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IT/옛날 이야기

옛 이야기(고전) - 사부리 싸움(상)

경상도방어사 조경과 별장 정기룡은 의명대장 장지현과 군사를 합세하여 추풍령 앞 사부리에서 왜병을 막아냈다.

정기룡은 조방어사 앞에 단정히 서서 대답한다.「왜적이 우리나라를 침략해 들어오려고 생각한 것은 하루 이틀에 시작한 일이 아니라 여러 해를 두고 짜논 일이옵고, 저놈의 군사는 날쌔고 훈련이 되었는데 우리나라 군사는 승평세월에 아무런 단련도 되지 않은 오합지졸이니 백명 군사로 백명 적병을 당해 내기가 어려운 판인데, 장차 적병은 수십만명이라는 호대한 군사가 되고 보니 임전대결하기는 아직 어려운 일이라 생각합니다. 다만 기병을 써서 출기불의로 적병의 날쌘 기운을 이곳저곳에서 꺾어 버린다면 적병은 차츰차츰 정신이 산란해질 것이라 이 틈을 타서 다시 적병을 무찔러 버린다면 우리는 큰 공을 거둘 수 있으리라 생각하오.」
방어사 조경은 정기롱의 말을 듣더니 한층 믿는 마음이 굳어진다.
「지금 적병의 제삼군과 제육군이 김해를 함락하고, 창원 창령을 거쳐 들어오는데, 이놈들의 예기를 우선 주저 앉혀야 할터인데, 장군의 생각은 어떠한가?」
 「소인에게 말탄 군사 삼십여기만 주신다면 시험해 볼 일이 있사옵니다.」
 「어디로 가려는가?」
 「산골 깊은 거창으로 가겠읍니다.」
 「좋은 의사일세!」
방어사 조경은 호반이었다. 벌써 정기룡의 방책을 의회하게 짐작할 수 있었다. 손으로 무릅을 쳐서 찬동하고, 정기룡에게 말만 군사 삼십기를 쾌하게 내어준다.
돌격장군 정기룡은 삼십여 명의 홑흩한 군사를 거느리고 거창으로 말을 달린다. 청년 장군 정기룡의 나이는 겨우 설흔한살이었다.
이에 왜병들의 후속부대는 계속해서 상륙을 해서 들어오는데, 혹전장정의 세삼군의 뒤를 이어서 소조천융경이 거느린 제육군 일만오천칠백명이 사월 열아흐렛날 부산에 상륙하여 낙동강을 건너 들어오고, 다음에는 제말군의 대장 모리취원이 삼만명을 거느리고 동태로 들어와서 오월초께는 창령 현풍, 고령. 거창으로 향하고 있었다.
청년장군 정기룡이 삼십명 기명을 거느리고 거창으로 내려가는데 신창이란 곳에 당도하니 모리휘원이 거느린 삼만명 군사의 선봉 오백명이 산필 앞에 당도해 나타났다.
청년장군 정기룡은 날쌘 군사 삼십여기를 산골 밑 숲속에 두군데로 나누어 매복해 두었다가 왜병 오백이 마음놓고 지나간 뒤에 한패는 앞을 막아나오니 적병들은 마음이 흠씬 둘렸던 뒤끝이라 별안간 산골에서 쏟아져 나오는 이지기병을 만나자 수각이 횡난하지 않을 수 없었다.
이때 정기룡은 바른손에는 장검을 들고, 왼 손에는 장창을 잡았다. 말을 달려 소리쳐 시살하니 화경 같은 두눈이 번쩍거리는 곳에 왜병의 목은 가을바람에 떨어지는 낙엽과 같았다.
정기룡은 동에 번뜻 서에번뜻 호통을 질러 왜적을 꾸짓고 단판 싸움에 적병 백여명을 목베이니 피는 흘러 내를 이루었고, 산은 울고 골짜기에는 티끌이 자욱했다.
정기룡의 뒤를 따르는 양편으로 갈라선 삼십여기의 날쌘 군사들은 의기가 태산도 뭉칠듯 했다. 골짜기 외산길에 들어선 적병들을 쥐잡듯 에워싸고 몰아쳐 두들겨 패니, 적병은 산골 낭떨어지로 뛰어달아나다가 떨어져 죽은 자도 부지기수였다.
청년장군 정기롱은 오백명 왜병의 한진을 괘하게 함몰해 죽인 뒤에 왜병의 목을 전부 삼십여명 군사에게 골고루 노나주어 방어사 앞에 공을 세우게 하니, 군사들의 의기는 더 한층 솟구친다.
모리휘원의 군사 오백명이 선봉으로 거창, 신창에서 함몰을 당한 뒤에 왜병들은 다시 거창 땅을 감히 밟지못했다.
모리휘원은하는 수없이 제삼군의 뒤를 따라 금천 금산 길을 취하여 올라섰다.
청년 정기룡은 일진을 사살한 뒤에 개선장군이 되어 방어사를 도와 추풍령에서 적병을 막아 싸우러 하니 하회가 어찌될지 판단하기 어러웁다.
청년장군 정기룡은 거창에서 모리휘원의 선봉부대 오백여명을 도륙한 뒤에 다시 방어사 조정의 영문으로 돌아오니, 방어사 조정의 기뻐함은 이루 다 글로 형용해 그려낼 수가 없었다.
조정은 청년장군 정기룡이 거느리고 갔던 삼십여기 군사들에게 상과 술을 주어 쉬게 한 뒤에 다시 돌격장 정기룡을 청해서 의논한다.
「이일이 상수에서 패하고 신립이 충주에서 꺾인 것은 모두 다 지리를 얻지 못한 탓이라 생각하오. 지금 왜적이 제삼로로 쳐들어오는 추풍령은 험하기 문경 새재에 견줄 곳은 못되나 영남과 충청도 접경에 솟아 있는 하늘이 주신 요새라 이곳을 지켜서 적과 한번 싸우지 아니하면 백대의 부끄러운 추명을 들을지라 나는 이 곳을 사수하러 하니 그대의 뜻은 어떠하오?」청년장군 정기룡은 주저치 않고 대답한다.
「삿도의 뜻이 이렇게 확실하게 서셨다면 소인은 죽고 갊을 헤아리지 않고 한번 적병과 정면으로 대적해서 싸와 보오리다.」
청년 돌격장군 정기룡도 추풍령을 지킬 것을 쾌하게 대답한다.
이 때다. 방어사의 진 밖이 떠들석하면서 많은 군사와 병마의 소리가 요란하게 들린다. 이윽고 군관 하나가 방어사 조경의 앞에 나타나 거래를 드린다.
「황간 의병대장 장지현 어른께서 의병 천여명을 거느리고 오셔서 삿도를 보입기 청합니다.」
방어사 조경의 입이 빙긋이 벌어진다.
「의병대장 장삼괴 선생이 오셨단말이냐? 빨리 이 곳으로 들어오시게 해라.」
삼괴란 장지현의 아호다.
조금이 후에 나이 육십에 가까운 기력이 헌앙한 인물이 군관에게 안내되어 들어오는데, 갑주에 투구 쓰고 긴 칼을 옆에 차서 위풍이 늠늠하다.
방어사 조정은 신을 꺼꾸로 끌고 급하게 당아래 내려서 의병대장을 맞아들인다.
「삼괴 선생 어려운 출입을 하십니다. 이렇게 몸소누지까지 찾아주시니 우리 전체의 영광이 옵니다.」
방어사 조정은 장지현의 손을 덥색 잡아 땅 위로 이끌어 올린다.
「천만에 말씀요. 일찍부터 조방사의 높으신 선성은 우뢰처럼 들었소이다마는 이제 매해뵙게 되니 일생의 한이 풀린 셈이요.」
장지현은 섬돌 위에 오르면서 대답한다.
구객은 자리를 잡아 정돈해 앉은 뒤에 방어사 조경이 다시 말끝을 꺼낸다.
「소문에 들어 압니다마는 이번에 선생께서는 나라와 겨레를 위하여 늙으신 몸을 돌보지 아니하시고 충청도 황간에서 수천명의 의병을 일으키시어 쳐들어오는 왜적을 막아내신다 하나 감사한 말씀 이루 다 사뢸 수 없고 미약한 관군의 장수된 사람으로 도리어 부끄럽기 짝이 없소이다.」
 「내가 늙다니 무엇이 늙었소이까? 나이 겨우 쉰여덟에 늙었다니 말이 됩니까. 아마 영감보다도 몇살 아니 더 먹었으리다. 그는 그렇다 하고 오늘 내가 영감을 보이러 온 것은 잠간 의논할 말이 있어 온 것이요.」
 「무슨 의논이십니까?」
 「지금 왜적이 세 길로 쳐들어와서 수도 서울을 함락시키는 광인데 아까웁게 조령, 죽령 일인이 당관에 만부가 막개 할 좋은 천험지를 지키는 장수가 없어서 왜적들은 춤을 추고 노래를 부르며 좋아라고 평지넘듯 넘었다 하오. 추풍령은 칠천일백육십일척이나 되는 높고 험한 기인 고개요. 경상, 충청 두도의 분수령으로 낙동강, 금강을 남북으로 갈라 논 장산이요. 이 천험의 요새를 또 다시 지키는 사람이 없다면 조선 사람으로 어찌 얼굴을 들고 천하에 행세하겠소. 내가 황간에 오래 산 사람으로 차마 팔짱만 끼고 앉아서 나라 망하는 것을 바라만 볼 수가 없어서 의병을 일으켜 추풍령을 지켜보려 하니 장군의 의사가 어떠하신지요?」
의병대장 장지현은 말을 마치자 방어사 조경의 기색을 그윽히 바라본다.
방어사 조정은 벌떡 자리에서 일어나서 의병대장 장지현에게 절을 한 뒤 다시 두 손을 덥썩 붙든다.
「삼괴선생, 지금 그러지 않아도 유격장 정기룡과 함께 추풍령을 사수하자고막 의논하고 있는 판이올시다. 진정으로 말씀이지를 감청이언정 고소원이 올시다. 돌격장군 정기룡 자네 선생께 뵈입게」.
청년 장군 정기룡이 의병대장 장지현에게 공손히 걸을 올린다.
「이번에 거창서 왜장 모티휘원의 선봉진 오백여명을 단지 마병 삼십기로 진살해 죽인 돌격장 정기룡올시다.」
조방어사는 징기룡을 의병대장에게 소개한다. 의병대장 장지헌이 황망히 답례를 한 뒤에,
「아아 정기룡! 무과급제를 하고 이름을 부를때 상감의 꿈에 용이 하늘로 날아가는 것을 보시고 깜짝 놀라 깨시어 기통의 이름을 내리셨다는 그 정기룡인가?」
 「그렇습니다.」
조방어사가 대신 대답한다.
의병대장 장지현은 손을 내밀어 정기룡의 두 손을 꼭 잡는다. 아들벌이 확실히 되는 이 청년 장군! 단기로 적병 오백여명을 시살했다는 이 장래성 많은 정기룡을 바라볼 때 더우기 그 화경같이 번쩍거리는 두눈을 응시해 보니 진실로 마음이 든든하지 않을 수 없었다. 천하의 기남아인 것을 직감할 수 있었다.
「고마우이 삼만명이나 거느렸다는 모리취원의 선봉 오백명을 한칼에 추풍낙엽처렴 베냈으니, 왜병인들 어찌 담이 떨어지지 않았겠나? 대가 허소한 다구 노여하지 마소. 참으로 조선에도 사람이 있다는 것을 한번 번듯이 보여주었네.」
 「천만의 말씀이올시다.」
청년장군 정기룡은 공손히 대답한다.「그래 추풍령이서 어떻게 적병을 막아낼 방법이 있는가?」
 「전체로 보아서 원체 적병의 군사 수효는 흑전장정의 군사 이만명에다가 모리휘원의 군사 삼만명을 합한다면 오만명이나 되는 대군입니다. 우리 군사의 오백배나 됩니다. 승산은 없읍지요. 이러나 적의 사기를 꺾어 버리기 위해서라도 한번 싸워는 볼만한 곳입니다. 우리는 추풍령이라는 하늘이 주신 요새를 가져서 우리 군사의 약한 것을 얼마쯤 메꾸어 보자는 것입니다.
「옳은 말일세. 나는 죽을 땅을 얻었다구 생각하네. 사람이 한번 세상에 나서 강생불사하는 것은 아니거든. 언제든지 한번은 죽고야 마는 것인데, 이러한 국가가 판탕되는 이 마당에서서 구구하게 목숨을 보전하여 산다는 것보다 한놈의 적병이라도 막아 보다가 죽는다면 이것은 곧 내 아버지 내 할아버지가 살아오시던. 땅을 최후까지 힘을 다해서 지키는 것이니, 무엇이 부족하고 부끄러울 것이 있겠나. 나는 천여명의 의병을 방어사께 바치고 함께 싸워서 추풍령의 귀신이 될까하니, 여러분은 힘을 합해서 싸워 지킵시다!」
의병 대장 장지현은 말을 마치자두 눈에 눈물이 글썽글썽하다.
「염려마십시요. 우리는 누구들처럼 좋은 지리를 버리고 달아나지는 아니 할 것입니다. 더우기 선생께서는 천여명의 많은 군사로 우리를 도와 주신다 하니 기쁘고 든든하기 한량이 없읍니다.」
이번에 방어사 조경이 의병대장에게 감사한 치사를 보낸다.
이날 밤부터 추풍령에는 의병 천여명과 관군 백여명이 진을 치고 훈련을 하기 시작했다.
김해, 창원, 창령, 현풍을 거쳐오는 제일군 흑전장정의 군사와 거창으로 선봉을 보냈다가 일진을 잃어버리고 다시 추풍령쪽으로 향하는 모리휘원의 군사 삼만명을 천여명 군사로 막아 보자는게다.
효용이 절윤하고 일신이 땀 덩어리로 된 청년장군 정기룡은 장차 오만 적병을 어떻게 막아낼 것인가, 육십이 가까운 의병대장 장지현과 방어사 조정의 나라를 근심하는 심각한 얼굴에 기름하게 드리워진 흰 수염을 추풍령 높온 재의 찬바람이 소리 없이 갑주 위에 날리어 주고 있다.
의병대장 장지현은 대대로 내려오는 호반으로 구례 땅 명문의 자손이었다. 그의 아버지는호를 백곡이라 하고, 이름을 필무라고 부른다. 일찌기 경상 좌병사를 지냈고 호반이면서도 글을 좋아하고 도덕을 숭상해서 항상 손에 책을 놓지 아니하였다. 당시에 유명하던 높은 선비 남명 조식 선생을 사모하여 제자되기를 원한 일도 있었다.
장지현은 이러한 엄격하고 학식 높은 훌륭한 아버지한케 가정 교육을 받았던 것이다. 젊어서부터 의기를 숭상하고 가도가 엄숙하니 향당에서는 그를 추앙하는 사람이 많았다.
지현이 과거를 보지않고 집에 있을 때 신립이 전라병사가 되니 그의 .천거로 부장이 된 일이 있고 나중에 나라에서는 감찰이란 벼슬을 주었으나 그는 얼마 아니 되어서 벼슬을 버리고 고향에 돌아와 청년들의 자질을 가르치고 있었다.
임진왜란이 일어나니 그는 나라의 위급한 모습을 차마 그대로 앉아 볼 수가 없어서 사사로운 재물을 흩어뜨려서 칼과 창이며 활을 만들어 시골군사 천여명을 모아 스스로 의병대장이 되어 왜적을 막을 계획을 세우고 있다가 추풍령으로 왜적이 넘는다는 소식을 듣자 군사를 거느려서 경상 방어사 조정을 찾았던 것이다.
의병대장 장지현은 방어사 조경의 혼연히 맞아 주는 너그러운 대접과 청년 돌격장군 정기룡의 씩씩한 기상을 살펴보니 뜻이 맞고 마음이 합해져서 한편 추풍령 위에서 싸워 죽을 것을 결심했다.
장지현은 의병대장으로 정기룡은 돌격장군으로 조경은 방어사의 자격으로 관군과 백성의 군사인 민군이 합세하여 사부리고개를 지키고 있을 때 이틀이 채 못돼서 과연 흑전장정의 선봉부대가 추풍령을 향하고 기어오르기 시작한다는 보발군사의 보고가 들어왔다. 용맹스런 장수 앞에 나약한 군사는 있을 수 없는 것이다. 거창에서 모리휘원의 선봉 오백명을 시살해 죽인 삼십기의 기병을 위시하여 의병애장이 거느린 천여명의 의병과 조방어사의 직계소속 관군 백여명은 돌격장 정기룡을 앞에다 두고 세진으로 진을 나누어 추풍령으로 기어오르는 적병을 막아낼 준비를 하고 있었다.
오월 초승. 아침결이었다. 적의 조총탄환이 어지럽게 고개 위를 향하여 쏘아올라오기 시작한다. 혹전이 거느린 선봉이었다. 양이 면에서도 화살로써 적을 대항하여 막아냈다.
올라오는 것은 조총이요. 내려가는 것은 화살이었다.
평지에서라면 조총을 화살이 막아낼 수 없지마는 조총탄환은 평지에서 쏘아올리고 화살은 고개에서 내리 소아 맞치니 올라오는 조총이 맞아 죽기보다도 내리지르는 화살이 죽어 넘어지는 군사수효가 더 많았다.
문경 새재의 험하고 힘드는 관문을 노래하고 춤추면서 지났다는 선성을 들은 왜병들은 추풍령쯤이야 고개가 길기만 할뿐 조령 흉악한 곳에 비할 바가 아닌 곳이라 해서 마음놓고 기어오르던 왜병의 메는 원체 비오듯이 쏟아지는 학살에 꺼꾸러지고 쓰러지는 부상병들이 하도 많으니 적병은 고만 혼비백산이 되어 선봉진이 뭉그러져 달아나기 시작한다.
이때다. 정기룡은 기회를 놓지지 않고 삼십여기 날샌 군사를 휘동하여 한손에 장창을 들고 한손에 긴 칼을 휘둘러 말 타고 지쳐 시살해 내려가니, 후진인 의병대장 장지현의 군사와 방어사 조경의 관군은 뒤를 받들어 괭맥이 치고 북을 올려 고함쳐 원기를 돋구어주니 산악은 크게 떨리고 골짜기는 메아리를 지어 수십만 대병이 추풍령 사부리고개 위에 결진하고 있는 것 같았다.
장창과 장검을 휘둘러 왜적의 선봉을 추격하는 정기룡의 삼십여기는 적장과 적진을 무수히 시살한 뒤에 왜병의 목 백여두름을 베어 가지고 평지까지는 추격하지 않고 호각을 불어 군사를 거두어 들아오니, 젊은 장군 정기룡의 기상은 추풍령 고개위에 바람과 구름을 불러 일으키는 한마리 푸른 용이었다.
왜적의 제삼군의 선봉이 추풍령 푸르게 우거진 산기슭에 일진이 꺾이고보니, 왜병들은 겁이 더럭 나서 다시 계속해서 고개로 기어오르지 못하고 추풍령 아래 금산(지금 김천 앞벌) 넓은 촌벌에 퇴진을 하고 우리편 군사의 동정을 살펴보고 있었다.
이때 청년장군 정기룡은 일진을사살해 이긴 뒤에 왜적의 머리를 군사들에게 노나주어 공을 새우게 하니, 장사와 군사들은 모두 다 장군의 너글너글한 처사에 감읍하지 않는 이가 없었다. 해가 뉘엇뉘엇 사산에 질 무렵, 청년장군 정기룡은 방어사와 의병대장에게 품해 사뢴다.
「병법에 의병을 두어 적의 수이사를 현혹시키라. 하였사온데 다행히 우리편 군사들은 두분 장군의 크나큰 복력으로 적의 선봉을 시살하였삽거니와 적병은 오늘 밤에 우리의 허실을 알기 위해서 반드시 야습을 할 젓이 올시다. 우선 해가 떠러질 무렵이 군사들을 흐트러뜨려서 이곳 저곳 수백 군데서 밥을 지어 먹게 하고 밥짓는 나무를 열갑절 베게해서 우리편 군사의 수효가 훨씬 많은 것처럼 허장성세 해 보이게 하는 것이 마땅한 줄로 사뢰오」의병대장 장지현과 방어사 조경은 돌격장 정기룡의 말을 옳게 여겨서 임시로 밥짓는 부엌을 수백군데 만들게 하고 저녁밥을 짓게 하니 푸른 연기는 십리에 뻗혀서 사부리고개 으스름 황혼위로 꿈틀거려 쓸어진다.
정기룡은 다시 군사들에게 밥을 배불리 먹게 한 뒤에 한 사람 앞에 횃불 다섯자루씩을 만들게 하여 석양이 완전히 꺼지고 밤이 칠흑같이 찾아와서 사부리 기인 고개를 어둠 속에 삼켜 버렸을 때, 군사 한 사람이 횃불 다섯 자루씩을 일제히 불켜대니, 높고 높은 사부리 산마루는 오천여 그루의 횃불이 줄불을 지어 하늘을 사를듯하다.
캄캄 철야에 오천여자루 횃불이 일시에 돌러지니, 사부리 산마루는 불야성의 장관을 이루었는데. 산아래 왜병이 보니 완전히 수만 병마가 들끓는 듯하다.
이날밤, 밤이 깊어서 청년장군 정기룡은 전령을 놓아 초저녁에 잠이 든 군사들을 일제히 깨라 하고 횃불을 꺼서 명령을 대기하고 있게 하였다.
한편으로 정기룡은 또다시 미리 준비하였던 소 열필에 호랑이 가죽을 씌우게 하고 범의 머리를 쇠뿔 위에 걸쳐놓아서 소대가리 위에 또다시 범의 머리가 생긴 괴상한 짐승의 형상이 되게 하여 은밀하게 감추어 두었다.
밤이 자시가 훨씬 넘어 측시에 가까울 때다. 만뢰는 고요하고 사람은 잠 속에 들었는데, 사부리 고개 밑 금산에 진치고 있는 왜병 수천명은 가만 가만 숨을 죽이고 일체 불빛을 밝히지 않은 뒤이 향도를 앞에 세우고 살금살금 추풍령 넓은 언덕을 기어오르기 시작했다.
장차 뜻 밖에 사부리 고개 위 조선진을 찔러서 우리편 군사들을 어기럽게 교란시키자는 작정이다.
야습은 왜군들의 가장 잘 하는 전쟁수단의 하나다. 그들은 밤에는 조총들을 쓰지 않고 제각기 날카로운 단도와 단검들을 허리에 차고 산비탈로 기어들었다. 서서 행군하는 것이 아니라 엎드리고 기어서 도둑고양이처럼 행군을 하는 것이다.
돌격장 정기룡은 피곤한 군사로 하여금 초저녁이 잠자게 해서 이후에 잠을 깨어 대기를 하라 전령을 내린 뒤에 시각이 해시가 되자 친히 말을 달러서 여러 진터를 몸소 돌아보아 군사들을 정돈시켜 논 위에 본진에 돌아와서 방어사 조경과 의병대장 장지현과 함께 앉아서 한담하고 있었다.
자시가 넘어 후시가 접어들었을때 방어사 조경은「이놈들이 낮에 하도 혼구멍이 나서 다시는 덤벼들지 않으려나 보다.」
하고 혼자 말하다 의병대장 장지현도,「왜놈들도 바다를 건너서 추풍령까지 왔으니 어째 피곤하지 않을리 있겠소. 내일 쫌이나 야습이 있겠지.」
하고 말대꾸 하고 있을 때 산 아래서 잠을 자지 않고 망을 보고 있던 보초 한사람이 황급히 진문으로 뛰어들어온다.
「적병들이 어둠 속에서 움직였읍니다」하는 급한 보고다.
청년장군 정기룡은 갑주 투구를 다시 매만진 뒤에 벌떡 자리에 일어나서 조방어사도 의병대장에게 군례를 드린다.
「소인은 나가서 싸워야겠읍니다.」한마디 던지고 진문밖으로 저벅저벅 걸어나간다.
「관계치 않으리까?」
방어사 조경도 갑옷 투구를 다시 정돈하고 천천히 일어나면서 묻는다.
의병대장 장지현도 육십이 가까운 늙은 몸이건만 칼을 어루만져 보면서 벌떡 자리에 일어선다.
「아무 염려 없을 겁니다. 오늘 밤에는 야습뿐이라 생각합니다. 두 분 장군께서는 장대에 오르셔서 구경만 하고 계십시오!」
정기룡은 쾌활하게 대답하고 또 다시 뚜벅뚜벅 걸어간다.
「어두운데 조심하오!」
방어사 조경이 마음이 뇌이지 아니해서 이렇게 또 당부한다.
「두분 장군님! 보십시오. 절대로 소인이 경적을 하는 것이 아니올시다. 밤이 드새이기 전에 적병은 또다시 몇 백명 사부리고개 아래 불쌍한 귀신이 될 것이올시다.」
청년장군 정기룡은 자신이 만만한 말투로 호걸스럽게 우렁찬 소리를 내던지고 생사의 고비를 함께 하는 정들은 마상에 높찌기 앉는다.
역시 정 장군은 한손엔 장검을 빼어들고 한손엔 다섯 길이나 되는 뱀 대가리 형상의 사모창(사아)을 들었다.
장대 앞에 말을 달러 나간 뒤에 전군을 모아 놓고 명령을 내린다.
「너희들 전군은 사부리 중턱을 중점으로 해서 열대로 나누어서 좌우편 산길에 매복해 있다가 일성 포향이 일어나는 것을 군호로 하여 열마리 불호랑이가 너희 앞을 지나간 뒤에 다시 또한번 큰 포성이 일어날때, 모든 군사들은 비로소 행동을 개시해서 내 뒤를 따르라. 만일 군호를 잘못 들어서 첫째번 포성을 듣고 너희들이 움직인다면 너희들의 목숨은 크게 위태하리라. 똑똑히 들으라! 첫째번 군호가 아니라 둘째번 군호다. 알아듣겠느냐? 불호랑이 열마리가 지나가는 것이 너희들 눈에 똑똑히 보이리라. 이 불호랑이 열 마리가 다 지나간 뒤에 비로소 일어나는 둘째번 포향소리를 듣고, 너희들은 내 뒤를 따라 움직이라. 만일 불호랑이 아홉마리가 지나갔을 때 너희들이 잘못 움직여도 너희들의 생명은 크게 위대하게되는 것이다. 너희들은 방심하지 말고 내말을 꼭 지켜야 한다. 알아듣겠느냐?」
청년장군 정기룡은 이렇게 자상하게 행동할 것을 가르쳐 준다.
「네. 알겠읍니다.」
모든 장수와 군사들은 일제히 대답한다.
믿는 장수의 훈령이라, 군사들은 정 장군의 명령을 산보다도 더 중하게 믿는다.
「그러면 너희들은 빨리 신속하게 행동해서 각각 부서로 돌아가서 둘째번 군호를 대기하고 있으라. 그리고 매복해 있을 때 절대로 불을 밝혀서는 아니된다.」
정 장군은 또 이렇게 당부한 뒤에 군사들을 각 진으로 흩혀버린다. 의병대장 장지현과 방어사조경은 장대 위에서 제각기 청년장군 정기룡의 주밀한 지휘를 더 한번 믿음직스럽게 생각하고 마음속으로 깊이 깊이 탄복한다.
적진 맨 앞에 서 있던 보발군사가 또다시 급하게 뛰어서 정기룡 장군 앞에 나타난다.
「적진 맨 앞에 있던 보초가 진지를 걷었읍니다. 보초들은 사부리 잔위로 올랐읍니다. 적병은 지금 오륙천명 가량 까맣게 산을 기어오르기 시작하고 있읍니다.」
 「적병이 산마루 중턱 삼분의 일까지 올라오거든 또 다시 보발을 달려라.」
청년장군은 냉정하게 지휘를 내린다. 일각, 이가, 삼각이 지나갔다.
보발 군사는 또다시 땀을 뻘뻘 흘리며 장대 앞에 들어섰다.
「지금 적병은 산마루 중턱 삼문의 일인 지점에 으르기 시작합니다!」
보발은 숨이 차서 턱에 헐덕헐덕 하며 보고를 드린다.
「오냐 알겠다. 너희들 보발은 다 우방으로 물러서거라.」
청년장군 정기룡은 엄숙하게 한마디를 마친 뒤에 옆에 서 있는 심복 아강을 돌아본다.
「빨리 아까 분별한 불호랑이 열 마리를 끌어 내오너라!」
아장이 다름질쳐서 장대 뒤 헛간으로 들어가더니 불호랑이를 맡은 군사들을 지휘한다.
「대장의 분부시다. 불호랑이들을 빨리 내서 대령하랍신다.」
아장의 명령이 떨어지니 군사들은 소대가리 위에 호랑이 가죽을 씌워 논 열필 소를 끌고 나온다.
어느 틈에 준비해 놨는지 쇠꼬리 뒤에는 기름칠한 솜 열 근씩을 매어 맡았고, 소등길 따위에는 봄바람에 바싹 마른 섭 만을 한짐씩 실어놓았다.
불호당이 열 마리는 청년장군 정기룡이 말타고 선 장대앞에 일제히 끌려나왔다.
「호랑이를 열 간마다 한 마리씩 떼어놓아라!」
장군 정기룡의 명령이 또 떨어진다.「자아, 인제 맨 앞에 서 있는 호랑이 꼬리에 달린 솜에 불을 질러라! 그리고 포수는 같은 시각에 빨리 대완구를 터뜨려라!」
소를 맡은 군사는 쇠꼬리에 불을 지르려고 부싯돌을 치고 대완구를 맡은 군사들은 대포를 터뜨리러 뛰어간다.
일성 포향이 터지며 천지를 진동하자 쇠꼬리에 달린 기름 솜에는 불이 활활붙어 올랐다.
별안간 뜻 밖에 불이 붙으니 소는 궁둥이가 화끈하고 뜨겁다 깜짝 놀라 큰소리를 구슬피 부르짓으며 사부리 고개길로 미칠듯이 뛰닫는다. 소는 뒤면 뛸수록 불은 활활 더 불었다. 쇠꼬리 불은 마침내 마른 섭단으로 옮겨 붙기 시작한다. 소는 더욱 뜨거웠다. 초열지옥속에 든 셈이다. 소는 점점 미칠듯이 뛰면서 져진 속으로 달려들었다. 시뻗건 불길 속에 호랑이 탈박을 쓰고 뛰닫는 소는 완연히 불호랑이다.
「둘째번 소에 불을 붙여라!」
정기룡 장군의 호령이 또 떨어진다. 둘째번 불흐랑이가 큰 소리를 부르짖으며 불을 짊어지고 또 다시 뛰닫는다.
「세째번 소에 불을 질러라!」
세째번 호랑이가 산골이 무너질듯 큰소리로 호통을 지르며 뛰어간다.
「다음은 넷째번」「다음은 다섯째!」정 장군의 전령 내리는 속도는 점점 빨랐다.
「이제부터 나머지 다섯필 소에는 일시에 쇠짝 불을 뭍혀라!」
다섯필 소가 일제히 큰 소리를 질러 불속에 뛰니 어둠 속에 파묻힌 추풍령 고개길은 별안간 산화가 난 듯하다.
다시 일성 포향이 천지를 진동하면서 청년대장 정기룡이 한길이 넘는 뱀 대가리 사모창을 왼손에 잡고, 바른 손에 긴칼을 휘둘러 적토마를 달러 지쳐나가니 둘째번 일어나는 포성을 군호로 하여 산골 좌우편에 매복해 있던 우리편 군사들은 일제히 고함치며 청년장군 정기룡을 호위하여 따랐다.
이때 왜병들은 낮에 패한 분함을 보복하러 하여 밤중의 야습할 것을 계획했던 것이다. 일부러 우리편 군사의 이긴 뒤의 마음이 풀러질 시기를 골라서 자정 지난뒤 축시이 사부리 고개로 천여명이 도둑고양이 모양으로 가만히 기어오르기 시작했던 것이다.
왜병들은 밤이 어두우니 조총보다도 무기로는 모두들 짧은 칼과 검들을 들었다.
살짝살짝 주위를 보살피며 바윗돌 칡넝쿨을 붙잡고 다람쥐처럼 살살 배미리로 기어올랐다.
사부리긴 고개는 완연히 검푸른 꿈속에 파묻힌 묵화산수인데 왜병들이 바라보니 조선군사는 함빡 고만한 잠 속에 들어 있는 것이 분명하다.
한 걸음 내어딛고, 두 걸음 걷고, 세걸음 넘어서니 왜져들은 자신들이 생겨서 제법 달보가 커지기 시작한다.
쥐 죽은듯 고요한 조선친 속으로 적병들은 점점 깊숙히 들어와서 거진 추풍령 산마루 아래 당도했을 때였다.
별안간 일성 포향이 천지를 뒤흔들면서 괴상한 짐승 하나가 불을 뿜어 산마루 위에서 달려 대려 오는디 빠르기는 살대 같고 흉맹한 기상은 영낙없는 칙범이었다.
이때 왜병들은 흩어져 올라오던 천여명 군사가 본격적인 전투태세로 들어가려고 한데 모여서 대오를 정돈하는 판이었다. 성난 불호랑이는 진 속으로 뛰어들어 불을 뿜어 왜적들을 받고 차고 지르며 미칠듯이 날뛰었다.
뜻밖의 일이라 왜병들은 어찌할 줄을 모를때 또 하나의 불호랑이가 진 속으로 뛰어들었다. 찰나의 뒤였다. 불호랑이 한마리는 또 다시 산마루에서 내달러 뛴다. 왜병들은 깜짝놀라서 외마디 소리를 지르며 이리 피하구 저리 피하면서 다시 산마루 편을 바라보니, 청산 산마루가 그대로 불이 되어 무너져 내려오는데 불호랑이 수효는 황겹결에 보니 백마리가 되는지 천마리가 되는지 어마어마하게 많이 보였다.
뛰닫는 불호랑이 열필은 한꺼번에 일제히 왜병을 받아 넘기고 박차고 짓밟고 불붙은 등으로 문질러 대니, 왜병의 진은 그대로 아수라장의 생지옥이 되어 버린다.
왜병들은 칼을 뽑을 겨를이 없었다. 총을 재어 쏠 틈도 없었다. 그대로 떠받혀 죽고 짓밟혀 죽고, 불이 붙어서 타 죽고, 부지기수로 죽어 넘어진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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