본문 바로가기

IT/옛날 이야기

옛 이야기(고전) - 초립동이 장원

경상도 밀양에 김구겸이란 젊고 패기가 넘친 신임부사가 임명 되어왔다.
그는 어려서부터 예능이 비범한 재질이 있어 일찍부터 세간에 평판이 대단한 자이었다. 19살에 과거에 급제하여 처음으로 배명받은 곳이 바로 밀양 부사 자리였다.
부사는 부임하자마자 백일장을 열겠다는 계획을 각 고을마다 방을 부쳐 널리 알리도록 했다.
그는 이렇게 하여 숨은 인재를 가러대서 새로운 시정을 베풀어 온 나라에 귀감이 될 수 있도록 하고자 하였다.
낡고 잔재주를 부리는 권모술수 또는 부정관리들을 일소하고 새로운 인재를 백일장을 통해 등용시키려고 마음먹었던 것이다.
이런 내용의 방이 나 붙자 세상에 숨어살던 선비들은 속속 밀양 망으로 모여들었다.
이윽고 백일장은 전국에서 뜻있는 선비들로 하여금 인산인해를 이루었다.
해마마 열리는 과거에서 낙방의 고배를 맛보아 온 선비들로부터 애송이 선비에 이르기까지 각양각색의 사람들이 시제를 앞에 놓고서 멋있는 문장을 써내려고 갖은 안간힘을 다하고 있었다. 연신 고개를 갸우뚱하는 사람이 있는가하면 하늘가를 응시하는 사람, 붓끝을 잘강잘강 씹는 사람 등 그 모습도 가지가지다.
이윽고 얼마만에 답안지를 쓴 사람들이 한 둘 만상이 모여들기 시작하더니 퇴장하는 것이 눈에 띠었다.
시험이 끝난 것이다.
신비들이 다 퇴장하고 나서 얼마 안 있자 호명관이 높은 대위에 올라섰다.
드디어 장원이 결정된 것이다.
『장원에. 박세율이요!』
소리높이 불려진 장원의 이름은 모든 사람의 귀에 쟁하고 울렸다.
사람들은 저마다 장원으로 호명된 사람을 찾는 양 고개들을 사방 두리번거렸다.
개중에는 실망의 낫을 짓는 사람도 있었다.
이윽고 많은 사람들이 주시하는 가운데 장원으로 뽑힌 이가 단위로 성큼성큼 올라왔다.
『아니 저럴수가?』
『어럽쇼 저건 꼬마 아니라구?』
『누가 아니래 글쎄?』
저마다 놀라움에 찬 말들이 웅성거림속에 장내에 가득찼다.
그도 그럴 수밖에
장원으로 뽑힌 사람은 이제 불과 열살이 되었을까? 한 코 흘리게 정도의 애숭이였기 때문이다.
호문관을 비롯한 참관들이나 밀양부사마저 이 사실에 어안이 벙벙할 따름이었다.
『혹시 사람이 바뀐게 아닐까?』
이렇게 생각하는 사람도 있을 정도였다. 어쨌든 장원은 결정된 것이다.
곧이어 강원급제를 축하하는 풍악소리가 장내에 울려 퍼졌다.
박세율 소년은 여유만만하게 의젓한 태도로 상을 받았다.
밀양부사는 애숭이 박세율의 시구가 너무나도 명작이어서 도시 믿기지가 않았다.
『장내엔 허구많은 재사들이 붐볐건만 사람에 재주란 알 수 없는 것이로군!』어쨌던 장한 일이로군!』
호문관의 호명소리는 계속되었다.
이윽고 등용의 영광을 차지할 이들의 호명소리도 끝나고 그 절차도 끝났다.
그리고 얼마뒤, 급제자들을 호상하기 위한 연회석이 한참 절정이 도달하였을 지음해서다.
『그런데 사또님!』
호문관이 넌지시 사또에게 말을 건넜다.
『왜 그러느냐?』
『글쎄 저런 조고마한 장원이게도 기생 수청을 들여야 하나요?』
그 호문관은 심히 난처한 낯으로 부사의 눈치를 살폈다.
하긴 부사도 이 소릴 듣자 난처한 표정을 지었다.
자고로 이곳 밀양에는 대대로 내려오는 관습이 있었다.
그것은 다름이 아니라 장원급제를 한사람에겐 그날밤만큼은 관가의 기생으로 하여금 수청을 들게 하여 장원한 사람을 현상하는 풍습이었다.
몇년을 아니 몇십년을 머릴 싸매고 공부한 보람이 있어 어려운 관문을 통과하여 모처럼 그 빛을 보게 되었으나 수고했다는 위로의 처사로 그렇게 하였던 것이다.
부사와 호명관은 그일로 걱정을 하는 길이었다.
『역대를 내려온 관습대로 한다면야 기생 수청을 들게 해야 되겠읍죠만 강원의 나이가 거러니 어찌 할까요 이번만은 없애도록 할까요?』
심히 어려운 문제였다.
만화석이 파하면 관례대로 다음 순서를 서행해야 하는 그런 긴박한 일이 목전에 닥쳐 온 것이다.
한동안 묵묵부답이던 부사가 이윽고 입을 열었다.
『관례를 깰 수는 없는 법! 더구나 장원으로 뽑힌 신분이고 보면 아무리 어리달 찌라도 함부로 대할 수 없는 일이 아니겠느냐?』
『지당한 말씀인줄로 아뢰오』
『또 어리면 어린대로 기생을 다룰 줄 아는 것이 사내 대장부가 아니겠느냐! 그러니 잡담 제하고 관례대로 시행하렸다!』
『예이! 분부대로 거행하오리다!』
이렇게 해서 기생수청 문제가 해결났다. 밀양부사는 이방을 가만히 눈짓해서 불렀다. 그리고는 그의 귓전에 살며시 전했다.
무리가 될지 모르겠지만 통례대로 기생수청을 들게 하였으니 그리 알고 예쁘게 생긴 관기 하나를 뽑아 수청드리도록 하고 그 전에 나를 만나보고 가게 하거라.』
그렇게 이르는 부사의 입가에는 장난스런 웃음이 번졌다.
이방도 그런 부사의 표정을 보고 짐작이 간다는 듯 피식 웃음을 터뜨렸다.
『너 듣거라! 오늘밤 너는 장원급제를 한 사람을 수청드는 영광스러움을 얻었음 즉 그리 알고 보살피는데 소홀함이 없도록 하여라.』
부사는 약수증지연차에 비할가 능수버들모양 잘룩한 허리에 난초 향기를 풍기며 부복한 아릿다운 관기에게 엄포를 놓았다.
『만약이 장원과 더불어 동침을 하였다면 내 후한 상을 내릴 것이며 따라서 그의 애기로 내줄 것이로되 그렇지 못할 시는 중한 벌이 내릴 줄 알아라!』
『황공하여이다 분부대로 하오이다!』
애띠고 아름다운 기생은 부사의 엄한 다짐을 받고 부사 앞을 물러났다.
관기의 이름은 추월이라 하였다.
요염하고도 구름속에서 비치는 달을 연상하리만치 청조하면서도 빼어나게 아름다운 그녀는 어린 나이에 비해 장구, 춤, 시화 등 못하는게 없는 재주꾼이요 밀양의 자랑꺼리이기도 했다.
뿐만 아니라 관기끼리도 미움을 산다던지 시기를 당하는 일 없이 매사를 잘 처리하여 동료간에도 여간 귀여움을 차지하는게 아니었다.
추월은 기생청으로 들어서기가 바쁘게 몸단장을 시작했다.
잘 발육된 나체를 향탕수 섞은 물로 목욕을 한 마음 동료기생들의 도움으로 곱게 곱게 단장하였다.
긴 주란치마를 떨쳐입고 시간이 오길 기다리는 추월이의 몸에서는 짙은 난초냄새가 풍겨 났다.
이윽고 추월이는 동료 기생들의 부축을 받아 장원 급제자가 유하는 관저로 발을 옮겼다.
주위는 쥐 죽은 듯 조용하기만 했다. 바시시 문이 열리자 추월은 사뿐히 방안으로 들어섰다.
수집은 신부모냥 고개를 떨구고 있던 추월은 상머리에 앉은 남자의 버선발을 보자 그 쪽을 향하여 넙죽 큰절을 올렸다.
『소녀 추월 문안드려요!』
『너는 어인 여인인고?』
『네이 소녀는 밀양 부사님 부중에 있는 관기이옵니다!』
『관기?』
소던 박세율은 부르지도 않은 관기가 왜 찾아 왔는지 알 수가 없었다.
그럴 수밖에 없는 것이 박세율은 고작 열살에 지나지 않았다.
『그때 무슨 연유로 나를 찾아 왔는고?』
자꾸 캐묻는 박세율의 말에 추월은 무어라 대꾸를 못하고 귀밑뿌리까지 붉어졌다.
관기 추월은 장원의 나이가 이렇게 어릴줄은 몰랐다.
이미 밀양부사의 함구령이 대려진 후에서야 추월이의 등청이 허용되었던 때문에 장원의 신상이 관해 일체 알지를 못했고 더구나 연회석상이 참석치 않았던 추월이로서는 장원이 장성한 사람으로만 여기고 궁금해 하였을 따름이었다.
방안에 들어섰을 때만 해도 어려워서 고개조차 들지 못했기 때문에 상대방의 인품을 알지못하고 있었는데 어린애 같은 목소리로 왜 아닌 밤중에 찾아 왔느냐고 하니 답변할 말이 없던 것이다.
『누가 보내서 왔느냐? 그렇잖으면 네 스스로 왔느냐』
자꾸 묻는 소리에 살며시 고개를 들은 추월은 장원이라는 애숭이를 보고서는 더욱 답변할 말을 잃고 말았다.
그러고 생각하니 낮에 사또가 자길 불러 다짐하던 말의 뜻을 알 것 같았다 이래거래 일은 난처하게 돼 버렸다. 그렇다고 무작정 앉아 있을 수 만도 없는 노릇이다.
할 수 없게된 추월은 울고 싶은 심정으로 이곳까지 오게 된 연유를 고하지 않을 수 없었다.
어린이에게 수청을 들어야 하는 절차까지 설명 할 수는 없는 노릇이다.
추월은 그런 자신의 신세가 처량했고 사또가 원망스럽기까지 했다.
『허허어 그래? 그렇다면 너무 상심할 필요가 없느니라! 사대비장부가 어찌 가녀린 아녀자의 청을 물리칠까 보냐!』
박세율은 이렇듯 말하면서 민숭민숭한 턱주거리를 쓰다듬으며 안심하라고 했다.
그리고는 보던 책을 덮어놓더니 추월이더러 이불을 깔라고 했다.
이렇게 하여 남녀는 한 이부자리 속에 눕게 되었다.
그런데 박세율은 추월이더러 자꾸만 옛날 이야기를 해말라고 졸랐다.
갑자기 어머니. 품이 생각난 모양이다. 어쨌든 두사람은 밤이 새도록 이야기로 지새다가 새벽녁이야 비로소 남매모양 다정하게 끌어안고 잠이 들었다.
평시 공부에 쫓기던 박세율은 추월이의 품에 안겨 모처럼만의 단잠을 이룰 수 있었다.
다음 날 아침.
눈을 뜬 박세율은 자기 옆자리가 비어 있는 것을 발견하고 얼른 고개를 들어 주위를 살피다가 어느새 일어났는지 옷을 단정히 입고 자기 발치에 고개를 숙이고 앉아 있는 추월을 발견하게 되었다.
『아니 벌써 일어났어?』
『예! 서방님께서 단잠을 깨실 때를 기마리고 있었나이다!』
추월은 밖으로 나가더니 세수물을 떠바쳐 들고 들어 왔다.
그리고 이내 조반상이 들어왔다.
밥을 들고 난 후에도 추월은 나갈 생각을 않고 사뭇 초조한 듯 웃목에서 서성거리고 있었다.
『어째 아직도 무언가 미진한 말이 있는게로구나』
『예…실은…』
『어려워 말고 말해 봐라!』
『사실은 다름이 아니오라 지난밤 저를 이방으로 보내실 때 서방님께서 저에게 정을 두셨다는 정표를 받아오라 하셨사옵니다. 만약 이대로 돌아간다면 사또의 엄한 꾸중을 받겠사옵기에 그러하오니 징표가 될만한 것을 주시어 소인을 곤경에서 건져 내주시옵소서.
추월은 떨어지지 않는 입을 열고 죄없는 박세율에게 정을 나눈 정표를 달라고 했다.
그러나 박세율은
「오 그래? 그게 뭐 그리 어려운 일인가!』
하며 선선히 응했다.
『네 속치마를 꺼내보아라, 내 너에게 줄게 별로 없구나!』
추월은 꼬마가 어쩌려고 속치마는 내놓으라는지 그 뜻을 몰랐으나 안보일수도 없는 처지였다.
꼬마는 속치마끝을 잡더니 벼루에 먹을 묻혀 다음과 같은 글을 썼다.
"창 밖은 삼경인데 봄비는 뿌리고
두 사람의 유정한 마음은 두 사
람밖에 모르는데
아직도 함께 지낸 정이 흡족치
않지만
무정한 새 날은 자꾸 밝아 오는데
정든 님 소매자락 부여잡고 다시
만날 날을 묻는 고야
새까만 먹으로 일필 획지하여 치마폭을 빽 둘러가며 써 주었다.
추월은 백배 치사하며 내청으로 돌아갔다.
이 글을 본 밀양부사는 고만 입을 딱 벌리고 말았다.
『허허어 ! 과연 명필이요 내 일찍 보지 못한 천재로다!』
추월이 밀양부사로부터 후 한상을 탄 것은 말할 것도 없다.
추월은 그 이후부터 연회에 나올 때면 박세율이 적어준 그 시구에 음을 붙여 멋들어지게 노래로 불렀다.
밀양부사는 두 사람의 머리와 남달리 예능이 비상함을 보고 추월이로 하여금 그의 애기로 삼아 예전의 약속을 이행하였을 뿐 아니라 추월은 그 이후부터 박세율의 애뜻한 모습에 연정을 느꼈음은 물론 깊은 짝사랑을 하게 되었다.
이러던 중 추월은 시름시름 앓기까지 하여 부사의 부름에도 참석을 하지 못하니 부사는 이의 연유를 살피고 나서야 그 아름의 곡절을 알아낸 지라 부사는 몸소 추월을 찾아
「내 어찌 너의 병을 모를리 있겠느냐 박세율을 맞나 너의 사연을 전하여 줄 것이니 어서 자리를 털고 일어나도록 해라」
그리하여 박세율은 추월을 자주 찾아다니고 추월은 밤이나 낮이나 박세율의 그림자처럼 따라 다니며 정성을 다하여 보필하였다. 그러던 중 어느해 초여름 박세율이 시름시름 앓기 시작하더니 그만 자리에 눕게되어 백방으로 명의를 물러대어도 백약이 무약으로 약효를 보지 못하는 지라 밤낮으로 눈물로 지새우던 추월은 어느 한 도승을 찾아 연유를 고한바 도승은 말하노니
「이는 필시 그대의 잡다한 원혼이 깃들어 그대가 애모하는 박세율 낭군에게 옮겨 갔음이 분명하도다」
「도사님 이 몸 살을 비고 뼈를 깎아서라도 낭군께서 완쾌 되신다면 쾌히 응하겠아오니 비방을 가르켜주십시요」
「그렇다면 내 말을 잘 들으시요
산수가 정결하고 인적이 없는 곳을 찾아 배일 기도를 바치시요. 마치는 날밤필시 현몽할 꺼요. 현몽에 가르침에 따라 행하면 만사 형통하리다」
도승은 성큼성큼 멀리 사라졌다.
사오일만에 백일 기도 장을 찾아 몸을 정결히 함은 물론 마음을 가마듬고 오직 낭군의 완쾌만을 비는 백일 기도를 마치는 날밤 과연 현몽이 있었다.
「그대는 자고로 뭇 사내득의 흠모를 받았으며 개중 연정을 품은채 그대를 원망하며 죽은 자가 무릇 세명이나 되니 이 이찌 보통지사라 하리 그 원혼들이 박세율에 깃든 것이요 어서 빨리 그 원혼들을 위로 하는 위령제를 지내야 될 것이니 성심 성의껏 행하렸다』
잠에서 깨어난 추월은 눈물을 흘리며 그 순간 그 원혼들에게 사죄하면서 하사하자마자 자기가 가진 모든 재물을 다하여 위령제를 닷세간이나 지냈다.
그러자 박세율은 차츰 원기를 되찾기 시작하였으며 추월은 갖인 정성을 다하여 보살핀 바 있어 박세율은 불과 한달만에 완쾌하게 되니 추월은 눈물로 벼개를 적시며 하늘에 감사를 하였다.
그후 박세율은 조정 대관까지 출세하였고 애기 추월과 같이 오손 도손 아늑한 보금자리를 이룩하여 오래 오래 행복한 세월을 보냈다.

 

 


  옛 이야기(고전) - 길순이의 기적

  옛 이야기(고전) - 도승과 이식

  옛 이야기(고전) - 장사못의 유래 

반응형