신라 문무왕 시대에 의상조사는 자장 율사, 원효대사와 더불어 큰 별처럼 삼대 거승(삼대거승)의 한분으로서, 불교 대도를 달성하였다.
그러나 더욱 더 불교의 대진리를 탐구득도하기 위하여 멀리 당나라를 향하여 길을 떠났다.
그리하여 한없이 가던 중 그만 몸에 신열이 나서 객지에 드러눕게 되었다.
하루 이틀도 아니요 수천 리 길을 쉬지 않고 강행하다 보니 중간에 그러한 신병이 날만도 하다.
도착한곳은 소주 땅이요, 머무른 곳은 길가에서 손님을 받는 조그마한 객주 집이었다.
그렇지만 집이 넉넉지 못해 열여덟살 모령의 처녀가 나이 많은 사모님을 모시고 겨우 살아가고 있었다.
의상대사는 이러한 집에 드러누워서 꿍꿍 앓게 되니 수천리 타국 남의 땅에서 기가 막힐 노릇이 아닐 수 없었다.
그런데 다행한 것은 그 집 처녀 서령이라고 부르는 처녀가 무척 친절하여 대사의 시중을 잘해 주었다.
그런데 그 천절하다는 정도가 지나쳐 서령은 대사이게 한줄기 애정을 느끼면서 지성으로 대사를 간호하는 것이다.
따라서 서령은 대사의 측근을 잠시라도 머 나지 않고 약을 다려 드린다, 죽을 끓여 드린다, 심지어는 밤이 깊도록 그의 팔 다리를 주물러 드리기도 하였다.
세상이 친오빠나 부모인들 이보다 더하랴! 해서 대사는 뼈에 사무치도록 고마움을 느꼈다.
『서령! 세상에 이렇게 고마운 일이 어디 있겠소.』하고 감격에 어린 사의를 표하노라만『염려 마세요. 어서 병이 나으셔야 되잖아요. 내 집에 오신 손님을 푸대접해 드려서 되려 미안합니다. 스님!』
하고 흰 이를 드려내 보이면서 방긋 웃어도 보이었다.
동시에 서령은 이런 말을 했다.『스님!』
『응?』
『스님은 우리나라 사람이 아니오 멀러 신라에서 오신 타국 손님 아냐요……허지만 저는 스님을 다국 손님이거니……하는 생각이 들지 않아요. 스님은 날더러 자꾸만 불교를 믿는 것이 좋다고 하시지만 저는 부처님 보다 더 스님을 믿고 싶어요. 따라서 이렇게 한방에 같이 모시고 불교에 대한 말씀을 듣고 있는 동안이 행복인 줄 알아요--.』
사실 그랬을 게다.
대사는 병이 아주 중해서 말을 못할 바는 아니니까 옆에 늘 와서 붙어있는 서령을 보고 불고에 대한 이야기를 옛말처럼 재미있게 들려주었다.
불교 이야기로서만 꽃을 피우니 서령도 이제는 독실한 신자처럼 되었다.
그러나 불교를 진심으로 믿고도 싶지만 아무리 생각해도 불교 보다 더 앞서는 문제가 애정인데는 어이 할 수 없었다.
솔직히 서령에게 속임 없이 진심을 고백하라면,
(저는 스님을 사랑합니다.)
이러한 말이 튀어 나을 것만 같았다. 심지어는 스님 병이 하루 빨리 나아줬으면 하는 생각 보다 앞서는 마음―그것은
(스님 병이 차라리 오래 갔으면……)
하는 생각이 자꾸만 서령의 애타는 감정을 못 견디도록 움직여 주었다. 스님 병이 완쾌되는 날 자기 집을 떠나가야 하는 손님이기 때문이다.
그런데 이것은 서령의 생각만이 아니었다. 똑 같이 의상 조사의 속일 수 없는 친정이기도 했다.
내가 병이 나으면 이 집을 떠나야 하고 떠나는 날은 사랑하는 서령을 못 보게 된다.
그러면 스님은 자기 수중에 들어 온전히 보배를 하루아침에 잃을 것만 같았다.
따라서 의상 조사는 이 집에 병으로 말미암아 누워 있는 동안에 분명히 딴 세상을 발견했다.
여태까지 의상조사는 불교대도를 찾는 이외에는 만 세상이 있을 수 없었다.
더구나 지금은 크나 큰 마음을 먹고 멀리 당나라로 수도 여행을 떠나가던 길인데 아무리 생각해도 불교를 위하여 일생 일명을 바친다면 의상조사의 뜻을 무서운 힘으로 누르고 앞서려는 만 세상이 있으니 그것은 저도 모르게 서령에게로 끌러 가는 애정 문제이어서 이것은 어이할 도리가 없었다.
그야말로 속으로,
(별일이다…‥‥내가 왜 이럴까?)
일찍이 한 번도 경험해 본 적이 없는 반면에 완전히 사로잡혔다.
예쁘고 상냥한 처녀가 밤이 깊도록 자기 팔 마리를 주물러 줄 때 의상 조사도 남자이어니 이런 때에 이성까지 모른다는 목석은 아니었다. 때문에 그의 손목이라도 꼭 잡고 싶은 생각이 어이 안 나랴―.
그래서 안 될 줄 번연히 알면서도 서령을 그리워하는 연모의 정을 금할 수 없었다.
자나깨나 일편단심 불교를 믿는다는 세계 이의에 아무 것도 모르면 의상조사―.
그런데 지금 나이가 젊은 탓도 있겠지만 자기가 하는 말을 잘 이해해 주고 또 자기라는 인간마저 간절히 이해해주는 사람이 서령이라고 믿었다.
그러나 이러다가 내가 만일 아차 잘못으로 불교 이의에 서령을 대하는 몸가짐이 아주 딴 세계로 죄를 범한다면 그때 나는 지금까지 믿어오던 모든 불교 진리가 하루아침에 물거품이 되어 버린다는 무서운 힘이 또한 용솟음 칠 때 의상 조사는,
『서렁!』
『예.』
『덕택으로 이제는 내 병도 완쾌에 가까운 것 같소!』
『다행입니다.』
『그러면 나는 가야 되잖겠어요?』
『…………』
물론 옳은 말이지만 잔다는 데는 마음이 아파 미처 대답을 못하였다.』
『서령! 내가 당나라로 가서 더욱 더 큰 공부를 계속하여 만족한 뜻을 이루고 돌아올 때는 꼭 이리로 들러 서령을 찾을 테니 그 동안 부디 몸조심하여 양친 부모 공대 잘하시오……응……』
하고 당부하면서 밤을 새우러 했다.
『스님―.』
『응!』
『제 보기에는 스님 병이 먼 걸을 떠날 정도로 완패되지는 않았잖아요? 병이란 나아갈 때에 조심하는 것이 옳다고 생각하와요. 그리고 병이 또 완쾌되었다고 해서 곧 길을 떠나야 할만큼 스님 앞 길이 바쁘십니까?』하고 애절한 표정으로 말했다.
이것은 가지 말라는 말보다 더 뜻이 있었다.
그래서 의상 조사는 끝으로 이렇게 말했다.
『원래 불교란 만 가지를 아주 깨끗이 잊어버리고 정말 무아지경에 들어야 하오……즐거운 일, 기쁜 일, 괴로운 일이 있더라도 그것을 모두 잊어버리고 불교 본연의 세계로 들어가야만 하오……그런데 나는 지금 행복한 경지에 앉아 있는 것이 분명하오. 그러나 한편 참을 수 없는 괴로움도 없지 않는 것도 어이하오……』가만히 숨만 삭삭 쉬면서 일방적으로 듣고만 있던 서령을 보고 이렇게 전제한 마음 다시 말을 이으며,
『서령이 이렇게 나의 옆을 떠나지 않고 앉아서 여러 가지 뜻 있는 이야기를 주고받고 있는 동안이 가장 즐거운 때요……그러나 일단 서령이가 밖으로 나가면 바로 지척에 있는 서령이를 못 보는 나는 가장 괴로운 때랍니다. 그러기 때문에 우리 불도는 그러한 기쁨을 이기는 동시에 그러한 괴로움을 눌러야 하오. 그러기 위해서는 나는 빨리 이 집을 떠나야 하오중이란 원래 거짓말을 못하는 법이오 그러니깐 나는 내일이라도 가야 하겠오――』
『스님 말씀을 이해 못할 저도 아니와요……하지만 스님 말씀 한 마디 더 듣고 싶사와요.』
『금방도 말했지만 나는 거짓말은 못하오. 사실 나는 서령을 사랑했오. 무엇 때문에 이 마음이 그렇게 약한지를 몰랐소. 참 신기로운 일이외다.』
『스님……』
서령은 기어이 울음을 터뜨렸다.
그는 절반 울고 절반 흐느끼면서 이렇게 말했다.
『스님--. 소녀도 알 길이 없아와요 지금도 소녀의 마음 더도 말고 이대로 이 세상을 마칠 때까지 영원히 스님을 제 옆에 모시고만 싶나이다. 그러나 스님 제가 이렇게 스님을 믿고 사랑한다하여 그것이 죄가 된다는 경문이 어디 있습니까?』
하고 진지하게 떠드는 서령의 두 눈동자는 다시 한번 밝았다.
『서령이‥… 나는 이렇게 같이 앉았을 때가 기쁘고 나갔을 때가 섭섭하게 생각되는 이 자체가 나의 수도의 힘이 모자라는 탓 인줄 아오.』
하면서 어느 사이에 자기 몸에 안겼던 서령을 풀어 주면서,
『사람이란 세상에 한번 나면 한번 죽게 마련이오. 또 이렇게 만나면 으례 헤어지게 마련 아니겠소. 마음 돌아올 때에 기어이 만날 것을 약속하면서 가는 나를 웃는 낯으로 보내주오.』 애걸하듯이 말했다.
그리하여 마침내 의상 조사는 50일만에 서령의 집을 떠났다. 원래 이별이라는 것은 슬픈 법이어니 떠나는 대사와 보내는 서령.
그것은 눈물 없이 볼 수 없는 작별이었다.
그리하여 남쪽으로 한없이 떠나가는 의상 조사는 쌍 돛배에 몸을 싣고 청파만리 당나라 천지를 그려보면서 바닷가에 울고 섰는 서령의 그림자가 안 보일 때까지 방울방울 눈물을 흘렸다.
그후 6년 이라는 세월이 어언간에 흘렀다.
의상 조사의 수업은 완성되었다.
당나라 불가서도 그를 존경하였다. 불교 대가로서 성가한 의상 조사는 그냥 더 당나라에 머물러도 좋지만 그때 들려오는 한 가지 흉문 그것은 당나라가 멀지않아 신라를 침공하려 한다는 소식이었다.
그렇다면 의상조사 생가에 하루가 아쉬웠다.
내 나라 조국이 당나라의 독수에 침범을 당한 대서야 말이 되느냐! 어서 가서 흉보를 조국에 전해야만 했다.
그래서 부랴부랴 보따리를 꾸려 가지고 당나라를 떠났다.
그리하여 돌아가는 도중에 소주 땅에 들렸다. (꿈에도 그립던 서령 처녀를 만나기 위해서다)
그러나 막상 그 집에 다달아 보니 서령은 어디 나가고 잠시 집에 없었다. 좀 더 기다리면 만날 수도 있지만 그러자면 타고 오면 배를 놓치게 된다. 만일 배를 놓치면 언제 신라로 돌아갈지 기약할 수 없는 일이었다.
그리하여 쪽지 한장을 써서 그 집에 두고 다시 바닷가로 나와서 배에 올랐다.
서령이 집에 돌아와 보니 의상 조사가 남기고 간 편지 한 장.
『서령, 꿈에도 그리웠던 서령, 모처럼 만나려고 들렸는데 불행이도 집에 없어 못 보고 가오. 그만큼 나라 일이 위급하외다. 나를 욕하지 말고 용서해 주오. 다음에 연분 있으면 또 만납시다. 부디 안녕 서령』
이런 정도의 짧은 글월이었다.
『너무 무심하여라. 그냥 가시다니…』서령은 불이닿게 바닷가로 좇아 나가 대사님 대사님하고 미칠 듯이 불렀다.
그러나 차차 멀어만 지는 돛단배 선두에 나서 수건을 흔들어 주는 의상 조사의 그림자를 바라보면서 엉엉 소리쳐 울고만 싶었다.
그러나 그럴 때가 아니었다.
서령은 얼른 백사장에 나가서 치마를 벗어 들고 바람결이 날렸다.
그랬더니 그의 치마는 제대로 날아 의상 조사의 머리 위에 떨거지는 동시에 얼른 받아 쥐는 그의 손을 보았다. 이것을 보니 참으로 반가왔다.
전지전능하신 부처님의 힘을 밀어 서명의 불타는 정은 의상조사 손안에든 치마폭에 감겼다.
그래도 바라보니 의상 조사를 실은 돛단배는 멀리 가물가물 보여질 때 서령은 바닷가로 다시 뛰어 달렸다.
만경창파 출렁거리는 바닷물결을 향하여 서령은 텀벙 뛰어들었다.
그러자 얼마 후―
바닷물은 콸콸 끓었다.
꽈르릉! 꽈르릉! 하는 소리가 대단하다 동시에 갑자기 검은 먹장구름이 세상을 뒤덮었다.
번개가 번쩍이며 뇌성이 진동했다. 그러자 바닷 속에서 어마어마한 청룡 한마리가 솟아 나더니 공중을 날아 하늘로 올라갔다.
이것을 뱃사람들도 다 보고 의상 조사도 똑똑히 보았다.
『아―서령이 바닷물로 빠져 죽더니 마침내는 청룡으로 번하여 하늘로 올라가는구나……』
신라로 돌아온 의상조사는 나라의 무궁한 번영과 만백성의 자유 평화를 빌기 위하여 어느 좋은 자리에 법당 하나를 세워 보리라 생각하고 전국 명산을 두루 순력하였다.
그러다가 마침 마음 내키는데가 있어서 그리로 슬슬 발길을 옮겼다.
영주에서 북으로 80리 가량 떨어진 웅장한 산 속으로 깊숙이 들어갔다. 가다가 보니 한 곳 꼭 마음에 드는 터가 있었다.
어디로 가나 이만큼 좋은 터는 다시 만나기 힘들 것만 같았다.
그러나 거기에는 3맥여 명의 폭도를 이 그 자리를 점령하고 있었다.
그래서 여기 절을 짓고 싶으니 그 자리를 제발 나에게 양보하여 달라고 사정사정 하여 보았으나 그들은 도리어 대사를 조롱하고 모욕함이 아닌가.
그렇다고 그 많은 폭도들을 상대로 싸울 수도 없어서 난처했다.
그런데 하늘을 보니 공중에서 청룡 한마리가 나다나더니 점점 저공으로 내려와 의상 조사의 머리 위를 돌고있었다.
보니 그는 비록 청룡이로되 얼굴은 사람이었다. 뿐만 아니라 그 얼굴은 분명히 서령임에 놀랐다.
『서령!』 소리쳐 부르니 그는
『예, 이 몸은 분명 서령이외다. 생전에 한때 이 몸은 스님 품안에 들지 못하였음을 한하였더니 이제 생각하면 그것이 인생에서 느끼는 한낱 꿈이외다. 이 세상에 미흡했던 한을 저 세상에서 다시 만날 스님에게 풀어볼까 하오니 좁은 망에 개실 동안이마도 부디 안녕하셔이다. 스님께서 이 자리에 절을 짓는 것이 원이시라면 염려 마사이다.』
하더니 그 룡은 다시 집채같은 바위로 변하여서 공중으로 둥실둥실 춤을 추며 날아 폭도들 3백 명이 웅집한 머리위로 가더니,
『이놈들아. 빨리 이 자리를 비켜주지 못할까. 만일 내 말을 듣지 않을 때에는 너희들을 이 바윗돌로 뭉개 주리라.』
하니 놈들은 일시에 혼비백산하여 도망을 쳐버렸다.
그리하여 곧 그 자리에 필을 짓기 위하여 공사를 일으켰다.
공사는 뜻대로 진행되어 다음해 가을이 무려 3천명 승려들이 모인 가운데 성대한 낙성식이 열리는 날.
공중으로 둥둥 떠서 내려온 바윗돌 하나가 새로 지은 걸간 뒤쪽에 가라앉았다.
그 바위가 비록 땅 위에 앉았다 하나 그 밑으로 실을 넣어서 양쪽에서 잡아 다리면 그 실아 빠져 나온다는 말이 전하여 온다. 그래서 그 돌 이름을 부석이라 부르는 동시에 이 질도 이름하여 부석사라 하였다 한다.
그 부석에도 말 할 것 없이 서령 처녀의 넋이 깃들여 있을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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