본문 바로가기

IT/옛날 이야기

옛 이야기 - 꼬마 현초동(때는 이조 문종 때)

해마다 열리는 과거에서 전국 방방곡곡의 선비들이 모여 시제를 앞에 놓고 훌륭한 문장을 써내려고 온갖 안간 힘을 다하고 있었다. 이윽고 얼마만에 답안지를 쓴 사람들이 하나 둘 퇴장하는 모습이 보였다. 시험이 끝난 것이다. 선비들이 다 퇴장하고 나서 한참만에 호명관이 『장원에 현초동이요』하고 외쳤다. 이 때 사람들은 저마다 장원으로 호명된 사람을 찾는양 고개를 두리번거렸다.
『아니 저럴수가?』
『저건 꼬마가 아니야?』
『누가 아니래 글쎄 ?』
저마다 놀라움에 찬 말들이 장내에 가득찼다. 그도 그럴 수 밖에...... 장원으로 뽑힌 사람은 이제 불과 열살이 되었을까 말까 한 코흘리개 정도의 애숭이었기 때문이다.
호명관을 비롯한 참관인들이나 밀양부사마저 이 사실에 어안이 벙벙할 따름이었다. 어쨌든 장원은 결정된 것이다.
곧이어 장원급제를 축하하는 풍악이 장내에 울려 퍼졌다. 현초동 소년은 여유만만하게 의젓한 태도로 상을 받았다. 밀양부사는 애숭이 현초동의 시구가 너무나도 명작이어서 도시 믿기지가 않았다.
『장내엔 많은 재사들이 붑볐건만……
사람의 재주란 알수 없는 일이로군!
어쨌든 장한 일이로다!』
얼마 뒤 급제자들을 치하하기 위한 연회석이 마련되고 흥이 마음껏 극치에 다달았을 때였다.
『그런데 사또님! 』 호명관은 넌지시 사또에게 말을 건냈다.
『왜 그러느냐?』
『글쎄 저런 조그마한 장원에게도 기생수청을 들여야 하나요?』
그 호명관은 심히 난처한 표정을 지었다. 부사도 이 소리를 듣고 난처한 표정을 지었다. 자고로 이 곳 밀양에는 대대로 내려오는 관습이 있었는데 다름이 아니라 장원급제를 한 사람에겐 그날 밤을 관가의 기생으로 하여금 수청을 들게하여 포상하는 풍습이었다.
한동안 묵묵부답이던 부사가 이윽고 입을 열었다.
『관례를 깰 수 없는 법! 더구나 장원으로 뽑힌 신분이고 보면 아무리 어리다고 함부로 대할수 없는 일이 아니겠느냐 ? 』
『지당하신 말씀인줄 아뢰오.』
『또 어리면 어린대로 기생을 다룰 줄 아는 것이 사내 대장부가 아니겠느냐! 그러니 잡담을 제하고 관례대로 시행하렸다.』
『예이-- 분부대로 거행하오리다.』
이렇지 해서 기생수청 문제가 해결났다.
밀양부사는 이방을 가만히 눈짓해서 불러 그의 귓전에 살며시 말했다.
『무리가 될지 모르겠지만 통례대로 기생수청을 들게 하였으니 그리 알고 예쁘게 생긴 관기 하나를 뽑아 수청들도록 하되 그 전에 나를 만나보고 가게 하여라.』
그렇게 이르는 부사의 입가에는 장난스런 웃음이 번졌다.
이방도 그런 부사의 표정을 보고 짐작이 간다는듯 피식 웃음을 흘렸다.
얼마 후 관기인 기생이 밀양부사 앞에 대령하였다.
『너 듣거라! 오늘밤 너는 장원급제한 사람을 수청드는 영광스러움을 얻었은 즉 그리알고 보살피는데 소홀이함이 없도록 하여라.』
부사는 능수버들 모양 잘룩한 허리에 난초향기를 풍기며 부복한 아릿다운 관기에게 이같이 엄포를 놓았다.
『만일에 장원한 현초동과 동침을 하였다면 내 후한 상을 내릴 것이며 그렇지 못할 때는 중한 벌이 내릴줄 알아라 !』
『황공하오이다. 분부대로 하오리다.』
애띠고 아름다운 기생은 부사의 엄한 다짐을 받고 부사 앞을 물러났다.
관기의 이름은 애란이라 하였다.
이윽고 애란이는 동료기생들의 부축을 받아 장원급제자가 유하는 관저로 발을 옮겼다.
주위는 쥐 죽은듯 조용한데 바시시 문을 열고 애란은 사뿐히 방안으로 들어 섰다.
수줍은 신부모양 고개를 떨구고 있던 애란은 상머리에 앉은 남자의 버선발을 보자 그쪽을 향하여 넙죽 큰 절을 올렸다.
『소녀 애란 문안드리오?』
『너는 어인 여인인고!』
『예이 소녀는 밀양부사님 부중에 있는 관기이옵니다.』
소년 현초동은 부르지도 않은 관기가 왜 찾아 왔는지 알 수가 없었다.
『그래 무슨 연유로 나를 찾아 왔는고?』
자꾸 캐묻는 현초동의 말에 애란은 무어라 대꾸를 못하고 귀밑뿌리까지 붉어졌다.
할 수 없게 된 애란은 울고 싶은 심정으로 이 곳까지 오게 된 연유를 고하지 않을 수 없었다.
그러나 어린이에게 수청을 들어야 하는 절차까지 설명할 수는 없는 노릇이다.
애란은 그런 자신의 신세가 처량했고 사또가 원망스럽기까지 했다.
『허허 그래? 그렇다면 너무 상심할 필요가 없느니라! 사내대장부가 어찌 가여운 아녀자의 청을 물리칠 수있느냐 !』
현초동은 이렇게 말하면서 민숭민숭한 턱을 쓰다듬으며 안심하라고 하며, 읽던 책을 덮어놓더니 애란이더러 이불을 펴라고 했다.
이렇게 하여 남녀는 한 이부자리 속에 눕게 되었다.
그런데 현초둥은 애란이 더러 자꾸만 옛날이야기를 해 달라고 조르는 것이다. 갑자기 현초동은 어머니 품이 생각난 모양이다.
어쨌든 두 사람은 밤이 깊도록 이야기로 지새다가 새벽녘에야 비로소 남매모양 다정하게 끌어안고 잠이 들었다.
아침이 되어 애란은 나갈 생각을 않고 사믓 초조한 듯 웃목에서 서성거리고 있었다.
『어째? 아직도 무언가 미진한 말이 있는게로구나.』
『예...... 실은......』
『어려워 말고 말해 보아라!』
『사실은 다름이 아니오라 지난 밤 부사께서 저에게 정을 두셨다는 정표를 받아오라 하셨아옵니다. 만약 이대로 돌아간다면 사또의 엄한 꾸중을 받겠아옵기에 그러하오니 정표가 될만한 것을 주시어 소인을 곤경에서 구해주시옵소서.』
애란은 떨어지지 않은 입을 열고 현초동에게 정을 나눈 정표를 달라고 하였다.
그러나 현초동은
『오!그래 그게 뭐 그리 어려운 일인가?』 하며 선선히 응했다.
『너의 속치마를 벗어라.』
『......』
『내 너에게 줄게 별로 없구나!』
애란은 꼬마가 어쩌러고 속치마를 내놓으라는지 그 뜻을 몰랐으나 안줄 수도 없는 처지였다.
꼬마는 속치마를 펴더니 벼루에 먹을 묻쳐 다음과 같은 글을 썼다.
"창밖은 삼경인데 봄비를 뿌리고 두 사람의 유정한 마음은 두 사람 밖에 모르는데 아직도 함께 지낸 정이 흡족치 않건만 무정한 날은 자꾸 밝아 오는데 정든 님 소매자락 부여잡고 다시 만날 날을 묻는구나."
붓으로 일필휘지하여 속치마 폭에 써주었다.
애란은 백배치사 하며 내청으로 돌아갔다.
이 글을 본 부사는 그만 입을 딱 벌리고 말았다.
『허허허...... 과연 명필이요, 내 일찍기 보지 못한 천재로다!』
애란은 밀양부사로부터 후한 상을 받은 것은 말할 것도 없다.
애란은 그 이후부터 연회에 나올때면 현초동이 적어준 그 시구에 음을 붙여 멋들어지것 노래를 불렀다.
밀양부사는 애란의 예능이 남달리 뛰어남을 보고 그녀를 애기(愛妓)로 삼아 잘 살게 되었는데 애란은 그 후 꼬마인 장원급제 현초동을 못잊어 마음속으로 짝사랑하다가 시름시름 앓아 눕게 되어 백약이 무효인 것이 될 정도로 사경을 헤매였다.
『죽기 전에 한번만 현초동을 보게 해주세요.』
밀양부사에게 간절히 애원하는 애란의 요구대로 부사는 현초동을 만나보게 해주었다.
그런데 죽은듯이 누워 있던 애란은 병이 씻은 듯 나아 밀양부사는 물론 주위사람들을 놀라게 하였다.
『인연이다. 애란은 역시 현초동의 아내가 되어야 한다.』
하면서 밀양부사는 그 뒤에 애란을 현초동에게 시집보내어 두 사람은 머리가 백발이 되도록 잘 살았다는 이야기가 지금도 충청남도 소양마을에 내려오는 옛이야로 사랑방에서 노인들이 즐겨하는 이야기감으로 전해 오고 있다 한다

반응형