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IT/옛날 이야기

옛 이야기(고전) - 영조와 향나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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영조와 향나무

이조 제22대 왕 영조는 서기 1725년부터 1776년까지 52년간 임금을 지냈다. 이조 역대 임금 중에서 임금을 가장 오래 지냈고, 나이도 83세로 가장 오래 살았다.그런데 그의 생모 최씨는 농민의 딸로서 궁중에서 무수리로 있던 천한 여자였다.

 

 

 

 

 

 

숙종이 정비 민씨를 내쫓고 희빈 장씨를 후비로 불러들인 뒤, 차차 마음이 가라앉으면서 장씨의 간특함을 알게 되고 민비에 대한 생각이 달라져 어찌할 바를 모르고 있던 때의 일이다.

 

 

밤에 잠을 못 이루고 궁내외를 헤매는 일이 잦았는데, 하루는 깊은 밤중에 궁중 깊숙한 곳에서 등불이 비쳐 나오는 것을 보고 가 본즉, 벽에 옷 한 벌을 걸어 놓고 푸짐히 차려 놓은 음식상 앞에서 한 무수리가 절을 하고 있는 광경이 문틈으로 들여다보였다.
문을 열고 들어선 숙종이 무엇을 하느냐고 물었다.
『죽여 주옵소서.』
무수리는 엎드리어 말을 못 했다.
『죽이라고만 해도 모르겠으니 바른 대로 대라.』
그제서야 무수리는
『오늘이 폐출된 민 중전 마마의 탄신이옵니다. 불쌍하신 중전 마마를 잊지 못하와…···.』
하고는 말을 못 맺고 흐느껴 울었다.
『그렇구나, 내가 잊고 있었다. 오늘이 중궁의 탄신, 국모로 있으면 온 장안이 즐길 날이거늘.』
숙종은 가슴이 이상하게도 설레였다. 나가려는 무수리에게 술을 따르라 하고 울적한 마음을 풀려고 했다. 한 잔 두 잔 거듭한 숙종은 취하여 그만 그 자리에 누워버렸다.
무수리가 자리를 펴 놓고 나가려고 하자 숙종이 무수리의 손을 잡아끌었다. 무수리는 너무나 황송하고 무서웠다. 그러나 하는 수 없었다. 나인도 아닌 그 종인 천한 몸이면서도 그 날 밤을 임금과 함께 지냈다.

 

 

이 무수리의 성이 최씨였다. 그럭저럭 아이를 배게 되었다. 이 말이 후비 장씨의 귀에 들어갔다. 장씨가 최씨를 불러 옷을 홀랑 벗겨놓고 사실을 확인한 다음, 심한 매질을 하고 불에 달군 인두로 하체를 지지는데, 그때 마침 상감이 듭신다는 말을 듣고, 최씨를 담 밑에 버려 독을 씌워 놓은 것을, 상감이 독을 치우게 하고 다 죽어 가는 것을 구해 냈다. 이 최씨가 살아나서 숙종 20년 9월 13일 옥동자를 낳았는데 그 아이가 나중의 영조요, 그때 숙종의 나이 34세였다.

 

 

무수리 최씨는 자기 잘못은 하나도 없고 얼굴이 잘 생겼다는 죄로 무수리로 뽑혀 들어와, 숙종의 눈에 뛴 바 되어 아이를 배게 되었는데, 그것 때문에 장희빈에게 혹독한 벌을 받아 죽음을 당할 뻔 했었던 것이다.
공교롭게 숙종에게 발견되어 살아나기는 했고, 잉태한 것을 안 숙종이 「소원」으로 봉하기까지는 했으나, 워낙 천한 농부의 딸이라는 지체 때문에 임금이 될 아들을 낳고도 항상 죽어 살아야 했고 생전에는 빈의 대우도 받지 못했다.
죽은 뒤에는 양주 땅 고령산 기슭에 묻혔으나, 초라한 묘로서 형편이 없었다. 궁중 예법에 따르는 능호는 커녕 원호조차도 허용되지 않았다.

 

 

최씨는 숙종보다 먼저 세상을 떠났는데, 숙종이 임금으로 있을 때에도 그 묘는 원으로 봉하지 못했다. 경종 때도 안 되었다. 영조가 임금이 된 뒤에도 환갑이 되도록 성묘조차 못했다.
『내가죽기 전에 어머님 묘소를 능으로 봉하고 떳떳이 성묘라도 해야겠는데, 신하들의 반대 때문에 인륜의 도리도 못한다.』고, 영조는 늘 한탄했다. 이 문제를 신하들에게 의논하면,
『선대왕께서 원으로도 능으로도 봉하지 않으신 것은 궁중 예법에 어긋나기 때문입니다. 상감께서도 사정으로는 능으로 봉하고 싶으시더라도 부왕께서 안 하신 일을 하실 수는 없습니다. 예법을 어기고 부왕의 뜻에도 어긋나는 봉능은 어머님에 대한 효성이 도리어 부왕에 대한 불효가 되기 때문에 하실 수 없습니다.』
고 매양 반대했다. 그런 주장을 하는 신하들의 말 속에는 서족을 멸시하는 뜻이 은연중에 들어있어서, 천한 여자의 아들인 영조는 참을 수 없는 모욕감을 느꼈으나 타고난 핏줄의 숙명은 어찌할 수 없었다.

 

 

『내가 차라리 임금이 아니라면 모친 성묘쯤은 할 수 있을 텐데, 임금이기 때문에 성묘도 못 하니 임금은 불효를 해도 좋단 말이냐.』
이런 기막힌 한탄까지 했다. 영조는 외가의 유족이라도 있으면 특명으로 벼슬을 시켜서 차차 양반의 지체로 끌어올릴 생각도 해 봤으나 가난했던 농부 외조부도 세상을 떠났고, 외삼촌 같은 외가 친척도 없었다. 그래서 궁여지책으로 이름만 겨우 알아 낸 죽은 외조부 최 효일에게 거짓 벼슬이나마 추증할 생각을 했다. 이런 문제도 대신들은 반대했다.
『국가에 공로도 없는 농민에게 무슨 명분으로 무슨 벼슬을 추증할지 전례가 없어서 안 되겠습니다.』
하여, 영조가 임금이 된 지 20년이 지나도록 해결이 안 되었다.
『임금의 외조부에 대한 나라의 예우도 못한다면 나의 체면은 무어냐.』
영조는 생모를 천한 여자로 경멸하는 신하들에게 말도 못 하여, 끙끙 앓고 있었다. 그러나 그만둘 수는 없는 일이었다. 할 수 없이 미친 체하고 고집을 부렸다.
『내 체면을 위해서라도 죽기 전에 외가에 대해서 벼슬을 추증해야겠소. 경들도 모친과 외가에 대한 효도와 의리를 알고있다면 나의 이런 생각을 이해할 것이오.』하고 강경히 말했다.
『상감의 지극하신 효성에는 감복하오나, 그러나……』
『뭐요? 죽은 그분들이 경들과 무슨 원수를 졌소? 죽은 분들에게 벼슬을 추증하자는 데에 반대하는 경들의 인색은 오직 나를 괴롭히려는 처사가 아니고 무엇이오 ! 』
영조는 책상을 치며 화를 냈다.
『황공하옵니다. 상감 생각대로 하십시오. 신들은 분부대로 하겠습니다.』

 

 

영조의 무모한 강제 명령에 마지못해서 하기는 하지만 책임은 지지 않겠다는 태도였다. 영조는 불쾌했지만 하는 수 없이 자기 뜻대로 강행하려고 결심했다.
『그러나 추증 관직의 품위는 잘 감안하여 분부하시기를‥·…』
높은 벼슬은 삼가라는 경고였다. 영조는 또 화가 났다. 그래서 오기로라도 취고의 벼슬을 추증하려고,
『외조부 최 효일께는 영의정, 외증조부 최태일께는 좌찬성, 외고조 최미정께는 이조판서를 추증하게 하오.』
물론, 대신에게는 이 이름들은 처음 듣는 시골상놈의 이름들이었다. 그러나, 어명인 이상 별도리가 없었다.
『예.」
대답은 했으나, 대신들 속으로는 몹시 못마땅하였다.
(상감이 노망하셨군.)
하면서도 그대로 절차를 밟았다.

 

 

신하들의 반대를 물러치고 외가에 벼슬을 추증한 영조는 본래 목표인 생모의 묘를 능으로 봉하라는 명령을 내렸다. 그러나 들을 리가 없었다.
『봉능 문제는 왕실의 예법과 선대왕도 안 하신 일이라 사헌부에 물어서 여쭈오리다.』
사헌부에서는 신중히 토의한 끝에, 아무리 임금의 어버이라 하더라도 이런 경우에는 봉릉할 수 없다는 유권적 판단을 내렸다.
『전에 광해군도 모친을 봉릉했고 연산군도 폐비를 봉릉하지 않았는가 ! 』
대사헌에게 추궁했다.
『황공하오나, 그 뒤가 좋지 않았습니다. 상감께서는 그런 좋지 않은 전례를 따르지 마십시오.』
대사헌은 강직한 말로 임금을 간했다.
『그러나, 친모를 초라한 묘소로 내버려두면 내 생전에 무슨 얼굴로 성묘를 하겠는가.』
화가 났던 영조도 대사헌의 좋지 않은 전례를 따르지 말라는 말에는 반대를 못 하고 통사정을 하였다.
『상감 마마, 생모로 생각하시면 민망하지만, 숙종 대왕의 후궁이라고 생각하시면 사리가 명백하지 않습니까.』
대사헌의 말에 왕도 지지 않았다.
『왕실에는 그런 적서의 구별 없이 세자 책령도 하지 않소』
『세자에 적서를 구별 안 하는 것과 후궁 봉릉과는 별개 문제입니다.』
대사헌을 비롯한 대신들은 끝내 반대했다. 영조는 하는 수 없었다.
(이놈들, 두고 보자. 내가 죽기전에 기어의 봉릉하고 말겠다.)
다음 기회로 미루고 꾹 참았다.

 

 

은인 자중하다가 몇 해 뒤에 다시 생모 봉릉을 요구했다. 대신들은 여전히 반대했다. 옥신각신하가 임금과 신하들이 협상 끝에 타협을 보았다.
『능은 지나친 특례니까 원으로 봉하십시오.』
『능과 원이 얼마나 다르기에 그렇게 인색하오.』
영조도 30년의 소원이 거의 이루어졌으므로 웃으면서 말했다.
『능이나 원이나 별로 다른 것이 없습니다.』
하고 대신들이 선심이나 쓰듯 대답하자, 영조가 농담 비슷하게
『그럼 아주 능으로 봉하지』하여, 깜짝 놀란 대신들은 어이가 없었으나 그냥 웃음으로 얼버무려 버렸다.
『이만해도 내가 성묘할 면목이 섰소.』
능으로는 봉하지 못했으나, 최씨의 묘소를 소령원으로 승격시키고, 곧 거동하기로 했다. 성묘하겠다는 것이다. 이에 앞서서 묘문과 정자각도 세웠다. 원이라고 하지만 어느 능에도 못지 않은 규모였다.

 

 

생모의 묘소인 소령원에 거동한 영조는
『제 생전에 능으로 봉해 올리겠으니 조금만 더 기다려 주십시오』
하고, 통곡하며 모친의 영을 위로했다. 참배 후에는 친히 비문을 써서 새긴 큰 비석도 세웠다. 그러나 그 후에도 능으로는 승격시키지 못했다.
영조는 생모가 생존했을 때에는 궁중의 뒷방에서 숨어서 지내다시피 했고, 죽은 뒤에도 왕모의 대접을 받지 못하는 초라한 묘소에 묻혀 있던 어머니를 위해 효성으로 30년이나 신하들과 싸워서 겨우 원으로 승격시킨 것이다. 그러나 어떤 능보다도 치산은 잘 했고, 원소부근의 산림 감독도 특별히 했으므로 나무가 무성해서 소령원의 경치가 좋아지고 명승지로서의 품위를 갖추게 되었다.

 

 

능참봉도 대우가 좋고, 어떤 능보다도 훌륭하므로, 소령원 주민의 농민들은
『소령원은 금상의 생모 능인 만큼 훌륭하다. 능 나무를 베면 모가지가 달아난다.』
고들 말하며, 도벌을 삼가고 있었다. 그러나, 그 근처에 사는 『박 서방』이라는 중년 농민이 그 엄금된 능림의 향나무를 캐서 서울에서 팔려다가 공교롭게도 미행하던 영조에게 발각된 일이 있었다. 영조는 새문안에 있는 경회궁(지금의 서울 고등학교 자리)에 있었는데, 아침저녁으로 민간인의 옷을 입고 혼자 미행하는 일이 종종 있었다. 영조는 어느 봄날, 홀로 서대문 밖을 산책하고 있었다. 마침 시골농부가 지게에 지고 온 싱싱한 향나무를 내려놓고 살사람을 기다리고 있었다, 영조는 그 향나무를 궁중 정원에 심고 싶었다.
『여보, 그 향나무 팔 거요?』
농부는 오늘은 첫 손님을 아침에 맞았으므로 재수가 놓으리라고 기뻐하면서
『예, 첫 손님이니 싸게 들여가십시오. 양주 고령산에서 난 유명한 향나무입니다. 생원님 댁 울안에 심으면 복을 받으실 것입니다.』
영조의 평복 미행인 줄은 꿈에도 모르는 농부는 신수가 원하게 생긴 손님을 어떤 부잣집 노인으로 알고 생원님이라고 부르며 권했다.
영조는 양주 고령산에서 캐온 향나무라는 말에 언뜻 생모의 소령원 생각이 났다.
『이 나무가 양주 고령산에서 난 향나무란 말요?』
『예, 고령산은 명산입니다. 산 밑에는 유명한 「소령능」이 있지 않습니까? 그 명당이 있는 고령산입니다.』
영조는 그 시골 백성들이 조정의 대신들이 까다롭게 따지는「소령원」을 주저 없이 「소령능」이라고 부르는 것이 우선 반가왔다.
『설마, 그 능림에서 캐어 오지나않았소? 』
이 말에 겁을 집어 먹은 농부는
『아닙니다. 제가 아무리 무식하기로서니 어찌 감히 소령능의 나무를 캐 오겠습니까. 나라의 영과 능참봉의 감독이 어찌 심한지 나쁜 마음을 가진 나무꾼도 능림 근처엔 얼씬도 못 합니다.』
『아암, 그렇겠지. 그런데 그 곳사람들은 소령원이라고 하지 않고 소령능이라고 부르오?』
『소령원이라니요? 아니 올시다. 그냥 소령능이라고 합니다.』
농부는 소령능이라고 했다. 원과 능의 구별이 있다는 것도 모르고 있었다.
『생원님, 복향나무를 들여 가십시오.』
영조는 그 북향나무보다도 농민이 소령능이라고 불러준 것이 반가왔다. 그래서 농부가 부르는 대로 값을 주겠다고 선뜻 흥정을 했다.
『그럼, 우리 집으로 지고 갑시다.』
『예, 생원님 댁이 어디신지요?』
『나를 따라 오시오』

 

 

농부는 영조를 따라 경희궁으로 들어갔다. 경희궁으로 따라 들어가면서도 어떤 부잣집이려니 했다. 그러나 관복을 입은 사람들이 황급히 나와서 공손히 생원을 맞아들이는 것이 좀 이상스러웠다.
『이 나무를 받아 두고 나무장수는 행랑방에 기다리게 하라. 그리고 주식 대접을 잘해라. 귀한 손님이다.』
영조의 말에 관원과 하인들은 놀랐다. 그들은 농부를 안으로 안내하여 좋은 반찬으로 아침상을 차려다 대접했다.
『나리, 이 댁이 누구 집입니까?』
농부는 비로소 관복 입은 사람에게 물었다.
『당신은 아직도 모르시오?』
관원도 영조가 귀한 손님이라고 했으므로 당신이라고 공대하면서 이상스럽게 생각했다.
『아까 그 분은 누구십니까?』
『여기는 경희궁이고, 아까 뵈온 분이 상감이신데, … 당신은 누구시요 ? 』
『앗! 상감님······』
농부는 깜짝 놀라서 이젠 죽었다고 벌벌떨었다. 상감 어머니의 능림에서 캐다 팔려던 향나무를 지고 죽으로 들어온 것이로구나 싶었다.
『나리, 저는 소령능 근처에 사는 농부입니다. 그러나 저 향나무는 능림에서 캐 온 것이 아니고, 고령산 산 속에서 캐 왔습니다. 상감께서 소령능에서 캐온 줄 잘못 짐작하시고 저를 벌하려 끌고 오신 모양입니다마는 천지신명께 맹세하지만 백성이 어찌 감히 능나무에 손대겠습니까.』
관원도 어리둥절했다. 상감께서는 귀한 손님이라 하셨는데, 이 귀한 손님은 자기의 죄를 변명하면서 애원하는 것이었다.

 

 

『좌우간 기다려 보시오. 상감께서 무슨 분부가 계실 테니까·』『 나리, 제가 능나무를 캐다 파는 그런 죄인이 아니라고 상감께 잘 말씀해 주시오.』
『글쎄, 벌을 주시든지 상을 주시든지 낸들 알겠소?』
그러고 있는데, 영조가 용포의 임금 모습으로 고관들을 거느리고 나타났다. 농부는 마당으로 뛰어나가서 땅바닥에 엎드렸다.
『아까는 상감님을 못 알아 뵙고 생원님이라고까지 하여 그 죄로는 죽어 마땅하옵니다마는 저 향나무는 소령능의 능림에서 캐 온 것이 아닙니다.』
『오냐 알았다. 그런 걱정은 말고 향나무 값을 받아라.』
『황공하옵니다. 향나무는 진상하겠으니 값은 그만두시옵소서.』
『아니다. 어려운 백성의 물건을 거저 받을 수야 있겠느냐.』

 

 

영조는 묵직한 전대를 내리게 했다. 나무 값이 아니라 막대한 상금이었다. 농부는 소령능이라고 말한 댓가로 받는 상금인 줄은 모르고 사형 대신에 큰 상금이 내린 것을 꿈같이 생각했다.
『보아하니, 그대는 정직한 인물 같다. 무슨 벼슬을 하고 싶은 생각이 있으면 말하라.』
『상감마마 그 말씀이 정말이십니까?』
순박한 농민은 생각대로 정직한 질문을 임금에게 했다.
『허허, 임금이 백성에게 거짓말을 하겠느냐?』
좌우의 고관들도 소리 없이 웃었다.
『황공하옵니다. 무식한 백성이 땅이나 파 먹고 살지 무슨 벼슬을 할 자격이 있습니까?』
『음, 그대 생각이 충직해서 더욱 믿음직하다. 다행히 소령능 근처에 살고 있다 하니, 능에서 봉사 할 생각은 없느냐?』
『감사하옵니다. 그러면 능참봉 밑에서 청지기라도 시켜 주시면 충성껏 일하올까 합니다.』
『음, 나도 그것을 바랐다. 그럼 소령능 참봉을 시키겠으니, 능을 잘 지켜서 충성을 다하라.』
『예? 저에게 능참봉을! 그런 자격이 없으니 능청지기를 시켜주십시오.』
하고 농부는 사양했다. 그러나 「소령능」이라고 불러 준 말을 처음 들은 영조는 감격하여 그 농부에게 능참봉이란 벼락감투를 씌웠다.

 

 

영조는 노망했다는 말을 들었지만 생모에 대한 정성은 그토록 지극했다. 일국의 임금이면서 자기생모 그것도 살아 있는 것도 아니요, 이미 죽고 없는 사람에 대한, 그나마 묘소의 호칭 문제로 신하들에게 애걸복걸했다는 것은, 물론이의 생모가 사대부의 딸이 아니고 농부의 딸이었다고 하더라도, 농부가 죄인도 아닌데, 당시의 대신들이 너무했다는 느낌이 든다.
반대로 모가지를 뎅겅 잘라 버릴죄에 해당한 왕능의 나무를 훔친 박서방이 도리어 능참봉이 되었다는 것도 어찌 생각하면 너무한 짓이다.
어쨌거나 소령능에서 캐온 그 향나무는 복향나무로 일컬어질 만하다.

 

고전

 

원본글 : 산림조합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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