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IT/옛날 이야기

옛 이야기(고전) - 소년 황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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삼국 시대의 말엽, 백제의 마지막 의자왕 14년, 신라의 진덕여왕의 뒤를 이어 서기 654년에 진골(부모 중 한 쪽만이 왕족)인 김춘추가 왕위에 오르니, 이가 곧 신라 29대 태종무열왕이다.
삼국시대는 서로 치고 물리치고 하던 때라, 신라로서는 비록 당의 힘을 빈다 하더라도, 북쪽에는 고구려, 서쪽에는 백제를 적으로 두고 있어, 둘을 함께 거꾸러뜨릴 수는 없고, 그중 하나를 먼저 쓰러뜨러야겠는데, 고구려는 지금의 황해도 함경 남도를 남단으로하여 만주 지방까지 점령하고 있어 광대한데 비해, 백제는 주로 지금의 충청남도와 전라 남북도를 점하고 있을 뿐이어서 백제를 먼저 쳐 없애는 것이 상책이라고 생각했다.(신라는 지금의 강원도·경기도·충청북도·경상남·북도를 점하고 있었다.)
그러니 자연히 신라는 백제를 자주 치게 되고 백제는 백제대로 지지 않으려고 신라를 침범하여, 서로 성들을 뺏고 뺏기고 하는 싸움이 그치지 않았다.
그러던 때의 일이다.
"어머니, 어머니 ! "
창 소년이 숨이 차서 쓰러질 듯 허둥지둥 집안으로 뛰어들면서 소리친다.
"얘야, 무엇이 그리도 급하나."
창의 어머니가 눈이 둥그래져서 방에서 마구 뛰어 나온다.
말이 막힌 창 소년은 어머니 팔이 안기며 눈물부터 흘리면서 마음이 급하다.
"왜 그러느냐?"
창의 태도를 이상하게 여긴 어머니가 섬뜩한 느낌으로 아들의 말을 기다린다.
"저, 아버지가......"
"뭐? 아버지가? 아버지가 어쨌단 말이냐?"
"아버지가 돌아가셨대."
"뭐야? 돌아가셨어?"
"응"
어머니의 눈에도 눈물이 핑 돈다.
"누가 그러던 ? "
"동네 사람들이 땅을 치면서 우는 소리를 들었어. "
눈앞이 캄캄해진 어머니는 흐르는 눈물을 손등으로 닦으면서 메는 목을 진정시킨다. 아들에게 연약한 꼴을 보이지 않으려는 것 같다. 도리어 가라앉은 소리로 아들을 타이른다.
"아버지는 장한 일을 하셨단다. 우리 백제를 위하여 잘 싸우다가 돌아가셨으니 사나이로 태어나서 값진 죽음을 하신 거다."
입술을 깨무는 것은 슬픔을 억지로 참는 아픔의 표시일 것이다.
창의 아버지는 황 준. 청풍령싸움에서 신라의 김 유신과 싸워 그만 전사를 한 것이다.
그날 밤, 창 어머니는 남편이 쓰던 방에 창을 데리고 들어가, 남편의 영전에 맹세 하였다.
"우리에게 아들이 있으니 당신의 원수를 갚게 하고, 당신이 못다한 충성을 대신 하도록 하겠읍니다."
그리고 나서, 아들에게 이른다.
"이 어미가 너에게 충과 효 두 자를 가르친 것은 오늘과 같은 일이 있어도 슬퍼만 할 것이 아니라 네 갈 길을 밝히 정하기 위해서였다, 알겠느냐."
"네, 어머니 ! 그럼, 칼쓰고 말 달리는 법을 배워야지요?"
"그러고말고. 계룡산에 가면 도침이라는 대사가 있는데, 벼서와 전술에 능할 뿐 아니라 검술이 퍽 뛰어났다더라. 그 도침 대사를 찾아가서 공부를 하여 훌륭한 무사가 되어 돌아오너라.
"그럼, 내일이라도 떠나겠읍니다."
그 때, 창의 나이 열 살.
장례가 끝나자, 어린 창은 어머니의 품에서 떠나 도침 대사를 찾아나선다.
"어머니. 다녀오겠습니다. 안녕히 계십시요."
"오냐, 잘 다녀 오너라. 가거든 도침대사의 말씀을 잘 듣고 공부 잘 하면서 몸조심 해라.
어머니는 할 말도 많다. 어린 자식을 떠나 보내려니, 눈물도 감춰야지만, 어찌 걱정이 없겠는가.
창은 떨어지지 않는 발길을 돌려 계룡산으로 도침 대사의 암자를 찾았다.
창은 도침대사의 가르침을 받아 무럭무럭 자랐다. 몸만 자라는 것이 아니라, 낮에는 칼쓰기와 말달리기, 밤에는 병서와 전술을 배우는바, 그 재주가 비범하게 뛰어났다.
고향을 떠난지 5년도 못 되어 스승과도 겨룰수있게 된 훌륭한 검객이 되었다.
"선생님, 이만하면 목적을 이룰수 있겠읍니까 ? "
창은 일편단심 아버지의 원수 김 유신을 쳐서 신라를 백제 앞에 무릎 꿇게하는 꿈을 꾸고 있는 것이다. "네 검술이 일당백으로 뛰어나기는 하지마는 김 유신은 더 뛰어난 사람이다. 너는 지금의 갑절만큼은 배워야 한다.
"선생님 지시대로 거행하겠읍니다."
창은 공부를 더 계속했다. 그러나, 세상, 일이란 마음대로 되는 것이 아니다. 창의 계획과 세상 형편은 맞아 떨어지지 않았다.
백제의 충신 좌평(지금의 장관) 성충이 656년에 옥사하고, 659년에 겁도 없이 신라의 독산, 동잠의 두 성을 치기도 했으나, 660년에 신라의 김 유신과 당나라 소 정방이 대군을 이끌고 동서 양쪽에서 쳐들어올때, 백제는 황산벌(지금의 충남 논산)에서 탄현(지금의 대전동쪽의 식장산)을 넘어온 신라군을 맞아 싸우다가 계백장군이 전사하고 패하는 한편으로 백마강에서 당군에게 패하고, 사비성(지금의 부여)이 위태로와지자 의자왕은 북쪽 웅진성(지금의 공주)으로 피했으나 사비성이 함락되니 그해 7월 18일 모두 항복하고 말았다.
창으로 봐서는 어이없는 일이다. 나라가 망한 것도 망한 것이지마는, 원수갚는 일은 어떻게 되는 것이냐.
"선생님, 기가 막힙니다. 어떡하면 좋습니까 ? "
도침대사에게 호소해봤자 무슨수가 있겠는가.
"오냐, 니 속이나 내 속이나 별반 다를 봐가 없다. 나라가 없어진 터에 그보다 더 큰 비극이 어디 있으며 그보다 더한 아픔이 어디 있겠느냐. 모두가 운명이니라."
눈물들을 흘리며 절대적인 운명 앞에 옴짝달싹도 못 한다.
창이 칼쓰기, 말달리기, 병서, 전술을 배워서 어떻게 하겠다는 거냐.
없이진 나라를 다시 세울 수 라도 있단 말이냐.
그러한 운명 속에서도 이곳 저곳에서 백제 유민들이 의병을 일으켜 망한 나라를 다시 일으켜 세워 보려고 했으나 모두 허사로 돌아갔다.
도림대사도 백제의 종신 장군 복신과 짜고, 일본에 볼모로 갔던 왕자 부여풍을 왕으로 세우고 주류성에 근거를 두어, 스스로 영차 장군, 복신은 상잠장군으로 칭하고, 백제의 유민들을 모아 깃발을 쳐들었으나, 일은 안 되고 시간을 끌고 하는 동안에 서로 사이가 벌어져 마침내는 도림도 복신에게 죽고, 복신도 부여풍에게 죽고, 부여풍 역시 당장 유인궤가 돕는 유 인원에게 당하고 말았다.(663년) 도림이 죽기 전에 창은 참고 견디다 못해 폐허가 다 된 고향으로 돌아왔다.
물론 헤어질 때 도림 대사와의 사이에는 아무도 모르는 약속이 있었다. 그 약속이 이루어지면 창의 원수가 갚아지리라는 것은 짐작이 간다. 그러나 과연 그 약속이 이루어질 것인지.
창의 어머니는 나라와 남편을 위하여 사랑하는 어린 아들을 떠나 보낸 뒤 그 아들이 하루속히 성공하여 돌아오기를 날마다 기다리고 있었다.
나라가 망하자 희망이 없음을 깨닫고 자결이라도 하려 하였으나 소식조차 묘연한 아들을 두고 죽을 수도 없어서 소식이나마 오기를 기다리는 참이었다.
그러던 어느 말, 이제는 청년 장부가 되어 아들이 돌아왔다. 다 자라 온 아들을 보니 마치 죽은 남편이 돌아온 것만큼이나 반갑고 믿음직스러웠다.
"얼마나 고생이 많았느냐. "
"아니올시다. 소자는 아무 일 없었사오나 어머님께서는 얼마나 애태우시고 고생 하셨습니까, "
"원, 아이도....... "
말끝을 맺지 못하고 창의 얼굴에 자기 얼굴을 비비며 눈물을 흘린다.
"그래, 공부는 어떻게 되었느냐."
"어찌 완전을 기하겠습니까마는 할 때까지는 했읍니다. 그리고 비록 나라는 없어졌으나 마음먹었던 복수는 잊지 않고 있읍니다.
"장하다. 참, 아버지께 인사드려야지."
창과 어머니는 아버지 영전에 엎드렸다.
"아버지, 나라가 이 꼴이 되었으니 지하에서 얼마나 애통해 하십니까. 불충하고 불효한 이 자식은 그동안 공부한다고 어머님 곁을 떠나 어머님마저 무한한 고생을 시켜 드리고, 모든 기회를 놓쳤읍니다. 그러나 어찌 사내 대장부가 그대로 주저앉겠읍니까. 당장이라도 떠나서 마음먹은 바를 결행하겠읍니다." 통곡을 하며 아버지 영전에 맹세한다.
"영감, 우리 아들이 이렇게 씩씩하게 자라서 돌아왔소. 아무 걱정 마시고 고이 잠드시오. 다음 일은 창과 저에게 맡기시오. "
어머니도 영전에 엎드려 고혼을 위로 한다.
지난 이야기들을 주고 받느라고 시간가는 줄을 모르고 밤을 밝혔다.
창은 집에 머물러 뜻없는 시간을 보낼 까닭이 없었다.
아침이 되어, 간단하게 몸가림을 정돈하여 신검 두자루를 깊이 간직하고 꿈에도 잊지 않은 원수를 갚고자 길을 떠나게 되었다.
"어머니 ! 안녕히 계십시오. 이번에 만일 성공하지 못하면 저는 돌아오지 않을 것입니다."
어머니에게 하직을 고한다.
"오냐, 부디 성공해라. 그리고 조금도 이 어미 걱정을 마라."
어머니도 결연히 부르짖는다. 떠나는 아들에게 마음 약한 데를 보이지 않고 용기를 북돋워 주기 위함이다.
"어머니......."
더 말이 나오지 않는다. 마지막 길이라는 것을 창 자신이 더 잘 아는 일이다. 사면 천지가 백제 아닌 신라인 것이다. 어디를 간들 희망은 없다. 원수 갚음이 성공하든 못 하든 돌아올 가망은 없다.
자연히 얼굴이 어두운 그림자가 스친다. 말을 못하고 돌아서는 아들을 보자 어머니는 의연히 기세를 돋운다.
"그게 무슨 못난 짓이냐. 큰일을 앞에 두고 개인 사정이나 조그만 일에 주저해서야 어찌 대장부의 짓이라고 하겠느냐, 뒷일은 조금도 염려 마라. 너는 내 아들이기 이전에 백제의 아들이다."
격려하는 말에 창은 용기가 솟는다.
"예, 어머니 ! "
"꼭 성공하고 오너라."
어머니의 이 말도 꼭 돌아오리라고 믿고 하는 말은 아니다.
발걸음이 무겁다는 말은 이런 경우에 알맞는 말인가 보다.
그야말로 떨어지지 않는 마지막 발길을 돌렸다. 그리고는 신라 서울 경주를 향하여 한눈도 팔지 않고 걸었다.
열흘 남짓 경주 가까이에 이르러, 창은 미리 준비해 가지고 갔던 넝마옷을 갈아 입고 거지 행색으로 밥을 빌어 먹고 다녔다.
이 거지는 끼니 때가 되면 밥을 빌어먹으며 틈만 나면 아무 데서나 칼춤을 추었다.
성한 것도 같고 미친 것도 같은 거지가 칼춤을 춘다는 소문이 퍼지자 경주 성안 사람들은 구경하려고 이리 몰리고 저리 몰렸다.
창은 과연 칼춤을 잘 추었다.
보는 사람마다 놀라지 않는 사람이 없었다.
창은 칼춤을 추면서 경주 성안을 석달을 돌아다녔다.
경주 거리에서는 모르는 사람이 없게 되었다.
창의 칼 부리는 재주는 날이 갈수록 오묘하여 구경하지 못하면 한이 된다고 평판이 높았다.
이 소문은 드디어 신라궁궐에까지 들렸다. 궁궐에서도 화제가 되었다.
태종무열왕은 호기심이 났다. 김 유신에게 의논했다.
"대각간, 들으니, 거지가 칼춤을 잘 춘다는 소문이 파다하니 구경 좀 합시다."
대각간이란 신라의 최고 벼슬로 김 유신이 백제를 평정하고 얻은 벼슬이다. 그 때에는 임금 아래에 그보다 더 높은 벼슬은 없었다.
"그리 하오리다."
김 유신은 며칠 후 칼춤 추는 거지를 궁궐로 불러 들이게 했다.
태종무열왕은 만조 백관을 거느리고 봉황대에 큰 잔치를 베풀어 그 거지에게 칼춤을 추게 했다.
(옳다,됐다.)
창은 마음 속으로 쾌재를 불렀다.
(천재일우의 기회다. 이 기회를 놓쳐서는 안 된다.)
하고 이를 갈며 맹세했다.
창은 어전에 섰다. 큰절을 올리고 나서 붉은 전복을 입고 신검 두개를 두 손에 들고 어전에서 칼춤을 추었다.
창의 칼춤은 처음에는 꽃잎이 어지럽게 떨어지는 듯 하더니, 차차 공중에 뻗쳐 있는 무지개 속에 가리어져 몸은 보이지 않고 번갯불같이 번쩍거리며 칼소리만 뎅그럭쟁강 한다.
모두들 넋을 잃고 있는데, 창의 칼날이 가끔 김 유신 대각간의 머리 위를 넘실거린다.
이 때, 김 유신 대각간은 갑옷투구에 청룡검을 들고 단정히 앉아 창의 동정을 뚫어져라고 노려 보고 있다.
그 기미를 알아차린 창은 속으로
(김 유신은 범상한 사람이 아니다, 참으로 하늘이 내린 신인이다. 먼저 범하다가 실패하면 아무것도 안 된다. 이리치나 저리 치나 마찬가지이니 왕부터 범하고 당황하는 사이에 김 유신을 범하리라.)
고 다짐했다.
이윽고 창의 칼날은 김 유신의 머리 위에서 물러나 차차 태종무열왕의 머리위로 옮아간다.
태종무열왕은 황홀해서 아무것도 모르고 있었다.
김유신은 거지의 정체를 어느정도 눈치챘다. 칼날이 자기 머리 위에서 사라지자 더욱 바짝 정신을 차렸다.
칼날이 왕에게로 향하자 지체할 수 없다고 판정하고 비호처럼 내달아 청룡검을 빼어 들고 창을 내리쳤다.
창은 날쌔게 피하기는 했으나 김유신의 칼이 더 빨랐다. 창의 오른팔이 칼과 함께 떨어졌다.
김 유신은 왼팔로 번개같이 덤벼드는 창을 내리쳤다. 그러나 창이 몸을 공중으로 솟구쳐 날리는 바람에 팔을 맞지 않고 왼손에 든 칼만 두 동강이 났다. 창은 모든 것을 단념했다. 김 유신은 호령을 한다.
"이놈, 너는 어떤 놈인데, 무슨 원혐으로 무엄하게도 못된 짓을 하려 하느냐."
"나는 백제 대장 황 준이 아들 창이다. 너의 임금이 너를 보내어 우리 백제를 망하게 하고, 또한 나의 아버지를 죽였으니 너는 나의 공사간의 원수다. 그 원수를 갚으러 왔다. 그러나 원수를 갚지 못하고 도리어 네손에 죽으니 장부의 한을 천추에 남긴다. 너희가 반드시 망할 날이 있을 것이니, 지금 죽어도 그 때에 가서 눈을 감으리라."
말을 마치자, 창은 날쌔게 오른팔과 함께 떨어졌던 신검을 왼손으로 집어 제목을 질렀다.
슬프다, 소년 황 창이 원수를 갚으려고 섶에 누워서 간을 씹는 고생을 하면서 검술을 배웠으나, 원수를 갚지 못하고 갈데 없는 고혼이 되고 만것이다.
김유신은 창의 갸륵한 충효에 감동되어 시체를 거두어 장사지내고 묘비에 "백제 충신 황 창의 무덤"이라고 새겼다.

 

 

황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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