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IT/옛날 이야기

천상의 여인, 등불로 태어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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경북 안동에 있는 천등산(天山, 584m) 원래의 이름은 대망산이었다. 
이곳은 신라시대 의상대사의 수도처로 잘 알려져 있으며 우리나라에서 가장 오래된 목조건축물인 극락전의 모체, 봉정사로 더 유명한 산이다. 대망산을 천등산이라 부르게 된 내력을 설명하려면 의상이 처음 입산 하던 시절로 거슬러 올라가야 한다. 
의상은 도를 닦기 위한 수도처로 대망산을 선택하고 일찍이 소년시절부터 봉정사 뒷산에 위치해 있는 천등암에서 공부를 시 작하였다. 천등암 토굴 안에서 비바람과 살을 에이는 듯한 혹독한 산속의 추위를 견 디며 수행을 계속하였는데, 나이 어린 소년 이 자연과 싸우면서 도를 닦는다는 것이 그렇게 수월한 노릇은 아니었다. 
어느 날 밤이었다. 굴 밖에 희미한 그림자 가 비치더니 '어흐흥' 하는 성난 호랑이의 포효소리가 소년 의상의 귀청을 찢어 놓았다. 굶주린 호랑이는 금방이라도 토굴 안으로 들어와서 의상을 잡아먹을 것 같았다. 그러나 그는 정신을 바짝 차리고 호랑이를 향해 일갈했다. 
의상은 목소리를 낮춰 또박또박한 말투로 타일렀다. 
"네가 아직 나를 모르는 모양이구나. 수도 하는 나를 알아보지 못한 것은 죽어 마땅한 일이나 오늘밤은 네 실수를 용서해 주겠다. 그러나 내일도 다시 또 굴 밖에서 서성이면 부처님으로 하여금 혼을 내주도록 할 것이 니라." 
동물이라도 진심으로 타이르면 말귀를 알 아듣는 모양이다. 의상의 꾸짖음을 듣고서 슬그머니 산속으로 사라진 호랑이는 그 후 다시 나타나지 않았다. 그러나 의상의 수행을 방해하는 것은 산짐승뿐만이 아니었다. 하루는 밤중에 굴 밖에서 가녀린 여인의 음 성이 들려왔다. 
"여보세요?" 
면벽을 하고 가부좌를 튼채 수도에 정진하고 있던 의상은 난데없이 자신을 부르는 여인의 목소리를 듣고 감고 있던 눈을 떴다. 그가 침착하게 물었다. 
"뉘시오?" 
그 말이 끝나자 한 여인이 토굴 안으로 들어섰다. 의상이 언뜻 바라보니 버들잎 같은 눈썹이며, 도화 한 잎 따다 붙인 것 같은 도타운 입술, 조금만 힘을 주어 안으면 끊어질 것처럼 가녀린 허리 등 일찍이 본일이 없는 절세미인이 앞에 서 있었다. 그녀가 날아갈 듯이 사뿐하게 절을 했다. 의상이 차분한 목소리로 물었다. 
"어인 낭자이기에 이 밤중에 수도승의 거처를 찾아오셨소?" 
"소녀는 천상에서 내려온 선녀이옵니다. 소녀는 스님과 숙세(世)의 인연을 맺고 인간에서 복(福)을 누리며 살기를 소원하고 있습니다." 
"나는 장부 일대사를 해결 지으려는 수도승이오." 
"하오나 소녀와 인연을 맺고 한 세상을 살아도 후회는 남지 않을 것입니다. 지성으로 모시고 더불어 꿈결 같은 행복을 추구하 고자 합니다. 부디 소청을 저버리지 말아 주셔요." 
바라볼수록 여인의 몸매는 무르익은 수밀도처럼 농염했다. 그러나 의상은 그런 여자를 앞에 놓고도 한치 동요 없이 추상같은 목소리로 말했다. 
"당치 않으니 물러가시오!" 
산이 떠나가도록 큰 소리로 호통을 치자 여자는 슬그머니 밖으로 나가더니 모습을 감추었다. 그리고 그녀가 사라진 바위 위에 커다란 등이 하나 놓여 있었다. 등은 칠흑 같은 어둠을 마치 대낮처럼 밝게 비춰주고 있었다. 그 직후 홀연 의상이 대오하여 득도하게 되었다. 
그로부터 의상의 깊은 도력에 감복해 하늘에서 등을 비춘 산이라 하여 이산을 천등산이라 부르게 되었다고 전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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