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IT/옛날 이야기

아들을 낳고 싶었는데. 삼계면 베틀바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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북 임실군 삼계면 금동 마을의 산기슭에는 베틀모양을 한 바위가 있다. 이 바위에는 간절하게 아들 낳기를 원했던 한 부부의 소망이 임진왜란으로 인해 무참하게 유린된 한 서린 전설이 하나 내려오고 있다.
지금부터 대략 400년 전의 일이다. 금동마을에 임 씨 부부가 살고 있었다. 이들은 금슬 좋기로 소문이 나 있었지만 웬일인지 혼인한 지 몇 년이 지나도록 아이가 생기지 않았다. 
자나 깨나 근심에 쌓여 있는 이들에게 한 점쟁이가 지금의 베틀바위를 가리키며 귀가 번씩 뜨이는 말을 들려주었다

"이 바위 위로 돌을 던져 그 돌이 떨어지지 않도록 하면 득남할 수 있을 것입니다."
바위를 향해 던진 돌이 떨이 지지 않으면 아들을 낳을 수 있다는 아야기을 듣고 부부는 즉시 실천에 옮겼다. 
얼핏 보기에는 그리 어렵지 않겠다 싶었는데 돌을 몇 개 던져 보니 모조리 바닥으로 다시 떨어지는 것이었다. 
작은 돌을 던져도 보고 주먹만 한 돌을 던져 보기도 하였지만 돌은 모두 바위에 머물러 있지 않고 떨어져 내렸다.

그러나 그들은 쉽게 포기하지 않았다. 지성이면 감천이라고 하지 않았는가, 장성을 다하면 하늘이 감동해서라도 아들을 얻을 수 있는 길이 열리리라 생각했기 때문이다.
매일 돌 던지기에 매달리다 보니 얼마 지나지 않아서 이들은 생계가 위협받게 되었다. 남편은 사냥을 하고 아내는 하루하루 배를 짜서 그것들을 팔아 식량을 조달했던 이들은 돌만 던지고 있을 형편이 아니었다. 생각을 거듭한 끝에 남편이 말했다.

“아들 얻는 것도 급하기는 하지만 이러다가는 긁어 죽을 판이니 낮에는 사냥을 하고 밤에 돌던지는 일을 계속해야겠소 그 말을 들은 아내가 말했다.
"베틀을 바위 앞으로 옮겨 주세요. 그러면 저는 낮동안 베를 짜면서 틈틈이 돌을 던져볼게요. 아들 낳는 일을 더 이상 늦줄 수는 없어요.”

 

아들을 얻겠다는 소망은 마침내 베틀을 바위 근처로 옮기도록 만들었다. 그리하여 부인은 베를 짜는 한편 잠시 쉬는 시간을 이용하여 염원을 담은 돌 던지기를 계속했고 밤이 되어 사냥을 마친 남편이 나타나면 같이 또 돌을 던진 다음 집으로 돌아오고는 하였다.

그러던 중 임진왜란이 일어났다. 당시 전라도로 진군한 왜장 우끼다히데히는 부하 5명을 행상으로 가장시켜 남원지방으로 파견, 동태를 염탐해 오도록 하였다. 염탐꾼들은 남원으로 향해 가던 중 산기슭에서 베를 짜고 있는 여인을 만났지만 대수롭지 않게 여기고 지나쳐 갔다. 그러나 베를 짜고 있던 부인은 행상의 거동을 수상히 여겨 관가에 신고를 했고, 그녀의 말을 들은 관가에 서는 포졸들을 풀어 염탐꾼들을 체포할 수 있었다.

 뒤늦게 이 사실을 알게 된 왜장 우끼다히데히는 남원 침략에 총력을 기울였고’ 임 씨 부부를 잡아다가 참혹하게 죽이는 만행을 저질렀다. 그 직후의 일이었다.
억울하게 죽은 임 씨 부부가 항변이라도 하듯 비가 줄기차게 내리기 시작하였다. 섬광처럼 번개가 지나가고 바위 위로 벼락이 떨어졌다. 폭우가 그친 다음 마을사람들이 벼락이 떨어진 바위를 보았음 때 그 모습은 마치 여인이 베틀 위에 앉아 있는 듯한 형상으로 바뀌어 있었다. 

 

그 이후부터 이 바위를 베틀바위라 부르게 되었다 한다.
 이 베틀바위는 피서지로 유명하며 피서하다 비가 오면 바위 속으로 피할 수 있는 형상을 하고 있는데 장정 약 30여 명이 들어갈 수 있다고 한다.

출처 : 산림조합 디지털아카이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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