돈은 교환의 도구로 태어났다. 물건과 물건을 바꿀 때 두 물건의
값어치가 딱 맞아떨어지면 굳이 돈이 필요치 않다. 예를 들어
쌀 한 말과 베 한 필이 똑같은 값이라면 두 물건을 바꾸는 것으로
교환이 성립한다. 그러나 사람 사는 세상에서 이처럼 아귀가 딱
떨어지게 바꿀 수 있는 물건들은 그리 많지 않다. 게다가 어떤
사람은 팔 물건 없이 그냥 어떤 물건을 사야 할 때도 있다.
이럴 때 불편을 덜기 위해 생겨난 것이 돈이다.
돈을 주고 자유민 신분을 사고팔던 고조선
돈은 처음부터 지금과 같은 화폐나 동전의 모습을 하고 있지 않았다. 그 대신 누구나 그 가치를 동등하게 인식하는 물건을 돈으로 썼다. 신석기 시대에는 조개가 그 역할을 했고, 그 이후에는 쌀과 베가 돈으로 쓰였다. 시장에 쌀이나 베를 들고 나가 값을 치르고 그릇이나 어물 등 필요한 물건을 샀다는 것이다.
그러나 쌀이나 베는 들고 다니기에 너무 무거웠다. 간편하게 갖고 다니면서 사람들은 어디서나 필요한 물건과 바꿀 수 있는 돈이 있으면 좋겠다는 생각을 하게 되었다. 그래서 누구나 값어치 있는 물건으로 인정하는 구리, 은, 금 따위를 일정한 크기로 만든 금속화폐가 탄생했다. 이런 금속화폐는 가벼운 데다 변하지 않아서 두고두고 쓸 수 있었다. 모아 두면 언제라도 필요한 물건과 바꿀 수 있는 재산이 쌓이는 셈이 된다.
조선 후기 실학자인 한치윤이 쓴 『해동역사』라는 역사책에 따르면 우리나라에서 처음 금속화폐가 쓰인 것은 고조선 때였다. 한치윤은 기원전 957년 고조선의 흥평왕이 자모전이라는 철전을 만들었다고 기록했다. 중국 역사책인 『한서』 지리지에 실려 있는 고조선의 8조법 중에는 ‘남의 물건을 도둑질한 자는 소유주의 집에 잡혀 들어가 노예가 됨이 원칙이나, 배상하려는 자는 50만 전을 내놓아야 한다.’라는 조항이 있다. 여기 나오는 ‘50만 전’의 ‘전’이 자모전인지는 알 수 없다. 그러나 이 법조문이 알려주는 것처럼 이미 고조선 사회에는 돈을 주고 자유민 신분을 살 수도 있는 화폐 경제가 성립했음은 분명해 보인다.
최초의 금속화폐는 고려의 ‘건원중보’
고조선 귀족들의 무덤에서는 중국과 교역할 때 화폐로 사용한 철정(쇳덩어리)이나 중국에서 만든 금속화폐인 명도전 따위가 발견된다. 단, 자모전이라는 돈은 아직까지 나오지 않았고 다른 역사책에서도 언급되지 않아 실체를 확인할 수는 없다.
고조선 이후 나타난 삼국 시대에도 화폐를 만들어 널리 쓰인 사실은 확인되지 않는다. 농업으로 먹고살던 자급자족 사회였기 때문에 대부분의 사람들이 돈의 필요성을 느끼지 못했다. 농사지어 걷어 들인 곡식을 먹고, 삼을 길러 베를 짜 입고, 나무와 볏짚으로 집을 지었다. 집안에서 필요한 모든 물건을 직접 만들어 썼고, 나라에 내는 세금도 곡식이나 베로 냈다. 장사를 하거나 외국과 무역을 할 때에도 물물교환이 주된 거래 방식이었을 것이다.
실물로 남아 있는 우리나라 최초의 금속화폐는 고려 때인 996년(성종 15)에 주조된 건원중보라는 철전이었다. 나라에서 그 가치를 공식 인정하는 금속화폐가 만들어졌으니 장사를 하는 사람들에게는 희소식이었을 것이다. 그러나 웬일인지 장사치들이 점점 건원중보를 받지 않으려 했다. 돈은 돌고 돌아야 값어치를 하는 법인데 사람들이 건원중보를 널리 사용하지 않아 갖고 있어도 쓸 데가 적었기 때문이다. 그 후로도 고려 왕조는 상업을 진흥 하려고 여러 차례 금속화폐와 저화라는 지폐까지 발행했지만, 이 화폐들은 자급자족과 물물교환 중심의 경제를 극복하지 못하고 쓸쓸히 퇴장하고 말았다.
조선 후기 상업발달로 화폐 경제 호황
조선 왕조는 농업을 천하의 근본으로 여기는 유학자들이 지배했다. 유학자들은 뿌린 대로 거두는 농업을 존중하고, 이윤을 남겨 먹는 상업을 천하게 여겼다. 상업의 발달을 억누르니 돈인들 제대로 쓰일 일이 없었다. 그러다가 조선 후기 들어서야 나라에서도 어떻게 할수 없을 정도로 상업이 발달하고 마침내 돈이 널리 쓰일 바탕이 마련되었다. 1678년(숙종4) 찍어낸 상평통보는 우리나라에서 처음으로 대중의 사랑을 받으며 제대로 쓰인 돈이었다. 전국적으로 상업이 발달하여 어딜 가나 상평통보를 쓸 수 있는 환경이 마련되자 화폐에 대한 수요는 폭발했다. 우리나라에서 돈만 있으면 어디 가서도 굶어죽지 않는 화폐 경제가 열린 것은 이처럼 300여 년밖에 안 된 가까운 시절의 일이다.
그토록 짧은 시간 동안 우리나라 화폐는 눈부신 발전을 이룩했다. 처음에는 교환을 편리하게 하는 도구였던 돈이 언젠가부터 사람들의 생활 전반을 지배하는 존재가 되었다. 심지어는 돈을 수단이 아닌 목적으로 여기고 돈에 모든 것을 거는 사람들도 나타났다. 돈이돈을 번다든가 돈 놓고 돈 먹기라는 말도 생겨났다. 이것은 사람들의 생활을 편리하게 할 도구로 발명된 돈의 본래 성격에 맞지 않는 일이다. 돈은 어디까지나 사람들 간의 관계를 편하게 이어주는 도구로 남아야 한다.
출처 : 행복한교육 웹진