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IT/옛날 이야기

옛 이야기(고전) - 인종과 내란(중)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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양위를 받아들여서는 안된다는 이수의 말을 듣자. 이 자겸은 억지 춘향으로 ''그걸 말이라고 하시오? 상감께서는 아직 젊으시고, 신하인 내가 어찌 그런 무엄한 일을 생각인들 할 수 있겠소, 추호도 그런 생각이 없소이다."하고서, 임금 앞에 나아가 "폐하, 당치도 않으신 분부를 거두어 주시고, 정사에 힘쓰시기 바랍니다."고 아뢰었다.
인종이 이 자겸의 집에서 연희궁으로 옮겨진 뒤에도 주위에는 이 자겸의 무리들이 득실거려 자유라고는 하나도 없었다.
그러던 중, 배가 맞아서 한패가 되어 임금에게 맞섰던 척 준경과 이 자겸 사이가 조그만 일로 벌어지게 되었다.
아이 싸움이 어른 싸움이 된다더니 그 짝이었다.
하인들이 싸운 것이다.
어느 날 척 준경의 하인과 이 자겸의 하인이 길에서 만났다.
"뻔뻔한 낮을 하고 있지만, 우리 대감덕택에 너의 주인이 활개를 펴는 주제가 아니냐."
이 자겸의 하인이 쏘아 대니, 척 준경의 하인도 지고만 있지 않았다.
"까불지 마, 너의 주인 너구리는 세상에서 모르는 사람이 없어."
이 자겸의 하인은 분을 참지 못하고 이 자겸의 아들에게 호소했다.
"무엇이? 고얀 놈들.''
당장 쫓아나가, 척 준경의 하인을 사정없이 두들겨 팼다.
이 소식을 들은 척준경은
"하인들의 싸움에 그렇게까지 하다니 이는 필시 나를 깔본 처사다."
하고, 사람을 보내어 항의를 했다. 이자겸 측에서는 시큰둥한 대답이었다.
잘못했다고 백배 사죄할 줄 알았더니 사죄는커녕 무슨 잔소리냐는 태도에 척준경은 더욱 화가 났다.
(흥, 자겸이 제까짓 놈이 누구 힘으로 권세를 잡았다고 나에게 배짱을 부리다니…)
그로부터 척 준경과 이 자겸은 개와 원숭이 사이처럼 티깍태깍하게 되었다.
그렇게 되니까, 교활한 이 자겸이 언제 무슨 짓을 할지 알 수 없어 불안하지 않을 수 없었다.
척 준경은 안심이 안 되어 모든 것을 작파하고 몸을 숨기려 하고 있었다.
이 사실을 안 인종은 속으로
(됐다.)
고, 남몰래 척 준경에게 밀사를 보냈다.
"지금까지의 일은 모두 물로 씻자.
어떠냐, 이제부터는 한번 왕실을 위해서 일할 마음이 없느냐."
밀사로부터 임금의 속을 전해 듣고, 척 준경은 감격해 마지않았다.
"황공무지한 성은이시오. 하다 뿐입니까. 새사람이 되어서, 왕실을 지키어 충성을 다하겠나이다."
고 맹세하여 척 준경은 인종의 심복이 되었다.
이 자겸은, 인종의 양위를 사양은 했으나, 그 욕심을 버릴 수는 없었다.
그뿐인가, 이대로 밀고 나가다가 만일에 왕당파가 다시 결속하게 되면 걷잡을 수 없는 일이 벌어질는지도 알 수 없는 일이다.
(임금이 살아 있으니까 말썽이지, 죽고 없다면 문제가 없지 않은가.)
이 자겸은 마침내 무서운 계교를 꾸미게 되었다.
이 자겸은 자기의 세째딸과 넷째딸을 인종의 왕비로 만들어 놓은 터였고, 네째딸은 다행히 인종의 사랑을 받고 있었다.
이 자겸은 떡을 만들어 그 속에 독약을 넣어서 네째딸에게 주면서 부탁했다"
"이 떡은 특별히 상감을 위해서 만든 것이니 다른 사람에게는 주지 말고 상감에게만 올리 도록 하오,"
예사로 한 말이면 성사가 되었을는지 모르겠는데, 두번 세번 다짐을 하는 바람에 네째딸은 이상하게 생각했다.
(아버님은 본디 상감을 해치려는 사람인데, 어인 일로 특별히 떡을 만들어 바친단 말인가.)
인종의 이모이면서 비가 된, 이 자겸의 네째딸은 조카이면서 남편인 인종과 정이 들어 있었다.
(혹시 이 떡이 사람을 해치는 것일지도 모른다.)
는 예감이 들자, 등골이 오싹했다.
그래서 뜰 아래 놀고 있는 새들에게 떡을 뜯어서 던져 주어 보았다. 새들은 그 떡을 쪼아먹더니 날개를 파닥거리며 쓰러졌다.
비는 그 떡을 남몰래 땅속에 묻어 버렸다. 그리고는 빈 그릇만 가지고 상감처소로 들어갔다가 나왔다. 다시 들어온 이 자겸은 다급하게 물었다.
"상감께 그 떡을 드렸소?"
"예."
"상감께서 그 떡을 드십디까?"
"아니어요."
"왜?"
"냄새가 이상하다고 창 밖에 버리시더이다."
이 자겸은 의심쩍은 눈초리로 딸을 노려 보았다.
(이년이 아무래도 상감을 더 생각하는가 보다.)
이 자겸은 그래도 포기하지 않고, 이번에는 국을 끓여서 그 속에 독약을 넣어 딸에게 주었다. 그리고는 뒤에서 감시했다.
딸은 그 국이 보통 국이 아닌 줄은 알지마는 위에서 아버지가 감시하고 있으니 버리지도 못하고 망설였다. 곰곰생각 끝엔 또 하나의 꾀를 얻었다.
국그릇을 들고 상감의 앞에까지 가다가 일부러 비틀거려 그만 국그릇을 엎질러 버렸다.
이 자겸은 하는 수가 없었다. 다른 꾀를 쓸 수밖에 없게 되었다.
실력 행사!
이왕에 의심을 사게 되었으니, 무력으로써 뒤엎어야겠다고 생각했다.
그러던 차에, 군기소감으로 있는 최 사전이란 사람이 괴상한 정보를 발설했다.
"이 자겸이 왕실의 무기를 자기 집으로 옮기려 한다."
는 것이다.
인종은 대경실색했다.
(인제는 그 놈이 무력으로 짐을 없애려 하는구나. 이 일을 어이 할꼬.)
생각다못해 최 사전을 척 준경에게 보냈다.
"이 자겸이 무기를 옮겨 연경궁으로 쳐들어오려고 한다. 이제는 더 주저할 수 없다. 짐이 이 자겸의 손에 넘어지는 것은 짐의 부덕의 소치이니 누구를 원망하겠느냐마는, 다만 왕권이 바뀌어 만일에 변성을 한다면 국가 조종에 큰 죄악이다.
그대의 힘이 필요하다.)
그러지 않아도 척 준경은 이 자겸을 칠 날을 기마리고 있는 참이다.
더구나, 마침 그 자리에 있던 김 향이란 신하도 대성통곡하며,
"설령 뼈가 가루가 되는 한이 있더라도 왕실을 지켜야 하오."
하고 격려한다.
척 준경은 무식하기 때문에 오히려 단순하다. 다른 말이 없다. 최 사전에게 할 바를 묻는다.
"내가 어떻게 하면 되오?"
"장군이 하실 일은 무엇보다도 상감의 신변을 보호하시는 일이오. 군졸을 이끌고 입궐하시오. 한시도 지체할 겨를이 없소."
척 준경은 결연히 일어섰다.
"얘들아 나를 따르라 !
집이 머물러 있던 20여명의 군졸을 이끌고 연경궁으로 달려간다.
도중에서 100여명의 군졸을 만났으나 그 우두머리는 정가 성을 가진, 척준경의 심복이었으므로 합세하였다.
우선 척 준경은 그 군졸들을 둘로 나누어 한패는 군기감으로 가서 갑주창점을 취하게 하고, 한패는 스스로 인솔하여 연경궁으로 가서 인종을 군기감으로 모셨다.
뒤를 이어 척 준경의 부하들이 모여었다. 그러니 이 자겸의 주위는 텅빈 상태였다.
척준경은 상감의 주위를 엄하게 경호하며 일을 척척 해낸다.
"폐하, 인제는 이 자겸을 처단하셔야 하옵니다. 명을 내려 주시옵소서.''
그러나 인종은 인정에 약했다.
"이 자겸의 소행이야 대역무도하여 살려 둘 수 없지마는, 뭐라 해도 짐의 외조부가 아닌가, 목숨만을 살려서 귀양보내도록 하라."
척준경은 왕명을 받들어 이자겸을 불러냈다.
이 자겸도 이제는 체념했다. 권세를 탐내어 못할 짓을 많이 했던 그도 모든 사람이 자기에게서 멀어져 가고, 버티려야 버틸 힘이 없어, 관복을 벗고 입궐해서 인종 앞에 꿇어 엎드렸다.
척준경은 다짜고짜로 이 자겸을 묶어 1126년 5월에 멀리 전라도 영광 땅으로 귀양보내고 이 자겸의 처자권속을 모조리 귀양보냈다. 그리고 궁중에 남아 있는 이 자겸의 무리들을 뿌리뽑았다.
그해 12월에 이 자겸 자신도 귀양 땅 영광에서 죽고 말아, 그토록 영화를 누리던 일당이 그림자조차 없이 되어 버렸다.
이 자겸의 무리를 쓸어버리고나니, 나라 안은 조용해졌으나 역시 문제는 남아 있었다.
이 자겸이 역적질을 했으니 역적의 딸을 왕비로 그대로 둘 수는 없는 일이다.
왕비 폐출.
응당 그래야 한다.
그러나, 인종으로 봐서는 두 왕비가 이모이며 더구나 둘째 왕비(이 자겸의 네째딸)는 이 자겸이 자기를 독살하려 할 때 꾀를 써서 자기생명을 구해준 은인이 아닌가. 가혹한 처벌을 내릴 수가 없다.
그런데도 강경한 신하들 특히 이자겸에게 억울한 일을 당한 신하들은 인정사정없이 폐출할 것을 진언했다.
결국 강경파의 주장대로 폐출하게 되었다.
인종은 눈물을 머금고 폐출을 율허했으나 더 이상의 형을 말렸다.
"역적의 딸들인 왕비는 마땅히 벌을 면하지 못할 것이로되, 공적으로(왕비) 삿적으로(이모) 짐과 예사 사이가 아니며, 특히 짐의 목숨을 구해준 공로가 있으므로 비의 자리에서만 물러나게 하고 안심종명하게 하라."
이리하여 이 자겸의 딸들인 왕비는 궁궐에서 쫓겨나기는 했으나, 물심 양면으로 전과 다름없이 대접을 받았고 신하들도 그 이상은 더 잔소리를 하지 않았다.
두 왕비를 폐출했으니 왕비를 맞아야겠는데 그 때 인종의 나이 18살이다. 이 자겸의 딸들은 이모들인데, 인종이14살 때 정략 결혼을 당한 셈이었다.
이제야말로 정식 결혼인 셈이다. 인종은 이 무렵 꿈을 꾸었다.
하늘에서 신선이 내려와 인종에게 깨닷 대와 아욱씨 서 대를 주고 간 내용의 꿈이다.
인종은 최 사전에게 꿈이야기를 했다.
최 사전은 혼자서는 어찌해야 좋을지 몰라 척 순경에게 의논했다. 척 준경이 무식한 무부라 신통한 의견이 나올 것은 아니로되, 최 사전으로서는 척준경에게 호의를 보여 그의 환심을 사두자는 생각이었다.
되지 않은 척 준경의 의견을 듣고 나서 속으로는 무시해 버리고 인종에게 가서 해몽을 자기 나름대로 했다.
"깨는 속말이고 임자라 하옵니다. 임자를 얻으심은 곧 임씨 성을 가진 사람을 왕비를 맞으실 징조이옵니다. 임자 닷 되는 다섯왕자를 낳으실 것을 뜻하옵니다. 또 아욱은 황규이오니 황규는 황규, 즉 황왕도규와 통하옵니다.
황왕도규는 나라를 다스린다는 뜻이옵니다. 그러하온 즉, 임씨 성 가지신 분을 왕비로 맞으시게 되오면 다섯왕자를 얻으시고 그 다섯 왕자중에서 세 분이 나라를 다스리는 임금이 되신다는 것으로 해몽이 되옵니다."
인종은 최 사전의 해몽을 듣고 매우 흡족하였다.
"그러면, 임씨 성 가진 사람을 왕비로 삼아야겠구먼."
그리하여 왕비 간택령을 내려 왕비후보자를 골라 보니 그 중에 임 원후라는 사람의 딸이 유력했다.
임원후의 딸은 결국 왕비가 되었는데 그에게는 다음과 같은 이야기가 있다.
그의 아버지 임 원후는 인종 초에 전중내급사(전중내급사=정 9품 벼슬)로 있다가 이 자겸과 뜻이 맞지 않아 불우한 세월을 보내고, 이자겸이 망한 뒤에 운이 있어 조정의 요직으로 복귀하여 꿈이 부풀어 있었다.
일찌기 임 원후의 딸이 평장사 김 인규의 아들 김 지효와 결혼했었다.
혼인날이 되어 신랑 김 지효가 모든 준비를 하여 신부집에 들어섰다. 그런데 신부집에서는 알 수 없는 일이 벌어졌다. 신부가 아침까지도 멀쩡하여 신부 화장을 하느라고 부산을 떨었는데 낮부터 배가 아프다고 신음하더니, 신랑이 들어서는 시각에 이르자 그만 실신하고 말았다.
혼인식은 고사하고 신부의 목숨이 붙어날지조차 알 수 없는 판국이다. 임원후는 신랑측에 연기하자고 제의했으나 신랑측에서는 자칫 잘못 하다가는 혼인하다가 송장 치르겠다고 파혼을 선언했다.
그러자, 신부의 외조부 이 위가 임 원후에게
"이것은 조금도 이상할 것 없네 실은 그 애가 날 때 내가 꿈을 꾼 일이 있네. 글쎄 꿈에 웬 초라한 사나이가 나타나서 그 애를 데려가려고 하지 않겠는가? 그런데 그 애가 발버둥을치면서 울어버리더군. 내가 그 사나이를 쫓아내려고 호통을 쳤지. 그러고 있는데 하늘에서 오색 구름이 내려오더니 그 구름 속에서 큰 용이 나타나 그애를 감싸더니, 그러니까 초라한 사나이가 허둥지둥 도망치고, 울부짖던 애도 잠잠해지더란 말일세.'
하고 일러주었다. 80 노인의 말을 듣고 있던 임 원후는
"장인 어른, 그게 무슨 꿈일까요?"하고 묻는다.
"글쎄 나도 잘 모르겠어서 그 때 남문 밖에 사는 한 도사를 찾아가서 해몽을 부탁한 일이 있지. 그랬더니 그 도사가 길몽이라、 하면서 그 애가 자라서 괴상한 일이 일어날 테니, 그때 다시 찾아오라고 하더니 인제 자네가 한번 가 보게."
임 원후는 도사를 찾았다.
"17년 전의 그 아기 일이군. 이리 가까이 오시오. 절대로 입 밖이 내서는 안되오. 마님은 장차 국모가 될 것이오. 부디 거동을 삼가하고 기다려 보시오."
그러던 처녀가 왕비 후보로 뽑힌것이다. 그는 마침내 왕비가 되었고 뒷날 공예 태후가 되었는데 최 사전의 해몽대로 다섯 왕자를 낳았고, 그중 세 왕자가 왕위에 올랐다. 곧, 18대 의종, 19대 명종, 20대 신종이다.
그동안 인종에게는 끔찍한 일이 또 있었으니, 그것은 다음 회에서 알아보기로 한다.

인종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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