충남 공주 읍내에는 시내 제민천 위에 옛 백제시대의 사적유적지의 하나인 「대통다리」가 남아있고 사찰 경내에 세워졌던 당간지주가 그 많은 풍상을 견디며 오늘까지 버텨오고 있는 것을 볼 수가 있다.
대통사는 백제가 웅진(공주)에 도읍을 정하고 있을 때 가장 큰 절로 전해온다.
그 무렵 봉황산 밑에는 한 중이 살고 있었다. 어느 날 그는 꿈 속에서 산신령을 만났다.
『사문아, 듣거라!』
산신령은 첫눈에 보아도 봉황산을 지키는 산신인 것 같았고 무엇인가 긴한 이야기를 전해주려고 현몽한 것임을 그 중은 단박에 알아낼 수가 있었다.
『예― 말씀하십시오. 산신령님.』
『너는 장차 이 봉황산 밑에다 크나큰 절을 지어야 하느니라.』
『산신령님 뜻이라면 지어야 하고 말굽쇼.』
『절을 짓는 것만 가지고서는 아니 되느니.』
중은 새로 짓는 절이 무엇인가 많은 것을 담고 있어야하는 점임을 어렴풋이 눈치챌 수 있었으나 자세한 내막은 알 길이 없었다. 그래서
『절을 지어 신령님만 정성스레 모시면 될 터인데 무엇 또 다른 일이 있나이까?』
『이 곳에 임금님이 거처하게 될 것이니라.』
『그럼 이 곳이 왕도가 된다는 말씀 아니옵니까?』
『그렇다네.』
『나무관세음보살』
중은 절로 합장이 되었다.
『허니까 너는 이 왕도의 무궁한 번영과 백성들의 안민을 위해 주야로 기원을 드려야 하느니.』
그야 이를 말인가. 천만번 옳은 소리를 가지고 산신령님은 공연히 걱정을 하고 계시는군, 하면서 중은 또다시 마음속으로 합장을 하였다.
이 때 산신령은 다시 말을 이었다.
『그저 맹목으로 기원만 드려서는 아니 되느니.』
『하오면 어찌하면 되는 것이옵니까』
『기원을 드리는 날자 수대로 이 곳에 도읍하는 나라는 사직을 보전해 갈 것이니라.』
『나무관세음보살.』
중은 다시금 합장을 하고 산신을 우러러보았다. 산신의 입에서는 계속 지시내용이 쏟아져 나왔다. 기원을 드려야 나라가 외침을 받지 않고 평화를 누릴 수 있다는 점. 기원의 하루는 1년에 해당한다는 점. 특히
『네 기원은 절을 짓기 전에 내가 꼭 들어야 하느니라.』
『여부 있겠읍니까 산신령님.』
『그리고 백일 기원을 드리면 사직이 무궁토록 보전될 터이니 뒷날을 위해 조금 고생이 되더라도 꼭 백일 기원을 드리도록 해라.』
『명심하겠읍니다. 산신령님.』
이튿 날 그 중은 봉황산에 제단을 쌓고 매일 밤 목욕재계한 뒤 기원을 드리기 시작했다. 꿈 속의 지시였지만 그는 그걸 꿈이라고 생각하지 않았다.
『이 나라의 국태민안과 천년사직을 위해 이 몸은 이렇게 무릎꿇었나이다. 하늘의 신이여, 땅의 힘이여. 이 나라의 안녕과 백성들의 평화를 지켜주옵소서.』
중의 기원은 연일 계속되었다.
폭우가 쏟아진다고 그의 기원이 중단될 리 없었다.
열흘이 지나고 한 달이 지났다.
천둥이 치는 날도 회오리바람이 부는 날에도 그의 기원의 소리는 중단되지 않고 봉황산을 울렸다.
어느 날 그는 기원을 하다가 마치지도 못한 채 쓰러져 버렸다. 과로한 탓이었다.
하나, 그는 그 때에도 중단하지 않았다. 기다시피 제단 앞으로 나가 「이 나라의 천년사직을 위해」기원의 소리를 멈추지 않았다.
오십 일이 지나고 육십 일이 지났다.
아직도 백 일이 되려면 아득한 날이 남아 있었다.
중은 그날 밤에도 목욕재계를 하고 산으로 올라갔다. 그 날은 그러니까 중이 기원을 드리기 시작한지 64일이 되는 날이었다.
『하늘의 신이여, 땅의 힘이여.』
여느 날처럼 중의 기원소리가 산골짜기를 잔잔히 울렸다. 그는 있는 정성을 다하여 백제의 천년사직을 위해 기원을 드린 것이다. 그런 한밤이었다. 한창 기원을 드리던 중이 눈을 뜨고 앞을 바라보았을 때였다.
『앗.』
중은 외마디 비명소리를 지르고 그 자리에 쓰러졌다. 그가 쓰러지기 전에 본 호랑이는 그렇게 보아서 그런지 집채만한 것 같았다. 64일 동안 작은 짐승 한 마리 얼씬 않던 제단에 이 어인 호랑이던가.
이튿날이 되어서야 중은 정신을 차리고 눈을 떴다. 그의 기원은 그러니까 64일 동안 계속되었다가 중단된 셈이었다.
그는 이튿날 다시 목욕재계하고 산으로 올라갔다. 그러나 그의 기원은 시초에서부터 중단할 수밖에 없었다.
『저 봐, 호랑이가! 앗, 한 무리 호랑이 떼가 몰려온다!』
그는 뛰었다. 산 아래로 달려 내려온 그는 문득 뒤를 돌아다보았다. 그야말로 한 무더기의 호랑이 떼가 중을 향해 달려오고 있었다. 집에까지 달려와서 제단 쪽을 뒤돌아보았을 때 그는 또다시 놀랐다. 푸른 빛이 부여 쪽을 향해 강렬하게 뻗어있었고 거꾸로 부여 쪽에서는 붉은 빛이 제단 쪽을 향해 굵다랗게 내리비치고 있었다. 그런 얼마 뒤 다시 한번 하늘을 보니 푸른 빛은 점점 시들어 없어지고 붉은 빛만 찬란하게 하늘에 남아있는 것이 아닌가.
『하는 수 없구나. 호랑이가 나타나니 기원을 중단하고 어서 절을 지을 수밖에.』
이튿날부터 대통사란 절의 역사가 시작되었다. 역사는 몇 년간 계속되었고, 역사가 끝이 났을 때는 백제에서 가장 큰 절이 되었다.
그러나 일세의 흥망성쇠는 인력으로는 어쩔 도리가 없었다. 백제는 웅진에 도읍을 옮긴지 64년만에 다시 부여로 천도하고 말았다. 이것은 대통사를 지을 때 64일밖에 기원을 드리지 못한 결과였다.
- 출처 - 산림조합중앙회 WEBZINE