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IT/옛날 이야기

옛 이야기(고전) - 비형 왕자(상)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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신라 고허촌의 사량부라는 마을에, 세상 사람들이 도화랑이라고 부르는 어여뿐 아가씨가 있었다. 도화랑은 평민의 딸로 태어났으나, 복숭아꽃 같이 아리땁고 재질 또한 뛰어나, 근방 사람들은 너나 할 것 없이 칭찬이 자자했다.
도화랑이 나이 들어 열 일곱 살이 되었을때, 모두 욕심을 내건마는 워낙 평민의 딸이라 좋은 집안에서는 기피하고, 결국 한마을의 의지가지없는 총각과 혼인을 했다.
신랑은 미천하지는 않으나 사고무친의 고아라 데릴사위로 처가살이를 하고 있었다. 그들은 금실이 좋았다.
신랑이 장인 장모 모시기를 친부모 이상으로 하고, 신부 역시 있는 정성을 다하여 신랑을 섬겨 남들이 부러워하였다.
예나 이제나 호사에는 다마라는 말이 있드시, 이 알뜰하고 평화스러운 가정에 크나큰 풍파가 일었으니 세상은 무상한 것이다.
때는 신라 제25대 진지왕 4년(서기 579년), 왕은 나라 다스리는 일에는 마음이 없고 주색에 빠져 있었다. 사량부의 도화랑이 보기 드문 미인이라는 소문이 궁중에까지 들려, 왕이 측근에게 도화랑을 한번 불러 보겠다고 한 것이다.
발 없는 말이 천리 간다고 그러한 말이 사량부 도화랑의 집에까지 들려 왔다.
"서방님, 이 일을 어찌 하면 좋습니까"
"글쎄, 나라님이 그러신다니 안 들을수도 없고, 들을 수도 없고 어찌 하면 좋소"
젊은 부부는 걱정이 태산 같다. 뾰족한 방법이 없는 것이다.
"아무리 나라님 분부라고 옳지 않은 일이야 할 수 있읍니까. 만일에 불려가서 무리한 요구에 부닥치면 자결이라도 하고 말겠습니다. 서방님 곁을 떠나기는 창자를 에는 것보다 더 아픈 일입니다마는, 옳지 않은 일을 당하는 것보다는 차라리 깨끗이 죽어서 추잡한 기억을 안 남기는 것이......"
말을 하면서도 차마 끝을 맺지 못하고, 남편 무릎에 엎드려 흐느낀다.
"부인 말이 옳기야 하지마는, 목숨을 끊게 까지야......"
역시 남편도 말을 잇지 못한다. 어찌하겠는가, 한숨밖에 더 쉬겠는가.
"첩인들 어찌 서방님을 홀로 두고 죽고 싶겠읍니까, 나라님의 분부를 어길수 없어서......"
"우리 운명이 무엇이 어째서 우리가 무슨 잘못을 저질렀기에 이런 기막힌 꼴을 당한단 말이오. 하늘이 무심하지 않으리다. 나라님이 아무리 무도하다 하여도 아직 모를 일이 아니오.
비관도 하다가 희망도 가져 보다가 하는 것이었으나 걱정은 여전하다. 그러나 저러나 어찌할 도리는 없고, 되어가는 대로 맡길 수밖에 없었다.
신라 서울 계림 앞뜰을 궤뚫고 수레 한 채가 달리고 있다. 그 수레는 산 넘어 강건너 달려서 사량부 마을앞에 멎었다. 진지왕의 분부로 여관 두 사람이 도화랑의 집을 찾아온 것이다.
마치 기다리고나 있었다는 듯, 가슴이 덜컥 내려앉은 도화랑이 방문을 열고 나온다.
앞에 선 여관이 소매에서 봉서를 꺼내며, 냉랭하게 말한다.
"도화랑은 왕명을 받으라"
뒤에 섰던 여관 하나가 앞으로 나서서 시키는 대로, 도화랑은 할 수 없이 세 번 큰절을 하고 봉서를 받는다.
"일각을 지체 말고 입시하라는 왕명이니, 즉각 시행하라"
도화랑은 아무말도 못 하고 옷을 갈아입고 나오며
(이 길이 마지막이로구나. 나는 죽기로 마음 먹은 몸이니 두려울 것은 없지마는, 늙은 부모는 어찌 하며, 저 남편은 또 어떻게 할꼬)
하는 생각에 눈물이 방울방울 흘러 내린다. 그런다고 목놓아 울 수는 없다. 두 여관에게 인도되어 수레에 오른다.
도화랑이야 창자가 끊어지건 말건 수레는 아랑곳 없이 떠난다.
도화랑을 떠나보내는 집 식구들은 눈으로는 볼 수 없는 광경이었다. 남편은 기가 막혀서 방바닥에 쓰러져 까무러치고, 문밖까지 따라 나오며 땅을 치고 한숨 겪어 우는 부모는 눈이 뒤집힌다. 그들 눈에는 온통 하늘이 노랗고, 집안은 캄캄하였다. 그러나 무슨 소용이 있으랴 무정한 수레는 멀어져만 간다.
천지개벽 이래 그렇게 되기로 미리 결정되어 있었다는 것처럼, 도화랑을 태운 수레는 인정사정없이 마냥 달려 마침내 화려한 궁중으로 들어갔다.
꿈에도 본 일이 없는 대궐에 들어와 두근거리는 가슴을 가라앉힌 도화랑은 두 여관이 하라는 대로 나라님 앞에 엎드렸다.
눈을 가늘게 뜨고 이 광경을 바라보던 진지왕은 감탄한 어조로 말한다.
"너의 소문은 익히 들은 바이거니와 과연 미인이란 말이 헛말이 아니로다"
입이 헤벌어진 진지왕은 만족한 웃음을 띤다.
가슴이 두 방망이질 하는 도화랑은 얼굴이 붉어진 채 엎드려 있다.
"네 이름이 도화랑이랬지, 짐이 너를 부른 것은 하도 잘 났다기에 한번 보려고 한 것이다. 어떠냐? 이제부터는 궁중에서 짐을 섬기지 않겠느냐?
생각한 대로다. 진지왕은 도화랑을 후궁으로 삼으려는 것이다.
도화랑은 죽을때에 죽더라도 그냥 죽을 수는 없었다. 집에 있는 양친이나 사랑하는 남편을 위해서라도 용기를 내어야겠다고 다짐했다.
"상감마다, 미천한 몸으로 성은을 입사와 용안을 우러러 뵙게 된 것만도 황공하옵거늘, 어찌 감히 성총을 입사오리까"
반대의 뜻을 비친 것이다. 진지왕도그냥 물러서지 않는다.
"네 얼굴도 잘났지마는 마음 또한 갸륵하도다. 그러나, 짐이 이미 결심한바이니 다른 말 말고 짐의 곁에 있으렸다"
"상감마마, 성은은 망극하오나, 지아비가 있는 몸이옵니다. 하늘에는 해가 하나이듯 기집에게는 지아비가 하나인 줄로 아뢰옵나이다. 분부를 거두시옵소서"
"그럼, 무엄하게 네가 짐의 뜻을 거스른다는 말이냐?"
진지왕의 얼굴에는 노기가 비친다. 도화랑은 굽히지 않는다.
"상감마다, 백성의 어버이이신 마마의 은덕으로 여도를 지키게 해주시옵소서, 이 분부만은 거행하지 못하겠나이다"
"네가 왕명을 거역한다면 어찌 되는지 알렸다"
진지왕은 우격다짐으로 굴복시키려 한다.
"상감 마마, 계집의 도리를 지키지 못하올진데 살아서 무엇 하오리까. 국법을 달게 받겠나이다.
도화랑도 떨고만 있지 않았다. 도리어 마음이 가라앉는 듯 했다.
당돌한 도화랑의 태도에 진지왕은 안되겠다고 생각했는지 태도를 누그러뜨린다.
"너의 굳은 절개는 가상하도다. 그렇다면 네가 지아비가 없는 몸이라면 어찌 하겠느냐?"
진지왕은 장난기 어린 얼굴로 도화랑을 바라보며 달래듯 말한다.
"상감마마, 지아비 없는 몸인바에야 어찌 분부를 거역하겠나이까"
도화랑도 다시 부드러운 말씨가 되었다.
토끼가 용궁에 갔다가 살아 나온 전설이 그 때에도 있었는지 모르지만, 아마 분위기가 도화랑이 살아나는 것만 같다.
뜻밖에도 진지왕은 더 말하지 않고 여관을 돌아보며,
"여봐라, 도화랑을 즉시 돌려 보내렸다" 한다.
여관들도 도화랑도 각기 자기 귀를 의심했다. 그러나 사실이었다.
"상감 마마, 성은이 망극하나이다"
도화랑은 눈물을 흘리면서 진지왕에게 큰절을 올리고, 여관에게 인도되어 대궐을 물러나왔다.
꿈만 같은 대궐길이었다. 꼭 죽을 것으로만 알았던 도화랑이 무사히 집에 돌아오자, 남편이나 부모는 말할 것도 없고 온 마을이 감격했고, 진지왕의 만수 무강을 빌었다.
그러나, 세상 일이란 정말로 알수 없는 것이다. 그런 일이 있은 후 진지왕은 건강이 나빠져 자리를 지키지 못하고, 번뇌와 후회 속에 시름시름 앓다가 그만 세상을 떠나고 말았다. 때는 서기579년 7월.
진지왕이 붕어하고 그 뒤를 이어 26대 진평왕이 즉위했는 데 진평왕은 진지왕의 형 동륜의 아들이다.
그렇거나 말거나 세월은 흐른다. 진지왕이 죽은 지 이태 뒤에 도화랑의 남편도 원인 모를 병에 걸려 세상을 떠나고 말았다.
도화랑은 청상과부가 된 것이다. 그에게는 단 한 점의 혈육도 없었다.
서기 581년 봄의 일이다. 남편이 죽은지 스무날이 지난 어느날 밤, 도화랑의 집에는 이상한 일이 일어났다.
자정이 지난 깊은 밤은 고요하기만 했는데, 느닷없이 천지가 진동하고 음산한 바람이 휙 불더니, 난데없이 무지개 같은 광채가 도화랑의 방에 들이 비쳤다.
뿐만 아니라, 그 광채 속으로 금관을 쓰고 곤룡포를 입은 진지왕이 생시와 다름 없는 행색으로 나타나, 도화랑의 방으로 들어오는 것이었다.
이 광경을 바라보던 도화랑은 너무 놀라 기절을 한다.
진지왕은 쓰러진 도화랑을 일으키면서,
"이, 무슨짓이냐? 정신을 차려라"하고 한숨을 쉰다.
도화랑은 차츰차츰 제 정신으로 돌아온다. 눈을 떠 보니 이태 전에 뵌 일이 있는 진지왕이 살아 있을 때의 그 모습대로 위의를 갖추고 자기를 안고 있는 것이 아닌가. 벌떡 일어나 뒤로 물러서서 큰절을 올리고, 꿇어 엎디어
"대왕마다, 귀하신 욕체로 누지에 어이한 행차시오니까"
하고, 고개를 들지 못한다,
"잘 있었느냐, 짐이 찾아온 것은 전에 한 약속을 잊지 않은 까닭이다."
도화랑도 잊지는 않았다. 그러나 약속까지 한 것은 아니며, 그 자리의 화를 면하기 위한 것 뿐이었는데, 이렇게 진지왕이 생시처럼 찾아오니 어안이 벙벙 하였다.
"대왕 마마, 황공하오나 이미 더럽힌 몸으로 어찌 감히 분부를 받들 수 있사오리까"
"그건 짐이 잘 아는 일. 이젠 너도 의지할데 없는 외로운 몸이 아니냐. 전의 약속대로 거행함이 옳으니라"
"너무나 황공하옵나이다. 이 더러운 몸을 허물하지 않으시옵는다면 분부대로 거행하겠나이다"
이리하여, 진지왕은 그 날부터 이레 동안을 도화랑의 방에서 부부처럼 지내다가 자취를 감추었다.
그런데, 그 이렛 동안 도화랑 집 지붕위에는 오색 구름이 끼어 있었고, 도화랑의 방에는 알 수 없는 향내가 가득하였다.
이런 일을 겪고 난 도화랑은 마치 꿈을 꾸다가 깨어난 것도 같고 거짓말 같기도 하여 영문을 알수 없는 상태로 지내는데, 그 동안의 추억이 그립기 까지 하였다.
도화랑에게는 변화가 일어났다. 몸이 무거워진 것이다. 자기 배 속에 진지왕의 씨가 깃들인 것이다.
(참, 기이한 일도 다 있다. 내 배속에 어린 생명이 자라고 있단 말인가 진지왕의 혈육이 내 배속에......) 가슴이 설렌다. 그러잖아도 과부로 살지언정 자식이라도 하나 있었으면 하던 참이었다. 그러나,
(세상 사람들은 남의 속도 모르고, 과부가 어린애를 가졌다고 욕할 것이 아닌가, 이를 어쩌면 좋을꼬?) 하는 수치심도 있었다.
그러는 동안이 도화랑은 달수가 차서 해산하게 되었는데, 해산하는 날, 천지가 진동하더니 오색 채운이 지붕을 뒤덮고 서기가 뻗힌 가운데 옥동자를 낳았다.
어쨌거나 도화랑은 기뻤다. 옥동자를 낳았으니 이제는 외롭지 않게 되었다. 아기 이름을 비형이라 지었다.
이 이야기는 감추어지지도 않고, 새어나가 마을 사람들이 알게 되고 얼다 안가서 세상이 다 알게 되었다. 따라서 궁중에까지 들리게 되었다.
그러니까 진평왕 4년 (서기 582년)의 일이다. 진평왕은 그 이야기를 듣고, 도화랑과 이 아들 비형을 불러 들였다.
"비형이란 그 아들을 낳기까지의 경위를 말해 보라"
진평왕은 도화랑과 비형을 번갈아 보며, 옥좌 앞에 엎드린 도화랑에게 명령한다. 도화랑은 진지왕과의 관계를 사실대로 아뢰었다.
"네 말이 사실이라면 그 비형이란 아이는 짐의 동생이 된다"
그렇다. 진평왕은 진지왕의 친조카이니 진평왕과 비형과는 사촌형제가 되는 것이다.
"짐이 그 아이를 맡아 기르려 하니 그리 알렸다"
도화랑으로서는 차마 못할 일이로되 아닌게 아니라 왕의 사촌동생을 미천한 백성 집에서 기를 수는 없다. 궁중에서 기르는 것이 어느 모로 보나 타당한 것이다.
"상감마다, 성은이 망극하나이다. 지당한 분부인 줄로 아옵나이다"
다시 더 다른 말을 할 수가 없었다. 그의 눈에서 눈물이 방울방울 떨어지는 것은 모성애의 소치이지마는 그것은 사사로운 정이요, 왕제를 왕에게 돌려 보내는 것 또한 어찌 할 수 없는 도리인 것이다.
진평왕은 선왕에 대한 도리도 있고, 왕실의 위신도 있고 하여 비형 아기를 내전으로 데려가도록 하고, 도화랑에게는 생활이 궁하지 않도록 보살펴 주라고 좌우에 분부를 내렸다.
도화랑은 메어지는 가슴을 안고 비형을 남겨 놓은채 궁중에서 나와 집으로 돌아오고 말았다.
그 후, 비형은 궁중에서 진평왕의 사랑을 받으며 자라나는데, 자랄수록 그 호탕한 기상과 영특한 모습이 보통 아이가 아니었다. 글을 배우거나 장난을 할 때에도 평범하지 않고 독특한 존재로 주위의 이목을 끌었다.
비형의 행동을 유심히 보고 있는 궁녀나 관원들이 그의 재주에 탄복하여 신동이라고 일컫게 되었다.
궁중에서 자라는 비형은 주위의 사랑을 독차지하고, 특히 진평왕의 총애를 입어 그의 나이 열 다섯 살에는 이미 벼슬까지 하게 되었다.
그러나 비형은 어딘가 무엇인지는 모르지만 서운한 무엇이 있었다. 나이 들어 깨달은 것이 자기의 아버지와 어미니가 누구인지 모르는 안타까움이었다.
(나의 아버지와 어머니는 누구이며, 살아 있을까 죽고 없는 것일까?)
비형은 알아내고 말았다. 꾀가 남달리 많은 그인지라 궁녀들을 살살 꾀어서 알아내기는 했으나, 자기 아버지는 자기가 나기 삼 년 전에 세상을 떠났고 자기 어머니 도화랑은 자기가 열살도 되기전에 아무 것도 바랄 것 없는 세상을 등지고 말았던 것이다.
만나 볼 수 없는 부모에 대한 그리움이 사무친 비형은 마침내 부모를 만날 재주를 부리기로 했다.
비형은 귀신을 점할수 있는 재능을 가지고 있었다. 그래서 비형의 부모의 혼령을 만난 것이다.
보통 사람으로는 능히 하지 못할 일을 하는 비형은 그 안타까운 심정을 부모의 혼령을 만나는 것으로라도 풀고 그 기쁨을 맛보고 있었다.
이 때, 신라 서울 안에는 뜻하지 않은 괴변이 일어났으니, 밤마다 이곳 저곳에 도깨비들이 모여드는 것이다.
낮에는 아무 일도 없다가도 밤만 되면 어디서 모여 드는지 도깨비들이 수없이 모여들어 기괴 망측한 작난을 하는 것이었다.
어떤 때에는 심술사나운 사람의 집에 불을 지르기도 하고, 어떤 때에는 부잣집 곡식을 퍼다가 가난한 집에 나누어주기도 하고 또 어떤 때에는 욕심 많은 사람 집에 똥벼락을 주기도 하여 그 행패는 헤아릴 수가 없었다.
이런 괴변을 당하는 서울 사람들은 전전긍긍하여 잠을 편히 잘 수 없었다.
그런데, 그 도깨비들은 신출귀몰이란 말 그대로 동에 번쩍 서에 번쩍 하는지라 잡을 수도 없었다

 

비형 왕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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