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IT/옛날 이야기

옛 이야기(고전) - 석상의 화신 下

『떽기 무슨 말버릇이 그렇담? 알고 싶다면 좀 더 정중하게 물어야지!』
『예! 그럼 잘못했읍니다. 좀 알려주세요! 호호홋!』
『아니 아직 주인댁이 날 덜 믿는 것 같아! 그럼 더 믿도록 해주지!』
『어떻게요?』
『맞으면 맞고 틀리면 틀린다구 하라구 주인댁은 남편 몰래 부엌 밑바닥에다 항아리를 묻고 돈을 감춰둔게 있지?』
『네?』
주모는 순간 깜짝 놀라고 말았다.
남편조차 몰래 숨겨둔 돈을 알아내다니 귀신이 곡할 노릇이다.
그렇다고 막상 실토할 수도 없는 노릇이어서
『그렇다고 치고요! 또요!』하고 얼버무리자
『그래도 솔직하지 못하군! 그럼 그 돈이 전부 얼마나 되나 알겠는가? 아마 주인댁도 나만큼은 모를꺼요!』하니 주모는 얼결에
『글쎄 저도 얼마나 되는지 잘 모르겠어요!』했다. 그러자 노인은
『그렇게 나와야지! 에 오늘 아침에 갖다 넣은 서른 두 냥까지 합치면 오천 삼백 예순 닷냥 여섯 푼이지 !』
『네?』목소리조차 높아진 주모를 바라보며
『틀림없을 테니 들어가 헤어보고 나오라구!』하고 노인이 말했다. 주모는 머리를 갸웃거리며 안으로 사라졌다.
부랑자는 노인의 행동에 한마디 끼어 들지 못하고 입만 딱 벌리고 있는데 노인이
『어서 술이나 마시게.』하는 바람에 겨우 정신을 차렸다.
이윽고 여인은 아주 탄복한 듯 나오면서
『어쩌면 그렇게 귀신같이 맞추세요? 했다,
『어떻든가 거짓말이 아니지?』
『예 한푼도 틀림없어요!』
『그럴테지! 그럼 이제부터 내 말을 믿겠지!』
『예 여부가 있읍니까! 말씀만 하세요!』
주모의 표정은 완전히 달라져 있었다.
『주인댁이 오늘 밤 죽을 운이여!』
『네?』
주모만 놀란게 아니고 부랑자마저 놀라고 말았다.
이제껏 무엇이던지 척척 알아 맞추는 노인의 말이니 틀림없는 얘기인 것이다.
『영감님 살려주십시요! 제가 땅속에 돈을 감추어 둔 것도 다아 잘 살아 보겠다고 한 일에서 비롯한 노릇인데 한번 재미있게 살아보지도 못하고 죽는다면 내 인생이 너무 억울합니다. 영감님 땅속의 돈을 다 드릴테니 목숨만 좀 살려주십시요!』
여인은 죽는게 싫은지 노인을 붙잡고 애원을 했다.
『땅속에 돈을 다 내게 줘버리면 주인댁은 너무 억울하지 않소? 그러니 내가 그 비방을 가르켜주고 주인댁이 살아나면 내게 천냥 짜리 어음 하나만 주시요!』
노인은 현금도 필요 없이 어음으로 천냥만 달라고 했다.
그리고는 비방을 아르켜 주었다.
술장수 여인은 노인의 말을 듣자 일찍암치 덧문을 내걸고는 장사를 걷어치우고 노인과 부랑자를 안방과는 동떨어진 구석방에 유하도록 하였다.
저녁을 일찍 치우고 대문과 방문을 단단히 걸어 채운 후 노인의 말대로 여인은 액땜을 하고 있는 판인데 밤이 이슥하자 누가 대문을 덜컹덜컹 흔들어대며 남자의 목소리가 났다.
『아니 오늘은 벌써 대문을 걸었네! 문좀 열어줘! 나요!』
『내가 누구란 말이야 아닌 밤중에 어떤 놈이 남의 집 대문을 흔드는 거야 어서 썩 꺼지지 못해!』
술집 여자는 안방에 앉아 소리만 고래고래 질렀다.
그러자 그 사내는 혼자 중얼거리더니 그냥 돌아가는 눈치였다.
그리고 아마 한시 경쯤 지나서다.
별안간 안방 문밖에 어떤 사내 그림자가 시꺼멓게 비치머니 안방 문을 덜컹덜컹 흔들어댔다. 그리고는 그래도 안되겠던지 힘대로 방문을 잡아 밀쳐버렸다.
그러자 문고리가 쑥 빠지면서 벌컥 문이 열리더니 장승같은 사내가 시퍼런 칼을 꼰아 들고 선뜻 방안에 들어섰다.
주인 여자는 「어이쿠 이젠 죽었구나」싶어
『에이구머니나!』하고 방 한쪽 구석으로 도망갔다.
이 때
『이년 불을 켜라! 어째 네 혼자냐?』 하는 낯익은 목소리가 들려왔다.
틀림없이 시골에 간다던 남편의 목소리였다.
『아니 여보 당신이 웬일이요?』
주인 여자는 무서움이 가셨는지 마음을 진정시키면서 이렇게 말을 던졌다.
그리고는 노인의 말이 귀신같이 맞는 것을 새삼 느꼈던 것이다.
먼젓번에 대문을 흔들던 사내의 음성은 남편 몰래 만나는 샛서방의 목소리고 그는 남편이 먼 고향에 다니러 간다는 소식을 듣고 찾아왔던 것이며 이런 기미를 알고 그전부터 꼬트리를 잡으려고 벼르고 있던 남편은 일부러 시골 다녀온다고 하고는 밤중에 급습을 한 것이다.
하여간 이렇게 해서 목숨을 건지게 된 주모는 다음날 천냥 짜리 어음을 노인에게 주면서 수 없이 치하를 했다.
이렇게 해서 그 집을 나선 두 사람은 황혼녁에 어느 산기슭에 도달했다.
마침 산 중턱에는 사람들이 많이 모여 있었다.
『우리 저기 가서 잠시 구경하고 가세.』
노인은 부랑자에게 그렇게 말하더니 사람들이 모여 있는 곳으로 갔다.
그 곳에는 지금 막 묘를 파고 관을 입관시키려고 하는 중이었다.
『어! 잠깐 입관을 중지하시요!』
노인은 별안간 사람들이게 소릴 쳤다.
사람들은 웬 미친 늙은이가 와서 그러나 싶어 노인에게 소릴 꽥질렀다.
『아니 남의 장지에 와서 웬 소란이요?』
『저놈의 늙은이가 미쳤나?』
여기 저기서 욕설이 마구 날라왔다.
『아뭏든 입관을 잠시 중지하고 내 말좀 들어보시요!』
노인은 욕설을 아랑곳하지 않고 다시 소리쳤다.
그러자 한 옆에 서 있던 상제가 무엇을 느꼈음인지 입관을 중지하라고 하는 노인 앞으로 다가섰다.
『노인께서 입관을 중지하라시는데 필시 까닭이 있으신 모양이니 서슴치 마시고 말씀해 주십시요!』
『내 우선 한마디 묻겠는데 이 장지는 누가 선택하였소?』
『네! 저기 계시는 이지관께서 특별히 골라주신 터입니다.』
『허허! 특별히 고른 장지라? 아무튼 큰일 날뻔 하였소!』
『예! 큰일이라뇨?』
상제는 깜짝 놀라면서 노인을 바라보았다.
그러나 지관이라 자처하는 늙으스레한 사람이 다가서면서
『아니 당신은 누군데 남이 잡아논 명당자리를 가지고 시비요? 아니 이 장지가 어때서 그렇소?』하고 마구 잡아먹을 기세로 덤벼들었다.
그러나 노인은 상제를 바라보며
『여하간 내 시키는대로 하시겠우? 자! 내 증명해 주리다!』
그리고는 한옆에 놓여 있는 커다란 바위를 파놓은 묘속으로 힘껏 집어던져 보라고 했다.
지관이나 사람들은 연상 미친 늙으니가 지랄하느라고 그런다 했지만 상제만은 의미없이 노인이 그러지는 않으리라 싶어 장정 몇 사람을 시켜 바위를 묘속에 던져 넣도록 했다.
그러자 펑소리도 요란하게 묘속에 갑자기 구멍이 뚫리는게 아닌가?
그리고 그 구멍 속에서 물이 콸콸 솟아나기 시작하더니 금방 묘 그득히 채워지고 말았다.
둘레의 사람들이 놀란 것은 말할 것도 없고 이 바람에 지관은 얼굴을 들지 못하고 걸음아 날 살려라 하고 줄행낭을 치고 말았다.
『노인 말씀을 듣지 않았다가는 큰일 날뻔 했읍니다. 보통 어른이 아닌줄 모르고 큰 실수를 저질렀던 죄 용서해 주십시요! 그리구 기왕이면 노인께서 장지를 선택해 주시면 대단히 감사하겠읍니다.』
상제는 노인에게 백배 고마움을 표하면서 장지를 선택해 달라고 했다.
이 곳에서도 노인은 명당자리를 한 자리 잡아 주고 역시 어음 천냥을 받았다.
노인이 지적해 준 땅을 파니 오색빛이 영롱하게 비쳤던 것이다.
이리해서 삼천 냥의 어음을 사흘 동안에 벌은 노인은 이번 어음 역시 부랑자에게 맡기면서 걸음을 옮겼다.
그런데 노인은 산 아래로 내려가는 것이 아니라 자꾸 산속을 향해 걸음을 옮겼다.
평상시 같았으면 천하없는 밤중일지라도 겁먹을 부랑자는 아니었지만 노인의 신비한 힘에 압도당한 끝이라 가슴이 덜컹하고 내려 앉는 듯하면서 소름이 오싹 끼쳤다.
혹시 저놈의 영감이 귀신이나 여우가 둔갑한게 아닐까--하는 생각이 들었던 것이다.
『영감님 어째 길을 놔두고 이렇게 산 속으로 들어갑니까?』
부랑자는 기어코 물어보고 말았다.
『왜 겁이 나나? 젊은이는 어떻게 나같은 늙은이보다 더 겁쟁이란 말이여?』
노인이 이렇게 빈정대자 부랑자는 갑자기 겁쟁이란 말이 싫어졌다.
자기 자신이 왜 겁쟁이란 말이 싫어졌는지 부랑자 자신도 몰랐지만 어쨌든
『내가 왜 겁쟁입니까? 저야 아무렇지 않읍니다만 영감님이 험한 산속으로 들어가시니 다치실가 염려가 돼서 그렇습니다.』하고 허세를 부렸다. 그러자 노인은
『그렇지도 않을 걸세! 내가 방금 겁쟁이란 말을 하니 갑자기 겁쟁이란 소리가 듣기 싫어진게 아니여? 아무튼지 조금만 더 가세! 다 왔으니까!』
노인이 미리 알고 말하는 데야 할 말이 있을리 없는 부랑자였다. 그는 가슴이 섬짓 했지만 따라갈 수밖에 없는 노릇이었다.
이렇게 해서 부랑자는 노인을 따라 산을 두 개나 넘었다.
그리고 역시 산을 타고 내려오던 길이었다.
산 중턱쯤 내려 왔을까 싶었는데 노인은 갑자기 부랑자를 돌아보고
『잠시 여기 좀 앉어 있게나! 내 요 뒤에 가서 소피를 좀 봐야겠네!』했다.
그래 부랑자는 노인이 돌아오길 기다렸다.
그런데 어찌된 셈인지 노인은 여간해서 돌아오질 않는 것이다.
『이 놈의 늙은이가 어쩌자고 여태 안올까?』
생각만 같아서는 훗딱 산 아래로 내려가고 싶었지만 어음 삼천 냥을 맡아 가지고 있는 몸이라 그럴 수도 없어 마침 옆에 있는 바위에 걸터앉아 기다리기로 했다.
그러자 얼마 안있어 노인이 사라진 쪽에서부터 갑자기 여자의 목소리가 들려 왔다.
캄캄한 밤중에 아무도 없는 산속에서 여자의 중얼거리는 음성을 들으니 부랑자는 전신이 오싹해졌다. 그러나 원래가 호탕한 부랑자는 은근히 호기심이나 그쪽으로 고개를 길게 뽑고 넘겨다보았다.
그랬더니 어떤 처녀가 돌계단에다 하얀 쌀밥과 산나물을 올려놓고 무엇인가 열심히 빌고있지 않는가-.
순간 부랑자는 흠찔했다-웬 처녀여? 혹시 여우일까?-그런데 듣자니
포흠 삼천 냥 어쩌구 하는 대목이 어쩌면 자기 주머니 속의 금액과 같을까--하고 생각했다. 부랑자는 촛불을 켜놓고 빌고 있는 처녀의 옆얼굴을 보고 어쩌면 저리도 고을 수 있을까 싶었다.
그러다 처녀가 빌고 있는 제단 맞은 편을 바라보게 된 부랑자는 선불이나 맞인듯 별안간 흠찔하고 굳어지고 말았다.
처녀의 맞은 쪽에는 어떤 석상이 하나 서 있는데 그 석상의 얼굴이 아무래도 어디서 많이 본 것 같이 낮익은 데가 있기 때문이다.
넋을 잃은 듯 석상을 한동안 바라보던 부랑자는 처녀가 다시 삼천 냥의 빛 운운하자 그제서야 무릎을 탁 쳤다.
석상의 얼굴이 기억났던 것이다.
그 얼굴이란 여태까지 자기가 기다리고 있는 그 노인의 얼굴일시 분명했다.
그리고 보니 노인은 석상의 화신이었던 것이다.
처녀가 매일같이 찾아와서 삼천 냥의 빚 때문에 밤새 비는 것을 보자 그 효성이 감동되어 손수 돈을 마련해다가 부랑자로 하여금 전할 수 있도록 하였던 것이다.
묵묵히 앉아 기억을 더듬던 부랑자는 노인의 마음, 아니 석상의 뜻을 십분 이해하고도 남을 것 같았다. 부랑자는 노인의 계시에 따라 어음 삼천 냥을 처녀에게 건냈음은 물론 처녀와 혼인하여 오래오래 다복하게 살았다

고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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