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조경

동백나무 이야기 - 극동지방에 있어서 난대를 대표하는 수종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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동백나무, 울릉도 도동 뒷산 낮은밭 언덕에 동백나무가 줄지어 자라고 있었다. 동해 한복판에 우뚝 솟아 오른 울릉도, 북쪽에서 내려오는 찬 바닷물과 우리나라 남쪽해협에서 올라가는 따뜻한 바닷물이 만나서 소용돌이치는 곳에 화산이 폭발해서 성인봉을 만들고 그 기슭에 동백나무를 키우고 있다는 것은 울릉도가 동해바다의 꿈이란 것을 말해준다. 

<출처 - 산림조합중앙회 WEBZINE>

동백나무

산꼭대기에는 흰 눈이 길길이 쌓여있는 데에도 아랫쪽에서는 피를 토한 듯한 동백꽃이 피어난다는 것은 꿈과 같은 대조이기 때문이다. 눈녹은 찬물을 마시고 꽃을 피우는 동백나무의 섭리는 신비스러운 설계 위에 서있다.

 

동해에 내려 쪼이는 햇볕을 모조리 모으는 울릉도에서 동백나무는 그 잎으로 태양의 영광과 은혜를 한없이 즐긴다. 번쩍이는 두터운 잎이 그것을 말해 준다. 햇볕을 즐긴다는 것은 모든 생명의 바램이고 그것을 등진다는 것은 참담한 일이 아닐 수 없다. 이러한 의미를 볼 때 동백나무는 행복하기 짝이 없는 나무이다. 그래서 지난날 혼례식 상위에는 동백나무와 대나무의 가지가 자기항아리에 꽂혀서 놓여지곤 했다. 사시사철 변함없이 태양의 뜨거운 열기를 구가한다는 데에도 이유는 있있다. 그것은 오래가는 생의 영광을 상징하는 데에도 또한 부족이 없었다.

 

한때 뭇사람의 금선을 울려본 다음 노래가락
얼마나 울었던가 동백아가씨 꽃잎은 빨갛게 멍이 들었소.
오늘도 기다리는 동백아가씨 왜 동백꽃이 이러한 슬픈 줄거리로 노래에 나타났는지 나는 모르고 있지만 동백꽃은 아직은 젊은여성에게 큰 매력을 주는 것이 아닐까. 사전 양해도 없이 안방을 마구 찾아간 동백기름의 생리도 생각해 볼만 하다.

동백나무는 차(茶)나무과에 속하고 붉은 꽃이 가지끝에 대개 한 개씩 달리는 데 꽃대궁이 거의 없다. 우리나라에서 동백나무가 자라고 있는 곳을 보이는데 남쪽해안과 섬들에 국한되어 있다. 서해안에서는 경기도 옹진군 백령면 대청리가 동백나무가 자라는 최북단이고 동해안에서는 울룽도가 가장 북쪽이다. 전남 여수의 오동도는 동백으로 이름난 섬이며 충청남도 서천해안 서면 마량리에는 동백나무 동산이 있는데 내륙지방으로서는 동백나무가 자라는 북쪽 한계이다. 그 곳에는 큰 나무들이 많은데 심어진 것으로 생각된다. 바닷바람치는 곳인데 지금은 이것이 보호되고 있다. 홍도와 흑산도의 동백나무도 잘 알려져 있다. 동백나무꽃은 이와 같이 해양성의 꽃이다.


동백나무는 극동지방에 있어서 난대를 대표하는 수종의 하나이고 일본에도 있고 중국에도 있다. 동백나무를 카멜리아(camellia)라고 부르는데 아세아의 난대·열대지방에 나고 약 100가지 종류(종)가 있다고 한다. 서양에는 동백나무가 없었는데 지난날 『카메르』란 사람이 동양을 여행하고 그 때 동백나무를 모르고 유럽으로 가져갔다. 그 때 프랑스의 사교계에서는 이 꽃이 인기를 모았다고 하는데 카메르가 가져갔기에 『카메리아』라는 이름이 붙여지게 되었다. 따라서 나무이름으로서의 카메리아는 원래 사람의 이름이었다.

 

동백나무에 닮은 것에 산다화(또는 茶山花화)라는 것이 있는데 이것은 일본 특산이다. 그 때 본 산다화는 동백나무와 얼핏 구별이 안될 정도로 닮아 있었다. 다만 나무의 키가 낮고 꽃이 한가을에 피어 있었고 잎은 크기가 작았다. 이야기를 들으면 동백꽃은 꽃이 질 때 꽃 하나가 통째로 떨어지지만 산다화의 경우는 꽃 조각이 하나하나 떨어진다고 한다. 물론 산다화에도 여러가지 종류가 있고 그 중에는 동백처럼 늦가을에 꽃이 피는 것이 있지만 그러한 것은 예외이고 일반적으로 산다화라하면 가을에 꽃이 핀다. 일본말로는 이것을 『사잔까』라고 한다.

 

우리나라에 자라는 나무로 동백나무에 인연이 가까운 것은 노각나무이다. 꽃모양이 많이 닮아 있고 다같이 차나무과에 속하지만 잎이 겨울에 떨어지는 것이 다르고 잎의 생김새도 다르다.
동백나무는 꽃이 아름답고 잎이 또한 좋아서 일본에서는 많은 품종이 알려지고 있다. 품종의 분류는 주로 꽃모양(홑꽃 또는 겹꽃), 꽃의 크기, 꽃색 등을 근거로 하고 있고 몇 백가지의 품종이 있는 것으로 되어있다. 이런 것은 동백나무를 가꾸는 동안 새로운 것 또는 이상한 것이 발견되면 그때마다 하나의 품종으로 만들어진데 이유가 있다. 앞으로도 많은 동백나무의 품종이 나타나게 될 것이다.

 

눈동백나무(雪椿)가 자라는 곳을 보이는데 일본의 혼슈(本州)지방으로 말하면 동해쪽으로 면한 곳은 겨울에 눈이 많이 와서 깊게 쌓인다. 그러나 태평양쪽은 눈이 그와 같이 깊게 쌓이는 일이 없다. 그래서 북쪽지역의 동백나무는 오랜 세월을 지나오면서 눈에 견디며 살아가는 지혜를 얻었고 그에 적응할 수 있는 체제를 갖추었다. 잎은 넓으나 잎자루가 더 짧은 것도 눈을 이겨내는 방편이고 키가 낮고 줄기가 땅을 따라 기어가는 것도 이유가 있다. 땅표면을 따라가는 줄기부터 뿌리가 내려 땅 속으로 들어가는데 이것도 눈의 무게를 지탱하는 몸가짐의 슬기라고 할 수 있다. 그래서 일본사람들 이러한 생태품종에 대해서 눈동백나무(Snow camellia) 라는 이름을 붙이고 있다. 지역간의 경계는 북쪽에서 남쪽으로 내려뻗는 산맥으로 되어 있다. 겨울철에 눈이 2미터이상 쌓이는 지역에서 눈동백나무는 나타난다.
이러한 생태적인자에 따른 유전적인 분화는 내부조직의 차이를 가져오기도 한다.  눈동백나무의 잎은 표피아래에 하피가 없고 직접 책상조직 세포에 연결되고 있다.이와 같이 환경조건이란 것은 생물에 대하여 상상하기 어려운 일을 해낸다. 사람을 위시해서 온갖 생물은 환경에도 전했었고 또 그 환경에 굴복하면서 안정된 생을 탐구해왔다.
눈이 뿌리는데도 피어나는 동백꽃은 그 안에 무서울 정도의 열기가 있기 때문일 것이다. 가지끝쪽에 꽃이 붙는 것도 줄기를 타고 올라오는 정열의 폭발을 의미하는것에 틀림없다.
붉다못해 토해버린 피의 농도를 높였고 진하다 못해 흰색까지 마셨으며 부드럽다 못해 아직은 햇볕을 못본 젖가슴을 부끄럽게 만들었다. 수줍어 눈을 감고 내미는 첫 입맞춤에서 감미로움을 느낀 것은 동백꽃잎이 아니라 오히려 아가씨의 것이었다. 색깔 중에서 색깔을 골랐고 부드러움 중에서 색깔을 골라낸 동백꽃잎에는 무언가 말못할 사연이 있어서인가. 그것은 아름다움의 절정이요. 부드러움의 마지막이기 때문이다.

 

불같은 사랑의 꽃 그것은 동백꽃이다. 소나무, 대나무, 매화나무를 세한삼우로 하는데에는 동백나무로선 불만이 없지 않다. 추운 겨울이 소나무와 잣나무의 절개를 알아본다. 세한지송백라고 하나 그들은 혹한에 꽃을 피워 보기까지는 못했지 않는가. 이 점을 내세운다면 동백꽃쪽이 훨씬 뛰어난다. 잎으로보다는 꽃잎으로 추위를 견디는 그 기개는 더 높이 찬양되어야 하지 않겠는가.
무어니해도 동백은 겨울을 상징하는 계절의 꽃을 단다. 동매와 함께 나란히 서고 싶다. 추위를 이긴다는 점에선 동백꽃이 더 상징적일지도 모른다. 추위와 어려움을 극복하면 자연아름다움을 나타내기 마련이다.
겨울이 철학의 계절이라면 동백꽃은 철학을 안고 있는 즉 냉철과 냉락 그것을 몸속에 숨기고 있을 것이다. 청적과 적조의 분위기를 자아내는 동백꽃을 특히 중국의 시인들은 사랑했으며 문학에 있어서도 혹한에 늠름하게 견디어 내기에 세한의 친구로 말했다.

 

동백을 청렴과 절조 굳은 인간의 이상적인 모습으로 보고 거기에 높은 가치관을 뽑아내려는 풍조가 배양되어 왔었다. 때로는 동백나무를 엄한지우에 넣어 제일화로 추켜 올린것도 이유없는 것은 아니었다.
이와 같이 청순과 아취를 바라보는 강렬한 동경에도 불구하고 동백나무의 벌거벗은 아름다움이라고도 말할 수 있는 우미와 선려라는 반대방향의 가치도 응시하면서 이 두 가지면을 모아서 한층 더 높은 자리에 올려 놓고 그것을 내려다보는 미의 의식도 배양되어 왔었다.

 

화사한 봄날에 피는 개나리, 살구나무 벚나무 앵두나무 진달래 등은 그 꽃에서 고요함을 찾기 어려우나 동백나무에선 소리없는 고요함을 찾을수있다. 화려하면서도 고요하기란 어려운 것인데 동백나무꽃은 그것을 훌륭하게 해내고 있다. 고요하지 못한 것은 대체로 전시적인 느낌이 더하다. 적막한 느낌 그것은 동백꽃의 매력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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