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 신라의 귀족들과 연결하지 않으면 출세의 길이 막히어 일생을 허송하게 된다.
때마침 신라에는 당나라에서 들어온 축국이 성행하였다. 바로 선덕여왕 초년에 김유신은 신라의 진골 김춘추와 친근할려고 하였다.
정월 보름날이 되면 모두 약식을 해먹고 이 날 하루를 즐거웁게 논다. 김유신은 이날 김춘추를 청해다놓고 자기 집 근처 넓은 마당에서 축국을 시작하였다. 이 축국은 농주하는 놀음이라고 하였다. 수족을 다 놀리며 차는 경기이다. 한창 재미있게 놀 때 김유신이 마음속에 큰 포부를 품었는지 김춘추의 당의 옷자락을 밟았다. 옷은 소리를 내며 뜯어졌다. 그래도 김춘추는 모르고 있었다.
한참 놀고 난 뒤에 김춘추가 가려고 할 때 소매자락이 터진 것을 보고 『너무 재미있게 노느라고 옷이 터진줄도 모르고 놀았네.』
하고 혼잣말 같이 중얼거리었다. 눈치 빠른 김유신은 좋은 기회라 생각하고 얼른 말을 건네었다.
『상공, 옷이 뜯어졌사오니 잠시 이 근처에서 꿰매도록 하시요.』
『대단치 않은 것을 뭐 집에 가서 꿰매지.』
『아니오이다. 그대로 가서야 쓰겠습니까. 소생의 집이 여기오니 잠시 들어가 꿰매도록 하시요.』
『그럴까 폐가 되는 듯 해서.』
망설이는 듯 하였으나 김유신은 얼른 앞에서 안내하여
『어서 같이 가십시다.』
한 후 자기 집으로 안내하였다. 이 때 김유신도 일국의 장군으로 당당한 집을 짓고 살았다. 제법 으리으리한 집이었다. 큼직한 안방으로 들어갔다. 방에는 김유신의 누이동생 보희와 문희가 앉았다가 일어나 곱게 절하며 인사까지 하였다.
『얘, 상공께서 당의가 조금 찢어지셨다. 바늘 가져다가 꿰매드리도록 하여라.』
김유신이 말하자 보희와 문희는 서로 눈짓하며 꿰매라고 하는 모양이다. 그러던 중 보희는 다른 방으로 나가고 문희가 자기 반짇고리에서 비단실과 바늘을 가지고 왔다. 다소곳이 숙인 얼굴, 양 이마는 틔어보이고 곱게 그린 아미는 부드러운 곡선을 나타냈고 오뚝한 코는 더욱 맵시있으며 흰 양볼은 얼마간 부끄러운지 도화색이 돌고 있었다.
바로 눈앞에서 보는 김춘추의 마음은 흡족하였다.
『상공, 천한 소녀가 꿰매드려도 괜찮겠습니까.』
목소리마저 꾀꼬리같은 소리다. 김춘추는 다시 입이 벌어질 지경이다,
『좋다. 그냥 여기서 꿰매라.』
『입으시고서야 꿰맬 수 있아오리까. 잠시 벗으시었으면 좋겠나이다.』
『그래라.』
김춘추는 빙그레 웃고 당의를 벗어주었다. 문희는 바로 그 자리에서 꿰맨다. 상아 같은 흰 손가락이 옷 사이로 왕래하며 재치있게 꿰맨다.
이 때 밖에서 『장군.』
하고 부르는 소리가 났다. 김유신은 무심코 앉아 있다가
『누구냐.』
한 마디 하고 밖으로 나갔다. 방안에는 두 사람만이 남았다. 문희는 어느 틈에 다 꿰매고 앞에 내놓았다.
『상공, 입으시요.』
할 때 김춘추는 한 번 쳐다보았다. 문희의 고운 눈은 가을 호수같이 맑다.
『여기가 또 터졌구나.』
혼잣말 같이 중얼거리었다.
『어디오니까.』
하고 고개를 내밀었다.
『바로 바지 앞이 터졌구나.』
『마저 꿰매드려도 괜찮겠습니까?』
『그래야지, 이왕 바늘을 들었으니 일을 마치어야해.』
매우 부드러운 말이다. 문희는 바늘에 실을 꿰어가지고 김춘추의 가슴 앞으로 갔다. 문희의 몸에서 나오는 훈향이 미풍에 불어 김춘추의 코를 스친다. 어느덧 사람을 뇌살할 지경이다. 이때에 김춘추의 나이는 30여세로서 씩씩하게 생긴 남자이다. 문희의 마음은 설레기 시작하였다. 바늘이 바로 자기 앞에 왕래하니 김춘추는 돌연히 취한듯 무엇을 생각하는 듯 잠시 있었다. 다음 순간 재빨리 문희의 손을 잡았다. 섬섬옥수는 가인을 부르는 듯 하였다.
『상공, 노사이다.』
『아니다. 네 바느질 솜씨가 좋아 손을 좀 보자고 한 것이다.』
『아이.』
하며 손을 빼려고 하였다. 그럴수록 남자의 손은 문희의 손을 힘있게 쥐었다.
『손도 곱고 얼굴도 고우니 마음씨 또한 좋겠다.』
『오라버니가 밖에 계십니다.』
놓으라는 신호이다. 이러면서도 김춘추의 부드럽고 씩씩한 품안으로 자꾸 기어들어 갔다.
『아주 성숙한 몸이구나.』
『부끄럽습니다.』
『무엇이 부끄러우냐.』
『다음 날 다시 오십시요.』
『진골의 몸은 아무렇게나 나다닐 수 없단다.』
『그러시면 천한 가야의 왕손은 아무렇게나 농락하시나이까.』
매우 영리한 말이다.
『염려 말아라. 신라의 왕족과 가야의 왕손이 결혼 못할 처지는 아니다.』
이야기하면서 문희의 몸은 더욱 가까워졌다. 분홍빛 뺨에는 화색이 돌고 검은 눈에서는 실안개가 돌고 있다. 바로 자기 품 안에 안기어 있는 문희는 빠져나가려고도 하지 않는다. 그럴수록 두 사람의 심장은 뛰고 있다.
『상공, 소녀의 몸은 약속없이 허락지 않습니다.』
가느다란 모기소리 같으나 분명히 들려 김춘추의 귀에 쨍한다.
『장부의 말이 천금같은 것이다.』
『그래도.』
『염려 없다.』
활짝 핀 꽃에 봉접이 저절로 날아들듯이 정염이 타오르는 문희의 몸에는 흐뭇한 자극이 필요하였다.
그래도 밖에 나간 김유신은 들어오지 않았다.
김유신의 집안은 가야국의 왕족이다. 바로 가야국이 신라에게 멸망당할 때 구해왕이 항복하자 왕비와 아들 삼형제를 데리고 신라로 들어왔다. 그 아들 중 막내아들 무력이 신주도총관까지 지냈고 무력의 아들 서현이 어떻게 하든지 출세할려고 애썼다. 신라의 왕손과 결혼해야만 출세할 수 있다. 망국의 왕손으로서 처음에는 대우하는 듯 하였으나 얼마 후에는 천대하기 시작하였다. 그러던 중 신라왕실 중 먼 친척이 되는 숙걸종의 딸 만명과 서로 눈이 맞아 때때로 만났다. 그럴수록 그녀의 아버지는 『신라 왕손의 딸이 저 망국의 왕손과 눈이 맞아서야 쓰겠냐.』
하고 극력 반대하였다. 그럴수록 만명은 한 번 사랑한 서현을 놓을 수 없었다. 두 남녀는 그 동안 서로 몇 번이고 만나 서라벌 보름달 아래 쌍쌍이 거닐며 사랑을 속삭였다. 부모의 반대를 무릅쓰고 두 사람만이 몰래 속삭이는 맛은 꿀맛 같았다.
만명의 아버지는 딸이 다시 서현과 만나지 못하게 딸을 집 속 별당에 가두어 두고 말았다.
한편 서현을 조정에 말하여 멀리 만노군 태수로 쫓아버렸다. 그러나 이 때는 벌써 만명의 속에는 서현의 새싹이 움트고 있었다. 그럴수록 만명은 유폐의 몸이 되어 남편을 그리워하는 생각은 간절하였다. 이제는 집밖에도 나가지 못하게 사람을 두어 지키게 하였다.
어느 폭풍우가 심한 날 밤에 만명은 남편을 그리워하는 마음 참을 수 없었다. 생각한 나머지 푹풍우 소리에 틈을 타서 지키는 자의 눈과 귀를 속이고 밖으로 뛰어 나갔다. 밖은 깜깜한 칠야에 비와 바람은 사정없이 갈기었다. 그래도 사람을 만나볼 생각하니 그까짓 폭풍우는 문제도 아니다. 북쪽을 향하여 폭풍우를 뚫고 달아났다. 온몸은 비에 젖어 곡선미가 그대로 나타났으며 몸은 차가왔다. 가슴속에는 쇠를 녹일 듯한 정열의 불길이 붙었다. 멀리 달아나 먼동이 틀 때 폭풍우도 갈아 앉았다. 그동안 거의 백리길이나 뛰어왔다.
어느 촌막에 들어가 젖은 옷을 내버리고 가지고 온 새 옷을 갈아입고 만노군으로 달음질하였다. 이틀만에 서현의 처소에서 만났다. 환희의 절정이었다. 젊은 부부는 굳게 포옹하고 그 곳에서 살았다. 만명부인에게서 낳은 큰 아들이 김유신이고 막내딸이 바로 문희이다.
어머니의 피를 받은 문희도 사랑의 정열은 남에게 지지 않았다.
한번 김춘추의 사랑을 받은 후 밤만 되면 김춘추의 품으로 뛰어갔다.
이러한 사정을 알고있는 김유신은 속으로
『이제 큼직한 진골을 물었다. 장차는 왕비이다. 또 그 속에서 나오는 것은 다음 대에 왕이다. 그러면 우리 집안도 진골에 지지 않는다.』
하는 생각에 잠겼을 때 입가에 저절로 미소가 풍기었다.
한편 정열에 불타는 문희는 김춘추를 안고
『상공, 나는 홀몸이 아니오. 어찌 하시려오. 그대로 응달의 생활을 하라는 것이오.』
하며 몸부림 쳤다.
낌새를 알아차린 김유신은 어떻게 하든지 문희를 정실로 들여보내야 한다. 김춘추는 이 때 나이 30이 넘어 본실도 있고 아들 딸까지 있었다. 그러니 응당 첩이 된다. 그까짓 첩으로 보내려고 지금까지 지모를 짜낸 것은 아니다. 삼국통일의 큰 지모를 가진 사람이 누이 하나쯤 진골의 정실로 보내기는 힘드는 일이 아니다. 그러나 이러한 일은 교묘하게 꾸며야만 성공한다.
어느 날 김유신의 집 앞에서 보이는 남산 게눈재에서 선덕여왕이 궁중의 중신을 데리고 놀고 있었다. 이 기회를 하용하여 김유신은 또 한가지 연극을 꾸몄다.
바로 선덕여왕의 놀이가 한창 어울려 들어갈 때 김유신은 자기 집 마당에 나무를 쌓아놓고 불을 질렀다.
불은 충천하듯 솟아올라갔다. 이것을 바라보던 여왕은
『저게 무슨 불이냐?』하고 좌우를 돌아보았다.
『예, 김유신의 집이로소이다. 듣자온대 김유신이 자기 매자가 행실이 부정타하여 태워 죽인다고 하옵니다.』
미리 김유신에게 연통받은 신하가 나서며 말하였다.
『매자를 태우다니 될 말이냐? 어떻게 행실이 그르다는 말이냐?』
『예, 김유신의 매자가 중매없이 혼인하여 벌써 잉태까지 했다고 하옵니다.』
『그게 될 말이냐, 그럼 그 상대자는 누구란 말이냐?』
『어느 진골이라 하옵니다.』
이 말에 옆에 있던 김춘추의 얼굴이 벌겋게 달아올랐다.
『아무래도 춘추공의 안색이 달라지는군.』
여왕은 미소까지 지으며 춘추를 돌아보았다.
『황공하오, 소산이 불매이혼한 상대자로소이다.』
『진작 말할 것이지 즉시 어명으로 혼인하도록 전하고 김유신의 매자를 구하여라.』
어명을 받을 사자는 김유신에게로 급히 달려와 어명을 전하였다. 김유신이 마음 먹은대로 일은 일사천리로 나아갔다.
김유신은 여기서 문희를 출가시킬 뿐 아니라 자기도 김춘추의 전실 딸을 부인으로 맞이하였다. 이 혼인은 완전히 정책 혼인으로서 김유신이 앞날의 출세를 위하여 만들어진 것이다.
문희는 김춘추에게 출가하여 후일 문무왕인 태자 법민, 인문, 문왕, 노차, 지경, 개원 등 6형제를 낳아 그의 손이 크게 번져 나갔다. 동시에 김유신은 김춘추의 딸 지소부인과의 사이에 산광, 원술, 원정, 장이, 원망 등 5형제를 두었다.
이제부터 김유신은 용에 날개가 달린 듯 선덕왕 때 상장군이 되었고 태종무열왕 말년 백제를 칠 때 신라의 총사령관으로 출전하여 대승하였고 문무왕초에 국가의 주석으로서 고구려를 치러갈 때 안에서 총지휘하여 승리하였다.
이로써 신라는 삼국통일의 대업이 완성되어 갔다. 그러나 신라에 남은 문제는 백제의 옛 땅에 남은 당나라 군사와 대동강 이남의 옛 고구려땅에 남아있는 당나라 군사를 몰아내는데 있다. 바로 문무왕 9년부터 양군이 충돌하게 되었다.
어제까지는 같은 연합군으로서 백제와 고구려를 협격하였으나 이 때부터는 적으로서 상대하게 되었다. 그러던 중 문무왕 13년에는 국가의 주석같은 신하 김유신이 세상을 떠났고 계속하여 당병의 내습은 쉬지 않았다.
이와 같이 문무왕 때 신라의 위기는 몇 번이고 닥쳐왔으나 17년 이후에는 당나라에서 지쳤는지 다시 쳐들어오지 않았다. 이로써 신라는 숨을 돌리게 되었다.
21년에 문무왕이 승하하였으며 이후부터 혜공왕 때까지 백여 년간 신라의 황금시대를 이 루었다.
문희라는 한 총명한 여성이 김춘추를 사랑으로서 사로잡아 그녀의 소생이 대개 영특하여 7대를 잘 다스려 내려왔다. 위대한 사랑의 힘이라고 할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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