본문 바로가기

IT/옛날 이야기

(109)
옛 이야기(고전) - 임금님의 현몽 전라도 장성 땅에 김춘영이라는 착실한 선비가 있었다. 십년을 두고 공부에만 골몰하던 그는 과거를 보인다는 소식이 전하자 서울로 올라가게 되었다. 형세가 간구한 그는 나귀를 빌려 탈 형편도 못되었기에 십여일을 두고 걸어가야 하는 처지였다. 그런데, 은진 땅에 이르렀을 무렵이다. 별안간 검은 구름이 몰리더니 장대같은 비가 쏟아지기 시작했다. 깜짝 놀란 김춘영은 비를 피할 곳이 없나 하고 사방을 돌아보았으나, 들판 가운데는 나무 그늘조차 없는 형편이었다 『이거 큰일 났구나.』 삽시간에 퍼붓는 비로 하여 옷은 물에 빠진듯 젖고 말았다. 억수같이 쏟아지는 비는 눈을 뜰 수 없을 정도였다. 『이거 어떻게 하나.』 그는 다시 사방을 둘러보았다. 그러자 천행으로 건너편에 미륵당이 우뚝서 있는 것을 찾아낼 수가 있었다...
옛 이야기(고전) - 선견지명 고려말 정지성이란 벼슬 높은 대감이 나이 많아지자 고향인 밀양으로 내려가 아들손자들과 농사를 지으며 말년을 보내게 되었다. 그런데 마침 그 이웃에 김가 성 쓰는 농부 한 사람이 살고 있었는데 이 농부 어찌된 셈인지 나랏님 이상으로 정 대감의 덕망을 흠모하고 있어 이 하늘아래 정 대감님 같은 어른은 없다고 여기고 농사일에도 이골이 난 처지였건만 정 대감의 본을 받아 대감이 밭을 갈면 자기도 본따서 밭을 갈았고 대감이 논을 갈면 자기도 논을 갈곤 하여 매사를 꼭 대감이 하는대로만 몇해를 두고 하였다. 어쨌든간에 김가 성 쓰는 농부는 이렇게 해서 다른 때와 달리 많은 수확을 얻어 한뼘 만큼의 논은 이제 제법 그전의 두배 정도로 불어나게끔 되어 집안 살림이 제법 기름기가 돌았다. 그러던 어느 날의 일이다. 대감..
옛 이야기(고전) - 양영대군 부왕의 뜻을 받들기 위하여 모든 영화를 버렸던 양녕대군은 이제는 방탕이란 것이 그에게 있어 버리지 못하는 고질이 되고 말았다. 술과 계집, 그리고 명승을 찾아 유람한다는 것이 최대의 환락이자, 그의 생활의 전부였다. 그러한 그가 오래 전부터 벼르기만 하던 서경 유람의 길을 기어이 떠나게 된 것은, 특히 아우님 왕의 간곡한 부탁과 윤허를 얻고 나서의 일이었다. 양명이 출발에 앞서 고별차 세종께 배알하였을 때이다. 『이번 서경 유람을 윤허 합시어 감격하옵니다』하고 왕에게 아뢰었더니, 세종은 우애에 넘치는 말씀으로 『서경은 색향이라 하옵는데, 혹시 형님께서 건강이라도 해치게 되시지나 않사을지요. 부디 조심하셔서 이번 길에는 주색을 통히 금하시기 바라나이다.』하였다. 이 말은 단지 아우가 형에 대한 걱정에서만이..
옛 이야기(고전) - 애란의 비련 봄이라기 보다는 아직도 늦은 겨울이었다. 신라 서울의 서산인 선도산 동녘에 자리 잡은 애란과 도열의 집이 있는 동네에서 멀리 남산을 바라보면 양지가 바르지 못한 골자기에는 아직도 허옇게 눈이 쌓여 있었다. 『삼짓날이 인제 며칠 남았지?』 애란이가 가야금을 고르다가 손이 시려서 「호호」입김으로 녹히며 옆에서 노래를 부르던 도열에게 물었다. 『얼마 안남았어.』 『며칠?』 『가만 있거라. 응, 열흘밖엔 남지 않았구나.』 『열흘! 그럼 다 됐네?』 『그래 얼마 남잖았으니까 조금만 더 고생하면 되겠다. 자 어서 타라.』 애란은 도열의 말에 고개를 끄덕끄덕 하면서도 가야금을 쉬 타려고는 하지 않았다. 『애란아! 너희 아버지가 오시면 또 야단 마지려구…어서 타』 도열이 애란을 재촉했다. 『너는 그렇게 손을 바지춤에 ..
옛 이야기(고전) - 함흥차사 저 남산에 가 돌을 깨니 정이 남음이 없네 정도전과 남은이 방원의 손에 죽을 것을 미리 예언한 동요로서 남산은 남은을 가리킨 것이며 정은 정도전을 가리켰고 남음이 없다는 남은을 뜻했다 전해진다. 한양에서 이 동요가 불리울 지음의 이야기다. 여기는 함흥 태상왕 행재소이다. 찾는 차사는 살아 돌아가지를 못하였다. 한사람의 차사가 왔다. 「태상께 금상으로 부터의 문안이오!」 「문안이라고? 세자를 없앤 것이……뉘없느냐? 저놈을 당장에 참하여라!」 태상의 말이 떨어질 겨를없이 차사는 달려온 근신의 칼에 쓰러졌다. 「금상으로부터 태상께 문안이요!」하고 행재소 뜰에 부복하였다. 「이 고얀것! 방석, 방번, 그리고 내사위를 죽인것이! 내 아직 활을 잡을 힘이 있거늘!」 명궁 태상의 손에 활이 잡히자, 차사는 퍽하고 땅..
옛 이야기(고전) - 가난한 선비 왕세자 탄생의 축하연이 벌어졌다. 명활성 내에 있는 궁중은 물론이요 서라벌에는 경축놀이가 계속되었다. 특히 왕가와 귀족들은 음식을 만판지게 차려놓고 춤과 노래를 열흘동안 벌여 왕세자의 탄생을 경축하였다. 신라 20대 자비왕은 용상에 도사리고 앉아 신하들의 배알을 받고 희희낙낙하였다. 왕세자가 탄생한지 십오일이 되던 날 상대등(높은 대신) 홍인관이 어전에 읍하여 아뢰었다. 『상감……』 『상대등 무슨 말인지.』 『상감 왕세자 탄생을 기념하여 신라 방방곡곡에서 기쁨과 노래 소리가 드높게 들리웁니다. 백성들은 상감의 성덕을 찬양하옵고 신라의 부강을 노래하고 있사옵니다. 이처럼 즐거운 경사가 또 어디 있사오리까. 하지만 우리 신라는 문화적으로 훌륭하오나 한가지 빠진 것이 있사옵니다. 그것은 마치 옥에 티와 같사옵..
옛 이야기(고전) - 왕건의 호사 / 농사꾼과 벼슬 고려 태조 왕건은 개성근처 예성강을 중심으로 화가위국(化家爲國)한 인물이다. 그의 아버지 왕융(王降)이 처음으로 이 부근의 호족(豪族)으로서 큰 뜻을 품었다. 소년 왕건은 아버지를 따라 예성강에서 수군에 대한 수련을 많이 하였으며 나이 二十세 되는 때는 벌써 궁예가 강성하여 여기까지 그의 세력을 미치게 되었다. 이때 왕건의 아버지 왕융은 아들을 데리고 궁예의 부하로 들어가 궁예왕의 충실한 일군이 될 것을 맹세하였다. 한 번 궁예의 부하가 되자 이제부터는 그 부근을 점령하여 궁예왕의 환심을 사기로 하였다. 우신 장군이란 신분으로 개성근처를 점령하고 정주로 내려가 행군하던 중 여름날이 되어 큰 버드나무 아래에서 쉬고 있었다. 마침 그 앞에 내가 있어 맑은 물이 흘러 내려가고 있다. 아름다운 풍경이었다. 살벌..
옛 이야기(고전) - 임금님의 현몽 전라도 장성 땅에 김춘영이라는 착실한 선비가 있었다. 십년을 두고 공부에만 골몰하던 그는 과거를 보인다는 소식이 전하자 서울로 올라가게 되었다. 형세가 간구한 그는 나귀를 빌려 탈 형편도 못되었기에 십여일을 두고 걸어가야 하는 처지였다. 그런데, 은진 땅에 이르렀을 무렵이다. 별안간 검은 구름이 몰리더니 장대같은 비가 쏟아지기 시작했다. 깜짝 놀란 김춘영은 비를 피할 곳이 없나 하고 사방을 돌아보았으나, 들판 가운데는 나무 그늘조차 없는 형편이었다 『이거 큰일 났구나.』 삽시간에 퍼붓는 비로 하여 옷은 물에 빠진듯 젖고 말았다. 억수같이 쏟아지는 비는 눈을 뜰 수 없을 정도였다. 『이거 어떻게 하나.』 그는 다시 사방을 둘러보았다. 그러자 천행으로 건너편에 미륵당이 우뚝서 있는 것을 찾아낼 수가 있었다...
옛 이야기(고전) - 선견지명 고려말 정지성이란 벼슬 높은 대감이 나이 많아지자 고향인 밀양으로 내려가 아들손자들과 농사를 지으며 말년을 보내게 되었다. 그런데 마침 그 이웃에 김가 성 쓰는 농부 한 사람이 살고 있었는데 이 농부 어찌된 셈인지 나랏님 이상으로 정 대감의 덕망을 흠모하고 있어 이 하늘아래 정 대감님 같은 어른은 없다고 여기고 농사일에도 이골이 난 처지였건만 정 대감의 본을 받아 대감이 밭을 갈면 자기도 본따서 밭을 갈았고 대감이 논을 갈면 자기도 논을 갈곤 하여 매사를 꼭 대감이 하는대로만 몇해를 두고 하였다. 어쨌든간에 김가 성 쓰는 농부는 이렇게 해서 다른 때와 달리 많은 수확을 얻어 한뼘 만큼의 논은 이제 제법 그전의 두배 정도로 불어나게끔 되어 집안 살림이 제법 기름기가 돌았다. 그러던 어느 날의 일이다. 대감..
옛 이야기(고전) - 적선지가 (하) 지난 줄거리 박시양이라는 선비는 일찍이 부친을 여의고 노모를 모시고 끼니 연명도 어렵게 살았다. 그리하여 옛날 자기 집에서 부리던 종들을 찾아가서 종문권과 교환하여 얻은 필목과 그리고 대대로 물려받은 그림 한폭을 마지막으로 내다 판 돈을 가지고 돌아오는 길이 사람으로서는 그냥 지나칠 수 없는 막한 사정을 보게 되는 박시양은 갖인 필목과 은자를 모두 주어 그들을 구하고 귀향 길을 재촉하는데 은혜을 입은 자가 감격하여 박시양의 옷소매를 붙든다. 그러나 이 모녀는 꼭 죽게 된 목숨을 태산 같은 은혜을 입어 살아났으며 모녀가 은인을 따라가서 하다 못해 밥이라도 끓이고 심부름이라도 해드려야 겠다고 보따리를 꾸려 따라나서는 것이다. 박생은 집안 형편이 몹시 가난하여 모친과 단 두 식구건만 오히려 밥을 굶는 날이 허..