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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를 생각해 주는 선배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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9년 만에 아는 동생을 통해 전화번호를 했다. 당연히 나는 일자리를 알아보고자 했고 선배님께서는 일단 와보라고 하셨다

그것 하나 만으로도 나에게는 참 위안이 되었다.

만나서 이런저런 이야기를 나누고 결정적인 내용은 그 후에 말씀을 하셨다. 

사람을 찾고 있는 것은 맞다만 현재로서는 너의 연봉을 맞춰 주는 것은 힘들지 모른다. 본인도 위에 올려봐야 한다고 하셨다

나는 괜찮다고 했지만 선배님은 작은 연봉을 주면서 미안해서 일을 어떻게 시키냐는 것이었다. 진심으로 하신 말씀이었다

 

집에 돌아오며 친구에게 전화를 하니 술 사줄 테니 나와라. 나는 내형 편이 지금 그럴 때가 아니다. 그럴 때일수록 나와야 한다고 친구는 말했지만 다녀와서 나에게 남는 건 공허한 상황이 뻔한걸 이란 생각에 거절했다

 

내생에 최대의 실수는 바로 전 직장인 듯하다. 항상 회사를 옮기더라도 기분이 좋았는데 나는 더 나은 곳으로 간다 하면서 

하지만 이번에는 옮겨진 것도 아니고 이직 못한 상황에서 나와버린 터라 최악의 실수인듯하다

 

일자리를 옮기면서 우선 내가 편한 곳을 찾아 이직을 하다 보니 급여는 더 내리면서 옮겼던 것 같다. 

남들은 뭔가 이쯤 되면 자기 기술을 가지고 높은 연봉으로 향해 가는 것 같은데 늘 뒷걸음치며 거꾸로 가고 있으니 

 

이제는 조금 다른 일을 찾아보려고 하니 역시 급여는 최저시급에 맞춰져 있구나. 하고 싶은 걸 하면서 돈을 많이 받을 수

없다는 현실도 짜증스럽다. 그렇다고 하던 일을 계속하자니 이제는 몸이 성하지 않은 느낌이고

 

부모님은 사업을 생각해 보는 건 어떠냐고 말씀하시지만 이상하게 그런 건 생각도 안 하게 된다. 

내가 어디를 가든 불만이 생길 건데 그걸 못 참는 성격이라 이직을 하게 되었다 하는데 생각해 보면 절반만 맞는 것 같다

두 번의 이직은 사실 계약직이 종료되어 퇴사처리 된 것이고 한 번은 설계에서 관리로 업종을 바꾸면서 발생한 부득이한 상황이었는데. 

 

언제나 늘 그렇듯 최악의 상황이 한 번은 스치고 가야 나에게 맞는 좋은 곳이 나오겠지~ 그때 이 글을 다시 한번 볼 듯하다

과거에 가장 힘들었던 기억은 와이프는 임신 중이고 실직상태로 이력서 넣는 곳마다 떨어지고 경기권은 안 벗어나고자 했으나 어쩔 수 없어 지방까지 갔는데 먼 길에 면접 보고 돌아오는 길에 채용이 안 되겠다는 통보에 무너진 적이 있었다

우전중에 눈물이 앞을 가려 차옆에 추자하고 핸들 잡고 울고 있을 때다

 

선배 전화가 와서 눈물은 흘렀지만 침착한 척 전화를 받은 적이 있었다 뭐 하고 지내냐는 말에 이력서 넣고 있다 하니 자리가 있으니 빨리 넣어보란 말씀을 하셨다

정말 그동안의 힘든 시간이 사라지듯 입사를 할 수 있었다(계약직이긴 했지만 좋았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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