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조경

찰피나무 이야기 - 삿자리 재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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피나무라 하면 목재가 아름답고 결이 고와서 바둑판으로 값지다는 것쯤은 알고 있다. 피나무 꿀은 이름이 나서 밀원 수목으로 숭상되며 나무 모양이 단아해서 미화 수목으로 널리 쓰이고 있다. <출처 - 산림조합중앙회 WEBZINE>
지금은 거의 볼 수 없게 되었지만 지난날 우리나라의 산골집에서는 흔히 『암페라』라고 해서 피나무를 재료로 써서 만든 삿자리를 방에 펴고 살아왔다
피나무는 한문자로 『피목(皮木)』으로 쓰는데 이것은 껍질 즉, 섬유의 쓸모가 많은데 있다. 피나무를 학술적으로는 『틸리아』(tilia)라 한다. 이 말은 그리스말 『틸 로스』(tilos)에 유래되었고 뜻은 섬유를 가리킨다.
옛적에는 피나무에서 섬유를 얻어 옷도 만들고 새끼줄, 어망, 도랭이, 물건을 담는 각종의 용기류를 만들었다. 피나무의 섬유로 모기장을 만들어쓴 민족도 있다. 피나무의 가는 가지 그것도 지름이 4∼5센티 되는 것이지만 초여름에 잘라서 바로 껍질을 벗겨 잿물에 넣어 삶아 외피를 없애버린 다음 몇 시간 동안 흐르는 물속에 담가 표백시키고 건져내어 말린 뒤 실로 만든다. 껍질을 철분이 있는 물속에 담그면 검게 된다. 실을 얻으면 베틀에 얹어서 천으로 짠다. 무명실을 날줄로 하고 피나무실을 씨줄로 해서 짜기도 한다.
피나무를 영어로는 라임(Lime) 또는 린덴(linden)으로 말하고 유명한 식물학자 린네(Linne)도 그 이름의 뜻은 『껍질』인데 우리나라에도 피의 성씨가 있다. 동서를 통해서 같은 성씨가 있다는 것은 인류가 무언가 공통의 자리 위에서 있음을 느끼게 한다. 말하자면 린네의 성은 피씨이고 피나무를 뜻한다. 린네의 생가에 가보았더니 뜰에는 큰 피나무가 서 있었고 린네는 그 나무 아래에서 책읽기를 좋아했다고 한다. 나는 린네의 생가 뜰에서 있던 피나무의 가지를 얻어 표본을 만들고 지금도 그것이 나의 서재 벽에 걸려 있다. 린네의 학구적인 정신을 받아들이고 싶어서이다.
피나무류에는 약 30여종이 있고 주로 북반구의 온대 또는 온대북부지방에 퍼져 난다. 미국 동부지방, 캐나다, 유럽, 소련, 만주, 일본에 많고 대체로 한랭한 기후를 즐긴다. 피나무가 많은 나라는 대체로 부강한 나라이고 이 점에 있어서 예외가 거의 없다.
우리나라의 찰피나무는 전국에 걸쳐 자라고 만주, 중국에도 난다. 가수(假樹) , 가목(假木), 보리수, 염주목 등으로 쓰기도 한다. 잎이 둥글고 넓으며 옆저(葉底 또는 葉脚)가 하트형(심장형)으로 오므라들고 있다. 이러한 잎의 형상은 대체로 모든 피나무 종류에 통하고 있다. 잎이 심장형으로 되고 잎의 가장자리가 풍만한 곡선으로 굽어 잎의 넓이를 최대한으로 확장시키고 있다는 사실은 피나무의 불타는 정열과 원만한 성품 그리고 발전하는 힘을 보여주는 것이다. 편협하지 않고 너그럽다. 피나무는 잎의 윤곽의 부드러운 원만성 때문에 크게 돋보인다. 보름달의 외륜(外輪), 쌍홍의 궁륭(穹隆), 팽만의 유능(乳陵), 만력(滿力)이 담긴 궁호(弓弧), 대양의 수선(水線) 이러한 평화의 곡선들을 모아 용융(熔融)시켜 하나의 비 기하학적인 유선을 만들어 본다면 찰피나무의 잎의 윤곽으로 수렴될 것이다.
피나무 잎의 실루엣(Silhouette)은 사랑과 아름다움과 관용과 평화의 모임이라고 할 수 있다.
「사랑」을 상징하는 나뭇잎을 내놓으라면 서슴치 않고 찰피나무의 잎을 찾으면 된다. 누구라도 이에 뜻을 다르게 할 사람은 없다. 사랑이란 온유하고 성내지 아니하며 참으며 견디어 진리를 좋아하고 좋지 못한 일에 따르지 아니하며 모든 것을 바라는 것이다.
이러한 사랑의 내용을 몸에 지니고 있고 또 구현하는 나무가 바로 피나무의 무리들이다. 이상하게 들릴지 몰라도 나무를 사랑하고 연구하고 공부하고 오래 함께 살아온 사람이라면 이러한 풀이에 빠져들어 갈 수 있다.
나뭇결이 곱고 순수하고 고르다는 것은 사람에 비긴다면 교양이 있고 품격이 고결하다는 것으로 된다. 질박(質朴)함에도 통한다. 원만한 잎을 가진다는 것은 성낼 줄 모른다는 것이고 노를 버렸다는 것은 덕목이 몸에 배어 있다는 불유구의 경지를 말하는 것으로 보아도 좋다. 뜻이 있어 욕심을 내어도 그것이 한계를 넘지 않고 잘못되는 일이 없다는 상황이다.
피나무의 열매는 두터운 껍질에 싸여있고 땅에 떨어져도 싹이 쉽게 트지 않는다. 이것은 그 뜻의 중후함에 있다. 여러해 동안 땅 속에서 그대로 지낼 수 있는데 이것은 견디고 참는 힘이다. 참는다는 것은 실천하기 어려운 덕목이다. 만일 산불이 나서 주변의 모든 나무들이 타서 죽을 때 땅 속에 묻혀있던 피나무 열매는 힘차게 일제히 싹을 틔운다. 위급한 상황에 대처해서 큰 일을 해내는 것이 피나무의 역량으로 평가되고 있다. 외유내강의 나무가 바로 이것이다. 이러한 억셈은 피나무가 변해서 여자로 되었다는 신화와 어떻게 연결되어야 할 것인가. 여자의 억셈은 부드러움으로 나타나는가. 피나무 꽃에서 꿀이 넘쳐흐른다는 것은 이 나무의 회생이요 봉사이며 모두들 서로 함께 잘 살아 나가자는 박애정신에서 나온 것이며, 이기주의와는 거리가 멀다. 벌을 살리고 나비를 살려 무악으로 이 세상을 장식하겠다는 것은 그 뜻이 어디에 있을까 생각해 봄직하다. 기쁘게 살자는 건가. 세계를 화려한 무대로 만들어서.
피나무류에 속하는 각종의 잎들은 서로 비슷한 생김새를 가지고 있다. 가령 단풍나무만 하더라도 종에 따라 잎의 모양에는 그 사이에 변화가 많다. 그러나 피나무라하면 잎모양이 서로 거의 같다.
법주사 경내에 네 그루의 큰 피나무가 서있는데 이것은 참피나무라고 기억하고 있다. 열매의 표면은 털로 덮여있고 열매의 아래쪽에만 다섯 개의 줄이 보일 뿐이며 염주를 만드는데 쓴다. 어느 해 가을에 법주사에 가보았더니 긴 대나무 장대로 가지를 치면서 열매를 따고 있었다. 염주를 만들 거라고 했다.
성경 통지에는 『피나무 종류 중 재질이 흰 것을 강가로 말하고 섬유로 새끼를 만들어 화창(火槍)을 쏘는데 쓰므로 군수품으로 되고 있다』라고 있는데 이것은 참 피나무를 두고 말함인가.
피나무류는 열매대궁(果梗))이 독특한 생김새의 포엽의 중간쯤에 붙어있다. 포엽은 좁고 얇은 잎인데 열매가 가을이 되어서 익으면 포엽과 함께 땅으로 떨어진다. 사람들은 이때 포엽이 바람을 타서 빙글빙글 돌며 한 뼘이라도 더 멀리 열매를 날려 보내겠다는 뜻이 그 안에 있다고 한다. 이것이 어느 정도로 맞는 말인지는 몰라도 표표호(飄飄乎)하고 호호호(浩浩乎)한 자세에 비겨보고 싶다. 막막한 우주의 공간을 나르는 호호탕탕의 맛이 짧은 순간에 담겨진다는 것인가.
이와 같이 피나무가 포엽을 가지고 또 잎의 생김새가 유사하다는 것은 그들의 혈통이 그만큼 순수하고 보수적이라는 것을 뜻한다. 잡스러운 핏기가 섞이지 않았다는 것은 피나무류의 높임 긍지로 된다.
활엽수종치고는 피나무는 그 역사가 길다고 한다. 말하자면 고대 식물이겠는데 그래서인지 지구 상의 깨끗한 곳만을 차지해서 정결하게 살아오고 있다.
외국에는 피나무가 가로수로서 많이 심어지고 있다. 특히 필자가 크게 놀란것은 폴란드의 수도 바르샤바 국제공항에서 바르샤바에 이르는 긴 가로에 피나무가 서 있었는데 그것은 말 그대로 장관이었다. 누군가 말하기를 폴란드가 제2차 세계대전 이후 이룩한 가장 큰 국가적 업적의 하나가 이 곳 피나무의 가로수라고 했다. 나는 이것을 그대로 받아들이는데 주저함이 있을 수 없었다. 아마 몇 천 그루 아니 몇 만 그루도 넘지 않을까. 모조리 고르게 거대한 둥근 수형을 가지고 있었다.
노르웨이 서부 해안에 있는 도시베르겐은 그림처럼 아름다운 도시인데 가로수는 피나무였다. 스웨덴 스톡홀름도 피나무 가로수가 유명하고 비엔나의 거리를 꿈으로 만들어주고 있는 것도 피나무이다. 고요하고 깨끗하고 품위 있는 도시에는 피나무가 어울린다.
피나무의 꽃을 말린 것은 차로 쓰고 두통의 묘약이라 해서 프랑스에서 팔고 있다는데 약이라 하지만 차처럼 마시는 것이라 한다.
피나무의 열매는 우리나라로서는 8월 하순경이 되면 씨앗속이 젖처럼 물컹한데 이러한 유숙기에 따서 포시에 바로 뿌리면 싹이 잘 튼다. 그러하지 않고 늦가을 익은 뒤에 따서 뿌리면 대체로 1∼2년 안으로는 싹이 트지 않는다. 우리나라의 피나무 열매 속에는 생활력이 있는 종자가 거의 없고 썩 알일 경우가 흔하다.
그리스 신화에 태양의 신이 착한 부부를 피나무와 참나무로 만들고 그 애정의 두터움을 칭찬해서 연리수(連理樹)로 만들었다는 이야기가 있다. 즉, 피나무와 참나무의 줄기가 붙어 한 나무로 되었다는 것인데 피나무는 참나무의 사랑하는 아내였다. 오래오래 살다가 한날한시에 죽어 나무로 되어 다시 오랜 생명을 누렸다는 이야기는 마음 흐뭇하다.
이와 같이 종류가 서로 다른 나무끼리 접착 즉, 연리가 되기란 극히 어려운 일이나 큰 권능을 가진 신은 능히 이러한 일을 마음대로 할 수 있다고 믿어보는 인간의 심정이 없지 않다.
이러한 연리는 부부간의 사랑의 상징으로 되어 있다. 부부란 정말 연리가 이루어지는 관계에 있다.
이와 같이 연리수라 함은 어떤 특정한 나무를 가리켜하는 말이 아니다. 연리라는 말은 옛적부터 있었고 그때부터 사람들은 이러한 현상에 큰 관심을 보였고 의인화해서 뜻을 부여했었다.

찰피나무 잎 포엽에 달린 꽃대궁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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