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옛 이야기(고전) - 광산왕 백두산에서 동남 남쪽으로 활몸 모양의 곡선을 이루며 뻗어, 함경북도와 함경남도의 경계를 이루는 마천령 산맥, 이 산맥에는 높이가 2,000m넘는 산들이 많은데, 그 남쪽 끝 부분에 마지막 높은 재가 있으니 마천령이다. 마천령의 높이는 725m. 동쪽으로 이십리에는 성진, 남남 서쪽으로는 단척이 오십리 쯤에 있다. 마천령을 이판령이라고도 하는데, "이판"이란 말은 옛날 여진족의 말로 "소"를 일컫는다. 어느 날, 여진 사람이 마천령 아래에서 송아지를 팔았는데, 어미 소가 송아지를 찾으러 높은 재를 넘어가는 통에 길이 생겨 소 임자가 그 길로 좇아간 다음부터 여러 사람이 왕래하면서 이재이름을 이판령 즉 소재라고 부르게 되었다는 전설이 있다. 마천령의 산세가 웅장하여 영기가 서린다고 부근에서 큰 인물이 날 것..
장모님과 함께한 추억의 여행 쏠비치호텔&리조트 삼척 1박 2일 장모님의 기억이 좋을 때 추억여행으로 함께한 강원도 삼척, 이쁜 사진도 찍고 바닷가에서 수영도 하고 맛있는 것도 먹으려 했으나 현실은 때론 아쉬움을 남긴다. 하늘도 무심하지 꼭 강원도로만 가면 날씨가 도움을 안 주는 것인지 그것도 이번엔 이유가 있는 여행이였거늘 이럴 줄 알았다면 예전에 함께 같이 해야 했는데... 현실을 인정하고 앞으로 좋은 추억을 만들어 드려야겠다. 처가집을 들러 장모님 모시고 삼척까지 한번에 가기 위해 간식까지 준비 네비 기준 300km 숙소는 3층 일출이 보이는 곳은 아니라고 하지만 나름 바다가 보이는 풍경은 좋다 날씨만 좋았다면 하는 아쉬움 아쿠아월드가 6시 까지 인데 2시 도착 조금이라도 더 놀기위해 방에서 바로 수영복 차림으로 직행 작은애와 장모님은 후반부에 이곳에서 물놀이 ..
옛 이야기(고전) - 억울한 사연 때는 조선시대 성종(9대 임금)초기 서기 1470년 께다. 충청도 청풍 고을에서 괴나리 봇짐을 지고 허술한 차림으로 서울을 향하여 걸어가고 있는 선비. 나이는 30이 넘었을까. 얼굴에는 핏기가 없이 궁한 티가 흐른다. (이번이 마지막이다. 안 되면 할 수 없지. 더 어째 보는 수도 없고…….) 비장한 각오를 하는 그는 사정이 딱했다. 이름은 김 위. 가난한 선비로 과거를 보려고 공부도 했고, 과거가 있을 때마다 서울을 오르내리기 벌써 다섯 번째. 요즘 말로는 이력이 난 재수생인 셈이다. 그러다 보니, 생활은 더욱 궁핍해져서 노자마저 여의하지 않다. 노정의 반쯤은 무전 여행(그 시대에는 과객질)을 하지 않으면 안 될 지경이다. 으례 점심을 굶고, 다른 사람들과는 달리 말도 탈 형편이 못되어 다리는 아프고,..
옛 이야기(고전) - 애끓는 비련(하) 그로부터 사흘 뒤 조 공자와 월랑을 위하여 잔치가 벌어졌다. 정식 혼인식은 아니니 예복을 갖추지는 않았으나 비단옷을 입혔고, 승상 부부에게 큰절로써 인사를 드리고 잔칫상을 대했다. 조 공자도 준수하고, 월랑도 아리따와 보는 사람들은, 마치 천생연분으로 만난 선남 선녀 같다고 혀를 내둘렀다. 조공자는 월랑을 맞아 흐믓했지만, 승상댁 하인들은 월랑이 팔자가 좋아서 좋은 자리를 만났다고 부러워했다. 잔치는 정식 축하 모임 못지 않게 흥겹게 진행 되었다. 축하잔치가 끝나고 단둘이 신방에든 꽃다운 부부는 하늘에 오를 것만 같다. "월랑이, 내가 머나먼 타향에서 이런 기쁨을 맛보다니 사람의 일이란 참으로 알 수 없는 것이야 누가 이런 일을 꿈엔들 생각했을까." 순수하고 감격하기 쉬운 스무살을 바라보는 두 부부는 감..
옛 이야기(고전) - 애끓는 비련(상) "서방님, 저번에 대감께서 데러오신 처녀가 보통으로 예쁜것이 아닙니다." "그렇더군. 나도 잠깐 본일이 있는데, 참 복숭아꽃같이 예쁘데." 말을 주고받는 사람은 청지기와 스무살이 될까말까한 청년. 원나라 대승상 탈탈의 집이다. 탈탈공이 변방 순회를 마치고 돌아왔을 때, 웬 처녀아이를 데려왔던 것이다. 그 처녀에 대해서 승상댁 사람들이 모두 입을 모아 칭찬했다. "그런 어여쁜 처녀를 어디서 데리고 오셨을까요 ? " 궁금한지 청지기가 청년에게 묻는다. "글쎄 잘은 모르겠는데, 대감께서 순시를 도시다가 어느 깊은 숲속에서 여자의 비명 소리를 듣고 하인에게 알아 보게 하였더니, 하인이 그 처녀를 데리고 왔다나봐." 청년의 이아기는 계속된다. 하인이 가본즉, 어떤 무뢰한이 그 처녀를 끌고 가려고 하는데 처녀는 안..
옛 이야기(고전) - 비형 왕자(하) 도깨비들의 장난으로, 가난한 집안이 별안간 부자가 되기도 하고, 부잣집이 빈집같이 된 집도 있고 웃고 울고 하였다. 성안 사람들은 하루도 편할 날이 없었다. 이 소문도 이 대궐안에 퍼졌다. 진명왕도 들었다. "짐이 나라를 다스리는데에 부덕한 것이로다. " 진평왕은 그 해괴한 도깨비들을 처치하려고 궁리를 짰다. 그러는 한편으로 진평왕에게는 또 한가지 걱정거리가 생겼다. 밤만 되면 극진히 마음을 쓰는 비형이 어디론지 나갔다가 새벽이 되어서야 돌아온다는 궁녀들의 보고였다. "이 아이가 어디를 간단 말인고?" 진평왕은 매우 궁금히 여기고, 그 사실을 알아 봐야겠다고 생각했다. 힘이 세고 담대한 용사들을 불러 들이게 하니 한 쉰 사람쯤 모였다. "너희는 잘 들어라. 비형이 밤만 되면 궁궐을 나갔다가 새벽에야 돌아..
옛 이야기(고전) - 비형 왕자(상) 신라 고허촌의 사량부라는 마을에, 세상 사람들이 도화랑이라고 부르는 어여뿐 아가씨가 있었다. 도화랑은 평민의 딸로 태어났으나, 복숭아꽃 같이 아리땁고 재질 또한 뛰어나, 근방 사람들은 너나 할 것 없이 칭찬이 자자했다. 도화랑이 나이 들어 열 일곱 살이 되었을때, 모두 욕심을 내건마는 워낙 평민의 딸이라 좋은 집안에서는 기피하고, 결국 한마을의 의지가지없는 총각과 혼인을 했다. 신랑은 미천하지는 않으나 사고무친의 고아라 데릴사위로 처가살이를 하고 있었다. 그들은 금실이 좋았다. 신랑이 장인 장모 모시기를 친부모 이상으로 하고, 신부 역시 있는 정성을 다하여 신랑을 섬겨 남들이 부러워하였다. 예나 이제나 호사에는 다마라는 말이 있드시, 이 알뜰하고 평화스러운 가정에 크나큰 풍파가 일었으니 세상은 무상한 것..
옛 이야기(고전) - 추남과 김유신(하) 마음이 싱숭생숭해진 김 유신에게 과일 나눠 주던 그 아가씨도 갖은 아양을 떤다. 참다못한 김유신은 체면도 잊어버리고 안타까운 심정을 호소했다. "아가씨 ! 괴롭소. 못 참겠구료" 그러자, 그 아가씨도 수줍은 태도를 지으면서도 알겠다는 듯이 말한다. "서방님의 뜻은 알겠나이다. 그럼 저 친구분은 저 두 아가씨들에게 맡겨두고 우리는 따로 숲 속으로 들어가십시다" 김유신은 백석에게 눈짓을 하고 그 아가씨와 함께 깊숙한 숲속으로 들어갔다. 그런데 이게 웬 일인가. 그 아가씨는 별안간 백발 신령으로 변하는 것이 아닌가. "나는 완삿내를 지키는 수신이오. 저 두 여자도 나와 같은 신이오. 그리고 김공과 동행하는 백석은 고구려 자객으로, 공을 해하려 하고 있소. 우리는 공이 위험하기에 사람으로 변신해서 그 사정을 알..
옛 이야기(고전) - 추남과 김유신(상) "영감! 주무셔요? 좀 일어나 보셔요" 잠들어 있는 남편을 깨우는 아내는 만명 부인이다. 만명 부인의 아버지는 24대 진흥왕의 동생 흘종이다. 할아버지는 23대 법흥왕의 동생이요, 할머니는 법흥왕의 딸이다. 그러니까 할아버지와 할머니는 숙질간이었다. "응, 왜 그러오?" 놀라 잠에서 깬 남편은 김 서현이다. 김 수로왕이 세운 가락의 10대(마지막) 구형왕이 재위 42년만인 서기 562년 9월에 신라에 항복하여 그 아들 무력은 신라의 장군이 되었는데, 서현은 이 무력의 아들이다. "참 이상한 꿈을 꾸었어요. 영감도 들어 보셔요." 때는 신라 26대 진명왕 16년(서기594년) 3월 경진날이다. 만명 부인이 남편 김 서현 장군의 얼굴을 쳐다 본다. "이상한 꿈이라니 실은 나도 기막힌 꿈을 꾸는데 부인이 흔들..
옛 이야기(고전) - 소년 황창 삼국 시대의 말엽, 백제의 마지막 의자왕 14년, 신라의 진덕여왕의 뒤를 이어 서기 654년에 진골(부모 중 한 쪽만이 왕족)인 김춘추가 왕위에 오르니, 이가 곧 신라 29대 태종무열왕이다. 삼국시대는 서로 치고 물리치고 하던 때라, 신라로서는 비록 당의 힘을 빈다 하더라도, 북쪽에는 고구려, 서쪽에는 백제를 적으로 두고 있어, 둘을 함께 거꾸러뜨릴 수는 없고, 그중 하나를 먼저 쓰러뜨러야겠는데, 고구려는 지금의 황해도 함경 남도를 남단으로하여 만주 지방까지 점령하고 있어 광대한데 비해, 백제는 주로 지금의 충청남도와 전라 남북도를 점하고 있을 뿐이어서 백제를 먼저 쳐 없애는 것이 상책이라고 생각했다.(신라는 지금의 강원도·경기도·충청북도·경상남·북도를 점하고 있었다.) 그러니 자연히 신라는 백제를 자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