무오사화, 갑자사화를 일으켜 많은 선비를 죽인 연산주는 성균관을 폐하고 오락 장소로 만들고, 원각사를 폐하여 연방원으로 고치고 흥청들과 함께 지내며, 채청사를 각 지방에 보내 미녀를 끌어들이고 국정을 도외시하였다.
백성들의 원성이 높아지자, 연산주에게 파직되었던 전 이조참판 성희안은 지중추부사 박원종과 밀약하고 이조판서 유순정의 도움을 얻어 1506년 9월에 연산주가 장단으로 놀러간 틈을 타서 진성대군을 추대할 계획을 세웠으나 장단 놀러 가는 일을 중지하여 뜻을 이루지 못했는데, 때마침 호남 지방의 유빈, 이과 등이 진성대군 옹립의 격문을 전하므로, 훈련원에 장사들을 모아 광화문밖에 있던 왕비 신씨의 형제 신수권과 신수영 및 임사영 등을 죽여 궁중의 측근자를 없앤 다음, 성희안은 백관을 거느리고 윤대비(진성대군의 어머니, 즉 성종의 셋째 부인 정현왕후)의 명을 받아 연산주를 폐하여 교동에 안치 들고, 진성대군을 왕으로 옹립하니 이가 곧 중종이다.
이조 제11대 중종은 1488년에 태어나 1506년이 임금자리에 앉았다. 임금이 되자, 연산주의 폐경을 바로 잡고 문벌세가를 누르고자 현량과를 두어 조광조 등의 새로운 선비를 등용하여 정치에 최선을 다하려 하였으나, 남곤, 심정, 홍경주 등 수주파의 참소로 1519년(중종 14년) 11월에 기묘사화를 일으켜, 조광조, 김정, 김식 등 일파가 희생되는 참극이 있었다.
그 후, 분쟁은 끊이지 않아 1532년에는 기묘사화 이후 집권했던 심정, 이항, 김극복 등이 화를 당했고 1537년에는 심정 일파를 모함한 김안로, 허항, 채무택 등이 죽고 귀양가고 하는 변이 계속되었다.
그러는 사이, 연산주를 둘러싸고 있던 간신들이 남김없이 멸망하고 그 대신 도망 다니던 옛날의 문신들이 하나씩 둘씩 불려 들어갔다.
이 교리도 소문으로 세상이 바로 잡힌 것을 알고는 있었으나, 불쑥 나타나지는 않고 기회가 올 것을 기다리고 있었다.
고리장이 집에서는 해마다 한 번씩 사또에게 고리 제품을 진상하는 일을 계속하여왔다. 그 해의 그날이 왔다.
"금년에는 한번 나에게 진상하게 하여 주시오."
이 교리가 엉뚱한 말을 했다. 고리장이는 이 교리의 얼굴을 빤히 쳐다보며 어이없다는 듯이 껄껄껄 웃었다.
"전문가인 내가 진상하러 가도, 해마다 잔소리가 심해 번번이 반쯤은 퇴짜를 맞고 되돌아오는데, 그대가 가서 될 성싶은가?"
아주 무시한 태도다. 그 말을 듣고있던 딸이 말대꾸를 했다.
"아버지, 그런 말씀하지 마시고 이 사람에게 시켜보십시오, 틀림없을 것입니다."
딸의 말에 주인도 마지못해 승낙했다
"그렇다면 한번 가 보게. 그러나, 만일 실패하는 날이던 그때에는 쫓아내 버릴 테니 그리 알게."
단단히 다짐을 두는 것이었으나, 이 교리는 무슨 말을 해도 아무렇지도 않은 것 같았다. 고리짝 짐을 잔뜩 꾸려서 그것을 짊어지고 사또가 있는 관가로 갔다.
이야기로 내려 오는 것이니까 어느 말이 옳은지는 알 수 없으나 조선 명신록에는 거제로 귀양갔다가 바다를 건너 함흥으로 도망쳐 들어갔다는 말도 있다. 그러는가 하면 청구야담에는 거제에서 경상도 육지로 나와 충청도를 거쳐 강원도로 해서 필경은 함경도 함흥에 이르러 버들고리장이의 딸을 만났다는 설도 있다.
어느 곳이 되었든지 고리장이 딸이 버들잎을 따서 바가지 물에 띄워 준 것이 인연이 되었다는 것은 다름이 없다.
사또가 있는 고을까지는 수십리 되는 거리였다. 생전 처음 짐을 지고 가는 판이라 쉬운 일이 아니었다. 그래도 점심때가 지나서 그럭저럭 고을까지 닿을 수 있었다.
이 교리는 사또가 있는 관가에 닿자 문지기를 본체 만체 옆을 쑥 지나 뚜벅뚜벅 뜰 안으로 들어갔다.
"이 자식아 서라! 여기가 어디라고 함부로 들어가는 거냐?"
고리백장 놈이 들어갈 자리가 아니라고, 문지기가 놀라서 불러 세웠으나, 이 교리는 돌아다보지도 않고 안뜰에까지 들어가서, 큰 소리로
"고리장이가 왔소! 진상품을 바치러왔으니 나와 받으시오."
하고 문지기가 말할 사이도 없이 외쳐 냈다.
관가에서는 전에 없던 일이라 놀라지 않을 수가 없었다. 그 중에서도 본관사또가 하도 이상스러워 밖을 내다봤더니 고리짝 짐꾼이 뜻밖에도 바로 이 교리인지라, 깜짝 놀라 버선발로 뛰어 내려와 이 교리의 손을 잡고 같이 올라갔다.
임금이 바뀌어 그 고을에도 새 사또가 부임해 있었는데, 그 사또는 이 교리와 일찍부터 친한 사이이었던 것이다.
"서울에서는 공이 돌아오기를 학수고대하고 있소. 여태까지 어디서 어떻게 지냈관데 이제야 이 모양으로 나타나는 거요?"
사또는 어안이 벙벙한 듯 했다. 이 교리는 서울을 띠나 그날까지 지낸 일을 털어놓았다. 밥이 절반으로 줄더라는 대목에서는 서로 홍소를 터뜨렸고, 남 몰래 남은 밥을 날라다 주더라는 대목에서는 눈물짓기도 했다.
"그러나 저러나 하루라도 바삐 서울로 가보시오. 지금 조정에서는 공을 찾으려고 팔도에 통문을 돌렸다는 말도 있소."
"그렇게 해야겠소. 오늘은 일단 돌아갔다가 다시 나오겠소."
"그런 태평한 소리 할 때가 아니오. 그럼 이렇게 합시다. 내일 아침, 내가 마중 가겠소. 그리고서 내일 중에 상경해 주시오."
"그렇게 할까요"
이 교리 는 오랜만에 쳐다보는 밝은 햇빛에 몸도 마음도 되살아난 기분이 되어 관가를 나와 유유히 고리장이 집으로 돌아갔다.
"어쨌나, 진상품은 탈없이 바치고 왔나?"
이 교리가 고리 짐짝을 안 지고 빈 몸으로 돌아오는 것을 보고 장인은 안심 반 걱정 반으로 물었다.
"예, 전부 아무 탈없이 바치고 왔습니다. 올해는 각별히 잘됐다고 칭찬이 대단합디다."
장인은 탈없이 바쳤다는 말을 듣고, (참 별일도 다 있다. 옛말에 솔개가 천년을 묵으면 꿩 한 마리는 잡는다더니 우리 사위가 그 꼴이구나, 고것이 그리 멍청이는 아니었나 보구나.)하고 혼잣말을 하고 나서.
"오늘 저녁에는 밥을 줄이지 말고 한 그릇 다 줘라."고 딸에게 이르는 것이었다.
그 날 밤이 지나, 아침에 이 교리는 여느 때보다 일찍 일어나서 마당을 쓸고 문 밖까지 쓸었다. 장인은 도깨비에게 홀린 것이나 아닌가 싶어
"아니, 이 사람이 웬일인가. 어제는 생전 안 가던 관가에를 다녀오고, 오늘 아침엔 그 잠꾸러기가 일찍 일어나 마당을 쓸고, 해가 서쪽에서 뜰 모양인가."
하고, 이상한 눈초리로 바라보았다. 고리장이 장인이 뭐라고 하든 이 교리는 아랑곳없이 서두르며, 한 술 더 떠서
"조금 있으면 본관사또가 이리로 행차하실 것입니다. 돗자리도 내다 깔고 집안을 깨끗이 해 놓읍시다."
하는 것이 아닌가. 이 말을 들은 장인은 기가 막혔다.
(이거봐와라, 이 바보가 아무래도 돌았나 보군, 그렇다면 어제 탈없이 상납하고 왔다는 그 버들고리도 참말로 상납하고 왔는지 어디다가 내버리고 왔는지 알 수 없는 일인걸……)
사또가 온다는 말에, 장인은 이 교리가 정신이 돌았다고 단정했다.
"어이구, 이 일을 어쩌면 좋으냐, 어제 저 녀석의 말을 듣고 좋아라 했더니 헛 지랄이었구나, 나는 그것도 모르고 밥을 한 그릇 다 주라고 했지. 이놈아, 버들고리는 어디다 버리고 와서 뻔뻔스럽게 상납했다고 했느냐, 인제 나는 죽었다. 상납 기일을 어겼으니 곤장 아래 뼈도 못 추리게 됐다."고 넋두리를 늘어놓았다. 본관사또가 눈이 멀어서 이런 산골 두메에 온단 말인가. 더구나 고리 백장놈의 집에 돌았다고 오겠는가. 누가 믿을 것인가.
그러고 있는데, 난데없이 본부 아전한 사람이 헐레벌떡 채색 화문석을 가지고 뛰어 들어왔다. 방에다가 화문석을 깔면서
"본관사또 행차합시오." 한다.
그제야 고리장이 백장 식구들이 놀다 자빠졌다. 미친 줄로만 알았던 사위 이 교리는 태연한데, 호령호령하던 고리장이 장인은 허둥지둥 어찌할 바른 모르고, 식구들을 데리고 울타리 밑으로 숨어 엎디었다.
이윽고, 길 비키라는 소리가 나더니 관복을 차린 본관사또가 나타났다. 본관사또는 본시 무과 출신이다. 이 교리도 기골이 장대했다고 전해져 오지만 문과 출시이었고, 무관인 사또는 그 풍채가 당당했으리라는 것이 상상된다.
고리 백장 장인은 암만 생각해도 영문을 몰랐다. 게으름뱅이 사위 녀석이 고리짝 진상품을 잘못 바쳐서 벌을 주려면 잡아 갈 일이지, 나졸도 아전도 아닌 사또 자신이 올 리가 없고 구름을 타고 하늘로 올라가 번갯불을 끌어다가 도깨비를 잡아서 구워 먹을 수는 있을지 몰라도, 사또가 고리 백장의 일가 친척이 되지도 않고 안면이 있어서 찾아온다는 것 따위는 하늘이 두 쪽이 나도 있을 수 있는 일이 아니다. 무슨 날벼락이 떨어질는지 몰라 덜덜 떨고 있었다.
그런데 눈앞에 희한한 광경이 벌어졌다. 사또가 사위의 손을 덥석 잡아 흔드는 것이 아닌가. 사위도 사위지 꿇어 엎디어 쩔쩔매는 것이 아니라 뻣뻣한 말뚝을 집어 삼켰는지 허리도 굽히지 않는다. 어디 그뿐인가, 바보, 병신, 낮잠꾸러기, 천덕꾸러기, 밥 자루 온갖 못들을 소리를 다 들으며 밥도 반 그릇 밖에 못 얻어먹던 방충맞이 맹추 사위가 사또와 마주 앉아 무엇이 그리 우스운지, 아니 겁도 안 나는지 고개를 쳐들고 허허허 웃고 있는 것이다. 장인은 울타리 밑에서 이 광경을 보다가 허벅다리를 꼬집어 봤다. 꿈은 아닌 것 같았다.
방에서 말소리가 들렸다.
"부인은 어디 계시오. 내가 인사를 올려야 하지 않겠소?"
저 소리는 또 무슨 소린가. 사또가 사위에게 부인은 어디 있느냐고 묻는데, 분명히 자기 딸을 찾는 것이다. 될 대로 되라고 꼴이 돌아가는 대로 보고있을 수밖에 없는데, 사위가 딸을 불렀다. 무섭지도 않은지 딸은 서슴없이 두 사람 앞으로 가 앉는다.
이장곤의 소개로 인사를 나눈 다음 사또가 부인을 보니, 옷은 비록 누더기이지만 용모가 단아하고 행동의 조용한 품이 교양 있는 양반집 규수보다 오히려 돋보였다.
"이 학자님이 어려운 처지에 있는 동안 부인께서 이렇게 돌봐 드렸다가 만나게 되니, 이런 일은 남자도 감히 하기 어려운 일이라, 참으로 고마운 마음을 금할 길 없습니다." 하고 경의를 표하였다. 이어서 고리장이 부부를 불러 치하의 술을 권하고 이웃 고을 수령들까지 찾아오는 통에 온 마을 사람들이 겹겹이 둘러서서 경사 난 것처럼 기뻐들 하였다.
이 교리의 아내는 본시 시골 사람답지 않게 단정했지만 한결 더 빛났으며, 사또에게서 술잔을 받은 주인 부부의 꿈같은 기쁨은 비할 데가 없었다.
주인 마누라는 무엇을 알기라도 했다는 듯이
"여보 영감, 나는 그래도 우리 사위가 보통 사위는 아니라고 여러 번 생각해 보았다오. 진작부터 이런 일이 있을 줄 알았지."
했다. 주인 영감도 지난날 구박한 것은 까맣게 잊었는지 덩달아 말했다.
"암 나도 의심스럽다고 생각했어"
그러나 이 교리의 아내는 아무 말 없이 마을 사람들이게 반가운 웃음만 보냈다.
그러는 동안이, 보고를 들은 순찰사영에서 역마를 내어 이 교리의 상경을 서둘렀다.
"여보 사또! 저 여인이 미천한 사람이긴 하지만, 내게 이미 시집왔고 더구나 내 생명을 구해준 것이나 다름없는 은인이라 버릴 수가 없소. 그러니 미안하지만 교군하나를 더 마련해서 같이 서울로 가도록 해 주시오."하는 이 교리의 말에, 사또는 즉각 준비시켜 일행을 호사스럽게 전송했다.
이 교리는 그 길로 서울로 올라가 대왕께 뵙고, 위에서 묻는 대로 사정을 아뢰었더니
"그런 여자는 천첩으로 대접할 것이 아니라, 마침 그대가 홀아비 신세도 되고 하니, 특별히 후부인으로 승격시켜 줌이 가하니라." 하였다.
그 뒤 이장곤은 벼슬이 우찬성에까지 올랐고, 부인의 고향에서 고생하는 장인 장모도 천역을 면하여 편히 살았다
원본글 : 산림조합