IT/옛날 이야기 (109) 썸네일형 리스트형 옛 이야기(고전) - 10년 맹세 진주 땅, 어느 마을에서의 일이다. 머슴살이를 하는 고유는 하루종일 농사를 짓다가 해가 지자 주인집으로 돌아가는 길이었다. 『그 처녀도 나를 생각하고 있을까? 함께 산다면 얼마나 좋을까?』 노총각 고유는 같은 마을에 살고있던 김좌수의 외딸을 몰래 사모하고 있었던 터였다. 오늘도 고유는 집으로 돌아가는 길에 그런 부질없는 생각을 하며 혼자 싱글거리고 있었다. 이것은 어디까지나 고유 혼자의 생각일 뿐 내색조차 못해 보았다. 『어느 좋은 때 슬그머니 통혼이나 한번 해봐야겠는데…···』 이러한 생각에 골목하며 김좌수네 문 앞을 지나고 있던 고유는 열띤 눈으로 김좌수의 싸리문을 유심히 바라보았다. 『혹 고개라도 내밀고 이편을 보고 있지 않을까?』 하는 생각임은 말하나 마나다. 김좌수는 마침 마당에 앉아 장기릍 두.. 옛 이야기(고전) - 일구월심 눌지왕은 신라 제19대 왕으로 즉위한지 이미 오랬으나 항상 마음이 불안한 것은 아우인 미사흔이 일본에 볼모(인질)로 가있었기 때문이다. 그런데 눌지왕 자신이 왕위에 오르고 보니 제일 먼저 마음에 걸리고 괴로운 일은 이렇게 외국에 볼모로 가있는 아우를 빨리 본국으로 데려다가 다같이 궐내에 모여 살지 못하는 것이었다. 그런데 이 때문에 왕은 군신회의를 열고 이 일을 어떻게 하면 빨리 성사할 수 있을까의 문제를 논의한바 있었다. 다만 백관들의 입에서는 『사신을 일본으로 보내서 인교의 의를 맺는 것이 좋을 줄로 아웁니다.』 하고 안을 내는가 하면 『공물이라도 바쳐서 일본의 기분을 먼저 사두었다가 다음 기회에 왕제님을 모셔오도록 하는 것이 상책인줄 아옵니다.』 등등의 소견을 내세우기도 하였다. 그러나 왕은 이런 .. 옛 이야기(고전) - 명마 이조 15대 광해군에게는 많은 후궁들 사이에서 태어난 공주와 옹주들이 수없이 많았다. 그 중에 정윤이라는 부마가 있었는데 50을 바라보는 나이에 특히나 명마를 고르는 안목이 비상했다. 어떤 말이든 그가 한번 보고 좋고 나쁜 점을 지적하면 틀린 점이 없이 척척 들어맞힐 정도로 귀신같은 눈을 지녔었다. 그런데 하루는 그가 성궁을 거닐고 있을 때였다. 그의 뒤에서부터 말의 편자소리가 나기에 뒤를 돌아다보니 비쩍 마른 말이 조그마한 짐수레에 짐을 잔뜩 싣고 비실비실 하며 힘없이 정윤이의 앞을 지나가는 것이 아닌가-. 길을 비켜섰던 그는 무심코 그 말의 하는 양을 바라보고 있었다. 목은 축 늘어졌고 등뼈는 올라가 붙었으며 비루먹은 털은 군데군데 엉성하게 빠져서 그 몰골은 추하기 짝이 없었다. 그러나 정윤은 이 말.. 옛 이야기(고전) - 신방이변 김시해라는 사람은 이조 때 과거에 장원하여 예조판서까지 지낸 사람이다. 나이 열 여덟에 비로소 장가를 들어 처갓집에서 삼일을 치르기 되었다. 그런데 삼일째 되는 날이 마침 음력정월 보름이었으므로 다리를 밟으며 달구경을 하며 소요하다가 공교롭기도 한 글방에서 공부하는 친구들을 만났다. 고금을 막론하고 새로 결혼한 사람에게 한턱 울겨 먹으려고 하는 것은 오백년 이래로 전해 내려오는 풍속이라, 그날 밤에도 시해 소년 역시 장난꾸러기 친구들에게 붙들려서 어느 술집에 들어 술을 한턱 사는 수밖에 없게 되었다. 밤이 상당히 으슥해지도록 술들을 마신 끝에 모두 곤드레 만드레가 되어 제각기 집이 돌아갔다. 그러나 시해 소년은 먹지도 못하는 술을 친구들 강권에 못 이겨 지나치게 받아 마신 터이라 휘청대는 다리를 간신히 .. 옛 이야기(고전) - 어사 박문수 암행어사 박문수가 과거에 급제하기 전 팔도강산을 두루 유람했을 적 청년시절에 몸소 체험한 이야기 중의 한 토막이다. 경상도 양산통도사에서 책을 읽으며 한 겨울을 지내던 박문수는, 추위가 가셔지고 각색 화사한 꽃들이 만발하여 종달새 소리 한가롭게 들려오는 춘삼월을 맞게되자, 공연히 가슴이 설레이고 엉덩이에 좀이 쑤셔 가만히 앉아 있을 수가 없었다. 어느 따스한 날을 가려 개나리 봇짐을 해서 짊어지고는 경상도 땅을 두루 돌아다니던 끝에 문경 땅으로 들어섰다. 문경 새재가 험하고 높다기에 한번 들러본 것이었다. 험준하고 첩첩한 산골길을 온종일 걷다가 어느덧 저녁 해가 서산으로 뉘엿뉘엿 넘어갈 무렵, 어느 산골짜기에 있는 외딴집 한 채를 발견하고는 기뻐 문을 두드렸더니 십 칠팔 세쯤 되는 소년이 문을 열어주었다.. 옛 이야기(고전) - 남장 공주 세조가 등극한 지 얼마 안된 후의 일이다. 아직도 햇살이 따가운 초가을 어느 날 충청도 계룡산 산길을 석양을 등에 지고 터벅터벅 걸어가고 있는 두 나그네가 있었다. 묵묵히 땅만 내려다보고 걷고 있는 그들의 발걸음은 천근이나 무거워 보였다. 짚신 감발에 홀가분한 차림새이건만 등에 지고 가는 개나리 짐의 무게일까? 아니면 먼길을 줄창 걸어오느라 발이 부르터서일까? 앞서 가는 젊은 나그네는 거의 발을 끌다시피 옮겨 놓는 것이었다. 뒤따라가는 중년객도 눈에 띠이게 두발을 절뚝거리고 있었다. 「아유! 이젠 더 못 가겠소. 여기서 좀 쉬어가요.」 앞서 가던 젊은이가 큰 노송나무 밑에서 걸음을 멈추고 뒤돌아보며 애원하듯 말했다. 뒤따르던 중년객은 얼른 자기 봇짐을 내려놓고, 젊은이 등에 있는 조그만 보따리를 공손히 .. 옛 이야기(고전) - 왕손을불 압록강 건너편 고구려―. 가람촌이라고 하는 조그마한 마을에 스러져 가는 저녁 노을을 받고 들어서는 젊은 사람 하나가 있었다. 약간 길쭉한 얼굴에 피부는 희고 걸음걸이는 점잖았다. 머리에는 구멍난 갓을 쓰고 있으며, 입고 있는 옷은 때로 인해 시커멓다. 행색은 행색이지만 나그네이면서 수중에 아무 것도 지니지 않은 빈털털이인 것을 보면 분명히 그 무엇인가 곡절이 있는 사람인듯 했다. 허나 스스로 말하는 법 없고 어느 누구 묻는사람도 없이 그가 어떤 사람인지는 알 수 없었다. 『여보시요. 말씀 좀 물읍시다.』 그는 길가 느티나무아래에서 손자아이를 어르면서 앉아 있는 어느 노인에게 말을 건냈다. 노인이 고개를 돌리고 눈길을 주자『이 마을에서 가장 부유한 집이 어느 집이 온지요?』 하고 젊은이는 물었다. 노인은 .. 옛 이야기(고전) - 서령낭자 신라 문무왕 시대에 의상조사는 자장 율사, 원효대사와 더불어 큰 별처럼 삼대 거승(삼대거승)의 한분으로서, 불교 대도를 달성하였다. 그러나 더욱 더 불교의 대진리를 탐구득도하기 위하여 멀리 당나라를 향하여 길을 떠났다. 그리하여 한없이 가던 중 그만 몸에 신열이 나서 객지에 드러눕게 되었다. 하루 이틀도 아니요 수천 리 길을 쉬지 않고 강행하다 보니 중간에 그러한 신병이 날만도 하다. 도착한곳은 소주 땅이요, 머무른 곳은 길가에서 손님을 받는 조그마한 객주 집이었다. 그렇지만 집이 넉넉지 못해 열여덟살 모령의 처녀가 나이 많은 사모님을 모시고 겨우 살아가고 있었다. 의상대사는 이러한 집에 드러누워서 꿍꿍 앓게 되니 수천리 타국 남의 땅에서 기가 막힐 노릇이 아닐 수 없었다. 그런데 다행한 것은 그 집 처.. 옛 이야기(고전) - 이성계의 음모 위화도 회군의 성공은 벌써 고려조의 망국을 알리는 말이다. 우왕은 이성계의 세력에 눌리어 얼마 후 퇴위 당하고 다시 누구를 왕으로 세우느냐 할 때 조민수는 우왕의 아들 창을 내세우려고 하였다. 그러나 이성계는 이때부터 왕을 자기 다음대로 누르려고 하여 자기편에서 가까운 사람을 내세우려고 하였다. 당시는 아직도 구신들의 세력이 남아있어 이성계의 힘을 견제하려고 하였다. 여기서 당대의 명유 목온 이색의 의견을 듣기로 하였다. 목은은 벌써 국세가 기울어진 것을 생각하였으나 역시 창을 내세우는 것이 타당하다고 생각하였다. 『왕을 계승시키려면 응당 전왕의 아들이 계승되는 것이 원칙이요』 목은이 말하자 조민수도 여기에 찬성하였다. 그러나 이것을 못마땅하게 여기는 사람은 이성계이다. 그는 조민수를 보고 『우리가 회군.. 옛 이야기(고전) - 임금님의 유흥 고려의 성시도 예종 때부터 내려오기 시작하였으며 인종 때는 왕이 우유부단하여 일을 결단지게 처리하지 못하였다. 그것은 이자겸, 묘청의 반란 등이 있어 왕도 이것을 어찌하지 못하였으며 단안도 내리지 못하였다. 그래도 고려의 문물은 이때가 절정으로 발달되어 의종이 24년간 호유하여도 국가의 정치는 흔들리지 않았다. 그 동안 백년 내려오며 싸놓은 선왕의 덕택이라고 할 것이다. 의종은 일종의 풍류남아로서 경박하고 놀기를 좋아하는 귀공자의 타잎이었다. 그러므로 태자로 있을 때부터 인종이 항상 걱정하였다. 인종의 왕비 임태후도 태자의 경박을 싫어하여 차자를 왕으로 내세우려고 한 일까지 있었다. 이러한 사건은 사실상 의종의 반항적인 심리를 자극시켜 일로 유흥의 길로 박차를 가한 셈이 됐다. 왕의 유흥은 사실 예종 때.. 이전 1 ··· 4 5 6 7 8 9 10 11 다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