도깨비들의 장난으로, 가난한 집안이 별안간 부자가 되기도 하고, 부잣집이 빈집같이 된 집도 있고 웃고 울고 하였다.
성안 사람들은 하루도 편할 날이 없었다. 이 소문도 이 대궐안에 퍼졌다. 진명왕도 들었다.
"짐이 나라를 다스리는데에 부덕한 것이로다. "
진평왕은 그 해괴한 도깨비들을 처치하려고 궁리를 짰다.
그러는 한편으로 진평왕에게는 또 한가지 걱정거리가 생겼다. 밤만 되면 극진히 마음을 쓰는 비형이 어디론지 나갔다가 새벽이 되어서야 돌아온다는 궁녀들의 보고였다.
"이 아이가 어디를 간단 말인고?"
진평왕은 매우 궁금히 여기고, 그 사실을 알아 봐야겠다고 생각했다.
힘이 세고 담대한 용사들을 불러 들이게 하니 한 쉰 사람쯤 모였다.
"너희는 잘 들어라. 비형이 밤만 되면 궁궐을 나갔다가 새벽에야 돌아온다고 하니, 비형의 거동을 살펴라. 궁을 나가거든 몰래 따라나가 어디서 무엇을 하는지 사실대로 조사하여 아뢰어라."
그래서 쉰 명의 용사가 비형의 뒤를 몰래 따르게 되었다.
그건 그렇고, 도대체 비형은 밤에 어디 가서 무슨 짓을 하는 것일까.
비형이 귀신을 부리는 재주가 있고, 자기 부모의 혼령을 만난다 함은 이미 우리가 알고 있는 사실이거니와, 그러는 동안에 우연히 도깨비 떼를 만나 융숭한 대접을 받았다.
그로부터 비형은 밤마다 도깨비떼를 만났고, 그러자니 자연히 친숙해졌다.
비형은 밤만 되면 궁성 담을 넘어 거칠내(황천)에 가서 도깨비떼들과 어울러 놀다가 새벽에는 돌아왔다. 하루는 도깨비들 중의 하나가
"우리들도 각자 제멋대로 무질서하게 행동할 것이 아니라, 우리들이 믿고 따를 수 있는 대장을 하나 정합시다"
하고, 마치 신라 건국 신화와 같은 말을 하였다.
다른 도깨비들도 찬성하였다.
"좋은 말이오, 대장을 하나 정합시다"
"누가 좋을까요 ? "
제각기 한 마디씩 하는데, 그것 역시 신라 건국 신화에서 육촌 촌장들이 한것과 비슷하다.
한 도깨비가 나선다.
"우리 도깨비들에게는 마땅한 감이 없는것 같습니다. 비형 소년을 대장으로 추대하기로 합시다."
"좋습니 다."
여기저기서 박수...... 참말로 박수를 해서 소리가 났는지는 알 수 없으나, 어쨌든 비형 소년이 도깨비 대장으로 추대되었다.
도깨비 대장이 된 비형 소년은 취임식 자리에서 시정 연설을 했다. 자기를 한패로 인정해준데 대하여 감사의 뜻을 표하고, 자기 역시 인간 세상보다는 이 도깨비 세상이 더 관심이 있음을 설파한 다음,
"우리가 날마다 모여서 놀기만 할 것이 아니라, 우리로서 뜻있는 일, 무엇인가 가치있는 일을 해야겠읍니다. 내가 인간 사회에서 느낀 바에 의하면, 이 인간사회가 엉망진창이라고 하지 않을 수 없읍니다. 어떤 사람은 부정한 짓을 해서 놀면서도 잘 살고 어떤 사람은 부지런히 일을 하면서도 시운을 타지 못하여 고생하기도 합니다. 그리고, 어떤 사람은 자기 잘못을 남에게 뒤집어 씌워 애메한, 옥사를 일으키기도 합니다. 우리는 이 뒤틀어진 사회를 바로 잡아아 겠읍니다."
그 시대에 "부조리"란 말이 있었는지 없었는지는 알 수 없으나, 비형 소년의 말은 마치 요새 "서정 쇄신"이니 "부조리 추방"이니 하는 것과 같은 말을 하고 있다.
도깨비들이 부조리를 없앤다고 해도 그들이 나라를 다스리는 것도 아니고 결국은 도깨비 장난에 불과할 것은 뻔한 일이다.
도깨비들이 뒤틀어진 사회를 바로잡는 다는 것이, 심술 사나운 사람의 집에 불이나 지르고, 부잣집 곡식을 퍼다가 가난한 집이 나누어 주기도 하고, 욕심많은 사람집에 똥벼락을 주기도 하는 따위 짓이었다.
이럴 즈음, 진평왕이 쉰 명의 용사를 뽑아 비형의 뒤를 밟게 한 것이다.
그들은 그 해괴망측한 장난이 비형이 지휘하는 도깨비떼들의 짓임을 알아 냈다.
비형의 재주에 놀다기도 했지마는, 놀라고만 있을때가 아니어서 그 사실을 낱낱이 진평왕에게 보고했다. 진평왕도 뜻밖의 보고를 듣고 어안이 벙벙했다.
비형을 불러 묻는다.
"너는 요사이 밤마다 도깨비들을 만난다니 그것이 사실이냐?"
비형은 얼굴에 핏기가 가신다, 그의 입에서는 힘없는 말소리가 흘러나온다.
"사실이옵니다. "
"그렇다면 도깨비들이 도성 안을 시끄럽게 하고 있는 것도 네가 시켰단 말이냐 ? "
"그러하옵니다. "
"고얀지고, 도깨비들이 스스로 그러한 행패를 부리더라도 신하된 너는 그것을 말려야 하겠거늘 어찌 네가 그런 짓을 시킨단 말이냐, 무엄한 일이로다. "
꾸짖는 진평왕의 머리에 퍼뜩 묘안이 스쳐 간다.
(이 아이를 꾸짓기만 할 것이 아니란 반대로 이용하는 것이 낫겠다. 도깨비들을 없이하는 데에도 힘이 필 것이요, 그 도깨비들을 이용하여 무슨일을 시켜 보는 것도 일책이다.
"너는 네 잘못을 알겠느냐?"
"모두가 소신의 잘못이옵니다."
비형은 무거운 벌이 내릴 것을 각오한 모양이다, 그러나 진평왕의 벌은 생각과는 달랐다,
"네 소행은 국법으로 다스려야 할 것이로되, 아직 나이 어리어 잘 모르고 한것이니 과거는 묻지 않기로 하겠다."
비형 소년은 자기 귀를 의심했다.
"예 ? "
"대신에, 너에게 일을 하나 명한다. 신원사뒤에 다리 놓는 일을 맡아 하렷다."
비형은 벌이 내리지 않은 것을 알았다.
"상감마마, 성은이 망극하옵니다. 내리신 분부는 그대로 봉행하겠나이다."
신원사 뒤의 개천은 모래 바탕이어서 다리를 놓아도 홍수만 나면 떠내려가고 만다. 그래서 이번 기회에 도깨비들에게 다리를 놓게 하면 좋은 수가 있지 않을까고 진평왕이 한번 시켜본 것이다.
진평왕의 앞을 물러나온 비형은 정신이 드는 것 같았다.
(내가 장난 치고는 지나친 장난을 했다. 하마터면 목이 달아날 것인데, 상감 마마의 망극한 은혜로 살아났다. 그 은혜에 보답하기 위하여 다리를 완전하게 놓자.)
비형은 각오를 단단히 했다.
그날 밤에 거칠내에 찾아간 비형 소년은, 도깨비들을 ㅁ아 놓고 일장 연설을 했다.
"오늘은 너희에게 특별히 부탁이 있다. 우리가 한 장난은 너무 감정에 치우친 것 같다. 역시 남을 해친다는 것은 옳지 않다. 지금부터는 남에게 손가락질을 받는 짓은 하지 말기로 하자. 그 대신 우리가 한마음 한뜻이 되어서 청사에 빛날 큰일을 하나 해야겠다. 그것은 신원사 뒤 개천에 돌다리를 놓는 것이다. 이것은 상감마마의 분부이시다. 우리는 정력을 기울여 일을 하되 절대로 무너지지 않도록 해야 한다. 각별히 조심할 것을 부탁한다"
도깨비들은 워낙 평소에 비형을 신임하고 있던터라 모두들 그 명령에 복종할 뜻을 비쳤다,
만족한 기분이 든 비형은 다시 영을 내린다,
"길달은 이리 나오라"
길달은 도깨비들 중에서도 가장 슬기롭고 재주가 있어서 동료들간에 평이 좋았다,
길달을 옆에 세운 비형은
"이 역사를 하는 동안에 나를 도와서 지휘할 부대장으로 길달을 지명한다"고 말하면서, 길달의 왼팔을 잡아 높이 쳐들었다,
아무도 반대하지 않는다.
"좋습니다"
모두들 길달의 명령도 들을 것을 맹세한다,
이리하여, 다리 놓은 역사는 즉시 시작되었다,
밤중에 어둡지도 않은지 도깨비들은 일사분란하게 일을 했다, 어디서 연장들을 가져오는지, 어디서 그런 돌을 날라오는지 그야말로 도깨비 장난 치고는 희한한 것이었다, 이 다리는 하룻밤에 놓았다고 전한다. 도저히 사람의 힘으로는 안 될 일을 도깨비들은 거뜬히 해치운 것이다.
다음날 도성 사람들은 깜짝 놀랐다. 밤사이에 훌륭한 돌다리가 소문도 없이 놓였으니 영문들을 몰랐다.
누구의 입에선가 "도깨비 짓이다" 하는 감탄하는 말이 나왔다. 이 말은 도저히 사람의 힘으로서는 안 될 일이고 도깨비가 아니면 할 수 없다는 뜻이었을 것이다.
도깨비 짓이라는 말이 나오자, 다른 사람들도 동감이었다. 그러다가 또
"도깨비가 놓았을 것이다"
라는 말이 나왔다. 그러자 옆에서 맞장구를 친다.
"도깨비가 놓았단다"
사람들 입에서는 '도깨비'라는 말이 끊이지 않는다.
그러더니, 드디어 진상이 밝혀졌다. 비형 소년이 이끄는 도깨비들이 소란을 피우다가 진평왕의 본부로 마음을 고쳐먹고 다리를 놓았다는 사실이 알려진 것이다.
다리가 놓였다는 보고를 들은 진평왕은 기뻐함은 물론 친히 그 다리에 거동했다.
좌우에 명하여 낙성식을 하는데, 강다리 이름을 귀교라고 했다. 비형에게는 큰 상을 내렸다. 지금 같으면 공로패나 훈장을 주겠지만, 그 때에 무슨 상을 주었는지는 알 수 없다.
어쨌든 이 일로 진평왕은 비형 소년을 더욱 사랑하게 되고, 도깨비들까지도 치하하게 되였다.
진평왕은 비형에게 하문한다.
"도깨비들의 재주가 대단하구나. 사람으로서는 할 수 없는 큰 일을 그렇게 훌륭하게 했으니 놀라운 일이다. 그 도깨비들 가운데 슬기 있고 재주가 뛰어난 자가 있어 벼슬이라도 할 재목이 있느냐?"
"예 ?"
"놀랄 것 없다. 있으면 말해 보아라"
"과연 사람 이상으로 능력이 있는 자가 있사옵니다"
"그러나, 도깨비의 몸으로서야 어찌 사람들과 어울리며 의사를 통할수 있겠느냐?"
"아니올시다. 도깨비의 몸으로서야 어찌 사람과 어울리겠나이까. 필요하오면 사람으로 변해서 사람과 같은 생활을 하여야 할 줄로 아뢰옵니다"
"음, 그러면 네 말대로 사람으로 변해서 짐을 도울 수 있는 도깨비가 있단 말이지?"
"예, 길달이라는 도깨비가 이번 다리놓는 역사에 소신을 도와서 지휘를 했사온데, 슬기롭고 재주가 비상하옵니다"
"그럼, 그 길달이라는 도깨비를 사람으로 변하게 해서 데려올수 있느냐?"
"예, 분부대로 거행하겠나이다"
다음날 밤.
비형은 거칠내를 찾아가 길달을 사람으로 변하게 하여 데리고 궁중으로 돌아와, 진평왕께 알현하게 했다.
진평왕은 길달을 가까이 불러
"비형을 통해서 그대의 재능을 알고있다. 오늘부터 짐을 도와 충심을 다 하렸다"
하고, 그 자리에서 길달에게 벼슬을 주었다. 벼슬은 비형과 같은 벼슬이었는데, 내용은 확실하지 않다.
길달은 감격하여 아뢴다.
"성은이 망극하옵니다. 무지한 것은 이처럼 사랑하시와, 과분한 분부를 내리시오니 감격할 따름이옵니다.
분골쇄신 충성을 다하겠나이다.
벼슬길에 오른 길달은 몸가짐이나 사무 처리에 여느 사람보다 뒤떨어짐이 없고, 사리를 가리는 데 있어서도 명석한 슬기를 유감없이 발휘하여 동료들로 하여금 혀를 내두르게 했다.
길달 역시 진평왕의 사랑을 받고 동료들의 존경을 한몸에 모았다.
이 때, 재상 가운네 임 종이라는 사람이 있었다. 벼슬은 높았으나 슬하에 자식이 없어 쓸쓸한 나날을 보내고 있었다.
진평왕은 그 사정을 알고 있었으므로 늘 안쓰럽게 여겼었다.
하루는 임 종을 불렀다.
"경이 후사가 없어서 늘 쓸쓸하게 지내는 것은 짐이 잘 아는 터요. 혹 경의 후사가 될 만한 인물이 있다면 맞아 들일 의향이 있소?"
임 종은 감격하여 아뢴다.
"상감마마, 소신을 그처럼 진념해 주시니 성은이 하해와 같사옵니다. 상감마마의 분부시라면 봉행할 것이옵니다"
"길달이 어떠하오"
"황공하옵니다. 분부대로 하겠나이다"
이리하여, 임 종은 길일을 택하여 길달을 맞아 양자로 삼았다.
임 종 부부는 허전하던 참이라, 길달을 맞아서 흐뭇했고, 길달 역시 외로운 처지라 양부모에 효성을 다하였다.
임 종의 집안은 웃음꽃이 피었다.
이 사실을 알게된 비형도 기뻐하였다. 자기가 천거한 길달이 성실하여 칭찬을 받는 것도 흡족한 일이지만, 사람이란 가정적 분위기가 필요한 것이다.
길달이 임 종의 양자로 들어가 부모의 사랑을 맛보게 된 것 또한 경사스러운 일로 여겨졌다.
임 종은 싱글벙글하여 과거에 쓸쓸하던 그림자가 사라져 버렸다. 이 기쁨을 이길 길 없어 기념으로 남기고 싶었다. 진평왕께 상주하여 길달에게 흥륜사 앞에 큰 문을 세우게 할 것을 허락 받았다.
"내 아들아, 너에게 기념물을 세우게 할 것을 상감 마마로부터 허락 받았다. 우리의 이 기쁜 인연을 후세에 남기고 싶어서다. 할 수 있겠지?"
"예, 아버님. 세우고 말고요. 당장 훌륭한 문을 세우겠읍니다"
"오, 과연 내 아들이로고"
임 종도 기뻤고, 길달도 기뻤다.
길달은 지체 없이 자기 부하인 도깨비들을 동원하여 흥륜사앞에 훌륭한 누문을 세웠다.
이 문 낙성식에 참석한 진평왕은 그 찬란함에 경탄하고, 문 이름을 길달문이라 지었다.
그런데, 부귀영화는 한가닥 뜬 구름이요, 영고성쇠는 자고로 무상한 것이다.
길달이 길달문을 세운 뒤로는 임 종의 집에서 나와 길달문에서 기거했다.
길달의 심경에 변화가 온 것이다. 자기가 사람으로 변해서 벼슬살이를 하고 있는 것이 불편했는지 싫증이 났는지 회의를 느꼈는지, 하루 밤에는 아무 말도 없이 여우의 몸으로 둔갑하여 어디론지 도망하여 버렸다.
임 종은 다시 쓸쓸한 과거로 돌아갔다.
이 사실을 알게 된 비형은 길달의 처사를 꽤씸하게 여겼다. 즉시 도깨비들을 모아, 행방불명이 된 길달을 잡아들이게 했다.
도깨비들은 여우로 변한 길달이 어느 으슥한 산속 굴에 숨어 있는 것을 찾아내어 결박지어 왔다.
비형은 배신을 당한 분노를 누를길 없었다.
"너는 배은망덕한 놈이다. 용서할 수 없다"
하고 꾸짖고 나서 길달의 여우 목을 베었다.
그리고, 도깨비 무리들에게
"우리가 이제까지 잘 한 일도 있지마는 세상을 시끄럽게도 했다. 앞으로는 민심을 어지럽게 하는 장난은 용서하지 않겠다"
고 엄하게 타일렀다.
도깨비들은 자기들의 존재가 사회 비난의 대상이 된데 대해 책임을 느끼고 흩어지기로 결의했다.
한때 도깨비들 장난으로 전전긍긍하던 도성 사람들은 안심하고 살 수 있게 되었다.
집집마다 문위에 비형의 이름을 써붙여 잡귀를 물리치는 부적으로 삼는 것은 이 때부터 비롯되었다고 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