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IT/옛날 이야기

옛 이야기(고전) - 애란의 비련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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봄이라기 보다는 아직도 늦은 겨울이었다.
신라 서울의 서산인 선도산 동녘에 자리 잡은 애란과 도열의 집이 있는 동네에서 멀리 남산을 바라보면 양지가 바르지 못한 골자기에는 아직도 허옇게 눈이 쌓여 있었다.
『삼짓날이 인제 며칠 남았지?』
애란이가 가야금을 고르다가 손이 시려서 「호호」입김으로 녹히며 옆에서 노래를 부르던 도열에게 물었다.
『얼마 안남았어.』
『며칠?』
『가만 있거라. 응, 열흘밖엔 남지 않았구나.』
『열흘! 그럼 다 됐네?』
『그래 얼마 남잖았으니까 조금만 더 고생하면 되겠다. 자 어서 타라.』
애란은 도열의 말에 고개를 끄덕끄덕 하면서도 가야금을 쉬 타려고는 하지 않았다.
『애란아! 너희 아버지가 오시면 또 야단 마지려구…어서 타』
도열이 애란을 재촉했다.
『너는 그렇게 손을 바지춤에 넣고 노래하니까 손이 시리지 않겠지만 난 손이 시려 죽겠어! 조금만 더 녹히구 타자.』
애란은 여전히 두 손을 움켜 잡고 입을 「호호」불고 있다.

 

삼월 삼짓날 그날은 진흥대왕이 부르셔서 대궐로 들어가는 날이다.
그 날은 우륵선생이며 그의 제자인 니문, 계고 선생들도 가야금을 탈 것이지마는 애란의 아버지 만덕도 춤을 추게 돼 었다.
아버지 뿐이 아니라 애란이도 아버지를 따라 가야금을 타도록 되었으며 애란의 정혼 지아비인 도열이도 저의 아버지 법지를 대신하여 대궐에서 노래를 부르게 되어 있다.
그러므로 그들은 눈이 펑펑 쏟아지며 고드름이 주렁주렁 달리는 한겨울을 두고 노래와 춤과 가야금 연습에 열중해 왔다.
애란이가 이현금인 가야금으로 「뚱땡두둥둥」타기 시작하면 도열이는 이에 맞추어 너울 너울 춤을 추며 노래를 읊었다.

 

이렇게 합창으로 노래와 가야금을 타고 있는데 애란에 아버지 만덕이 나갔다 들어오며 두사람의 연습하는 품에 귀를 기우리더니 미소를 머금었다. 아마 마음에 든 모양이다.
『이젠 고만 쉬어라.』
아버지의 말이 떨어지고야 두사람은 고된 수련에서 해방이 되었다.
언제나 보는 정다운 둘의 모습이다.
『원앙새 같은 것들.』
만덕은 만족한듯 혼자 미소를 머금었다.

 

남매라면 더 의좋은 남매는 없을 것이로되 낳자부터 둘의 부모랑 월하의 예혼을 정해준 정혼지아비에 정혼지어미이고 보매 다 같이 열입곱살 꽂다웁게 숙성한 두 남녀는 한쌍의 원앙새 그것이었기에 미소를 머금는 만덕이었다.
더우기 벼르고 별였던 삼짓날이 숱하게 많은 가인 무인 악인들 중에서도 애란은 가야금을 타고 도열이는 노래를 불렀다. 그리고 진홍왕께서는 유독하게 이 두 남녀를 어전으로 불러 칭찬하면서 『너희들은 나비와 꽂같구나!』
하셨다.
몇달을 쌓은 보람이 있었으며 만덕으로서는 그처럼 나랏님으로부터 칭찬을 받은 딸과 사위감을 가진 어버이로서 기쁨과 무상의 영광을 느껴 사흘 후에 집에서 큰 잔치를 베풀고 우륵선생을 비롯하여 여러 사람들을 청하기까지 하였다.
이 좌석에서도 우륵선생은 상감께서 칭찬하심이 지당하시다고 두 남녀를 칭찬하였다.
『모두가 스승님의 은덕이 올시다.』
만덕은 이 날 저녁 이렇게 우륵선생에게 치하하였지만 생각해 보면 오늘의 영광은 모두 우륵선생으로 인해서 생긴 영광이 아닐 수 없었다.

 

그러니까 그게 벌써 이십년이라는 세월이 흐른 셈인데 그 때 만덕은 우륵선생의 제자가 되었다.
우륵선생은 본시 신라사람이 아니다. 대가야국(지금 고령읍에 수도를 두었던) 노왕의 둘째아들로서 어려서부터 가무악에 신재를 가졌던 사람인데 후에 가야국 가실왕의 분부로 열두줄의 율려를 가지고 십이현금을 만들었다.
이렇듯한 우륵선생이지만 후에 본국인 가야국이 점점 어지러워져 가자 자기가 만든 가야금을 가지고 신라로 건너가 낭성(지금의 청주)에 살게 되었는데 우륵의 소문은 곧 진흥왕에게 까지 들어갔다.

 

원래 예술을 숭상하는 진흥왕은 이 소문을 듣자 즉시 낭성으로 내려가 우륵의 가야금을 듣게 되었다.
하늘에서 선녀가 하강하고 학이 춤추듯하는 우륵의 솜씨는 진흥왕을 완전히 도취시키고 말았다.
이에 진흥왕은 우륵이 키던 악기를 정식으로 「가야금」이라 이름짓고 우륵을 설득시켜 서울로 데리고 와선 항시 자기와 기거를 함께 하게 하였다.
당시 신라에는 법지와 만덕 등 젊고 유능한 예인들이 있었지만 우륵의 경지에는 미치지 못하였다.
진흥왕은 법지와 만덕으로 하여금 우륵의 제자가 되게 하여 그에게서 배우게 하였다.
이렇게 하여 만덕과 법지는 동시에 우륵을 스승으로 모시게 되면서 가까운 친구가 돼 버렸다.
또 둘은 집도 나란히 처마를 맞대고 살게 되었는데 거의 같은 날에 만덕은 딸 애란을 법지는 아들 도열을 낳았다.
이들의 이름도 스승 우륵이 지어 주었다.
『여보게! 우리 그럴게 아니라 서로 정혼을 하세!』
누가 먼저 꺼냈던지 흐뭇한 마음으로 술을 마시던 두사람은 술을 마시다 말고 어린 것들을 정혼시켰다.

 

그리고 십오륙년!
따지고 보면 오늘의 영광은 그 모두가 우륵선생으로부터 비롯한 것이려니 하고 만덕은 생각했다.
이처럼 만덕에게 기쁨과 영광을 느끼게 하는 딸과 사윗감은 나랏님과 우륵선생을 비롯한 여러 사람들로부터 축복을 받는 장래가 촉망되는 젊은이었다. 그런데 어찌된 셈인지 도열의 태도는 눈에 띄이게 시들해져 갔다.
『너 어디 갔다오니?』
그날도 도열이가 아침 일찍 밖으로 나가더니 한나절이 지나서 돌아오자 애란이가 물었다.
『어디 갔다와?』
『죽순 따러….』
『죽순? 따 온 죽순이 어디있니?』
『갖구 오다가 다 팽게쳐 버렸어!』
『왜?』
『응? 그져…』
대답을 못하는 도열은 자기 맘을 너무나 잘 알아주는 애란의 말에 숨겼던 슬픔이 터져나오려는지 두줄기 눈물이 주르르 흘러 내렸다.
『얘 도열아, 우지마. 너의 부모님 인제 쉬 돌아오실테니 우지마.』
말하면서 애란이 도열의 눈물을 닦아주려 하자 도열은 기어코 왁 하고 복바쳐 올라오는 울음을 터뜨렸고 흐느껴 우는 도열의 어깨에 손을 얹고 있는 애란이도 소리없이 울었다.

 

오년전 섬나라 일본으로 건너간채 오래도록 소식이 없던 도열의 아버지는 작년 봄에서야 무거운 병으로 자리에 누워 있다는 소식을 전해 왔다. 이 소식을 전해 들은 도열의 어머니. 도열이를 애란네 집에 맡겨두고 부랴부랴 배편을 얻어타고 일본으로 건너갔다.
어머니가 간지도 이럭저럭 벌써 일년이 다 된다.
그런데도 도열의 아버지며 어머니는 돌아오지 않았다.
그 때문에 늘 울고 살던 도열이지만 대궐에서 열리는 봄맞이 잔치에 들어가 노래할 연습을 하느라고 겨울 한철은 슬픔도 잊고 지냈지만 잔치도 끝나 한가해지자 도열이의 슬픔은 되살아나 언제나 남산인 금오산봉우리 위에 올라가 먼 남쪽 하늘을 바라보며 울고 오는 것이 일과가 되었다.

 

섬나라 일본.
그 섬나라에 신라 사람들이 많이 건너갔었다.
백제에서도 석공이며 와공, 목공, 적공들이 많이 건너가서 거기 사는 몽매한 야만인들이게 돌 다루기, 기와 굽기 집짓기, 길삼짜기 법들을 가르처 주고 있었다.
신라 본국에서는 하잘것 없는 사람이라도 그 섬나라 일본으로 건너가기만 하면 야만인들의 어른이 되어 돈도 벌었고 잘 살 수 있었다.
그렇게 해서 건너간 많은 신라사람들이 왕께 노래 잘하고 춤 잘 추고 가야금 잘 뜯는 악공을 보내달라고 재삼 요청해 오자 진흥왕께서는 우륵선생과 의논한 끝에 법지를 뽑아 섬나라로 건너가 야만인들에게 가무악을 가르쳐 주라고 분부하시었던 것이다.
가무악으로선 우륵선생의 버금 갈만한 사람이 법지였기 때문이다.
이렇게 되어 섬나라로 건너간 법지는 오년이 다 되도록 돌아오지 않았고 남편의 병 간호를 하러 간 도열의 어머니조차 건너간지 일년이 넘어도 돌아오지 않았다.
『도열아! 울지마. 쉬 돌아올거다. 네 옆에는 언제나 내가 있지 않니?』
흐느껴 울며 흘리는 도열의 눈물을 소매자락으로 애란이가 닦아주었다. 어릴 때 이미 지아비 지어미가 된 그들이지만 어려서부터 네집 내집 가리지 않고 함께 자라난 도열이와 애란이는 쌍둥이 남매처럼 서로 떨어지지 않고 자라났다.

 

봄도 가고 여름도 가서 서산의 깊숙한 숲 속에서는 밤만 되면 접동새가 밤을 새워가며 슬피울었다.
도열이도 돌아오지 않는 부모가 그리워서 울며 지새는 밤이 많게 되었다.
도열이는 날마다 서산이 아니면 남산봉우리 위로 올라가서는 진종일을 남녘 하늘을 보며 울다가 날이 저물어서야 돌아왔다. 그러던 중 아버지와 어머니가 다 이름모를 열병으로 돌아가셨다는 비통한 소식이 왔다.
이렇듯 안타까운 소식에 울다지친 탓인지 크도록 마마를 치루지 못한 도열이가 하루는 불이 일도록 신열이 나더니 며칠 안가서 자리에 눕게 되었다.
그리고부터 도열이는 전신에 고름 꽃으로 콩무집이 돼서 눈을 뜨지 못한채 끙끙 앓았다.
옆에서는 애란이 밤잠을 안자고 간호를 해주었고 애란의 부모는 무당까지 데려다 굿을 해주었다.
그런 탓인지 달포 후 다행히도 도열이는 자리에서 일어나긴 하였다.
그런데
『애란아! 내 눈이 보이지 않는구나. 세상이 왜 이렇게 깜깜하니?』
하며 소생한 도열은 애란의 손을 잡으려고 손을 허우적거렸다. 순간 애란은 깜짝놀라며
『도열아 나 여기 있어! 눈을 좀 크게 떠보려무나』
하고 손을 내 맡기며 말했지만 도열이는 듣지도 못하는지
『애란아 나 좀 봐! 내 귀가 왜 이러니? 가야금을 한번 뜯어 봐다고.』
했다. 이에 놀란 애란이가 급히 가야금을 내려 곡을 탔다.
그러나
『애란아 너 어디있니? 가야금을 한번 타 달래는데!』
하고 딴청을 부린다.
도열은 귀마저 멀은 것이다.
이 정경을 바라보는 애란의 가슴은 천갈래 만갈래 찢어지는 듯했다.
『도열아!』
애란은 크게 울부짖으면서 도열의 얼굴을 가슴에 안고는 한동안 터져나오는 오열을 참지 못했다.
『도열아 염려말아라. 네가 된병을 치뤄서 그렇다. 인제 조금 더 날이 지나면 눈도 보이구 귀도 들릴거다.』
애란이는 그 후에도 도열의 옆을 떠나지 않고 눈물겹도록 간호를 했다.

그러나 어이하랴.
이듬해 봄이 되어서도 도열의 눈은 보이지가 않았고 귀도 들리지 않았다. 다시 일년이 지나 가을이 되었다.
애란은 자지 않고 꼬박이 한밤을 울며 지새군 하는 날이 많게 되었다.
애란의 부모도 한숨을 푹푹 내쉬며 접동새 울음에 귀를 기울인채 환하게 밝아오는 새벽을 맞곤 하였다.
『이 일을 어떻게 하면 좋담?』
이 말을 거듭할 뿐 애란의 부모로도 별 뾰죽한 수가 있을리 없다.
그러다가 가을도 다가고 서산과 남산에 피었던 단풍잎들이 우수수 떨어지기 시작하는 초 겨울이었다.

 

하루는 가야금을 뜯던 아버지가 애란을 불렀다.
애란은 무릎 위에 올려놓았던 도열의 머리를 내려 베개를 고여주고 아버지에게로 갔다.
『네 거기 앉거라.』
딸을 불러 놓고도 아버지는 한동안 말이 없었다.
애란은 왜 그런지 가슴이 섬칫했다.
말없이 앉았던 아버지는 이윽고 가야금을 한곡조 탔다.
애란으로선 길고 긴 시간이었다.
곡이 끝나자 아버지는 입을 열었다.
『내 네 마음을 모르는 바 아니지만 도열이를 잊어야겠다.』
아버지는 너무도 뜻밖의 말을 했다.
『?』
깜짝 놀라 자기 귀를 의심하는 애란을 보며 아버지는 다시 한번 도열이와 헤어져야 한다고 했다.
청천벼락같은 말에 정신이 멍해진 애란은 한참만에야 정신을 수습하고 그길로 제방에 돌아와 도열이를 붙잡고 통곡하고 말았다.
『너무하셔요! 너무하셔요!』
도열은 왜 애란이가 우는지 한동안 멍하니 있더니 병신이 된 자신의 꼴을 돌이켜보며 덩달아 울음을 터뜨렸다.

 

그리고 며칠후 아버지는 다시 딸을 불렀다.
아버지는 도열과는 헤어져야 한다고 조용히 말했다.
도열의 정상은 수긍하지만 악과 무로 세상을 살아야할 예인으로서 어찌 앞못보고 귀가 먹은 도열과 결혼하겠느냐고 했다.
아버지의 말은 옳은 일이었다.
그러나 애란으로선 도저히 그럴 수만은 없었다. 애인이기 이전에 한사람의 인간으로서 아니 그 이전에 한 지아비로서 점지하신 분이 아니였나 말이다.
그러나 아버지의 말씀은 갈수록 태산이었다.
『다행이 우륵선생의 아드님 인래가 너를 지어미로 삼고자 하고 있다. 내가 그 말씀을 우륵선생님께 드렸더니 선생도 좋다 하셨다. 그러니 도열을 잊고 인래에게 시집가거라! 가무악의 성인이신 우륵선생대과 네가 혼인을 한다면 어찌 영광이 아닐 수 있느냐? 그리알고 도열은 단념하거라!
하는 것이었다.
그러나 그럴 수가 있을까.
애란으로서는 도시 아버지의 마음을 알 수 없었다.
『가무악이 제아무리 중하기로서니·‥』
애란은 눈물로 세월을 보내게 되었다
어머니가 조르고 아버지가 거듭 타일렀건만 한 지아비를 섬기려는 애란의 마음은 돌이킬 수 없었다.
일이 여기에 이르자 애란의 부모는 하는 수 없다고 생각했는지 우륵선생에게 거짓으로 자기 딸이 승낙하더라고 하여 드디어 혼인날을 택하고 말았다.
애란이 아무리 혼자 몸부림을 쳤지만 돌이킬 수 있는 일이 아니었다.

 

혼인날이라는 그날 아침.
애란을 무엇을 생각하였는지 도열의 머리를 빗겨주고 세수를 말끔히 시켰다 그리고 옷도 새옷으로 갈아 입혔다.
도열이로선 도시 알 수 없는 일이었지만 무슨 영문인줄도 모르고 시키는대로 했다.
그러자 애란은 가야금을 도열의 손에 안겨 주면서
『자 우리가 즐겨 타던 그 곡 한곡 타봐!』
했다.
애란의 손이 이끌어 주는대로 손을 옮기던 도열은 그제서야 애란의 뜻을 알아차리고 조용히 가야금을 타기 시작했다.
높고 크게 뚱땅 거리던 음율은 이윽고 결혼준비에 법석이는 집안에 아름답게 퍼져갔다.
음식을 빚던 아낙네와 많은 사람들은 신선이 노니는 듯한 음율에 그저 넋을 잃고 있었다.
한편 정오쯤해서 애란의 어머니가 애란의 방문을 열었을 때 이게 어찌된 영문인가? 맺지못할 사랑을 죽음으로 맺인 것이다. 한장의 유서가 머리말에 놓여있고 애란과 도열은 나란히 영원히 잠들어 버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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