본문 바로가기

IT/옛날 이야기

옛 이야기(고전) - 기상바우

반응형

아지랑이 너울너울 춤추는 화창한 봄날이었다. 지금 이름하여 기상바우에 아릿답고 날렵한 몸매에 연분홍 조고리마 홍치마의 여인과 중절 모자를 쓴 중년신사가 기상바우에 오르고 있었다.
여인의 표정은 굳게 굳어있었다.
「옥매야 오늘은 웬일이냐 이렇게 산책을 다하자고 하니‥」
 「·········」
 「오늘따라 너의 옷맵시가 아름답기 이를데 없구나」
 「··················」
 「아-니 무슨 생각을 그렇게 하기에 내말을 못듣고 있지? 옥매야! 나는 이제 죽어도 한이 없다 허허··」
아무 대꾸도 없이 듣고만 있던 옥매 이윽고 조용한 어조로
「사사끼 어른 죽어도 한이 없다 하신 말 정녕 정말이십니까」
 「허허‥·내가 그토록 사랑하는 사람을 내 사람으로 만들었으니 더이상 바랄 것이 무엇이 있겠느냐」
 「············」
한없이 분하고 억울하고 어처구니없는 소리에 옥매는 피가 머리끝까지 치솟는 것 같았다.
「옥매야 이젠 마음놓고 우리는 같이 살아도 된단 말이야 무엇이 부속하냐 돈도 있고 세도도 있으니 염러말아라 멀리가서 아들 딸 놓고 잘 살아 보자구나」
 「············」
이윽고 바위틈 사이로 꼬불꼬불 터 있는 오름길을 따라 그들은 기상바우에 당도했다. 기상바우위에는 희귀하게도 바위틈을 헤처 솟아난 수백년 묵은 느티나무 한 그루가 있고 옆으로 뻗은 큰 가지에 그네가 매여저 있었고, 그들은 말없이 바위에 걸터앉았다. 중절 모자의 사나이는 만면에 희색을 띠우며 담배를 피우기 시작한다. 그는 더 없는 행복감을 느끼고 있었다. 그토록 애를 쓴 나머지 방법이야 어떻든 아릿다운 아가씨를 손아귀에 넣었다는 쾌감에 만끽하고 있는 참이고 한편 옥매는 침통한 표정에 슬음을 못이겨 이윽고 어깨를 들먹이면서 슬피 흐느끼기 시작했다. 멋모르고 행복에 찬 사사끼는 콧노래까지 부르고 있다가 제풀에 멋적었던지
「옥매야! 오늘따라 날씨가 참으로 좋구나···술이라도 한잔했으면 금상첨화인 것을‥」
 「········」,
「아니… 옥매야 왜 그러느냐 울고 있지 않으냐」
 「·········」
 「하하 옥매의 눈물을 보니 더욱 사랑스럽기만 하구나 자 눈물을 거두고 이야기나 할까」
사사끼는 옥매의 옆에 바싹 다가 앉아 음흉한 눈길을 던진다. 잠자코 있던 옥매의 태도가 변하고 미소까지 머그므며 몸을 그자에게 돌리면서
「저- 어르신네 날이 정말 좋군요」
 「응···좋고 말고 이처럼 좋은 날씨는요 처음 처음이다.」
 「오랫만에 그네가 타고 싶사옵니다.」
 「오- 그래 같이 타자구나 난 그네를 좋아하지 않으나 옥매와 같이라면 하루종일이라도 타겠다.」
 「호호··그러세요 그럼 타사이다.」
이리하여 그들은 그네곁으로 서서히 닥아 갔다. 옥매는 무엇에 짓눌린듯 발걸음이 좀처럼 떨어지지 않음을 자신도 느낀다. 이것이 인생의 최후의 순간, 최후의 발걸음이라는 것을 생가할 때 옥매의 눈에서는 한없는 눈물이 쏟아진다.(이젠 이러고 있을 때가 아니다. 수많은 밤을 지새우며 그 얼마나 벼개머리를 적셨드란 말이냐 나의 갈 길은 이미 정하여진 것이 아난가 더렵혀진 이 내몸 그 무엇을 바랄것이 있겠는가, 그 무엇에 미련을 들것인가, 나는 오로지 죽엄으로까지 몰아 넣은 짐승같은 놈을 죽이는 일 밖에 없다는 것을 이를 갈며 결심을 다짐하는 것이었다) 어느 사이에 그 사내는 이미 그네에 걸터앉아서
「아-니 뭣해 빨리 오라고 옥매야-」
 「네, 네 」
소스라치게 놀란 옥매는 사뿐 사뿐 그네에 닥아갔다. 그리고 그의 부축으로 그네에 올랐다.
치-솟은 바위 벼랑 아래 푸른 강물위에 뱃노리를 하는 사람들이 눈에 띄였다. 아른아른 현기증이 일기 시작한다. 정신을 바싹 가마듬은 옥매는
「어르신네, 그네줄을 잡은 양쪽 제손을 덮처서 꼭 잡으셔야 합니다.」
 「오- 그래 그래 참으로 옥매의 손길이 이처럼 보드러운 것은 미쳐 몰랐구나 허허··」
옥매는 그네를 슬슬 굴르기 시작했다. 황천으로의 길문에 들어선 것이다. 그토록 맑게 보였던 하늘이 노랗게 색이 변한 것 같고, 자꾸만 현기증이 심하여지는 것 같았다. 옥매는 눈을 크게 떠보니 현기증이 좀 가시는 것 같다.
음흉하고 잔인한 사사끼란 놈은 지금천당이라도 가는둣 눈을 지긋이 감고 콧노래를 부르며 흔들흔들 하고 앉아있는 것이 아닌가.
 (도진씨 마지막 인사를 드립니다. 이내 몸 죽엄으로서 당신에게 사죄합니다. 제발 저를 용서하시고 내내 행복하시길 빌며…)
세상에서는 마지막으로 사랑하는 사람에게 작별 인사를 한 옥매 ! 그네를 힘차게 굴러네렸다. 앞으로 뒤로 또 앞으로 뒤로 온힘을 다하여 힘차게 힘차게 하늘로 치솟듯 굴러데였다. 바로 그순간이다.
「이놈아···」「윽-윽-」
외마디 절규가 병풍처럼 깎아 세운 듯한 절벽을 타고 메아리쳤고 연분흥 다홍색의 한 떨기 꽃송이가- 낙하하여 한많은 한을 남긴체 영원히 타계하는 순간이었다. 옥매의 양손 위를덮쳐 잡었던 사사끼는 옥매의 돌발적인 격돌에 속수무책으로 황천길을 가지 않으면 안되었던 것이다.
「첨병···처…침벙‥·」
물기둥이 인다음 조용 조용히 멀리 원을 그리며 살아져 갔다. 오가는 갈마구 떼가 까-ㄱ까-ㄱ 울며 옥매의 죽음을 술퍼 하듯 하늘을 맴돌고는 멀러 살아져간다.
그후부터 그 절벽을 기생이 떨어져 죽었다해서 "기상바우"또는 낙화라 일컬었고 그 푸른 강물을 짐승계라 이름하고 있다.

때는 1930년 충청도 남역 역말에 전에 없이 우마차가 헤아릴 수 없이 들락날락 하였다. .
「여보게 무슨 일이 있을련가 왜 저렇게 달구지머 못보던 사람들이 많이 모여 드는가」
 「허 그것도 모르오 큰 공사를 한다구요」
 「큰 공사라니 ‥」
 「글쎄 올시다요, 무슨 공산지는 몰라도 한양에서도 오구요 경상도에서도 사람들이 온데요」
 「아니 이곳엔 사람이 없어서 객지에서 사람을 데려온다는건가 젠장」
아무튼 수십일이 지나도 그저 객지사람들만 자꾸만 모여들기만 하고 무슨 공사를 할 것인지를 모르고 있었다. 그것은 다름아닌 역말 고을 주변에 대규모 제방공사를 시작하게 된 것이다.
그리하여 총독부에서 총감독관이 파견되는가 하면 경상도 전라도에서도 기술자를 비롯해서 많은 사람들이 일자리를 찾아 모여들었던 것이다. 그러니 역맡 고을의 주막은 물론 매일 장날이 아닐수 없었다. 그 북새통 속에서도 철새처럼 날아든 주모들은 속속 집들을 세내어 개업을 서둘렀고 따라서 뉘집에 질세라 이쁜 기생들을 데려다 놓기에 분주했다.
그 중에도 역말 고을 궁실지에 아늑하게 자리 잡은 실천댁은 실천관이라는 요리집을 차렷다. 갓 삼십에 얼굴이 반반한데다가 옷맵시가 좋고 눈웃음을 살살 잘치는 제법 뭇사내들을 홀릴줄 아는 수단있는 여편네였다.
늘어지게 낮잠을 자고난 실천댁 입이 째저라고 하품을 하고
「애! 마당쇠야! 무얼하고 있어 빨리 집안밖을 말끔히 안 쓸고‥」
찌끼저저라고 고함을 한바탕치니
「예-이 벌써 말끔히 쓸었나이다」
 「옥매야! 실죽아! 다들 빨리 화장들 안하고 무엇들하냐!」
또 한바탕 고함을 치고는 담배를 피워 문다.
8월에 한더위였으나 해거름판이 되어 시윈한 바람이 일기 시작했다.
앞 마당가에 수양버들이 바람이 흐늘거리고 뒷마당 큰 미루나무는 제법 바람소리를 내고 쌔롱 매미가 요란하게 울어댄다.
「여 봐라 게 없느냐」
대문 앞에서 호령하는 소리였다.
「네이 어서오십시요 도령님네들」
 「아니 다들 어디 갔기에. 마당쇠가 우리를 맞느냐」
 「아, 아니올시다요‥」
바로 그때 버선발로 달려온 설천댁「아휴! 도령님들 어서오세요 어서어서 오르셔요 더우신데 세수도 하시고 말도 씻으시고 웃옷도 벗으세요」
호들갑을 떠니 벌써 마당쇠는 서녀개의 세수대야에 시원한 우물물을 떠다 대령하였고 앞 뒤마당이 시원히 물린 대청마루엔 빠르기도 하게 요리상이 차려져 나왔다.
기생 다섯이 차례로 인사를 올리고 자기 손님곁에 앉는다.
「자- 그런데 손님은 여섯인데 기생은 다섯이라 누가 양보해야겠는데‥·」
 「응 ! 그럼 내가 양보하지 나는 원래 여복이 없는 사람이니까 말이야 하하‥」
이럴지음 또한 기생이 다소곳이 인사를 올리고 자리를 찾아가려고 머뭇거리니 왁작찌껄 하던 좌석이 물을 끼얹은 듯 조용해 졌다.
그것도 그럴것이 아래위 휜 모시 차마 저고리를 입은 아릿다운 자태의 보기드문 미색을 지닌 여자였기 때문이다.
「자, 자 옥매라고 했지! 이리로와」비여있는 지리로 가서 앉은 옥매,
그 옆에는 처음에 양보하겠다던 강도진이라는 자가 앉아 있었다.
이윽고 좌석이 무르익고 좌중이 떠들썩하게 되었을 지음
「자! 여러분 조용 조용 오늘 내가 여러분을 초청한 젓은 다름아니라 정도식군의 영예로운 전문학교 졸업을 축하하는 축하연이니 마음껏 즐겨주기 바라는 바입니다」
짤막한 인사말에 이어 좌중은 흥겹게 울려갔다.
축하면에 모인 사람들은 다름아닌 장도식의 고향 친구들이었다. 이 친구 저 친구의 술잔을 매작하고는 있으나 처음부터 첫눈에 반해버린 옥매에게서 시선을 떼지 않고 있는 장도식이었다
 옥매 또한 슬금슬금 훔쳐볼때 시선이 마주쳐 얼굴을 붉히고 앉아 있으니 옆사람들이 더욱 놀리는 터였다.
「옥매는 참으로 좋은 꿈을 꾼 모양이야 첫 상봉에 좋은 서방님을 찾이했으니 말이야 하하··」
 「으-흠 천생연분이야 옥매의 미색이 도식군을 홀렸을뿐 아니라 옥매 도 정도식군의 남아다운 기풍에 매려되었단 말일세…하하하」
 「이쫌되었으니 당장 여기서 신랑신부 재배함이 어떨고···하하」
집이 떠나가라고 법석을 떨었다. 장도식. 그는 역말 맞은편 음지객골이라는 마을에 사는 부자집 아들이다. 천석군 집이며 일찍이 아버지를 여위였으니 가세와 가풍은 옛이나 다름없이 위세 당당한 집안이었다
 그날부터 그는 옥매 생각에 잠을 설치는 밤이 허다하였으며 친구들이 자주 찾아와서 옥매집에 갈 것을 권유하기가 일수라 매일 술을 마셔야할 판이었다.
집안 사람들이 흉보기를 시작했고 동네 사람들을 만나서 말을 건네도 피식웃어데고 하는 것이다. 이유야 뻔한 사실이다. 많은 돈을 처드려 가지고 전문학교까자 나왔다는 자가 고향에 돌아와서 고작하는 짓이 기생에게 미쳐 완전히 폐인이 되었다는 것이다.
「여-보게 저기 저기 좀 보라고」「도식이 말인가…」
도식이 고개를 떨군채 논뚝 길을 걷고 있는 모습을 가리키며 쑥덕대는 것이다.
「저렇게 사람이 변할 수 있을가 내 알기에는 공부만 열심히 해서 고등관이 곧 된다는 말을 들었는데···쯧쯧‥」「저승에 가신 강 대감이 얼마나 분노하실까」
 「저기경이니 계집 둘만 흘긴다면 논밭 마 팔아먹고 폐가망신 하겠는걸」이토록 어처구니 없는 말이 마을에 확 퍼지게 되었으니 도식은 참으로 기가 막히고 창피해서 집밖을 못 나갈 지경이 되었다. 제나름디로 근신한답시고 십여일 동안 두문 불출하고 그 대신에 타오르는 연정을 만리장성으로 글을 써서 은밀히 하인 녀석을 시켜 옥매에게 전하도록 하고 또한 옥매의 답서를 받아오도록 매일 십여일 동안 계속하던 어느날 하인 녀석이 칠칠치 아니하여 옥에게 갖어가는 서장을 동네 길바닥에 흘려 버렸으니 흉보기 좋아하는 동네 것들이 온통 디 사람들을 불러놓고 그 서장의 사연을 낭독하며 법석을 떨어 놓았으니 이젠 더 이상 머무룰 수 없는 처지가 된 도식이었다. 수삼일을 두고 생각한 나머지 도식은 옥매를 찾았다.
「어서 오셔요 도령님」
질겁을 하며 반겨맞는 옥매었다.
「···········」
 「어인일이 옵니까 이렇게 일찍이…그리고 그간··」
 「응 다름아니라 옥매에게 긴히 할말이 있어왔다」
 「무슨 말씀이시온지‥·」
고개를 다소곳이 숙인채 마주앉아 있는 모습을 뚜러지게 드려다 보니 참으로 아름답기가 이룰데 없다. 마치 여운간지 명월이요 약수궁지 연화(여운간지명월, 야수중지련화)이 렸다. (구름사이에 비치는 밝은 달이 연못속에 핀 한송이의 연꽃과 같다)
「옥매야! 이토록 나의 마음을 겉잡을 수 없음은 이전에는 느껴보지 못하였어」
 「도령님‥·」
 「그러나 옥매도 잘 알다싶이 이 고을에서는 벌써 소문이 자자하게 퍼져서 평양에서 공부하고 왔바는 것이 기생 홀리는 공부를 하고 왔다고 말이야」
 「그러고 매일 술만 마시는 폐인이라고···」
 「도령님 용서하십시오-, 불초한 저로 인해 도령님꼐서 욕을 당하시다니‥」
 「그래서 나는 이렇게 결심을 했다. 그 누가 뭐라해도 옥매에 대한 사랑을 끊을수가 없는지라 내가 먼저 한양에 가서 자리를 잡고 이내 옥매를 데려가기로 했다」
 「도령님···도령님에 대한 사모하는 정 그 무엇에 비추으러까마는 저와 같이 미천한 몸이 감히 어떻게 따르겠아옵니까 홀로 간직한채 살아가오리다‥」
 「무슨 맡을 해도 내 귀에는 안들린다 두서너달 후 한양으로 올라가서 우리들의 살 집을 마련하고 곧 옥매를 데리러 내려 올 것이니 아무 생각 말고 그날을 기다려 주오」
 「도령님‥·하늘을 두고 도령님의 뜻을 저버리지 않겠나이다‥·」
 「도령님 자 이 한잔 드시고 주무셔요 벌써 삼경이 지난듯 합니다」
이리하여 못내 그리워하던 그들은 휘영청 밝은 탈을 처다보며 서로의 맹세를 굳게 하였고 영원토록 검은머리 파뿌리가 되도록 정답게 살자하고 첫날밤을 지새웠다.
옥매에게는 그 두 서너달이 아쉽기도 하고 지루하기도 했다. 어서 빨리 도령님이 한양에 가셔서 아담한 집을 마련하고 자기를 데려가는 날이 기다려졌기 때문이다. 도식은 한양으로 가기까지 이젠 동네 소문은 아랑곳없이 매일 같이 옥매를 찾아가서 순정의 꽃을 피우고 한없이 행복한 나날을 보내기 어언 두달이 지나고 굳은 언약을 남기고 도식은 한양으로 올라갔다.
이후 옥매의 기다림을 그 무엇에 비하리요 일각이 여삼추라 오매간에 장도령을 연모하고 그리움에 몸부림치기 어느 듯 반년이나 지났으나 그토록 철석같이 맹세를 한 도령은 편지 한장 없었으니 옥매의 애간장은 마를데로 마른 남어지 안색이 파리해 지고 침식을 거르게되니 몸이 많이 쇠약해 이젠 손님접대도 힘겨워질 정도가 되였다.
「옥매야! 이리 좀 오너라」
담배를 꼰아문 주모의 부름이다.
「쓸게빠진 인간아 사네놈은 다 마찬가지다. 단물은 다 빨아먹고 내동이친단 말이다」
 「....」
 「글쎄 니 몰골이 그게뭐냐 한참 꽃필 나이에 그렇게 여위고 힘을 못차리니 말이여··」
 「.......」
 「다 일장춘뭉으로 돌리고 내 말을 잘들어라 그래야 니가 살아난다」
 「........」
 「다름아니고 한양에서 온 공사 총감독 아니 십창매장 말이여, 그 사람 말만 잘 들어 라」
 「무슨 말씀이신지요‥」
 「아이고 이 뚜기야 그 사사끼씨는 돈도 많고 권세도 있고 그리고 너를 이쁘다고 칭찬을 많이 하더라···」
능청맞은 주모 슬쩍 옥매의 눈치를 살핀다 한편 옥매도 아 주모가 무슨 속셈으로 수작을 하는지를 대략 눈치챘다.
「저는 죽는 한이 있더라도 한양 도령님을 잊을 수가 없아와요 일면단심 수절을 할 맹세가 되었아옵니다‥」단도직입적으로 수작을 걷어치우라는듯 일침을 놓으니
「아-니 저것이 뭐시 어쩌고 어째 지를 이도록 키우고 꾸미고 살러놓으니 이젠 안하무인격이여 올챙이 시절을 다 꾸어 먹었냐」
 「·········」
 「나도 니처럼 속 먹은 마음 뱉아 볼까 참지 참어 한 살이라도 내가 더 먹은것이 참여야지··」
주모도 머리가 핑 돈 것이다. 이렇게 서뿔리 다루마간다 된밥에 재뿌리는 격이 될 것 같았다.
「사실은 옥매야! 오늘 그 십장대장 사사끼 어른이 온다고 했다. 그러니 목을 빼고 앉아만 있지 맡고 얼른 화장도 하고 옷도 갈아입어라 알았지」이렇게 살살 달래어 놓는다.
 (음···저것이 뭐 ! 일편단심 두고보라고···)
「이리 오너라」
이윽고 그자가 온 것이다. 중절모자를 쓰고 금테안경에 단장을 짚고 검은 가죽구두에다 뻐길데로 뻐겼다.
「사사끼 어른 귀좀··」
무엇인가 주모는 그자와 속삭였다.
「됐어!됐어···실천댁 이젠 훌륭한 광대야·‥하하」
밤이 어느듯 깊어만 갔다.
옥매와 단둘이서 초저녁부터 술상을 받고 있는 십장대장
「옥매야! 이제까지 내가 팔도강산을 다녔어도 너처럼 이쁜 기생은 처음 보았다 이리 가까이 오너라··」
손을 내미니 옥매는 슬슬 위로꽁무니를 빼니 이젠 자리에서 일어나 옥매를 불끈 안아서 자기 무릅위에 앉히는 것이다.
「뭐든지 말해라 옥매가 좋아하는 것은 다 사줄 것이니 응 말해」
 「···」
 「아니···내 말이 믿어지지 않는 모양이구나 그럼 우선 이것을 받아라」
호주머니에서 준비해 온 황금반지를 꺼내 옥매의 손가락에 끼워구니 옥매는 한사코 빼어내어 방바닥에 놓으니 살며시 화가 난 그는 언성을 조금 높여
「옥매야! 나의 성의를 이토록 저바리다니 나는 처음 겪는 일이로다. 기분이 좋치 않구나」
 「어르신네요 소인이 어찌 어르신네의 뜻을 저바리겠읍니까 소인은 오로지 어르신네를 주안상 앞에서 극진히 모실 따름입니다」
회색이 만면해진 금테 안경의 그자는 옥매의 말뜻을 잘못 알아 채린탓일가
「하하···그렇지 옥매가 그럴리가 없었지 자 내술 한잔 받아라」
그럴지음 주모의 입실이라
「어르신네요 아무리 옥매가 세상에서 둘도없는 미녀라고 저를 본채만채하십니까 투기가 나서 못살겠읍니다요···」 교태를 부리는 것이다.
「허허허···쓸데없는 소리 자자 이 술한잔 받아라」
 「아니올씁니다. 어르신네 드릴려고 특별히 담근 술을 갖어 왔아오니 이걸 먼저 드사이다」
그러면서 눈짓을 하고 옥매의 눈치를 살피면서 술을 따라 주고는 나가 버린다. 그자는 술을 마시는 척하고 잔을 비우고 옥매에게 이 특주를 마시기를 억지억지로 권하여 이윽고 받아 마신 옥매 잠시후 스르르 눈을. 감고 그 자의가슴에 기대여 깊은 잠에 빠져버렸다.

얼마나 시간이 흘렀는지도 모른다. 목이 타는 듯하여 잠에서 깨서난 옥매는 소스라치게 놀라지 않을 수가 없었으니 자기의 몸은 실오라기 하나 걸쳐지지 않었음은 물론 몸을 가눌 수가 없으리 만큼 날진 상태였으며 옆에는 금테안경을 쓴 그자가 멀건히 자기를 드려다 보고 있지를 않은가 다시 정신이 희미하여 지고 옥매는 자는지 실신한지 눈을 감어버린다.
그후 설천댁은 전에없이 손님이 흥청거리기 시작했다. 실천댁과 사사끼의 약속이 이행되었든 것이다.
공사장의 밥이며 술이며 전부를 해네게 되여 설천댁은 희희낙낙하여 어쩔줄을 모르고 그자는 아예 실천댁으로 거처를 옮겨 쑤-드러간 방을 하나 차지 했다.
이렇게 되니 옥매의 일거임동을 눈지켜 볼뿐 아니라 옥매는 아예 손님을 받지 못하게 하고 자기 방에 항상 가두다싶이 했으니 옥매는 속수무책으로 눈물만 흘리며 세월을 보내야만 했을 어느날 한양에서 왔다는 손님이 옥매를 찾게 되니 주모는 말하기를 한 달포전에 어디론가 가버렸다고 말하니
「다름이 아니오라 전할 말이 있어 왔는데 옥매가 없다하니 그냥 돌아갈 수밖에 없구려」
 「저- 손님 무슨 말씀이시온지요, 혹시나 옥매의 소식이 있으면 전하여주리다」
 「그렀읍니까? 저 장도식씨를 아시겠지요 그양반이 내달초에 옥매를 데리러 오겠다는 전갈입니다 마는…」그러고 가니 실천댁은 걱정이었다. 자기와 사사끼가 짜고 옥매를 저지경을 만들어 놓았으니 말이다.
한편 옥매는 항상 자기를 불쌍히 여겨주는 마당쇠이게 주모의 수작을 낱낱이 고해 들었으니 피를 토하고 죽고만 싶은 것이나, 나의 소망과 인생전부를 짓밟아 버린 악마같은 놈, 그놈을 그냥 둘 수 없다고 결심하고 기회를 보아 하루 빨리 한을 풀어 볼 것이라는 비장한 각오를 하게 되였으나 밤마다 꿈에 나타나 자기를 찾아주는 장 도령이 그리워 끝장을 볼 각오가 자꾸만 흐려지는 것이었다.
그러나 날이 갈수록 늑대와 같은 그자의 만행이 몸서리쳐졌으며 따라서 장도령에 대한 죄책감에 견딜 수가 없게 되었다. 이렇게 전생을 살아서 무엇하리 하물며 죽도록 사랑하는 사람의 뜻을 저바리고 만신창이 되여 버린 이 몸둥아리·‥···보름후면 나를 찾아올 도령님을 무슨 낯으로 대할 것인가 하염없이 울고 울어 벼개를 적신 것이 그 얼마나 되었을까 육신은 죽어 없어져도 영혼은 길이길이 살아서 구천에서나 도령님을 맞나 이 사모한 정을 나누리다·‥···. 슬피 우는 옥매였다.
그리하여 어느 화창한 날을 택하여 사사끼를 교여 산책을 나가게 되었으니 역말 뒷동산을넘여어 서실 골짜기를 힘없이 걸어가메 옮기는 걸음걸음마다 눈물이 흘렀으며 고개를 들어 조금 후면 하직할 세상을 부럽게 초점없이 바라보곤 했다.
바람결에 휘날리는 꽃잎도 고운소리를 내며 우는 산새소리도 이젠 하직이라는 생각을 하니 눈물이 앞을 가려 발걸음을 옮길 수가 없다. 또한 일찍히 여윈 부모님의 환상이 눈앞에 나타난다. "어머니''하고 소리쳐 불러보러 했으나 목이 막혀 소리가 나질 않는다.
마지막으로 불러보고 싶은 도령님 그렇게도 구곡간장 육천매디에 사모친 사랑하는 도령님 이젠 모두가 끝나려 합니다. 이렇게 흐느끼며 몇시간을 걸어어서 산골짜기를 빠져나와 기상바우에 올랐던 옥매는 천추에 원한을 풀기 위해 늑대마 같은 그자를 그네에 태운 나머지 떠밀어 같이 푸른 강물에 투신 자살을 하게 되였던 것이다.
한편 옥매가 죽은지 십여일이 지나 한양에서 옥매를 데리러 온 장도령 이 청천벽력같은 비보에 그 비통함이야 이루말 할 수 있으리 허겁지겁 기상바우에 오른 도령은 넋을 잃고 푸른 강물만을 드려다 보았으나 옥매의 모습은 보이질 않았을 것이었고 가지고 은 도끼로 그네줄을 매었던 느티나무를 정신없이 찍어 넘어트리고 말었으니 도끼의 메아리는 아마도 저승에 간 옥매에게도 메아리쳐 번져 갔을 것이다.
또한 장도식은 추악한 실천관에 불을 싸질러 버리고 어디론가 멀리 행적을 감추고 말았으며 찍어 넘어트린 느티나무 뿌리에서 다시 가지가 솟아나 지금도 굳게 자라 큰나무가 되여 있으니 이는 필시 옥매의 송곳같은 일편단심을 표방함이라 하고 푸른 강물을 "짐승계"라고 하는데 매년 사네 녀석 하나씩 빠져 죽으니 이는 필시 옥매의 원한이 맺었음인 즉, 역말에서는 봄마다 옥매의 원혼을 위로하기 위하여 제사도 지냈다는 것이었으나 그것도 기이한 것이 "짐승계'에 빠져죽는 사내놈은 틀림없이 객지놈이라는 것이다.
그리하여 사람이 자주 빠져 죽으매 방을 내걸어 "짐승계"에서 미역감는 것을 제지하기도 했다.

 


  옛 이야기(고전) - 처녀의 원혼

  옛 이야기(고전) - 초립동이 장원

  옛 이야기(고전) - 길순이의 기적 

반응형