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IT/옛날 이야기

옛 이야기(고전) - 천추태후(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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서울로 쳐들어가는 강조의 군대가 황해도 평주에 이르렀다. 서울(개성)까지는 하룻길이다.
평주에서 강조는 뜻밖의 소문을 들었다.
김치양 일당이 판을 치고 있으나 목종은 궁중에 살아 있다는 것이다.
강조는 깜짝 놀랐다. 그리고 낙담했다. 이상한 일이다.
충성심이 강한 장군이라면 임금이 샅아 있다는 것을 알면 도리어 안심하고 좋아해야 할 텐데 낙담을 하다니.
강조의 속은 이렇다.
 (임금이 죽었다고 들었기 때문에 김치양 일당을 무찌르고 나라를 구하고 큰공을 세우려 했다. 본래 임금은 마음이 약해서 태후에게 거스르지 못한다. 임금 목종이 살아 있는 한, 자기가 김치양 일당을 쳐부술 수도 새 임금을 옹립할 수도 없다. 나아갈까 돌아갈까.)
그러니, 강조는 야심을 품고 있었단 것 같다.
강조는, 목종이 대량군을 맞아들여 신위하려는 것도 모르고, 자기를 불러서 김치양 일당을 없애려는 것도 깨닫지 못했다.
그러나, 대군을 거느리고 왔는데, 그냥 돌아간다는 것도 안될 말이고, 그렇다고 서울로 쳐들어가면 임금과 맞서는 결과가 된다.
진퇴를 결정 못 하고 있는데, 이 현운과 다른 부장들은
"이제 와서 물러설 수는 없습니다. 당초의 계획대로 하는 데까지 해 봅시다."
고 충동인다.
 "하지만, 상감이 살아 있다지 않소." "그까짓 것 폐해 버리면 그만 아니오?"
 "뭐? 폐한다?"
강조는 놀라면서도 얼굴이 밝아진다
"그리고, 대량군을 새 임금으로 세웁시다."
이 현운의 말에 강조도 맞장구를 친다.
 "대량군, 나도 그렇게 생각하오. 지금 그분이 어디 계신다더냐?"
 "삼각잔 신혈사에 계시다는 말을 들었습니다마는……."
 "그럼, 신혈사로 사람을 보내서 모셔오도록 합시다."
이 현운은 김응인에게 병졸 몇 사람을 인솔하게 하여 신혈사로 보냈다.
그리고 나서, 강조는 휘하 장병들에게 진격 명령을 내렸다.
 "진격이다!"
강조가 거느리는 오천 군마는 대오를 경비하여, 다음날 마침내 서울로 쳐들어갔다.
한편, 목종의 밀사로 간 황보 유의와 문 연 등이 신혈사로 당도하자, 그 절의 늙은 중은
(이크, 김치양 무리가 또 자객을 보냈구나.)
지레짐작하고서 팍 잡아떼었다.
 "전번에 오신 분이게도 말씀 드렸습니다마는 그 분이 어디 계신지 알 길이 없습니다."
황보 유의는 사세를 판단했다. 늙은 중은 저번에 김치양이 보낸 자객 이야기를 하고 있는 것이다.
 "우리는 상감께서 보내셔서 왔소이다."
임금의 밀서를 내보이자, 늙은 중은 알아듣고
"미처 몰라 뵈었소이다. 잠시 기다리십시오."
하더니, 지하실에 숨어 있는 대량군을 인도해 온다.
바로 그 때, 산문이 떠들썩했다. 한패의 군마가 달려온다.
대량군과 늙은 중 그리고 밀사들까지도 깜짝 놀랐다.
김치양이 보낸 사람들이 따라온 줄로 착각한 것이다.
황보 유의는 문 연파 그 병졸들에게 창검을 뽑아들고 대량군을 호위하도록 한다.
새로 뒤쫓아온 군마는 김응인 일행이었다. 그런 줄을 모르는 황보 유의는 "멈추시오, 무엄하오. 이 분은……." 김웅인도 눈치가 빨랐다. 알아차렸다. 말에서 뛰어내려 대량군 앞에 엎드리며,
 "무례함을 용서하소서. 소인들은 강조장군의 명으로 모시러 왔사옵니다. 한다. 그렇다면 황보 유의도 짐작이 간다. 목종이 강조에게 밀서를 보내어 불러들인다는 사실을 알고 있는 것이다.
황보 유의가
"소인은 신휘 판관 황보유의 올시다."
하니, 김응인이
"서경분사 감찰 김응인이오."
하고 인사를 하고, 서로 목적이 같으니 합세하여 대량군을 모시고 서울로 향했다.
그런데, 그 동안 벌써 강조는 일을 척척 해냈다.
목종 12년2월의 일이다. 강조는 궁중으로 사람을 보내어 우선 목종과 태후를 법왕사로 옮기도록 하고 김치양과 유행간 등 일당을 잡아죽이고 귀양보내고 하여 소탕해 버렸다.
그러자, 황보 유의, 김응인 등이 대량군을 모시고 왔다. 강조는 대량군을 즉위하게 하니, 이가 곧 고려 제8대왕 현종이다.
현종이 즉위한 뒤에는 국권이 강조의 손아귀에 쥐어졌다.
강조는 법왕사로 사람을 보내어 목종을 따르는 최항을 자기편으로 끌어들이려고
"최공도 원래 대량군을 옹립하려 했고, 강장군을 입경하게 했으니, 모든 것이 최공 뜻대로 된 것이다. 이제는 새 임금을 받드셔야 하지 않고"
하고 권하여 불러 들였다.
현종도 최항이 마음에 들어 높은 벼슬을 주었다.
폐위된 목종은 태후와 학께 충청도 충주로 내려가게 되었다. 따르는 신하도 없이 겨우 말 한 필을 얻어 태후를 태우고 목종이 그 고삐를 잡았다.
강조는 목종을 멀리 내쫓았으나 그래도 마음이 놓이지 않았다.
부하를 뒤쫓아 보내었다. 강조의 일명을 밤은 상약직장(임금의 약을 짓는 일을 맡은 벼슬) 김광보는 적성 땅에서 따라잡아
"원행 길에 이 약을 드시고 힘을 내시랍니다."
그 약그릇을 내밀며 칼을 뽑아들었다. 어찌할 수 없게 된 목종은 태후에게 "어머님, 소자는 먼저 이 세상을 하직하오니 부디 옥체 보존하시옵소서" 하고 약을 마시고 숨을 거두었다.
목종의 나이30, 재위12년 만의 일이다.
태후는 황주로 도망하여 21년 동안이나 더 살고 66세에 세상을 마쳤다고 전한다.
목종이 죽은 줄도 모르는 현종은 국사를 강조에게 맡겨 두었는데 강조는 독재 정치를 폈다.
그러나 강조도 오래 가지는 못했다. 현종원년(서기 1010년)에 상서좌사낭중(상서좌낭중=상서성의 정5품 벼슬) 하공진과 화주의 방어낭중으로 있는 유종들이 왕의 허락도 받지 않고 공을 다투어 동여진을 친일이 있다.
왕명 없이 군사를 일으킬 수 있다는 것이 강조의 전횡을 말하여 준다.
하공진과 유종의 무리는 공을 세우기는커녕 참패했나. 그리고서는 제 잘못인데도 반성은안하고 도리어 여진사람들을 원망하고 있었다.
그러던 차에, 여진 사람 95명이 고려에 와서 살겠다고 들어와 화주에 이르렀다.
그 사람들을 본 하공진과 유종은 괜히 이를 갈았다.
 "네놈들 때문에 우리 부하들이 많이 죽었다. 맛 좀 봐라."
하고서는, 성미 급한 유종이 그95명을 몰살시켰다.
여진족들이 가만히 있을리 없다. 그러나 여진으로서는 힘이 약하여 고려를 칠 수는 없었다. 그래서 그 무렵 강대해진 거단에 호소했다.
 "고려의 강조는 임금을 죽인 역적인데, 이웃 나라까지 괴롭히니 용서할 수 없는 놈입니다."
이 말을 들은 거만의 성종은 무릎을 쳤다.
 "내 그러지 않아도 고려가 눈의 가시이었느니라."
핑계가 없어서 치지 못하는 터였으므로 좋은 기회라고 생각했다.
그러나 함부로 군사를 일으킬 수도 없으므로, 먼저 급사중(급사중=서무를 총할하고 간하는 일을 맡은 벼슬)으로 있는 양명과 대장군 나율윤을 문죄사로 하여 고려에 보내 목종을 좇아낸 경위를 마쳤다.
고려는 난처했다. 아무리 변명을 해도 변명을 들으러 온 사람들이 아니고 트집을 잡으러 온 사람들이다. 귀를 기울이지 않았다.
고려에서도 하는 수가 없었다. 거단파의 싸움을 피할 수 없게 되었다.
더구나 강조는 자기가 저지른 일이요, 그는 장군이다. 거만과의 싸움을 주장했다.
강조가 진두에 나서기로 했다. 안소광, 최현민, 이방, 박충숙, 최사위들을 부장으로 삼아 30만 대군을 거느리고 통주(통주=지금의 선천)에 진을 쳤다.
거만에서도 의군천병이란 이름으로 40만 대군을 성종이 직접 거느리고 압록강을 건너 흥화진을 공격했다.
강조는 군사를 셋으로 나누어 통주성 남쪽으로 나아가 강을 격하고 진을 쳤는데, 한 부대는 통주성을 지키게 하고, 한 부대는 통주 근처 사증에 매복시키고, 통주 서쪽 강줄기 셋이 합치는 곳에 진친부대를 강조자신이 지휘했다.
이 때 고려에는 신무기가 나왔다. 검차라는 것인데, 칼날이 수레처럼 돌아서 적군을 접근시키지 않는 것이었다. 이 검차 때문에 거단군은 한걸음도 나오지 못하고 여러 차례 퇴각하지 않을 수 없었다.
 "거단 오랑캐들 형편없구나, 허수아비 같은 것들."
단순한 강조는 거단군을 깔봤다.
진중에서 술을 마시고 진탕하게 놀아댔다.
거단의 성종은 그 틈을 타서 결사대를 보내어 밤중에 통주성을 기습시켜 점거하고 말았다.
통구성을 수비하던 장수는 탈이나 강조의 진중으로 가서 그 사실을 보고했다.
잔뜩 자만하여 안하무인격이 된 강조는 그 보고를 듣고 곧이듣지 않았다.
 "무슨 소리요? 장군은 그만한 일로 놀라서야 되오? 대군을 거느리려면 덤비지 말아야 하오."
도리어 꾸짖는 것이 아닌가.
 "이리 와서 술이나 한잔 드오. 싸움터의 적병은 많으면 많을수록 좋은 것이오. 가까이 오도록 내버려두오" 술에 취한 강조는 이런 식으로 큰 소리만 치며 술만 마신다.
그런데, 또 그 진중에 있던 한 장수가 급한 소리로 보고한다.
 "장군 큰일났습니다. 적병이 바로 이 진영까지 쳐들어옵니다."
아무리 검차라도 그 위력에는 한도가 있는 것이다. 거란군은 많은 희생도 치르지 많고 수비진을 돌파했다.
적군의 함성이 천리를 진동한다. 그제서야 강조는 비틀거리면서 장검을 뽑아들고 지휘하려 했다.
그런데 이게 웬 일인가. 강조는 칼을 떨어뜨리고 와들와들 떨면서 뒷걸음질치더니 푹 엎드린다.
칼을 뽑아든 순간, 그의 몽롱한 눈앞에 목종의 환상이 떠오른 것이다. 더구나 그 목종의 환상은
"대역무도한 강조야! 네가 네 죄를 모르느냐. 천벌을 받을 때가 왔다.
하고 외치는 것 같았다.
강조는 우둔하여 사태를 밝히 헤아리지 못하고 결국에는 목종을 죽이게 했으나, 그 죄의식으로 고민하고 있었던 것이다. 그 고민이 취기와 함께 환상으로 나타난 것이다.
강조는 투구를 벗어 던지고 꿇어 엎드렸다.
 "전하! 죽을죄를 지었사옵니다. 죽을죄를 지었사옵니다. 죽을죄를…"
그러는 사이에, 장막 안으로 걸안 병사들이 쳐들어왔다.
걸안 병사들은, 실성한 사람처럼 엎드려서 `죽을죄를…' 외치고 있는 강조를 결박해서 성조에게로 끌고 갔다.
이 때에, 강조의 진중에 와 있던 이현운도 함께 붙잡혀갔다.
걸안의 성조는 이 현운에게도 항복하라고 했다.
이 현운은
"두 눈이 이미 새해와 달을 우러러보게 되었으니, 어찌 옛 산과 내를 생각하고만 있겠습니까." 하여, 항복하였다고 한다.
성종이 강조의 우직함을 미워하지 않고, 그 호방한 인품과 뛰어난 무술이 마음에 들어,
 "여봐라, 강 장군의 포박을 풀어라." 하고 명령한 뒤, 좋은 말로 달랬다. 강조의 무예가 뛰어났던 모양이고, 그것이 걸안에까지 알려졌던 것 같다.
 "강조는 들으라. 내 너를 당장 죽일 것이로되, 대국의 군주는 도량이 넓은 법이라, 너의 재주를 높이 보아 죽이지 않을 것이니, 마음을 돌려 나에게 충성을 다함이 어떤고."
강조는 역시 무인이었다.
 "나는 그런 것을 모르오. 나는 고려에서 태어나서 고려 임금을 섬겼으니 고려에서 죽을 일이지, 어찌 남의 나라에 가서 남의 임금을 섬기겠소." 항복하기를 거절한다. 할 수 없는 일이었다. 걸안의 성종은 마침내 그를 죽였다.
고려사에는 강조의 최후를 이렇게 적고 있다.
―강조는 처음 걸안병과 두어 차례 싸워서 이겼다. 그래서 교만해져 진중에서 바둑을 두면서 부하들에게만 지키게 했다. `적군이 왔다.'고 보고가 와도 강조는 바둑판만 들여다보면서, `독 안의 쥐는 클수록 좋다. 더 가까이 오도록 놔두라.' 면서 아랑곳하지 않았다. 재차 삼차 보고해도 마찬가지였다. 걸안병이 눈앞에 나타나, 강조가 정신을 차렸을 때에 이미 여러 겹으로 포위 당하여 어찌할 수 없었다. 그런 중에서도 정신없이 칼을 빼어 들고 적군을 향하는 찰라, 강조의 눈앞에 목종의 환상이 나타나 앞을 가로막았다. 강조는 땅에 엎드려 `죽을 죄를, 죽을 죄를' 하고 외쳤다. 거기에 걸안병이 덮어들어 포박하여 성종에게 끌고 가 목을 잘랐다.
이 고려사의 기록으로 보면 강조는 임금을 죽인 역적으로 되어 있으나, 고려의 입장으로 보면, 천추태후가 김치양에게 미쳐 태조 왕건의 혈통이 아닌 김가 자식이 대통을 잇게 될 뻔한 것을 강조가 김치양 일당을 무찌르고 대량군을 옹립했기 때문에 고려왕조의 혈통이 끊어지지 않았다는 공로도 있었던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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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원본글 : 산림조합 산림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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