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IT/옛날 이야기

옛 이야기(고전) - 예양의 복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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예양의 복수

 춘추·전국시대에 진나라 사람으로 예양이란 자가 있었다. 그는 원래 진의 육경 집안이던 범씨와 중행씨의 식객으로 있었으나 별로 대우도 받지 못했을 뿐만 아니라, 이름도 세상에 알려지지 않았다. 이런 까닭으로 그는 이들 곁을 떠나 역시 진나라 중신이던 지백의 식객이 되고 말았다. 당시 지백은 진나라 국정을 한 손에 쥐고 권세를 펴던 실력자다. 지백 밑에 간 예양은 그로부터 극진한 대우를 받게 되니 그도 주인을 위하여 몸과 마음을 다 했다.

 

 

그런데 얼마 뒤 지백은 같은 중신이던 조양자와 다투게 되었는데 도리어 조양자의 반격을 입어, 그는 죽음을 당했고 가족마저 몰살되고 말았다. 그 넓던 지백의 전토도 몰수되고, 그 싸움에서 살아남은 식객들도 사방으로 몸을 피해야만 했다. 예양도 예외 없이 산중으로 피신하여 앞날을 곰곰이 생각하게 되었다.
「사나이란 자기를 알아주는 사람을 위해서 목숨을 받쳐야 하며, 계집은 자기를 사랑해 주는 사람을 위하여 모양을 가다듬어야 하는 법이다. 지백님은 처음으로 나를 알아준 사람이다. 나는 마땅히 원수를 갚아 주어야만 한다. 그래야만 죽어서도 그를 만나 뵐 면목이 생긴다. 뿐만 아니라 남자로서 할 일을 더 하게 되는 셈이다.」

 

 

그리하여 그는 이름을 바꾸고 죄수로 가장하여 궁궐 안에서 일하는 노예가 되었다. 그는 궁궐 안 변소 일을 맡아보면서, 항시 비수를 몸에 품고 조양자를 살해할 기회만 엿보고 있었다. 그러던 어떤 날 아침 조양자는 그의 몇 가신과 함께 변소에 나타났다. 하늘이 준 기회다. 예양은 뛰는 가슴을 억누르며 품었던 비수를 손에 들고 막 달려들려는 순간, 그만 조양자를 따르던 가신들에 의하여 붙잡히고 말았다.
조양자 앞에 끌려 간 예양은,
「당신에게 죽음을 당한 지백님의 식객이던 예양이란 자요. 원수를 갚고 지백님의 은혜에 보답코자 했으나, 운수 불길하여 그 뜻을 이루지 못했소. 이대로 죽게 되니 원통하기 짝이 없소」
하며 조양자를 쏘아본다. 그의 측근들은 예양을 죽이기를 진언하지만 조양자는 어찌된 일인지 묵묵히 앉아 말이 없다, 그러다가 한참만에야,
「그 놈은 의리와 정의의 사나이다. 지백도 죽고 그 자손마저 없어, 원수를 갚아 주어도 보상받을 길이 없는데도 굳이 나를 죽일려고 했다. 그 놈은 정녕 사나이답다. 내가 조심하여 그 놈을 피할 수밖에 없다.」
하고, 예양을 놓아주었다.

 

 

그는 다시 산 속으로 들어갔다. 그의 가슴에는 조양자를 죽여, 주인의 은혜에 보답해야겠다는 생각만이 가득 차 있었다. 몇 일을 두고 생각하던 그의 머리에 묘안이 떠올랐다. 그는 온 몸에 옷을 칠했다. 하루 이틀이 지나자 몸은 부어 올라, 얼굴마저 알아 볼 수가 없었다. 그는 문둥이로 가장하여 턱수염이며 눈썹마저 없애 버렸다. 그리고서 집집마다 걸식하며 성내로 들어 왔다.

 

 

조양자의 거동을 살피면서 다시 기회 오기를 기다리던 어떤 날, 길가에서 빌엄질을 하다가 그의 아내를 만났다. 몸을 숨길 사이도 없었지만 다행이도 그의 아내는 혼자말로,
「문둥이지만 목소리가 저렇게 닮을 수가 있을까. 정말 이상한 일도 다 있구나」
하며, 지나가고 만다. 예양은 안도의 한숨을 쉬기는 했지만 다시 걱정되는 일이 생기고 말았다. 그것은,
「어떻게 하면 목소리마저 바꿀 수가 있을까?」
하는 생각이다. 그리하여 그는 수소문 끝에 숯을 먹으면 벙어리가 된다는 것을 겨우 알아내었다. 그는 지체 없이 숯을 구해 먹고 목소리까지 바꾸어 버렸다.

 

 

그리고 다니던 어떤 날, 길가에서 친한 친구를 만났다. 눈치 빠른 그 친구는 한참 예양의 뒤를 따라다니더니,
「너 예양이가 아닌가?」
하며, 앞을 가로막는다. 그는 별 수 없이,
「그래 나야, 그 동안 잘 있었니 ?」하고, 나무 그늘 아래에 주저앉았다. 그 친구도 따라 앉으며 눈물을 흘리면서,
「야 예양아, 너 같이 재능 있는 놈이 왜 이 꼴로 돌아다니느냐? 모르는 체 하고 양자의 식객이 되면 그도 좋아하여 너를 맞아드려 측근에 둘 것 아니냐? 그 때 너도 너의 목적을 다 하는데는 문제없을 것일세. 그런데도 너는 왜 너 스스로가 몸에 상처를 내고 걸식하며 돌아다니느냐? 그렇게 하여 양자를 죽이기란 쉬운 일이 아닐세」
하고, 자기생각을 소상히 이야기한다. 그러나 예양은,
「이 몸을 그에 맡겨 식객이 되어서 그를 죽일려고 한데서야 말이 되느냐. 그것은 잠깐이나마 두 마음을 품고 주인에게 봉사하는 격이 되네. 나는 그렇게는 할 수 없어. 자네 말처럼 그의 식객이 되어, 기회를 노리다가 그를 죽이게 되면, 나는 또 다른 하나의 배신을 하게 되는 셈이니. 그리하여 후세 사람들의 웃음거리가 되네. 뿐만 아니라 그렇게 하지 않는 또 다른 이유의 하나는, 잠깐이나마 두 마음을 가지고 그들의 주인에게 봉사하는 식객들에게 부끄러움을 주고자 하는 까닭이네」
하며, 그의 생각을 친구에게 소상히 설명해 주었다.

 

 

그러던 어떤 날 그는, 조양자가 출타한다는 정보를 얻었다. 예양은 그가 지나갈 다리 밑에 몸을 감추고 때를 기다리고 있었다. 그런데 어찌된 일인가 양자의 일행이 다리 가까이 오자 수래를 끌던 말이 소리를 내어 울어댄다. 그를 따르던 가신들은 일제히 다리 밑으로 달려가 문둥이 한 사람을 찾아냈다. 양자는 직감으로 그가 예양임을 알아차리고 종자로 하여금 신문케 했더니 과연 그는 변장한 예양이었다. 거기에서 비로소 조양자는,

 

 

「네 놈은 원래 범씨와 중행씨의 식객이 아니었던가. 지백은 그들을 모두 죽였다. 그런데도 너는 네놈의 주인이던 그들을 위하여 원수를 갚지 아니했다. 그러면서도 지금 너는 지백을 위해서는 한사코 원수를 갚을려고 한다. 그 무슨 해괴망측한 일이냐. 너 정녕 나에게 원수진 일이 있는 것이로구나」
하며, 호통쳤다. 예양은 숙였던 머리를 들며,

 

 

「나는 틀림없이 한 때는 범·중행 두 집안의 식객이었습니다. 그런데 그 두 집안 사람들은 모두 나를 범인으로만 대우해 주었습니다. 그러니 나도 그들을 범인으로만 대하게 되는 것입니다. 그러나 지백님께서는 나를 국사로서 우대해 주었습니다. 그러하니 나도 그를 국사로서 받들며 그의 은혜에 보답해야 한다고 생각합니다.」
하고 아뢰었다. 조양자는 탄식하며
「그대는 이미 이렇게 함으로서 그대의 주인이던 지백에게 바치는 충심이나 명분도 다 한 셈이 된다. 그리고 나도 지금까지 너를 죽이지 아니하고 용서해 주었으니 의로운 자에 대한 예우를 해준 셈이다. 그러니 이제는 그대를 용서해 줄 수는 없다.」
하며, 병사들로 하여금 예양을 포박시켰다. 그랬더니 그도,

 

 

소인도, 『명군이란, 사람의 좋은 점을 감추지 아니하고 칭찬해 주는 것이며, 충신이란 명분에 그의 생명을 받치는 도리를 알고 있는 자』라고 듣고 있습니다. 이전에 대인께서는 소인을 죽이지 아니하고 용서해 주었습니다. 그 일로 이 나라 사람들은 대인을 높이 경모하고 있습니다. 오늘의 일로 소인은 죽어 마땅하다고 생각합니다. 그런데 가능하시다면 대인께서 입고 계시는 의복만이라도 벗어 주시면 소인은 그것을 찔러 복수에 대하고져 합니다. 당돌한 말씀이오나 소인의 생각을 아뢰옵니다.」
하고, 양자를 쳐다본다. 양자는 그의 말에 일리가 있다고 생각하여 자기의 겉옷을 벗어 주고, 포박도 풀어 주었다. 예양은 칼을 빼들고 세 번이나 그 옷을 찌르더니,
「나도 이제야 죽어 지백님을 만나면 아뢸 말이 있겠구나」
하고는, 바로 그 칼을 자기 목에 찔러 그만 자결하고 말았다.

 

사기 자객열전(史記 刺客列傳)에서

고전

 

원본글 : 산림조합 산림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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