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IT/옛날 이야기

옛 이야기(고전) - 아랑낭자의 영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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앞이 확트인 영남루 언덕위에서 쳐다보는 초생달의 아련함이 아랑 낭자는 심호흡을 하고 섰다. 강을 타고 대나무 사이로 불어오는 산들바람과 함께 4월의 초생달 빛이 교교히 그녀의 피부에 와 닿고 있었으며 달빛의 아름다움을 이렇게 실감할 수 있었던 것은 벌써 여러해 전의 일인 것만 같다.
초저녁 무렵 유모가 느닷없이 영남루에 달구경 가자고 꾈 때만해도 한가위도 아닌데 달은 무슨 달구경이냐고 별로 내키지 않는 걸음으로 따라왔는데 달을 본 순간 그녀는 잘 왔다고 희열같은 것을 느끼는 것이다.
강 건너 절이서는 초파일 연등제 준비가 한창인 듯 횃불이 환하게 타오르고있는 것 말고는 온 주위가 적막이 싸여 있기만 하다.
요즘처럼 울적한 나날은 이처럼 초생달빛이 차라리 적격이겠다고 아랑낭자는 생각하던 참이다.
벌써 수십군데서 청혼이 들어왔으나 아버지 밀양부사는 웬지 그때마마 번번히 중매장이를 되돌려 보내기가 일쑤였다는 사실도 이미 유모로부터 들어 익히 잘 알고 있는 터였지만 과년한 딸의 입장을 조금도 생각치 않는 아버지의 태도가 서운하기만 했다.
아랑은 밀양부사의 무남독녀로 화용월태, 단순호치 뛰어난 용모에 비단결 같은 마음씨며, 타고난 재질은 신사임당을 버금할 정도라 부모들은 아랑을 금이야 옥이야 애지중지하는 터여서 사위감을 고르는데 애를 쓰는 것도 사실은 무리가 아니었다.
아랑낭자의 명성은 밀양고을은 물론 경상도 일원에 퍼져 양반집 자제들은 너나없이 아랑낭자에게 장가들기 위해 매파를 내세우고 있는 터였다.
『아씨 뭘 그리 생각하고 계셔요?』생각에 잠겼던 아랑낭자는 유모의 소리에 비로소 제정신으로 들아왔다.
『보름달도 아니고 초생달을 쳐다보시니까 심란하신 모양이지요. 그렇지만 너무 걱정하실건 없으셔요. 어르신네들께서 어련히 좋은 신랑감을 구해 주실려구요』
 『아이 유모도…‥」
의표를 찌르는 유모의 말에 아랑낭자는 몸들 곳을 몰라했다.
『이런 달밤, 어느 세도 있는 양반댁 도련님께서 마음씨 좋고 이렇게 인물고운 우리 아랑낭자를 찾아 초동을 앞세우시고 행여 이쪽으로 오시지나 않는지. 고요한 이밤, 우리 아랑낭자의 속을 태우그 있는 도련님은 뉘댁 도련님일까』
 『이아 유모도 점점··』
유모의 놀리는 말이 싫지는 않으면서 오늘따라 유난히 말이 많은 유모가 밉기까지 했고 안스러워지는 자신의 감정까지 얽혀 아랑낭자는 더욱 기분이 착잡해졌다.
『아씨, 잠깐만 기다려주셔요. 소피 좀 보고 오겠읍니다』
호들갑을 떨던 유모가 귀찮게 여겨지던 아랑은 우선 혼자서 있을 수 있겠다는 생각에서 마음이 가벼워졌다.
『그럼 얼른 갔다오우』
대나무 숲 사이로 사라지는 유모의 뒷모습을 바라보던 아랑낭자는 누각위로 올라갔다. 누각에서 바라보는 달은 한층 더 정감이 있으리라는 생각에서다.
누각이 오른 낭자는 픽 웃음이 나왔다. 조금전 유모의 말이 생각나서다. 세도있는 앙반집 도련님보다는 낭자 자신에겐 마음씨 착하고 똑똑한 도령이면 신랑감으로서 더 좋겠다는 생각이 떠올랐기 때문이다.
소피보러 간다는 사람이 왜 이리 늦을까 생각하는 순간 등뒤에서 인기척이 났다. 유모의 장난이려니 하고 돌아서는 순간 험상궂은 사나이가 다가오고 있지 않은가.
아뿔사, 인 밤중에 웬 사람인가. 아랑낭자는 그만 간이 떨어지는 것 같았다.
『어머 누구셔요』
괴한은 아랑낭자의 물음따윈 전혀 개의치 않고 더욱 다가섰다.
『아씨 귀신은 아니니 그렇게 놀라실건 없소』
입가엔 소름끼치는 웃음까지 짓고 있었다.
뜻밖에 밤중에. 그것도 인적드문 곳에서 외간남자를 대한 아랑낭자인지라 당황하기도 했지만 사나이의 징그러운 웃음에 떨리기까지 했다.
『유모! 젖엄마! 어서 빨리좀 와요』
유모를 부르는 아랑낭자의 목소리는 겁에 질려 차라리 울음소리 같았으나 어찌된 영문인지 유모는 나타날줄 모른다.
『쿼 그렇게 서둘건 없어요. 유모는 오지 않을데니 불러봐야 쓸데없어요』
 『그렇다면 유모를‥』
 『내가 유모를 어떻게 했다는게 아니라 오늘 이렇게 자리를 만들어 준 것부터가 유모의 덕입니다. 허허』
아랑낭자는 사나이가 무엇을 말하고 있는지 도무지 알 수가 없었다.
『아씨, 이 사람은 늘 이렇게 한번 아씨를 뵙기가 소원이었오. 그러나 천한 몸이라 감히 아씨를 가까이에서 뵐수가 있어야지요. 이놈은 자나깨나 아씨생각에 하루를 마음편히 보낸 날이 없었오』
 『당신은 대체 무얼하는 누구요. 남녀가 유별한데 어서 다른데로 가지않고 이게 무슨 무례한 짓이예요』
아랑낭자의 목소리는 맹수 앞에 떨고있는 토끼의 울음소리 같았다.
『소생은 이 고을의 관노올습니다만 우연한 기회에 아씨의 옆모습을 한번 뵌후 그만 사모하게되었요』
 『빨리 저리 비켜나요. 젖엄마, 어서 이리와줘요』
 『유모는 불러봐야 별수 없을테니 떠들진 마시요. 소생은 하잘것 없는 관노요, 아씨는 부사의 무남독녀라 감히 어떻게 해볼수가 있어야지요. 이런 사정은 친구한테도 털어놓을 수 없고…아무리 생가해도 무슨 수를 써야하겠기에 돈을 구해 유모를 꾀었오』
아랑낭자는 사나이의 말을 듣고 보니 오늘따라 유난히 호들갑을 떨던 유모가 생가났다.
 (세상에 이럴수가…)
그러고 보니 사나이의 말이 전혀 거짓말은 아닌것 같았다.
『기왕지사 일이 이쯤됐는데, 꽃본 나비가 그대로 돌아갈 수는 없는 일이아니겠읍니까. 이것도 하늘이 정하신 연분인가 봅니다. 그러니 너무 그리 쌀쌀하게 굴진마시오』
다가선 사나이는 아랑낭자의 예쁜 손을 덥석 잡았다.
『에그 망측해라. 이놈이』
아랑낭자는 화를 내며 사나이에게 잡힌 손을 뿌리치려고 했으나 원체 힘이 모자라고 보니 쉽게 손을 빼낼 수도 없는 형편이었다.
『이손 놓지못해. 이 놈아, 거기 아무도 없어요, 사람 살려요』
아랑낭자는 사나이의 얼굴에 침을 뱉으면서 극기로 기를 쓰고 온 힘을 다해보았지만 점점 힘이 빠져갔다. 와닿는 사나이의 가슴이며, 손이며, 대는대로 물어 뜸었고 손으로는 사나이를 할키며 죽을 힘을 다해 맞섰다. 오직 이 순간을 벗어나 도망쳐야 셌다는 생각뿐이었다.
아녀자이긴 하나 사력을 마하는데는 어쩔 수 없었던지 사나이는 화가 머리끝까지 치솟았다.
『이년이 곱게 대해주니 나를 물어』악착같은 아랑낭자의 반항에 기가 눌린 사나이는 욕정을 풀지 못하자 품속에서 비수를 꺼냈다. 달밤 섬광을 번쩍인 비수는 무참히도 아랑낭자의 복부속으로 조여드는 것이었다.
사나이는 아랑낭자를 죽인 것이다. 아랑낭자의 시체를 대나무 숲 속으로 내던진 사나이는 힐끔힐끔 뒤들아 보여 어둠을 타고 도망쳐 버렸다.
이튿날 고을은 발칵 뒤집혔다. 부사의 무남독녀가 하룻밤 사이에 행방불명됐다하여 온 고을의 사람들이 동원되어 아랑낭자를 찾아보았지만 죽은 아랑낭자가 결코 살아서 돌아올 수는 없었다.
애지중지 키운 아랑을 잃은 부사부부의 슬픔도 슬픔이려니와 아랑낭자를 사모하던 인근고을 총각들의 가슴도 애타게 만들어 주었다.
부사부부는 아랑낭자를 찾기 위해 굿을 한다 점을 친다 온갖 방법을 다 써보았으나 아랑의 뒷소식은 알 길이 없었다.
눈물로 세월을 보내는 부사의 소식은 멀리 조정에까지 알려진바 되어 조정에서는 부사의 슬픔을 덜어주기 위해 부사를 다른 곳으로 부임게했다.
딸의 일을 잊기 위해서 한시바삐 이곳을 떠나는 것이 상책이라 생각한 부사는 부랴부랴 서둘러 밀양을 떠나게 되었다.
××
『그것참 괴이한 일이 아니오?』
상감은 이해가 가지 않는다는 표정이다. 벌써 네 번째의 일이다. 이번에 부임시킨 신임 밀양부사또 첫날 밤에 원인 모르게 죽었다는 것이다.
별로 앓는 것도 아니고 그렇다고 누구에게 살해당한 것도 아닌데 급사를 했다는 것이다 더우기 이번엔 명의까지 딸려 보냈던 것인데도 첫날밤에 또 횡사를 당했다는 전갈을 받은 것이다.
『아뢰옵기 황송하오나 이제는 자진해서 내려가려는 사람조차 없으니 더욱 큰 일이 아닐 수 없나이다』
신임부사가 부임하기만 하면 죽으니 밀양부사를 제수하면 다 사퇴를 해버리니 그것도 무리가 아닐 수 없다.
『그렇다면 이 일을 어떻게 해야 한단말이요? 이대로 가다가는 밀양이 폐읍이 될 지경이라니 무슨 조처를 취해서라도 하루 빨리 신임부사를 내러보내야 되지 않겠오』
 『지당하신 분부십니다. 아뢰옵기 황송하오나 지난번 밀양부사의 딸이 행방불명 되었다는 일과 이 일과는 필시 무슨 관련이 있는 것 같사오니 소신의 생각으로는 담력이 좋은 선비를 뽑아 그를 밀양부사로 내러보내시는 일이 좋을 듯하옵니다』
상감은 신하의 말에 일면 수긍이 가는지라 그날로 전국 방방곡곡에 신임 밀양부사를 구한다는 방을 붙이도록 했다.
××
시골 서당으로 봇짐을 지고 돌아다니면서 붓을 팔고 있는 김서방은 어느 날 의령 고을을 지나다가 신임 밀양부사를 모집한다는 방을 보게 되었다.
평소 뱃심이 좋고 담력이 크기로 친구들 사이에도 이름이 나있는 김서방인지라 그 정도의 일이라면 한번 부딪쳐 볼만한 일이라고 생각했다.
 <에라 하룻동안이면 어떠냐 사나이로 태어나서 고을의원 노릇을 한번 해봐야할게 아닌가? 어디 내가 한번 해 보겠다고 나서보자>고 생가했다. 그날로 서울로 올라온 김서방은 밀양부사를 자원했다.
조정에서는 아무도 갈 사람이 없어 걱정하던 터라 아무나 나선 것만 해도 큰 다행으로 여기고 그를 밀양부사로 제수해서 내려보내게 되었다.
붓장사 신임 밀양부사는 부임하는 즉시 관속들로부터 알현을 받고 우선 이 동안의 사정부터 파악하기 시작했다.
그는 아랑의 행방불명을 전후한 사정에 특히 관심을 기울이면서 고을의 사정을 낱낱이 파악하여 보았다.
이상한 것은 새로 부임하는 부사마다 초저녁까진 주안을 대하고 아무 이상없이 잘 놀았다는 것이다.
붓장사 부사는 밤이 으슥해지자 대정에다 촛불을 밤낮같이 밝혀놓고 사령들을 물리친 후 자신은 자지 않고 혼자서 앉아 있었다. 밤이 차츰 깊어가자 담력이 크다는 김서방도 마음이 조마조마해 오기 시작했다.
오늘따라 달도 없는 그믐밤, 온 천지가 칠흙같이 어두운데 인적없는 대청은 한기까지도 느낄 정도였다. 숨을 들이키기보다는 내 쉬면서 마음을 크게 먹으려고 애를 써 보았지만 웬지 떨러오기는 마찬가지였다.
 <신임부사들이 일을 당한건 필시 밤중일시 틀림없다. 흑시 아랑인가 하는 아가씨가 죽인건 아닌지? 억울하게 죽은 아랑의 귀신이 나타나서 신임부사들을 죽인게 아닌지 내 꼭 이일을 밝혀내고야 말리라>
붓장사 밀양부사는 사나이가 태어나서 이렇게 뜻하지 않게 원노릇까지 하게 되었으니 이 일만은 무슨 수를 써서라도 밝혀내고야 말리라 다짐하며 자세를 고쳐 앉는 순간이다.
별안간 소산하고 기분 나쁜 바람이 홱 몰아치너니 머리를 풀어헤친 처녀 하나가 그의 앞에 나타나 무릎을 곯고 엎드리는 것이 아닌가.
흰치맛자락 사이에는 흥건히 피가 흘러내리고 머리는 풀어헤쳤으나 풀어 헤친 머리카락사이로 보이는 얼굴은 보통인물이 아니었다.
신임부사는 이 끔찍한 몰을 보자 기겁을 할만치 놀랐으나 그렇다고 당황한 기색을 보일 수는 없었다.
『네가 누구고?』
부사 김서방은 애써 위엄있는 목소리로 떨리는 가슴을 진정시켰다.
『저는 전임부사의 딸 아랑이옵니다. 억울하고 원통스러운 일이 있아와 처결해 주십사고 이렇게 나타났습니다. 신임부사께서 부임할대마다 현신했읍니다만 사또께서는 놀라시어 돌아가시고 해서 이 천추에 맷힌 한을 풀지 뜻하고 있었아온데 오늘 다행히 담력이 크옵신 사또를 만나뵙게 되어 이제서야 저의 원수를 갚게 되는가 하옵니다』
 『네 원통한 일이란 무엇이며 또 원수란 무슨 뜻인고? 자세히 말해보아라』아랑은 자리에 옆드려 지난 음력 사월 초승밤에 영남루에서 관노의 손에 의해 피살되었던 자초지종을 이야기 했다.
『네 원수는 내가 꼭 갚아주마, 그런데 도대체 너를 죽였다는 그 관노는 누구냐?』
부사 김서방의 말에 아랑낭자는 감사하다는 말을 잊지 않으면서
『내일 제가 흰나비가 되어 그놈의 갓에 앉겠아오니 사또님께서 그놈을 처치해 주옵소서』
하곤 흔적도 없이 홀연히 사라졌다.
처음 아랑낭자가 나타났을 순간만하도 떨리던 붓장사 부사의 가슴은 어느덧 진정되어 있었다.
원한에 찬 아랑의 고운 얼굴이 생각 나면서 죄없이 죽어간 아랑의 넋을 위로하기 위해서라도 이번 일만은 꼭 과결하겠다고 다짐하는 부사였다.
이튿날 아침,
관속들은 이번 부사도 틀림없이 죽었을 것이라고 쑥덕대며 동헌 뜰에 모였으나 어찌된 일인지 이번 부사는 손하나 다친곳없이 멀쩡히 살아있는 것이 아닌가. 관속들은 이상하기도 하거니와 또 어떻게 살았는지 궁금하기도 했다. 신기한 일이어서 부사의 얼굴을 확인하려는듯 힐끔힐끔 부사의 얼굴을 쳐다보는 관속들도 있었다.
모든 관속들이 동현 뜰에 모여서 부사께 문안인사를 드렸다. 부사는 아무일도 없었다는 듯 태연한 기색으로 관속 하리들의 문안인사를 받기에 바빴다.
애서 태연한 표정을 짓고있는 부사였기만 그의 눈은 빛났다. 문안인사를 드리는 관속하리들의 갓과 벙거지를 주의깊게 살피고 있는 것이었다.
그때였다. 흰나비 한 마리가 돌연 마당 안으로 날라들더니 어떤 관노의 벙거지에 앉는게 아닌가.
조용히 인사를 받고있던 부사 김서방의 눈꼬리가 치켜지며 그자를 가리킨다.
『여봐라, 형방. 저놈을 바삐 이리로 잡아들여라』
갑짜기 호령을 내리는 부사의 분부라 관속들은 어안이 벙벙해졌다.
『형방, 뭣하고 있느냐, 빨리 형틀을 대령하지 않고』
 『네에이』
형리의 긴 대답소리가 나며 집장 사령를은 형구를 준비해놓고 대령했다.
『이놈아! 네가 큰 죄를 저지르고도 모른채하고 있으니 매를 맞기전에 바른대로 아뢰야지, 그렇지 않으면 이 자리에서 죽고 살아 남지 못하리라』벼락같은 부사의 고함소리에
『나리, 제가 무슨 죄를 지었다고 이러시는지 소인은 알 수가 없오이다』
 『이놈, 네가 네 죄를 몰라. 전 사또의 따님 아랑낭자를 죽인 것이 네놈이 아니고 누구란말이냐?』
관노는 금새 얼굴색이 사색이 되면서도 완강히 부인하러 들었다.
『아랑아씨를 제가 죽이다니요? 참으로 원통합니다.』
펄쩍 뛰는 관노에게 집장사령의 추상같은 매가 계속되자, 그도 끝내 견디지 못하고 자기가 아랑을 살해했으며, 영남루 아래 대나두 숲속에 숨겨둔 사실을 자백했다.
부사는 금 사람을 풀어 대나무 숲을 뒤지도록 명령했다. 얼마후 과연 그곳에서 칼에 맞아 죽은 아랑,낭자의 시체가 발견되었다는 보고가 있었다.
부사 김서방은 곧 관노를 처형해서 아랑의 원수를 갚아주는 한편, 아랑낭자의 원혼을 달래주는 제사를 지내주었다.
그날 밤 피묻은 옷을 벗어버리고 소복에 머리를 단정히 빗은 아랑이 다시 부사 앞에 나타났다.
『사또어른, 소녀의 한을 풀어주신 은혜, 뭐라고 사례할 바를 모르겠사옵니다. 소녀는 이제 멀리 떠나신 부모님 곁에 찾아가 고이 눈을 감을 수 있겠읍니다』
꿇어 엎드린 낭자의 눈에서는 굵은 눈물방울이 뚝뚝 떨어지고 있었다. 사또는 죽은 아랑의 넋에 다시 위령의 인사를 드리니 아랑의 모습은 홀연 자취를 감추었으머, 그후부터는 다시 나타나지 않았다.
그뒤, 밀양고을의 처녀들은 아랑의 정절을 기리기 위해 아랑이 죽은 영남루아래 대나무 숲속에 사당을 세우고 해마다 제사를 지냈다.
얼마전까지만 해도, 밀양에서는 아랑이 죽은 음력 사월 초엿새에는 아랑을 제사지내는 아랑제가 열렸었다.
지금은 이 제사가 밀양문화제로 이름을 고쳤지만, 이 행사에서는 가장 지모가 뛰어난 처녀를 그 해의 아랑으로 뽑아 아랑의 정절을 기리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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