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IT/옛날 이야기

옛 이야기(고전) - 추남과 김유신(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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마음이 싱숭생숭해진 김 유신에게 과일 나눠 주던 그 아가씨도 갖은 아양을 떤다.
참다못한 김유신은 체면도 잊어버리고 안타까운 심정을 호소했다.
"아가씨 ! 괴롭소. 못 참겠구료"
그러자, 그 아가씨도 수줍은 태도를 지으면서도 알겠다는 듯이 말한다.
"서방님의 뜻은 알겠나이다. 그럼 저 친구분은 저 두 아가씨들에게 맡겨두고 우리는 따로 숲 속으로 들어가십시다"
김유신은 백석에게 눈짓을 하고 그 아가씨와 함께 깊숙한 숲속으로 들어갔다.
그런데 이게 웬 일인가.
그 아가씨는 별안간 백발 신령으로 변하는 것이 아닌가.
"나는 완삿내를 지키는 수신이오. 저 두 여자도 나와 같은 신이오. 그리고 김공과 동행하는 백석은 고구려 자객으로, 공을 해하려 하고 있소. 우리는 공이 위험하기에 사람으로 변신해서 그 사정을 알려 드리니 피하시는 것이 옳을까 하나이다"
말을 마치자, 그 아가씨는 온데 간데가 없다.
혼자 남은 김 유신은 도깨비에게 홀린 기분으로, 꿈에서 깨어난 사람 모양 멍하다가 정신을 가다듬고 숲 밖으로 나왔다.
길가에는 백석이 혼자서 기다리고 있었다.
"국선 서방님, 왜 혼자 오십니까"
"글쎄 나도 어이된 영문인지 모르겠소. 그 두 아가씨는?"
"어떤 허연 노인이 데리고 가 버렸나이다."
"그래요?"
김 유신은 눈치재지 못하게 얼버무리며 길을 재촉한다.
그날 밤을 골화관이란데서 새우고, 아침에 김 유신이 안절부절 못하는 태도로,
"이거 큰일났습니다. 국경을 넘을 때에 필요한 징표를 깜박 잊고 왔소. 도로 가서 그것을 가지고 와야겠는데 어떠시려오. 내가 혼자 가서 가져와도 좋고 함께 가셔도 좋고......"
한다. 그러면서 백석의 눈치를 살핀다
백석은
"혼자 가시다니, 안될 말씀입니다. 귀하신 서방님을 따르겠습니다. 가십시다
하고 따라 나선다.
둘이는 골화관을 떠나 김유신의 집으로 되돌아오고 말았다.
그 길이 무슨 길인지도 모르고 떠났던 김유신은 신령의 깨우침으로 돌아왔다.
그날 저녁,
백석은 아무 눈치도 못채고 사랑에 누워 있었다.
김 유신은 가만히 날쌘 부하 여남은 사람을 불렀다.
"너희는 저 사랑에 감쪽같이 들어가 불문곡직하고 백석을 결박지어 끌어 오너라."
부하들은 지체하지 않고 백석을 꽁꽁 묶어 왔다.
김유신은 백석을 마루 아래 꿀어앉히고 청룡검을 빼들었다.
"이놈, 너는 웬놈이기에 나를 해하러 하느냐 ! "
불호령을 내린다.
어마지두에 백석은 벌벌 떨면서 변명을 한다.
"국선 서방님, 어이하신 말씀입니까 소인은 그저 서방님의 충정에 감동되와......"
말끝을 채 맺기 전에 김 유신은 다시 호령한다.
"그래도 못알아 듣겠느냐. 네가 고구려에서 밀파된 자객인 줄을 이미 알고 있다. 이실직고 하렸 다."
백석도 사내다. 이미 그런 줄 알았다. 죽을 바에야 깨끗이 죽으리라 마음먹고 비굴함이 없이 북천을 향하여 세번 절하고 나서,
"일이 이미 여기에 이르려 숨길 것 없다. 뜻을 이루지 못함은 원통하지마는 또한 천명의 소치다."
하고, 전후사정을 이야기하니 다음과 같다.
때는 거슬러 17년 전, 고구려 26대 영양왕 5년(신라 진평왕 16년 서기 594년)의 일이다.
영양왕은 즉위하면서 부터 백성을 사랑하고 국방 경비와 문화 발전에 힘썼기 때문에 영주라고 칭송받고 있었다.
그런데, 고구려에는 갖가지 천재지변이 거듭 일어나고 있었다.
궁전 앞을 흐르는 강물이 붉은 빛으로 변했다.
종묘 뜰에 있는 돌이 구슬픈 소리를 내며 울었다.
밤하늘의 별이 자리를 바꾸는 괴변이 일어 났다.
땅에 솟은 산이 이유없이 무너졌다. 천둥 벼락이 추운 겨울철에 나타났고 여름에 서리가 내리고 우박이 떨어졌다.
이러한 이변이 일어날 때마다 영양왕은 여러 가지로 적정했다.
영양왕은 마침내 복술로 이름높은 추남이라는 사람을 불러 들였다. 추남에게 천재지변을 점치게 했다. 추남은 왕명을 받아 점괘를 풀어 아뢴다.
"강물이 붉어지고 종묘들이 우는 것은 중전마마가 음란하신 탓이며, 별자리가 바뀌고 산이 무너짐은 암닭이 새벽을 알리는 까닭이며 겨울에 천둥 벼락이 나타남은 나라가 위태로운 징조이며 여름에 서리가 내리고 우박이 떨어짐은 하늘이 노하심으로 아뢰나이다"
추남은 눈치도 없이 점괘대로 아뢴 것이다.
영양왕은 잠자코 있다가 문무 백관을 불러 추남의 점괘 해석을 확인시키고 나서 나라의 재변을 없애는 방법을 연구하라고 분부했다.
음란한 왕비가 그 이야기를 들었다. 추남을 죽여 버려야겠다고 마음먹었다. 쥐 한마리를 잡아 돌함에 넣어 비단보로 여러겹 싸서 심복을 불러 분부했다
"이것을 가지고 추남의 집에 다녀 오녀라. 추남에게 점을 치게 하여 이것이 무엇인가 알아 오도록 하라"
왕비의 심복은 추남의 집에 갔다.
"나는 중전마마의 분부를 받들고 왔다. 이 속에 무엇이 들어 있는지 점을 쳐서 알아 맞히도록 하라. 지엄한 분부이시니 추호의 유루 없도록 명심하렸다
왕비의 심복은 겹겹이 싸인 물건을 추남 앞에 내려 놓는다.
추남은 그것이 왕비의 음모인줄도 모르고 정성껏 점을 쳤다. 그리고 점괘에 나타난 대로 말을 한다.
"딱딱하고 자라지 않는 물건이면서 쪼이기도 하고 갈아지기도 하는 것이니 돌함이 분명하고, 돌함이니 그속이 또 무엇이 들어 있는데 담비 같은것이 잘놀라는 성질을 나타내므로 쥐가 분명하다 여섯으로 나누면 하나가 남고, 여덟으로 나누면 하나가 모자라니 일곱이다 이 보자기 속에 돌함이 있고 그 돌함속에 쥐 일곱다리가 들어 있사옵니다"
왕비의 심복은 그대로 왕비에게 가서 복명했다.
"추남의 말이 돌함 속에 쥐가 일곱마리 들어 있다고 하였나이다."
이 말을 들은 왕비는 노기 충전하여 펄펄 뛰었다.
"돌함에 쥐가 들어 있다는 것은 용하게 맞히었다. 그러나 쥐는 한마리밖에 안들어 있느니라. 그렇거늘 일곱 마리라 함은 옳지 않으니라. 그런 주제에 나더러 음란하다느니 암닭이 새벽을 알린다느니 하여 마치 천재지변이 나로 인하여 일어난 것처럼 상감께 아뢰었으니 그자를 그냥 둘 수 없다. 너는 가서 그점이 옳지 않다는 것을 추남에게 알려 주고 곧 목을 베어 오너라. "
왕비의 심복은 하는 수 없었다. 다시 추남의 집에 갔다.
"그대는 점도 제대로 되지 못하는 주제에 감히 중전마마를 비방하는 언사를 함부로 하였으니 살아남지 못하리라"
추남은 어이가 없었다. 자기의 점괘에 거짓이 있을리 없는데 그게 웬 말인가. 그제서야 추남도 알아차리게 되었다.(내가 상감께 아뢴 것을 듣고 괘씸히 여겨 나를 죽이려고 하는 것이었구나).
생각이 여기에 미친 추남은 각오했다. 죽음을 면하기는 틀렸다.
"중전마마의 어명이시다 거역할 수는 없사옵고 떳떳하게 형을 받겠나이다. 그러하오나 이 몸이 죽은 뒤에 다른 나라에 가서 태어나겠나이다. 태어나면 장군이 되어 고구려를 치고 왕비를 잡아 죄없이 죽은 원한을 풀겠나이다"
추남은 말을 마치고 목을 늘였다.
왕비의 심복은 지체할 이유가 없었다. 큰 칼을 들어 추남의 목을 내리쳤다.
머리가 떨어져 나간 추남의 목에서는 붉은 피가 솟구쳐......라고 하면 너무나 당연하겠지만 사실은 달랐다.
붉은 피가 솟구치는 것이 아니라, 하얀 빛깔의 젖줄기 같은 피가 치솟는 가운데 파랑새 한마리가 날아나온 것이다
그 파랑새는 슬피 울면서 공중을 한바퀴 돌더니 남쪽 하늘을 향하여 날아갔다.
참으로 놀라운 일이었다. 그런데 그날이 바로 신라 진평왕 16년 3월 경진날이었던 것이다.
그러니까 신라 진천목 김서현과 만명부인이 서로꿈 이야기를 하고 김 유신을 잉태한 날이다.
그건 그렇고, 추남의 죽음이 하도 이상하여 왕비의 심복은 그 자초지종을 왕비에게 보고했다.
왕비는 그 말을 듣고 자기가 한 짓이 떳떳하지 못한지라 매우 불안했다. 그래서 비단보를 풀고 돌함을 열어 보게 하였더니 그 돌함 속에는 어미 쥐가 새끼 여섯 마리를 낳아 놓고 있었다.
아뿔싸! 큰일이다. 추남을 죽이기 전에 열어볼 것을. 때는 이미 늦었다.
그날 밤,
어쩐 일인지 심신이 우울했진 영양왕이 안석에 기대어 나라꼴을 근심하다가 잠깐 졸았던 모양이다.
추남이 온 몸에 피를 흘리며 나타나더니
"상감 마마 ! 억울하옵니다. 이 원수는 꼭 갚고 말겠나이다."
하는 것이 아닌가.
"그대는 복술가 추남이 아니냐, 어이된 일이냐?"
영양왕이 가엾게 여기며 그 사유를 물은즉 추남은 자꾸만 멀어져 간다. 영양왕은 뒤따라 갔다. 추남은 여전히 피를 흘리며 남쪽으로 남쪽으로 날개가 돋은것처럼 훨훨 날아간다.
영양왕도 훨훨 나는 기분으로 한없이 따라갔다. 어느덧 국경을 넘어 신라로 갔다. 진천에 이르러 신라 명장 김서현 집으로 들어간다. 추남은 김 서현의 부인의 몸안에 안긴다. 영양왕은 숨이 차서 따라 들어가지도 못하고 허덕이다가 잠에서 깨어났다.
꿈에서 깬 영양왕은 꿈이 하도 이상하여 견딜 수가 없었다.
이튿날,
조회를 마치고 측근 시종들을 불렀다.
"과인이 알아 볼 일이 있으니 추남을 불러 오너라."
측근 시종은 추남의 집에 갔다 와서 아뢴다.
"상감 마마, 추남은 이미 죽었사옵니다."
"뭣이? 언제 죽었만 말이냐."
"어제 저녁에 죽었다 하옵니다."
영양왕은 어제 저녁에 추남이 죽었다고 하는 시종의 말에 자기가 꾼 꿈과 관련이 있음을 확신했다.
"어떻게 해서 죽었단 말이냐. 자초지종을 숨김없이 아뢰어라."
"예이......"
시종은 대답은 해 놓고 말을 못한다
"무엇을 꾸물거리느냐. 어서 바른대로 아뢰지 못할까."
"상감마마, 아뢰옵기 황공하오나...
역시 말을 잇지 못한다.
"어서 아뢰어라. 어서."
"중전 마마께서......"
"중전이? 음......"
영리한 영양왕은 더 말을 들을 것 없이 알아차렸다.
알아차렸으나 이미 어찌할 도리는 없었다. 떨어진 추남의 목을 영양왕의 절대 권한으로도 붙일 수는 없는 일이다.
생살여탈권이 있다고 해도 산 것을 죽일 수는 있으나 죽은 것을 살릴 수는 없다.
영양왕은 선후책을 강구했다. 추남과 같은 슬깃덩어리가 신라에 태어나서 고구려를 없애려 한다면 실로 난처한 일이 아닌가.
영양왕은 시종에게 가만히 분부한다
"지략이 많고 힘이 센 장한을 은밀히 구해봐라."
그리하여 시종은 고구려 방방곡곡을 돌아다니며 마음에 드는 장정을 구해왔다.
영양왕은 아무도 모르게 그 장정에게 친히 분부했다.
"너는 신라의 언어 풍속을 깊이 연구하여 신라 사람의 행세를 하며 김 서현의 아들을 찾아 내고 그 아이가 영특하거든 무슨 수를 써서라도 없애 버리고 오너라. 성공하고 돌아오면 네 소원대로 상을 주리라."
그 장정은 신라의 언어 풍속을 속속들이 연구하고 중으로 변장하여 신라에 들어가서 계림에서 오는 김 유신을 틀림없이 추남의 후신으로 인정하고 독약을 넣을 과자를 먹이려다가 발각이 나서 도리어 죽고 말았다.
그 소식을 들은 영양왕은 한번 실패는 하였지마는 그 뜻을 굽히지 않았다(과연 추남이 신라 김 서현의 아들로 태어난 것이 틀림없다. 어떻게 해서든지 김 유신을 죽여 없애야 후한이 없을것이다.)
영양왕은 측근 시종을 시켜 또 지략있고 힘센 장한을 구해 오게 했다. 그 장한이 백석이다.
백석의 이야기는 끝났다.
말을 다 듣고난 김 유신은 빼든 청룡검으로 백석의 목을 쳤다.
(내가 고구려 추남의 후신이란 말인가. 추남이 죽은 날과 부모님이 태몽을 꾸신 날이 한날이니 기이하기도 하다. 그렇다면 나는 날 때부터 고구려를 쳐야 하는 운명을 타고 났단 말인가. 내가 추남의 후신이거나 아니거나 그런것을 따져서 무엇 하랴. 어쨌든 신라는 좁다. 이 좁은 신라를 빛내고 넓히려면 도리가 없지 않으냐. 백제도 삼켜야 하지마는 고구려 또한 그대로 둘 수 없다고 마음 속으로 다짐한 김 유신은 다음날 음식을 푸짐히 장만하여, 자기 생명을 구해준 아가씨를 만났던 숲에 가 제사를 지냈다.
그 뒤로도 김 유신은 여러번 위험한 일을 당했으나 그 때마다 신령의 도움으로 무사했으머 끝내 삼국을 통일해냈다.

 

추남과 김유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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