진주 땅, 어느 마을에서의 일이다. 머슴살이를 하는 고유는 하루종일 농사를 짓다가 해가 지자 주인집으로 돌아가는 길이었다.
『그 처녀도 나를 생각하고 있을까? 함께 산다면 얼마나 좋을까?』
노총각 고유는 같은 마을에 살고있던 김좌수의 외딸을 몰래 사모하고 있었던 터였다. 오늘도 고유는 집으로 돌아가는 길에 그런 부질없는 생각을 하며 혼자 싱글거리고 있었다.
이것은 어디까지나 고유 혼자의 생각일 뿐 내색조차 못해 보았다.
『어느 좋은 때 슬그머니 통혼이나 한번 해봐야겠는데…···』
이러한 생각에 골목하며 김좌수네 문 앞을 지나고 있던 고유는 열띤 눈으로 김좌수의 싸리문을 유심히 바라보았다.
『혹 고개라도 내밀고 이편을 보고 있지 않을까?』
하는 생각임은 말하나 마나다. 김좌수는 마침 마당에 앉아 장기릍 두고 있었다. 중년에 상처를 한 김좌수는 가세가 매우 곤궁하였으나 외딸의 지극한 정성을 받아가면서 마음 편히 살고있는 터였다.
『좌수님 안녕하셨깝쇼?』
고유가 허리를 굽히니 장기를 두고있던 박좌수가 웃음을 지었다.
『난 누구라구 고총각이로구먼, 지금 일을 하고 오는 길인가? 이렇게 늦게까지 일하다 오는구먼. 참 자네는 진실한 사람이야!』
김좌수는 장기를 두다말고 고유를 보고 칭찬했다.
고유의 착실한 것은 마을의 모든 사람들이 항상 칭송하는 터이다. 고유는 김좌수가 말을 건 것을 기회삼아
『좌수님은 참 장기도 잘 두십니다. 저도 장기는 꽤 좋아하는 편인데 이따가 저하고 한번 두어 보실까요?』
고유는 넌지시 김좌수에게 장길 두자고 했다.
『얼마든지 덤비게나!』
김좌수도 장기에는 지지 않으려는 생각에서인지 선뜻 그러자고 했다.
이리하여 고유는 김좌수와 장기판을 가운데 두고 마주앉게 되었는데 고유는 바로 이때란 듯 자기의 뜻을 알리려는 심정에서
『좌수님 그냥 두는 것보다 내기장기 한번 두실까요. 』
하고 말을 붙이니 좌수는 먹는 내기라도 하자는 것으로 짐작하고
『그거 좋은 말이로군! 무슨 먹기 내기를 할꼬? 어디 고총각의 음식 좀 먹어볼까?』
하며 너털웃음을 웃었다.
『그런 것이 아니올시다. 좀 큰 내기를 하시죠. 제가 지면 좌수님댁 머슴살이를 3년 살기로 하고 좌수님이 지시거든 제가 좌수님의 사위가 되는 게 어떨가요?』
좌수는 그제서야 고유의 말이 뼈있는 것임을 알았다.
『에끼 이 사람! 금옥 같은 딸 하나를 자네 같은 머슴에게 주겠다던가? 자네 주려고 무수한 청혼을 물리치고 스무 해를 키워온 건 아닐세. 』
이 말에 고유는 그만 무안을 당하여 홍당무가 되어 뒤통수를 치고 돌아가 버렸다. 고유가 돌아가자 고유와 좌수가 주고받는 말을 들은 그의 딸은
『아버지 아까 고도령과 무슨 말씀을 그리 하셨어요?』
하고 아버지에게 물었다.
『아 글쎄, 저를 사위로 삼아달라지 않겠니? 그래서 무안을 주었지 뭐냐.』
좌수는 어이가 없는 듯 딸을 보며 말했다,
『아버지도 그이가 어때서 그러셔요. 지금은 비록 미천한 처지지만 본래는 양반의 자손이고 또 성실한데··…··』
좌수의 딸은 처녀의 수줍음을 가득히 띤 채 붉게 물든 얼굴로 이렇게 말했다. 이 소문은 즉시로 마을에 퍼져나갔고, 이 소리를 들은 동네사람들은 좌수에게 몰려와 고총각과 혼인할 것을 우겨대는 것이었다.
이 서슬에 좌수도 끝내 고집을 세울 수 없어 울며 겨자 먹기로 귀여운 딸을 고유에게 시집을 보내야 했다.
신랑신부 모두 못사는 터인지라 냉수 한 그릇을 떠놓고 초례를 지냈고 동네사람들은 자기네 돈을 걷어서 술 한 동이를 사다 잔치라고 하며 신랑신부를 축복해 주었다.
이윽고 화촉동방의 밤이 와서 두 젊은이는 촛불 밑에 나란히 앉았다. 그러자 신부의 입에서 처음 나온 말이
『글을 아시나요.』
하고 물었다.
『부끄럽소 다는 배우지를 못했소.』
글을 배우지 못한 고유는 부끄럽긴 하나 솔직히 모른다고 털어놓았다.
그랬더니 신부는 엄숙한 얼굴을 지으면서
『사내 대장부가 글을 모르고서야 어찌 하나요. 사람이 무식하만 아무짝에를 못쓰잖아요. 그러니 십 년 작정으로 이별을 하여 당신은 공부를 하고 저는 길삼을 삼으면서 당신을 기다릴 테니 그런 줄 알고 내일부터라도 당장 집을 떠나세요!』
하며 다짐을 하는 것이었다.
고유로서는 기가 막힐 노릇이었으나 이 말을 듣고 보니 할 말이 없는지라 그러마고 대답을 안 할 수 없었다.
그러나 뜻이 있으면 길은 있는 법-.
고유는 첫날밤을 새고 나자 그 길로 부인이 싸주는 다섯 필의 베를 짊어지고 진주땅을 떠났다. 이렇게 가길 얼마쯤 하던 고유는 베를 돈으로 바꾸어 합천땅 어느 마을에 이르게 되었다. 그런데 마침 시냇가 실버들이 늘어진 곳에 깨끗한 서당 하나가 있었다. 이에 고유는 서당을 찾아가 스승에게 글을 가르쳐 달라고 애원을 하여 어린이들과 함께 천자문을 배우게 되었다. 처음으로 글을 배우는 고유이긴 했지만 어린애들 틈에 섞여 배우자니 무한히 창피스럽게 여겨지기도 했다.
어느듯 불철주야로 공부한 보람이 있어 일취월장하여 대성하게 되었다. 그래서 다시 해인사로 들어가 방 한 칸을 빌리고서는 상투를 천장 못에 매어 달고 졸리면 송곳으로 다리를 찌르면서 공부를 계속해 나갔다.
고유가 해인사에 온 지도 어언 몇 년이란 세월이 흘렀다. 그리고 얼마 뒤, 고유는 숙종이 계시는 서울로 올라가 과거를 보아 당당히 장원급제를 하고 이어 좋은 벼슬에 올라 왕의 옆에 시립하게 까지 되었다. 한낱 머슴살이 신세에 지나지 않던 고유는 이렇게 해서 일국의 높은 벼슬을 하게 된 것이다. 그리고 일년이란 세월이 지났다. 이 모두가 아내의 힘이 아닐 수 없었다. 그런데 어느 날의 일이었다. 마침 왕을 모시고 있는데 소낙비가 쏟아지는 바람에 왕은 말소리가 들리지 않는다고 하셨다.
이 말에 고유는 즉석에서
"첨령만이 주성의고"
라고 응대하니 여러 사람들은 그의 해박한 지식에 칭송이 자자하였고 심지어 이것을 알게 된 왕은 필시 유서 깊은 집안의 후손이리라 믿고 고유를 누구의 후손인가를 하문하였다.
고유는 본래 제봉 고경명의 현손이기는 했지만 오랜 세월이 흐르는 동안 어느듯 몰락하여 진주에서 머슴살이를 하게 되었던 것이다. 이리하여 고유는 이같은 사실을 아뢰고 아내를 얻은 그 다음날로 십년 공부를 하게되었던 내력을 숨김없이 털어놓았다.
이 말을 들은 왕은 무릎을 치면서 그의 아내를 칭송을 하더니 이내
『고유를 진주부사를 시키라.』
하고 명하는 동시에 고유에게는 직접 분부하여 여차여차 하라 하셨다.
이리하여 고유는 십 년만에 밀양 땅을 밟게 된 것이다.
고유가 홀몸으로 옛 마을에 이르러 옛날 혼인을 한 김좌수의 집을 찾았다. 그런데 어쩐 셈인지 집터는 잡초만 무성할 뿐 그 으리으리하던 집은 폐허가 돼 있었다. 이에 낙심을 한 고유가 발길을 돌리려고 하다가 마침 옆에 있는 한 노인에게 행방을 묻게 되었다.
『이 집이 왜 이 모양이 되었소?』
노인은
『김좌수는 삼년 전에 죽고 딸은 고도령에게 시집을 갔지만 어이된 일인지 첫날밤에 신랑이 없어져 버렸오. 딸에게선 유복자 하나가 생겨났지요. 헌데 똑똑하기 비길 데 없지요. 그 여인은 부지런하여 크게 가산을 일으키더니 지금은 저 산밑에 크게 새집을 이루고 수천 석의 땅을 가꾸며 잘 산다오.』
하는 대답이다. 이에 고유는 한동안 자기 처의 굳은 결심을 탄복하더니 이내 산밑의 소슬대문을 찾아 과객이라 자칭하고 먹을 것을 청했다.
이에 마침 사랑방에서 소년 하나가 공부를 하고 있었다. 소년은 나오면서 고유를 들어오라고 했다.
고유는 그가 첫눈에 자기 아들임을 알았으나 짐짓 과객인체하고 아무 곳에서나 먹고 갈 터이니 걱정 말고 음식이나 달라고 하였다.
그러자 소년은
『올라오시죠. 우리 집에서는 과객을 그냥 보내는 일은 없읍니다.』
하면서 굳이 방으로 인도하는 것이었다. 그리고는 고유에게 말을 건넸다.
『손님의 성씨가 무엇이에요.』
이 말에 고유는
『비렁뱅이에게 무슨 성이 있나? 남들은 고가라 하지만……』
하고 쓴 입맛을 다셔 보였다.
이때, 김씨 부인은 고씨라는 소리를 듣고 문틈으로 내다보다가 남편임을 알고는 눈물로 반갑게 맞았고. 즉시 안으로 인도하여 아들을 인사시키니, 고유는 지난날의 일을 말하기를 공부도 못하고 걸식을 하며 지내다가 이제야 돌아왔노라고 하소연 겸 꾸며서 말을 하니 부인은
『매사가 운수에 있으니 하는 수 없지요. 이제 수천 석 추수가 있으니 걱정마소서.』
하면서 진수성찬을 차려오는 것이었다. 고유는 음식을 먹기 전에 같이 온 친구들이 있다고 하며 밖으로 나갔다. 그리고는 미리 숨겨 두었던 하인들에게 신호를 하자 우루루 몰려든 하인들은 깃대를 들고 나팔을 불면서 진주사의 부임을 알리니 온 마을이 법석이며 기쁨에 넘쳤다. 김씨 부인의 기쁨이야 이루 말할 길이 없었다.
동네사람들은 십 년만에 돌아온 고유와 김씨 부인의 고결한 성품이 오늘날을 맞이하게 하였다면서 십 년만에 다시 차린 잔치자리에서 다음의 노래를 구성지게 불러 두 사람의 사연을 읊조렸다 한다.
가련한 님 이별이
건년금년 돈절하다
고은님 곁은 두고
구정을 잊었도다
그 말이 무삼 말고
가세 가세 나도 가세
바람불고 눈 뿌릴 때
벗이 없어 더욱 섧다
보경을 열고 보니
부용 안색 초췌하다
비빔밥 즐긴 성정
밤에 둘이 먹고 지고
그 후, 고유는 선정을 베풀어 그 덕망이 세간에 자자해지자 조정에서는 그를 불러 올려 이조판서의 벼슬을 사하였고, 아들 창이 16세에 장원에 급제하는 등 부인과 더불어 80이 다하도록 오래도록 행복을 누리었다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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