무화과[Ficus carica]는 외국에서 들어온 나무이다. 겨울에는 잎이 떨어지는 과목인데 추위에 비교적 약해서 우리나라에서는 주로 전남, 경남 등의 바닷가 지방에 재배하고 있다.
그리스, 이란 등은 오랜 옛적부터 무화과나무를 재식한 것으로 알려져 있고 이것이 중국으로 들어온 것은 13세기경으로 추정되고 있다. 따라서 우리나라에 들어온 것은 그보다 훨씬 뒤일 것이고 나무의 크기로 보아 최근에 재식을 보고 있는 것으로 생각된다.
도토리처럼 보이는 무화과의 열매는 화탁과 화병(꽃대궁)이 비대해 지면서 많은 작은 꽃들을 주머니 안에 넣듯이 해서 발달한 것이다. 무화과 종류의 열매 이외에는 아마 이러한 구조를 가진 것은 없을 것으로 안다. 무화과에 신기함을 느끼는 것은 뭐니 해도 이러한 열매의 구조에 있다.
아름다운 꽃이 햇볕을 등지고 어두운 동굴 안에 숨는다는 것은 원시적인 사고에 속한다고 보아야 할 것이다. 살구꽃, 개나리, 라일락처럼 화사한 햇볕 아래 옷을 벗고 나서는 대담한 아름다움을 현대적 행동으로 본다면 서로 대조가 된다.
깊게 숨는 아름다움에도 무언가 호감이 가기도 하고 종교적이라 할까 그러한 류의 수준 높은 사색이 있는 양 보인다. 그래서일까 아니면 지중해 연안의 식물이라서 그러한 것일지 모르겠으나 기독교 성지주변을 고향으로 하는 무화과나무는 바이블에 종종 나타나고 있다.
창세기 3장에 기록된 무화과나무의 이야기는 너무나 유명한 것이다. "여자가 그 실과를 따먹고 자기와 함께 한 남편에게도 주매 그도 먹은 지라 이에 그들의 눈이 밝아 자기들의 몸이 벗은 줄로 알고 무화과나무 잎을 엮어 치마를 하였더라"하는 내용이 그것인데 그 지방에 자라는 나무 치고는 넓은 잎을 가진 것이어서 치마를 만드는 데에는 손쉬운 자료였다고 생각된다. 무화과는 이처럼 태초에 부끄러움을 숨기는 일을 했기 대문에 지금에 와서도 치부에 해당되는 꽃 그것은 식물의 생식기이므로 그것을 숨기는 꽃과 열매 구조로 가지게 된 것으로 해석해 두기로 한다. 창조주의 사전 설계라고 봄이 어떠할까 한다.
무화과나무가 원시의 죄악을 엄폐해 주었기에 그러한지 모르겠으나 마가복음 11장에 "예수께서 시장하신 지라 멀리서 잎사귀 있는 한 무화과나무를 보시고 혹 그 나무에 무엇이 있을까하여 가셨더니 가서 보신 적 잎사귀 외에 아무것도 없더라. 이는 무화과의 대가 아님이라. 예수께서 나무에게 일러 가라사대 이제부터 영원토록 사람이 네게서 열매를 따먹지 못하리라 하시니 제사들이 이를 듣더라"하는 내용이 있다. 이것은 예수가 무화과나무를 저주한 것이다.
예수께서 이렇게 말을 하자 그 무화과나무는 말라죽고 말았다. 이때 제자들이 질문하기를 "어째서 저 무화과나무가 저렇게도 빨리 말라죽을 수 있었습니까"했을 때 예수 답하기를 "기억하라 만일 네가 믿고 의심하지 않는다면 내가 이 무화과나무에 대해서 한 것처럼 너희도 할 수 있는 것이다. 이것뿐만 아니라 너희들이 저 언덕에 대해서 말하기를 <일어서라 그리고 자신을 바닷속에 던져라>한다면 그와 같이 될 것이다. 네가 믿고 무엇인가 간구하는 기도를 하면 소원이 그와 같이 이루어질 것이다"라고 했다.
이것은 종교적 신앙심의 무서운 힘을 역설한 내용이지만 무화과나무가 저주를 받아 말라죽은 데에는 나무를 사랑하고 있는 세속의 누리로서는 섭섭한 느낌은 있다. 죄는 항상 용서받을 수 있는 것이므로 무화과나무를 무성하게 잘 가꾸고 인간과의 좋은 관계가 유지되도록 하는 것은 바람직하다.
성경에는 그러나 무화과나무의 가지가 연하게 되고 새싹이 날 때 그때는 봄이 찾아온 것이라 비유하면서 좋은 방면으로도 쓰여지고 있는 부분이 있다. 이처럼 이 나무는 성경 곳곳에 나타나고 있다.
무화과나무에는 여러 가지 종류가 있다. 그중 야생형이고 과수로서 가치가 낮은 것에 캐프리 무화과나무(caprifig)가 있다. 재배 가치가 높은 것으로는 스미르나(또는 스머나 Smyrna) 무화과나무가 있는데 이것은 꽃에 암수술만 있고 수수 술이 없어서 부득이 캐프리 무화과나무의 꽃가루를 받지 않으면 안 된다. 꽃가루를 매개하는 것은 벌의 일종인데 이처럼 캐프리의 꽃가루를 받는 사실을 캐프리 피케이션(caprification)으로 말한다. 따라서 스미르나 무화과를 재배하자면 꽃가루를 옮겨주는 벌이 있어야 하고 또 꽃가루를 제공해주는 캐프리 무화과나무를 섞어 심을 필요가 있다.
무화과나무의 경실의 특성으로서 이상한 점이 하나 있다. 이 나무의 열매에는 여름 열매와 가을 열매의 두 가지가 있다는 점이다. 봄부터 자라기 시작한 가지는 열매를 달기 시작하고 가을이 되면서 성숙하는데 이것이 가을 열매이다. 추위가 올 때까지 나무 가지 끝으로 향하면서 계속 열매가 달리지만 겨울이 오게되면 어린 열매는 그대로 겨울을 넘긴다. 이듬해 봄이 되면서 다시 자람을 계속하고 여름철이 되면서 성숙한 열매를 달게 된다. 이것이 여름 열매이다. 그래서 가을 열매는 그해 중으로 자란 1년생 가지에 말리는 것이며 여름 열매는 지난해에 자란 2년생 가지에 달린다.
그런데 우리 나라의 기후 풍토에 있어서는 열매는 달리기 힘들고 열매는 얻을 수 있다. 그런데 열매는 꽃가루를 얻지 안 하여도 결실이 이루어지고 이것을 단위 결실이라고 부른다. 그런가 하면 열매는 반드시 꽃가루를 받아야 한다. 여름 열매와 가을 열매 사이에는 이러한 차이가 있다. 무화과나무가 보이는 흥미 있는 특성이다.
이 나무의 열매는 생식으로 하고 있고 생산량이 많은 다른 나라에서는 가공식품으로도 내고 있다. 생식으로 할 때에는 치질에 효과가 있다고 한다. 설탕을 넣어 조려서 유리병에 넣어 식품으로 이용도 되고 있고 아직 미숙한 열매에 상처를 내면 흰 즙액이 나오는데 이것을 치질 부위에 바르면 치유시키는 효과가 있고 뿌리와 수치를 물로 다려서 뜨거운 습포를 하기도 한다.
사마귀에 잎, 열매의 즙액을 바르면 그것이 떨어져 나간다고 해서 이용되었다.
무화과나무에 가까운 것으로 최선과나무와 젖꼭지나무 그리고 모람이 있다. 무화과나무의 잎은 갈라지지만 이들은 거치가 없고 열매가 작다. 남쪽 해안가에 따라서 또 남쪽 도서지방에 이것이 난다. 거문도에서는 천선과나무를 재래종 무화과나무란 뜻에서 산무 화과 나무로 말하는 사람이 있었다.
여수 앞바다에 있는 오동도에서는 천선과나무 모람 등이 자라고 있고 누군가 명찰을 달아서 찾는 사람으로 하여금 그 이름을 알도록 하고 있었다. 열매가 먹을 수 있다 하지만 작아서 큰 가치가 없는 것으로 생각된다.
이러한 나무는 모두 열매와 잎에서 흰 즙액을 낸다는 것이 뽕나무에 닮아있고 닥나무와 함께 뽕나무과에 소속되고 있다.
무화과나무는 더운 곳을 상기시키는 나무이고 열매의 구조가 이상해서 우리의 눈길을 끈다
- 출처 - 산림조합중앙회 WEBZINE