본문 바로가기
IT/옛날 이야기

옛 이야기(고전) - 적선지가 (하)

by 양화산장 2018. 7. 15.

지난 줄거리
박시양이라는 선비는 일찍이 부친을 여의고 노모를 모시고 끼니 연명도 어렵게 살았다. 그리하여 옛날 자기 집에서 부리던 종들을 찾아가서 종문권과 교환하여 얻은 필목과 그리고 대대로 물려받은 그림 한폭을 마지막으로 내다 판 돈을 가지고 돌아오는 길이 사람으로서는 그냥 지나칠 수 없는 막한 사정을 보게 되는 박시양은 갖인 필목과 은자를 모두 주어 그들을 구하고 귀향 길을 재촉하는데 은혜을 입은 자가 감격하여 박시양의 옷소매를 붙든다.

 

그러나 이 모녀는 꼭 죽게 된 목숨을 태산 같은 은혜을 입어 살아났으며 모녀가 은인을 따라가서 하다 못해 밥이라도 끓이고 심부름이라도 해드려야 겠다고 보따리를 꾸려 따라나서는 것이다.

박생은 집안 형편이 몹시 가난하여 모친과 단 두 식구건만 오히려 밥을 굶는 날이 허다한데 남의 식구까지 고생시킬 수 없다고 사양하였다.
그러나 모녀는 종시듣지 않고 자기네 먹고 살 것은 조금도 염려할 것 없다 하면서 한사코 따라 오므로 박생도 어쩔수 없이 그들과 동행을 하게 되었다.

그 이튿날 저녁때 본 집에 도착한 박생은 그동안 혼자 고생하신 모친을 위로한 후 여행에서 일어났던 지난 일들을 일일이 이야기하고 모녀를 모친께 소개하였다.
이 말을 들은 모친은 못내 기삐하는 표정으로 전과 같이 박생의 등을 두드리며 복 받을 일을 하였다고 칭찬할 뿐 아니라 양씨집 소녀를 어루만지며 마치 친딸과 같이 귀여워하는 것이었다.
이후로부터는 초상집 같이 쓸쓸하기 한량없던 박생의 집에서도 웃음소리가 새어 나오게 되었다.
그런데 소녀의 모친되는 부인은 심히 부지런하여 동네로 다니며 삯방아도 찧어주고 빨래도 해주며 여러가지 일거리를 맡아오는 것이었고 소녀는 집에 들어앉아 밤잠을 자지 않고 열심히 바느질을 하여 받은 삯으로 박생 모자를 정성껏 봉양하였다.
그러니 박생 모자는 전일에 비해 행복되고 편안한 생활을 보내게 되었으며 따라서 살림을 전부 양씨 모녀에게 맡겨 버리고 박생은 사랑에 들어앉아 전심으로 글공부를 계속하게 되었다.

그러나 액운이 다하지 아니하였던 탓인지 그 이듬해 봄 박생은 우연히 열병에 걸리어 심히 앓기 되었다. 그러나 소녀는 전염될 것도 두러워 하지 않고 박생이 누운 사랑방에 나와선 아주 숙식을 함께 하며 지성으로 병 간호를 하는가 하면 소녀의 모친은 뒷곁에 단을 모아 은인의 병이 하루 속히 낫기를 신령님께 빌었다.
양씨 모녀의 지극한 정성에 병마도 감동하였던지 한동안 위험했던 박생의 병세도 날이 갈수록 회복이 되어갔다.
멀고도 가까운 젓은 남녀의 사인지라 삼년동안이나 쓸쓸한 홀애비 생활을 해오던 박생은 배합꽃 같이 청초하고 순결한 처녀의 몸으로부터 풍기는 그윽한 향기를 맡으며 간호를 받자니 마음이 아니 통할 수 없었다.

낙엽지고 뀌뚜라미 외로히 울어대는 어느 가을 밤의 일이다. 주위는 죽은 듯이 고요하고 넘어가는 어스름 달이 창에 희미하게 비치고 있었다. 밤참으로 가져온 미음을 마시고 난 박생은 고마움과 그리움의 눈초리로 소녀 지연의 얼굴을 그윽히 바라보면서
「지연이! 고맙소. 이번에 내가 죽음 가운데서 살아나게 된 것은 모두가 지연이의 밤잠을 자지 아니하고 정성껏 간호해 준 은덕이요. 과연 이 은혜를 무엇으로 갚어야 할런지?」
하자 지연은
「왜 그런 말씀을 하셔요. 저의 모녀가 오늘날까지 살아있는 것은 오로지 은인께서 도와주신 덕분이 아닙니까 그 은혜를 생각하며 앞으로 일생을 두고 백골이 진토되도록이라도 시중을 드려도 다 갚지 못할 것이오며 하해 같은 은혜는 유명을 달리 한다 하더라도 결코 잊지 못할 것입니다」하며 말끝을 흐리며 수정 같은 눈물 방울이 맺인다.
「한평생을 두고 나를 위해 시중을 들어주겠다니 그것이 진정에서 나온 말이요?」
「네, 한평생은 고만두고 내생 후생 아니 이세 삼세 백세까지라도……」
처녀다운 수집음으로 지연의 옥같은 볼은 붉으례 상기되고 숨결은 가빠갔다 박생은 치밀어 오르는 정열을 못이겨 지연의 섬섬옥수를 덤썩 잡았다.
「내가 앓던 병이 무서운 전염병이라는 것을 알았겠지 전염이라도 되면 아니 그로 인하여 생명을 잃게되면 어쩔번 했소?」
지연의 눈동자를 사랑의 눈초리로 그윽히 드려다 보며 속삭이는 것이다.
「은인을 위하여서라면…저는…저는 기쁜 마음으로 몸과 마음을 다 바치겠어요」
「오… 고마운 지연이! …」
박생은 벌떡 일어나며 와락 지연이를 으스려져라고 끌어안았다.
이리하여 두 사람은 고달프고 외로웠던 마음과 몸은 불덩어리처럼 한뭉치가 되어 훨훨 불태웠다.

이듬해 봄 양가 모친의 허락을 받고 간략한 혼례식을 거행한 것은 물론이다.
그로부터 행복스러운 삼사년의 세월이 흘러간 어느날 가을, 우연히 모친이 병을 얻어 시름시름 앓기 시작하였다.
박생 부부는 밤에도 옷을 벗지 않고 있는 힘을 다하여 간호하였으나 모친의 천명이 그 뿐이었던지 백방의 처방도 효험을 보지 못하고 마침내 한 많은 세상을 하직하고 말았다.
효성이 지극한 박생은 며칠동안 식음을 전패하고 천읍지애 통곡으로 밤낮을 지새웠다.
그러나 지연의 간곡한 권유로 비로서 정신을 가다듬은 박생은 장지를 구하기 위하여 지관을 데리고 두루 다니던 끝에 금강 근처 기천 땅에 이르러서 처음으로 그럴듯한 자리를 발견하게 되었다. 지관은 만족한 안색으로 천하명당 자리라고 말하며 덮어놓고 그 자리에 모시라고 권하는 것이었다.
박생 또한 다행히 여겨 동네사람들이게 산주의 거처를 수소문한바 그 산 임자는 산아래 제일 큰 웅장한 기와집이라 말하고는 「이 근처 사과 전답은 모두 그 집 것이랍니다. 그 집 주인 장씨는 충청도에서도 손꼽히는 부자니 만큼 자기집 뒷동산을 결코 남에게 팔지 않을 것입니다」고 대답하는 것이었다.

이 말을 듣고 보니 박생은 그만 낙심이 이만저만이 아니었다. 동시에 자기와 같이 무력하고 돈 없는 사람으로서는 도저히 넘겨다 볼 수 없는 일이므로 다만 머리를 숙이고 크게 탄식하며 하염없이 눈물만 흘리고 있었다.
지관도 보기가 막하였던지 위로하며 날이 저물었으니 우선 산주인 기와집으로 가서 하룻밤 쉬면서 천천히 의론해 보자고 권하는 것이다.
이렇게 해서 박생은 지관을 따라 그 집으로 가서 하룻밤 지내기를 청하였다.
하인이 안으로 들어간지 얼마 안되어 문득 사랑문이 활짝 열리면서 젊고 잘생긴 주인이 나와서 공손한 태도로 맞아 들었다. 서로 수인사가 끝난 후 얼마 아니하여 다과가 나오고 뒤미쳐 저녁상이 나왔는데 술맛도 좋으련만 찬은 서울 재상집에서도 보기 드문 진수성찬이었다.

식사를 마치고 고맙다는 인사를 하였을 뿐, 감히 묘자리 이야기는 입밖에 내지도 못하고 다만 고개를 숙이고 앉아 한숨만 쉬고 있는 참이었다.
갑자기 안으로 통한 문이 열리며 젊은 부인이 들어오더니 박생에게 향하여 「남녀가 유별하온데 여자의 몸으로 말씀드리기가 황송하오나 상수님께 잠깐 여주어 보겠나이다 다름이 아니오라 지금부터 육년전 초겨울에 괄목과 돈을 실은 소바리를 거느리고 공주 금강으로 건너 가신 일이 있읍지요?」
하고 묻는다.
박생은 의아하게 자세히 보니 평생에 보지 못하던 부인이였다.
「네 그런 일이 있기는 있었읍니다마는 그것은 어찌하여 물으십니까?」
「그 때에 강에 빠져 죽으려는 세 사람의 목숨을 구해 주신 일이 있읍지요?」
「글세 올씨다……그런 일이 있었읍니다」
이 말이 밀어지자 부인은 와락 박생의 옷소매를 잡으며 눈물을 흘린다.
「저는 다른 사람이 아니옵고 바로 그때 상주님 덕택으로 살아난 사람이옵고 저기 앉은 이는 옥중에 갇혀 죽게 되었던 남편이 올습니다」
그러자 이때 요란스럽게 문이 열리며 늙은 부부가 달러들어 박생을 붙들고 통곡을 했다 젊은 부부도 역시 엎디어 눈물을 흘렸음은 물론이다.

그리하여 집안은 갑자기 울음바다로 변했다. 얼마쯤 지난뒤 젊은 주인은 두손으로 박생의 손을 공손히 받들고 홀러 내리는 눈물을 옷소매로 씻으면서 목매인 소리로 말을 했다.
「소인이 바로 나라 돈을 축내고 옥에 갇히어 죽게 되었던 장일손 올시다. 그 때에 은인께서 인자하고 의협하신 마음으로 막대한 돈을 주셔서 구제해 주지 아니하였더라면 소인은 벌써 지옥에 가있을 몸이 옵고 저의 부모와 처도 수중고혼이 되었을 것이올시다. 이 은혜를 무엇으로 갚아야 옳을지 모르겠읍니다」
박생도 육년전 옛일을 생각하니 역시 감개가 무량하였다.

얼마 동안의 시간이 흐르자 박생은 여기와 살게된 연유와 부자가 된 내력을 물었다.
그러자 늙은 영감이 장황한 설명을 하였다.
「그때 도와주신 돈으로 포흠을 갚은 턱에 아들이 풀려 나오게 되었고 그 이듬해엔 함경도로 명태장사를 갔던 아들의 친구가 돌아 왔읍니다. 그런데 아들 친구는 그때 명태를 인천으로 가서 판 다음 다시 송도로 가서 인삼을 무역하여 비밀히 밀선을 타고 중국 거상에게 팔았답니다. 그리고 다시 황금과 진주 등 값나가는 패물과 보화를 사가지고 평양으로 돌아와 수만량을 받아 팔고난 다음에 고향으로 돌아와서 그동안 장사하여 번돈 절반을 아들에게 건내주므로 그 돈을 가지고 이곳으로 와서 수천마지기 논과 밭을 사고 다시 이 집을 지어 살게 되었으나 은인의 은혜를 갚지 못하는 것이 한이 되어 마누라는 뒤곁에 단을 모우고 재천 보살께 은인을 만나게 해달라고 오년동안 하루도 빠지지 않고 합장축원을 올렸으며 또한 며느리는 눈이 밝아서 은인의 모습을 기억하고있으므로 사랑을 개방하여 과객을 맞아 들이는 동시에 항상 문틈으로 손님들의 얼굴을 엿보아 오던 중 보살님이 도와주시어 천행으로 은인을 만나게 되었으니 이제는 죽어도 여한이 없게 되었소」
하고 다시 눈물을 먹음는다.
일장 설명을 듣고 난 박생은 못내 감탄하였다.
그리고 박생은 장지를 구하러 다니다가 우연히 이집 뒷동산에 좋은 자리를 발견하게 된 연유를 이야기하였다.
이 말을 들은 젊은 주인은 기다렸다는 듯이
「이 근처에 있는 산과 전답은 모두 은인에게 드리기 위해서 마련한 것이오니 사양마시고 마음대로 사용해 주십시요 그리고 장례비용은 일체 저에게 맡겨주셔야 되겠읍니다.」
하며 오히려 박생이 말을 듣지 아니할가 겁을 내는 판이었다.

이리하여 그 이튿날 젊은 주인은 인마를 보내어 영구를 모셔오는 동시에 박생의 가족을 전부 모셔오게 하였다.
온 동네 수백명의 사람들이 모두 모여서 성대하게 장례를 모시고 다시 성복제를 지낸 다음 주인은 박생에게 집 문권 땅 문권이며 종 문권까지 전 재산을 바쳤다.
「대체 이게 웬일이요? 장지를 빌리고 장례비를 담당해 주신 것만 해도 은혜를 충분히 갚은 셈인데 또 이렇게 전 재산을 넘겨주시니 대관절 당신네는 어떻게 살아갈 작정이요 나는 맹세코 받을 수 없소이다.」
박생은 펄쩍 뛰면서 극력 사양하였다.
「그렇게 말씀하시기도 쉽겠지만 이 재산으로 말하면 애당초부터 은인께 드리기 위하여 마련한 것이옵고 또 저희들의 집과 전답은 산너머 동네에 따로 마련해 둔 것이 있사오니 조금도 염려 마시고 제발 저희들의 뜻을 받아 주시기 바라옵니다.」
하고 억지로 떠 맡기는 것이었다.

이리하여 박생은 충청도에서 첫손가락을 꼽는 벼락부자가 되었고 또 자손들은 후대에 훌륭한 고관대작을 지내게 되었다 하며 「자고로 부모에 효하고 나라에 충함은 인륜의 대본이요. 또한 적선을 하는 자에게는 하늘이 도와 당세에 달하지 아니하면 필연코 후세에 영광이 미치리라……」하는 모친의 가르치심을 명상하며 나날을 지냈다 한다

 


  옛 이야기(고전) - 적선지가 (상)

  옛 이야기(고전) - 대도 장팔이 (상)

  옛 이야기(고전) - 의병장 장지현 (상) 

반응형