식장산은 충남 대덕군과 충북 옥천군의 군계에 우뚝 버티고 선산이다.
어느 때인지는 자세하지 않지만, 옛날 그 식장산 기슭의 웃터새말(지금의 가오리 근처)에 은어송이란 젊은이가 머슴살이를 하면서 늙은 홀어미를 모시고 살았다. 십 년 동안이나 머슴살이를 했지만, 형편은 매양 그 모양 그 꼴이어서 나이 삼십이 가까왔는데도 아직 장가를 들지 못한 처지였다.
은어송은 십년을 하루 같이 식장산 중턱에 올라 땔나무를 해 나르는 사이 점심때가 되면 싸 가지고 간 점심을 그 산 중턱에 사는 가난한 절의 중 법흠과 함께 나누어 먹었다.
「은총각 정말이지 이 은혜 어떻게 갚아야 할지 모르겠네.」
법흠은 밥을 나누어 먹을 때마다 고마운 마음을 전했다.
그때마다 은어송은 고개를 저으며
「온 별말씀을 다 하세유. 지가 은혜 갚음을 받자고 이러는게 아니어유.」
「알고 있네. 하지만서도, 나야 어디 그런가? 허기를 떼울때 나도 신세를 갚아야 할텐데 하구 늘 생각을 한다네.」
「아이고 그런 말씀 말아유. 전 스님하고 밥을 먹는 게 여간 즐겁지가 않어유. 이 험한 산중에서 혼자 밥을 먹는다 생각하면 벌써 입맛이 싹 달아나는데유?」
며칠이 지났다. 법흠은 점심을 다 먹고 나서
「은총각 아버님 산소는 어디에 있는가?」
「여기서 이삼십리 떨어진 산에다 뫼셨는데유, 근데 갑자기 우리 아버지 산소는 왜유?」
「응, 내 은총각한데 은혜 갚음을 하기 위해 이 식장산 안에다 뫼자리 하나를 봐둔게 있네.」
그러면서 중은 수걱 수걱 앞장서 걸어갔다. 수림 사이를 한참 비집고 들어간 어느 양지바른 등성이에서 걸음을 멈춘 법흠은
「여길세.」
하고 손으로 가리켰다.
「여기에다 자네 선친을 이장시키면 자네가 지금보다는 조금 잘 살게 되지.」
이른바 당대발복(當代發福)의 명당터를 잡아준 그 중은, 은어송이 한사코 뿌리치는데도 은혜 갚음을 하고 돌아섰다.
은어송 총각은 별수 없이 아버지의 산소를 그 곳으로 이장할 수밖에 없었다. 그랬더니 산소를 이장하던 바로 그날부터 복이 굴러오기 시작하였다.
은어송이 이장을 마치고 시역꾼들과 함께 산을 내려올 때였다.
「엉? 저기 오는 저 짐승이 무슨 짐승인가?」
「어디 어디?」
갑자기 산중에서 눈큰 짐승(호랑이)이라도 만났을까봐 장정들은 겁먹은 얼굴로 은어송이 가리키는 곳을 바라보았다.
「아니, 저건 눈큰 짐승이 아니라 황소잖아? 」
「무엇? 황소라구? 에잇, 잘못 봤겠지. 이 깊은 산중에 황소가 저 혼자 돌아다닐리가 있나.」
하나. 분명히 그것은 황소였다.
「이게 어찌된 일인가.」
그 황소는 쇠도둑들이 먼 고을에서 훔쳐 가지고 오다가 이장을 마치고 내려오는 시역꾼들과 마주칠까봐 도망쳐 버리는 바람에 산중에 혼자 남게 된 것이었다.
그날 밤이었다.
누군가 은어송이 집 사립문안에 들어서서 주인을 찾는 소리에 총각은 밖으로 나가 보았다.
「이 밤중에 날 찾아온 사람이 누구시유? 」
「예, 길을 잃은 사람인데요 하룻밤 유하러고 찾아 왔습니다.」
어둠 속에서 난 소리는 구슬같은 여자의 목소리였다. 은어송은 반갑다기보다 무서운 생각이 들어
「저희 집은 쉴만한 방이 없어유. 다른 집으로 가 보세유.」
「하룻밤만 재워 주세요. 제발 부탁입니다.」
작은 보따리 하나만 가슴에 소중하게 안고 온 여인은, 하룻밤만 재워달라고 통사정을 하는 것이었다.
은어송은
「그럼 이렇게 해유. 지가 마침 한집을 소개해 드릴테니께 그 댁에서 하룻밤 유하시도록 해유.」
「싫어요. 다른 집엔 가고싶지 않아요. 제발 이 댁에서 자고 가게 해 주십시요.」
이쯤 되고 보면 마음씨 고운 은어송 총각도 별도리 없이 하룻밤 재워주지 않을 수 없었 다.
「들어 오세유.」
「예. 고맙습니다. 정말 고맙습니다.」
방안에 들어와 불 앞에서 마주 본 여인은 놀랍게도 미혼 처녀였다.
「어디 사는 규수인데 이 깊은 밤에 혼자서 저희 집까지 오셨나유?」
「예. 저는 한성 사는 어느 대감집 딸입니다.」
억울한 누명을 쓰고 도망치듯 도성을 빠져 나온 그 여인의 신세타령을 듣고 있자니까 은어송 총각은 가슴이 미어지는 것처럼 아팠다. 한성 여인은「저를 살리는 셈치고 아내로 맞아 줄 것」과「이 보따리에 금은보화가 있으니 이걸 팔아서 살자」고 졸라대었다. 처음에는 무슨 해묵은 여우에게 홀린 기분이었으나 처녀의 딱한 처지를 듣고 자꾸만 마음이 그쪽으로 기울어갔다.
그들은 부부가 되라는 인연이었던지 그 날 밤으로 냉수 한 그릇을 떠놓고 혼례를 올려 백년가약을 맺었다.
아내가 가지고 온 금은보화를 팔아 새집을 짓고 논밭마지기도 마련한 은어송은 그야말로 호박이 넝쿨째 굴러 들어온 격이었다.
그들의 살림은 해를 거듭할수록 늘어만 갔다. 부인이 문장을 배운 여자라 아내는 남편에게 글 공부를 시켜 과거에도 급제하게 하였는데, 나중에는 어느 고을 군수까지 역임하게 되었다고 한다.
식장산 중턱 대덕군 쪽에 있는 명당자리는 그 뒤「은어송 선친 묘자리」로 불러졌다. 사람이 덕을 베풀고 지성을 드리면 당대에 발복한다는 교훈과 함께 은어송의 선친 묘자리는 많은 사람들의 부러움을 받고 있는 것이다
- 출처 - 산림조합중앙회 WEBZINE