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IT/옛날 이야기

옛 이야기(고전) - 염파장군과 인상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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염파 장군과 인상여

전국시대 조나라 혜문 때의 일이다.
제나라 격퇴에 공을 세워 상경의 위에 오른 염파 장군은, 요사이 매일 같이 불경을 털어 놓는 것이 일수다.
「나는 조나라 장군으로서 산전수전하며 공을 세워 왔다. 그런데 그 젊은 인상여란 자는 무엇을 했단 말인가. 말재주 좋은 덕분으로 힘 하나 들이지 않고 위는 나 보다 위에 있으니 이럴 수가 있느냐. 뿐만 아니라 그자는 환관의 장인 목현의 사인이 아니었던가, 내가 그 비천한 아래에 있다니 정녕 부끄러운 일이다. 이 다음에 상여를 만나면 꼭 챙피를 주고야 말겠다」하며 떠들어댔다.

인상여가 염파보다 상위에 있게된 데에는 그럴만한 이유가 있었다.

 

 

조나라 혜문왕은 초 나라의 보물인 화씨의 구슬을 얻었다. 그런데 진의 소왕은 혜문왕이 그 보석을 지니고 있다는 소문을 듣고, 사신을 보내어 진의 15성과 그 구슬을 교환해 줄 것을 강요해 왔다. 조에서는 야단이 났다. 진의 속셈을 잘 알고 있는 혜문왕은 구슬을 줄 수도 안 줄 수도 없었다. 만일 이 요구를 거절하면 필경 병력을 동원하여 침공해 올 것이 빤하며, 그렇다고 그 보배를 주게 되면 15성 커녕 하나의 성도 얻지 못한 체 구슬만 뺏기고 말 것이다. 여기에서 구슬을 뺏기지 아니하고 진의 감정도 상하게 하지 않고 무사히 의무를 수행할 사신이 필요했던 것이다. 이 대임을 맡아 조가 바라는 대로 일을 처리했던 자가 바로 인상여였다. 그리하여 상여는 상대부의 위에 올랐던 것이다.

 

 

최초의 공적을 조나라에 가져다 준 인상여는 다시 강국 진을 제압하는 기회가 찾아왔다. 그것은 곧 민지의 회의라고 알려지고 있는 유명한 사건이 그것이다.
강국 진은 조를 공격하여 하남성 석성을 함락시키고 그 다음해 다시 조를 침공하여 조나라 사람 2만여를 학살했다. 이런 일을 저지른 진은 뻔뻔스럽게도 화평 회의를 제의해 왔다. 그 장소가 곧 섬서성 민지란 곳이다.
진나라를 두려워하는 조왕은 회의에 참석하기를 몹시 꺼려했다. 그러나 참석을 거부하면 조나라의 약점을 들어내는 셈이 된다. 조왕은 하는 수없이 상여를 동반하고 그 회의에 참석하기로 했다. 떠나면서 상여는 염파에게,
「왕의 행차와 회의 일정을 생각해 보니 전후 30일을 넘지는 않을 것 같습니다. 만일 30일이 넘어서도 돌아오시지 않으시면, 그 때는 태자로 하여금 위에 오르시게 하시여 진나라가 왕을 인질로 하여 부당한 이득을 얻을려고 하는 속셈을, 단호히 거절한다는 뜻을 보여야 합니다」라고 이르고 민지로 떠났다 진왕은 주연을 베풀고 조왕을 환대하는체 하면서도 깔보고 하는 말이
「조왕께서는 음악을 좋아하신다고 들었습니다. 비파를 타셔 이 자리를 빛내어 주시오」
하며 청한다. 조왕은 진왕의 요구대로 비파를 타니, 진의 사관은 이 사실을 기록하기를,
「모년 모월 모일 진왕은 조왕과 더불어 주연을 베풀어 조왕에게 비파를 타게 하시다」라고 기술해 두었다. 이런 광경을 가만히 바라보고 있던 인상여는 진왕 앞으로 나아가더니,
「진왕께서는 나라의 민요를 잘 하신다고 들었습니다 함께 노래하셔서 이 자리를 더욱 빛내 주십시오」
하고 부복했다. 진왕은 화가 나서 견딜 수가 없었다. 그러나 발아래 부복해 있는 상여를 바라보니 살기가 등등하다. 더욱이 상여는 이어,
「왕과 소인의 거리는 불과 다섯 자국 밖에 아니 됩니다. 그러하오니 소인의 머리 피를 왕께 뿌리기란 퍽 쉬운 일입니다」
하며 위험까지 한다.
진나라에서 온 호위병들은 곧 상여를 베려고 했으나, 그의 위력에 눌려 꼼짝하지 못했다. 이렇게 되니 진왕은 할 수 없이 상여가 내여민 악기를 한번 치고 말았다. 상여는 때를 놓치지 아니하고, 조나라 사관을 불러,
「모년 모월 모일 진왕은 조왕을 위하여 악기를 치다」라고 기록하게 했다. 이렇게 되니 진나라 신하들은 몹시, 못마땅히 여겨 다시
『조의 15성을 가지고 진왕의 장수를 기원합시다.』
하며 축배를 올리니, 상여도 재빠르게
「진나라 서울 함양을 가지고 조왕의 장수를 축원합시다」
하고 받아 넘겼다. 진왕은 회의가 끝날 때까지 상여의 위력에 눌러 단 하나의 부당한 요구도 하지 못했다.

 

 

인상여는 이와 같이 하여 나라에 큰 공을 세우게 되었고, 위도 염파 장군을 능가하게 되었다. 염파 장군이 인상여를 시기하여 비난하고 다니는 이야기를 들은 상여는 항상 조심하여 그를 피해왔다. 설혹 조정에 나아갈 일이 있어도, 염파 장군이 먼저 가 있다는 소문을 들으면 다음으로 미루었다.
그런데 어떤 날 상여는 가신들을 거느리고 거리를 나갔다가 멀리서 염파를 보았다. 그러자 그는 곧 수레를 돌려 왔던 길은 되돌아가고 말았다. 이렇게 되니 상여의 가신들은 모두 한 마디씩 불평을 털어놓는다.
「소인들이 오늘날까지 경에 사사하고 있는 것은 오로지 경의 고매한 인격을 사모하는 까닭이옵니다. 그런데 경은 염파 장군이 그러한 말을 하고 다녀도 만나서 따지기는 커녕 항상 피해 왔습니다. 뿐만 아니라 오늘 경이 하신 일은 소인들로서는 도저히 납득이 가지 않습니다. 무엇이 그렇게 두려워서 길까지 피해 달아나십니까. 이런 짓은 정말 너무 하옵니다. 저이 소인배들도 챙피하기 비길 때 없습니다. 저이들도 이제는 경의 곁으로부터 떠나야 하겠습니다.」상여는 가신들의 하는 말을 가만히 듣고 있더니,
「그래 그대들은 염 장군과 진왕을 비교하면 어느 쪽이 더 강하고 무섭다고 생각하느냐 ?」하고 물었다. 가신들은 모두
「그야 진왕이 더 강하고 무서운 인물이라 생각되옵니다」
하고 대답한다. 그제야 상여는 빙그레 웃으면서
「진왕의 위력으로서도 감히 이 상여를 어떻게 할 수도 없었네. 더욱이 나는 진왕을 그의 궁정에서 호통을 쳤고, 민지에서는 그의 신하들에게도 호령하지 아니 했던가. 나는 어떤면에 좀 부족한 자인지는 모르지만 염장군을 두려워하고 있지는 않네. 다만 나는 이렇게 생각하고 있을 따름이다. 즉,
그 강대한 진나라가 우리 조나라를 힘으로 정벌하지 않고 있는 것은 이 상여와 염파 장군이 있기 때문이다. 그런데 우리 둘이 서로 자웅을 겨누는 싸움을 하게 되면 필경 둘 중에 하나는 쓰러지고 말 걸세. 내가 그대들에게까지 챙피를 당하면서 이런 꼴을 하고 다니는 것은 강적을 앞에 둔 나라의 외기에 우리 둘이 싸울 수 없기 때문이다. 나라의 급함이 그 첫째요 사사로운 감정은 그 다음으로 생각하는 까닭이네」하고 사리를 설명해 주었다.

 

 

염파 장군도 이 이야기를 듣고 윗옷을 벗어들고, 가시나무 한 아람을 등에다 메고 인상여의 문을 두들겼다.
「경의 뜻을 못 알아보았습니다.
이 매로 소인을 때려 주십시오」하고 사죄했다. 상여도 반갑게 장군을 맞이하며,
「배움이 부족한 저를 이렇게 찾아주시는 장군의 도량에 감복합니다」
하고, 안으로 맞아 들였다. 이 이후부터는 두 사람의 우정은 더욱 굳어지고 강국인 진도 함부로 군을 동원하지는 못했다.
 <사기(史記)에서>

옛 이야기

 

원본글 : 산림조합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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