아내 추월은 스물 하나의 젊은 계집이다. 예쁘장하게 생긴 모습에 매끈하게 풍염한 몸매는 쉰 살의 중늙은이 도둑놈의 첩으로 좀 아까운 계집이었다.

추월은 원래 백정의 딸로 태어난 저주스런 운명을 가눌길 없어 어렸을 때부터 도벽이 생겨 열일 곱살 때에는 어느덧 길보 일당에 끼게 되었다.
추월은 남자 못지 않게 도둑질 솜씨가 비상했었다. 열아홉살 봄에 길보 두목에게 강제로 몸을 망치고 그냥 늙은 두목품에 안기긴 했지만 진정 싫은 노릇을 할 수 없이 살아오고 있었다. 이럴무렵 장팔을 처음 보고 그만 마음이 온통 쏠렸으니 추월이 장팔을 사모하는 마음은 날이 갈수록 굳어갔다. 오늘쯤 장팔이가 찾아올 성싶은 날이면 추월은 공연히 마음이 들떳으며 그녀의 화장은 정성이 깃들고 한결 얼굴에 화색이 돌았다.

한번은 길보가 없을 때 마침 장팔이가 찾아와서 추월은 안방으로 장팔을 끌어들여 그 짓을 걸팡지게 벌리고 있는 것을 졸개들에게 들킨 일이 있었다. 장팔도 추월이를 오매간에 그리워하든 차다. 될수만 있다면 추월을 아주 자기 여편내로 삼고 싶었다. 그러나 그들의 사랑은 그늘에서 꽃필 뿐이었다. 길보도 이런 기미를 전연 모르는 바는 아니었기에 다른 문제와는 달리 제 계집의 일로 꼬집히고 보니 그 역시 약한 사내일수밖에 없었다.
그 다음날 장팔이가 찾아왔을 때 얘기 끝에 길보는 슬그머니 이런 말을 했다.
『정말 자네는 훌륭하네. 탐학한 양반 놈들을 털어서 한푼도 사사로히 쓰지 않고 빈민들을 위해 뿌리니 이야말로. 우리 도씨의 정도요 귀감이네. 하지만 그쯤으론 아직은 세상에서 으뜸가는 대도는 못되네 』
『……』
『장동 호랑이 정대감이 요새 새로 맹꽁이 자물쇠를 장만해서 비밀 곳간에 채웠다는데, 제아무리 장팔이라도 이것만은 열지 못할 것이라고 큰 소리 치더라는 소문이 났더군』
『그까짓 한번 해 보겠소』
『과연 장팔답군, 두목깜으로 받들어 모셔야겠지만 그것만은 정대감댁 맹꽁이 자물쇠를 열고 털고 난후로 미루겠네』
『실수없이 해치우면 그땐 나를 으뜸가는 대도로 모시겠단 말이군』
『이르다 뿐인가. 이 길보 당장 자네 졸개가 되겠네』
『틀림없소? 길보영감』
『아무렴 내 졸개들도 함께 맡기겠네』
『그뿐이오?』
장팔의 눈길이 슬쩍 안방쪽을 돌아보았다. 길보의 눈치도 잽쌌다.
『추월이도 어김없이 자네차지네』
『좋소. 두말 않기요』
장팔은 머리를 끄덕였다. 그 눈망울이 유달리 빛나면서
『언제쯤?』
『오늘밤 삼경』
『내일 아침엔 좌우 포청에서 쏟아져 나오는 판에 장안이 떠들썩하겠군. 자네가 이번에 맹꽁이 자물쇠까지 열어 젖히면 제아무리 일국의 영상이라도 울상이 되겠군. 그 꼴을 구경하자니 지금부터 신바람이 나는군』
『뭘 그까짓 걸 가지고……탐학한 양반놈들 울상을 보느니, 차라리 수구문밖 빈민촌으로 나와서 가난한 그 사람들이 기뻐하는 모양을 보구려』

그날 장팔은 길보뿐 아니라 추월이 엿듣는 자리에서 호언장담했다.
무엇보다도 그 푹신하고 교태가 줄줄 흐르는 추월을 마음놓고 품을 수 있다는 조건이 장팔의 마음을 불태웠다.
때문에 장팔은 무슨 수를 써서라도 기어이 맹꽁이 자물쇠를 깨뜨려야겠다는 결심을 굳혔다.
『열리지 않을 리가 없으렸다. 이럴 수가 있단 말인가. 맹꽁이 자물쇠란 이쪽이 꼬부라져서 여기서 걸리면 요렇게 찌르고 요렇게 비틀어서 살짝 낚아채면 잘가닥 열리게 마련인데……』

장팔은 오늘밤 이 맹꽁이 자물쇠를 기어이 얼어야만 했다. 그러나 정대감이 아낌없는 공전을 내놓고 공인으로 하여금 온갖 재주와 솜씨, 정성을 기울여 만든 이 양국 맹꽁이 자물쇠는 좀처럼 열릴 가망이 없었다. 아무리 애를 써도 손끝에 전해와야 할 반응이 도무지 없었다.
장팔로선 자물쇠라는 자물쇠는 어떤 것이든 그 얼개의 됨됨이를 훤히 알고있다고 자신했었다.
『아무리 양국 맹꽁이 자물쇠라도 사람이 만들었음엔 틀림없으려니 이치에 어긋나는 얼개란 있을 수 없어』

장팔은 필사적이었다. 온갖 기술을 다해서 목숨과 진배없는 쇠못을 열쇠구멍에 꽂고 요리조리 가눔질 했다.
잘까닥!
비로소 반응이 나타났다. 첫번째 열쇠가 풀린 것이다.
『옳지』
첫 번째 열쇠가 풀렸으니 이 맹꽁이 자물쇠를 여는 것도 시간문제였다.
장팔이는 다시금 손끝에 온 정신을 모아 쇠못을 가누었다. 일초, 이초, 삼초……바야흐로 마지막 열림쇠가 쩔거덩 소리도 요란하게 열리려는 찰나
탁!
등뒤의 어둠 속에서 무엇인가 날라와서 곳깐 문짝에 부딪쳐 박살이 났다. 달걀이었다. 달걀은 깨지면서 동시에 희뿌연 가루를 퍼뜨렸다. 장팔은 창졸간에 그 희뿌연 가루를 얼굴에 뒤집어썼다. 그 순간 매콤한 냄새가 코를 찔러 콧구멍이 간질간질하더니, 재채기를 쏟았다. 그 바람이 가루가 눈으로 스며들었다.
『어이쿠』
장팔은 아찔했다. 그것은 고춧가루와 재를 섞은 실명탄이였다.
『아차 실수로다!』
황급히 맹꽁이 자물쇠에서 손을 떼면서 쇠못을 벽틈사이에 끼웠다. 그때 연거푸 여남은 개의 달걀이 날아들면서 깨어지는데로 가루가 장팔을 휩쌌다.
『장팔 도적 오라를 받아라』
마치 벼락치듯 한 고함소리가 울리면서 손에 손에 횃불을 치켜든 포도군사가 개미떼처럼 몰려들었다.

장팔은 눈을 뜨지 못하면서도 본능적으로 몸을 날렸으나 이미 때는 늦었다. 어느 결에 겹겹이 둘러싸여서 그대로 결박을 당하고 말았다. 장팔 같이 날렵한 도적을 사로잡자면 이렇게 갑자기 떼를 지어 덮치지 않고서는 도리가 없음을 알고 있었기에 포도대장은 어둠속에 군사들을 잠복시켜놓고 장팔이가 자물쇠를 열기에 골몰할 때까지 기다렸던 것이다.
『계락에 속았구나』
포도군사들에게 엎치고 덮치면서 장팔은 이를 갈며 분해했다.
『양짖골 길보놈 짖이군 놈이 나를 함정에 몰아넣을 심보인줄은 몰랐구나』
길보가 밀고하지 않았다면 오늘밤 이 시각에 포도군사들이 여기 와서 숨어있을 까닭이 없었다. 더구나 만반의 준비까지 갖추고
장팔은 길보의 의리 없는 능글맞은 쌍판에 침을 뱉어 주리라 별렸다. 창팔은 흔들리는 함거 속에서 눈을 감고 그날 밤의 일을 돌이켜보고는 구역질이 날만큼 역거워했다.
『길보야 네놈은 나를 속여 배반했지만 나는 포청에서의 무서운 고문에도 동사의 의리로 너를 팔지 않았다. 이놈 두고보자 내가 죽을줄 알고 나는 새남터에서 막바지에 발승술로 몸을 빼어 달아나리라. 그리고는 실수 없이 정대감이 자랑삼는 맹꽁이 자물쇠를 열고 비밀 곡간을 몽땅 털어 너와 나의 언약을 반드시 지키고 나서 죽어도 죽겠다. 너한테 할말을 할 자신이 있어서 네놈의 그 흉축한 행적을 고하지 않았느니라』

함거 달구지는 어느덧 장통교를 건너서 황토마루도 지나고 이제 모전다리로 해서 구리개에 다다랐다. 장동 정시우 정승 집앞에 지날 때는 정승댁 사내종놈들이 쫓아와서 함거속의 장팔한테 볶은 콩을 뿌리면서
『쉬이! 마귀야 가거라! 쉬이!』했다.
흉악한 도둑놈이니 넋까지 쫓아버리자는 수작인가.
장팔은 한쪽 눈을 지긋이 뜨고 종놈의 그런 꼴을 보면서
『그 콩일랑 맹꽁이 자물쇠 곳간 앞에나 뿌려두거라. 오늘밤엔 틀림없이 곳간을 털터니 미리 잡귀신이나 쫓게시리……』
이렇게 종놈들을 향해 소리 질렀다. 그러나 장팔의 호통은 누구에게나 미친놈이 죽기전 발악으로 밖에 들리지 않았다. 도대체 말이나 될법한가 함거에 갇혀서 이제 새남터에 닿으면 지체없이 망나니의 한칼에 모가지가 썩둑 달아날 죄인이 오늘밤 곳간을 털겠다니……
하지만 장팔은 꼭 새남터에서 탈출해서 오늘밤으로 반드시 장동 정승댁 맹꽁이 자물쇠를 열고야 말겠다는 신념이 용솟음쳤다.
『맹꽁이 자물쇠를 깨뜨려 보이겠다는 언약은 비단 길보에게만의 약속은 아니다. 서린방 옥에 있는 여러 사람들한테도 장담을 했느니라. 어김없이 발승술로 몸을 빼쳐 죽지 않겠다고 이장팔의 멋진 발승술을 똑똑히 겪어본 그 친구들의 놀란 꼴이라니……』

발승술이란 팔다리를 묶은 포승줄을 몸을 움추려 풀어 해치는 술법이다. 그는 어렸을 때 우연히 이 술도의 스승을 만나 익혀둔 명수이기도 했다. 장팔은 죄목이 결정되어 서린방 감옥에 옮겨져 갇히면서「덩이」때문에 실랑이를 당한 일이 있었다.「덩이」란 옥에 새로 갇힌 죄수가 옥정(죄수좌상)에게 바쳐야 되는 돈으로 이「덩이」를 못 내놓으면 죄수끼리도 무척 하대를 받게되니 요즈음「신고식」과 비슷했던 모양이다.
장팔 그 덩이를 가지지 못했기에 다짜고짜 덤벼든 고참 죄수들한테 묶여서 대들보에 대롱대롱 매달렸다. 그런데, 장팔은 어느결에 발승술로 포승을 풀어헤치고 의젓이 옥정 앞으로 걸어와 앉자 모두들 눈이 휘둥그래 놀랐다.
『허어 희한한 놈이로세, 임잔 발승술을 아는 모양인데 여태 뭘해 먹었누?』
옥정은 빙그레 웃으면서 물었다.
『그저 좀도둑 노릇이나 했소』
『기왕 도둑질을 할양이면 장팔처럼이나 하지』
『장팔이가 그렇게 대단하오?』
『허이 건방진 놈이군. 생판 장팔 이름도 못들었구먼』
『이름이야 알지요. 옥정은 장팔을 만나 보았소?』
『아직 못보았지만 듣자하니 훌륭한 협도라더군』
장팔은 그만 큰 소리로 웃음을 터뜨렸다.
옥정의 눈살이 날카롭게 비틀리면서 금방 후려칠 기세로 쏘아 붙었다.
『왜 웃나』
『고정하오 실은 내가 장팔 장팔이요』
그제서야 옥정의 얼굴이 풀리면서
『그런걸 내 미쳐 몰랐구려……그럼 발승술도 하면서 어째 삼십육계를 놓지 않고 끌려왔소?』
장팔은 자기의 과거지사를 쭉 애기했다. 그러면서
『나는 새남터에서 망나니의 칼날이 떨어지기 직전에 발승술로 몸을 풀고 도망칠 작정이오』
옥정은 고개를 끄덕였다. 이미 장팔의 발승술을 목격한 그로서는 넉넉히 장팔이가 새남터에서 탈출할 수 있으리라 믿었다.
그래서 오늘 마지막으로 옥에서 끌려나가는 장팔에게 옥정은 당부까지 했다.
『아무쪼록 뜻을 굽히지 마오 당신 뜻대로 성취하기를 천지신명께 빌겠소』
옥정은 새남터 막바지 찰라에서 묶인 포승을 발승술로 풀어버릴 수 있다는 장팔의 끈덕진 신념을 애처롭게 여기면서도 한편 성공하기를 빌며 장팔과 헤어진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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