전체 (854) 썸네일형 리스트형 옛 이야기(고전) - 왕손을불 압록강 건너편 고구려―. 가람촌이라고 하는 조그마한 마을에 스러져 가는 저녁 노을을 받고 들어서는 젊은 사람 하나가 있었다. 약간 길쭉한 얼굴에 피부는 희고 걸음걸이는 점잖았다. 머리에는 구멍난 갓을 쓰고 있으며, 입고 있는 옷은 때로 인해 시커멓다. 행색은 행색이지만 나그네이면서 수중에 아무 것도 지니지 않은 빈털털이인 것을 보면 분명히 그 무엇인가 곡절이 있는 사람인듯 했다. 허나 스스로 말하는 법 없고 어느 누구 묻는사람도 없이 그가 어떤 사람인지는 알 수 없었다. 『여보시요. 말씀 좀 물읍시다.』 그는 길가 느티나무아래에서 손자아이를 어르면서 앉아 있는 어느 노인에게 말을 건냈다. 노인이 고개를 돌리고 눈길을 주자『이 마을에서 가장 부유한 집이 어느 집이 온지요?』 하고 젊은이는 물었다. 노인은 .. 옛 이야기(고전) - 서령낭자 신라 문무왕 시대에 의상조사는 자장 율사, 원효대사와 더불어 큰 별처럼 삼대 거승(삼대거승)의 한분으로서, 불교 대도를 달성하였다. 그러나 더욱 더 불교의 대진리를 탐구득도하기 위하여 멀리 당나라를 향하여 길을 떠났다. 그리하여 한없이 가던 중 그만 몸에 신열이 나서 객지에 드러눕게 되었다. 하루 이틀도 아니요 수천 리 길을 쉬지 않고 강행하다 보니 중간에 그러한 신병이 날만도 하다. 도착한곳은 소주 땅이요, 머무른 곳은 길가에서 손님을 받는 조그마한 객주 집이었다. 그렇지만 집이 넉넉지 못해 열여덟살 모령의 처녀가 나이 많은 사모님을 모시고 겨우 살아가고 있었다. 의상대사는 이러한 집에 드러누워서 꿍꿍 앓게 되니 수천리 타국 남의 땅에서 기가 막힐 노릇이 아닐 수 없었다. 그런데 다행한 것은 그 집 처.. 옛 이야기(고전) - 이성계의 음모 위화도 회군의 성공은 벌써 고려조의 망국을 알리는 말이다. 우왕은 이성계의 세력에 눌리어 얼마 후 퇴위 당하고 다시 누구를 왕으로 세우느냐 할 때 조민수는 우왕의 아들 창을 내세우려고 하였다. 그러나 이성계는 이때부터 왕을 자기 다음대로 누르려고 하여 자기편에서 가까운 사람을 내세우려고 하였다. 당시는 아직도 구신들의 세력이 남아있어 이성계의 힘을 견제하려고 하였다. 여기서 당대의 명유 목온 이색의 의견을 듣기로 하였다. 목은은 벌써 국세가 기울어진 것을 생각하였으나 역시 창을 내세우는 것이 타당하다고 생각하였다. 『왕을 계승시키려면 응당 전왕의 아들이 계승되는 것이 원칙이요』 목은이 말하자 조민수도 여기에 찬성하였다. 그러나 이것을 못마땅하게 여기는 사람은 이성계이다. 그는 조민수를 보고 『우리가 회군.. 옛 이야기(고전) - 임금님의 유흥 고려의 성시도 예종 때부터 내려오기 시작하였으며 인종 때는 왕이 우유부단하여 일을 결단지게 처리하지 못하였다. 그것은 이자겸, 묘청의 반란 등이 있어 왕도 이것을 어찌하지 못하였으며 단안도 내리지 못하였다. 그래도 고려의 문물은 이때가 절정으로 발달되어 의종이 24년간 호유하여도 국가의 정치는 흔들리지 않았다. 그 동안 백년 내려오며 싸놓은 선왕의 덕택이라고 할 것이다. 의종은 일종의 풍류남아로서 경박하고 놀기를 좋아하는 귀공자의 타잎이었다. 그러므로 태자로 있을 때부터 인종이 항상 걱정하였다. 인종의 왕비 임태후도 태자의 경박을 싫어하여 차자를 왕으로 내세우려고 한 일까지 있었다. 이러한 사건은 사실상 의종의 반항적인 심리를 자극시켜 일로 유흥의 길로 박차를 가한 셈이 됐다. 왕의 유흥은 사실 예종 때.. 옛 이야기(고전) - 공민왕의 비애(하) 한번 세상맛을 본 신돈은 이번에는 정식으로 부인을 얻을 생각을 하였다. 당시 문벌이 좋다는 이경상의 처 김씨를 보고자 그의 집에 불렀다. 김씨는 응하여 들어왔다. 세상을 강박하게 본 까닭에 처음부터 『부인 들으니 요새 과부가 되었다 하는데 나하고 같이 살면 어떠하오』 하며 단도직입적으로 들어갔다. 『무슨 말씀이요. 세상이 아무리 혼돈하다 하여도 문벌 있는 집안에서는 쉽사리 재가하지 않소.』 『홀로 무척 적적하지 않소.』 『우리 남편은 살아있을 때 남의 계집이나 유녀 같은 것은 평생에 쳐다보지도 않던 사람이요. 그러한 남편이 죽자 개가하다니 말이 되오.』 『쓸데없는 고집을.』 신돈은 음흉한 눈으로 여자를 흘겨보았다. 『도첨의께서 나에게 손을 대시면 나는 자살할 생각이요.』 말을 마치자 그 자리에서 머리를 .. 옛 이야기(고전) - 공민왕의 비애(상) 고려의 왕실은 충목, 충경 등 어린 두 임금이 재위하였으므로 영신(왜신)들이 득세하여 어지러워졌다. 이때 충숙왕의 왕비인 덕비의 소생인 공민왕이 서게 되었다. 왕은 일찍부터 원나라에 들어가 몽고의 풍속도 알았고 또 그들의 내부적인 부패도 알았다. 한창 고려의 정치가 문란할 때 공민왕은 원나라 황실의 근친인 위왕의 딸 노국공주를 상하여 원나라 황실과도 가까워져 무난히 고려의 왕으로 들어오게 되었다. 노국공주는 왕과 같이 들어와 왕의 정치를 도와주었다. 이때쯤은 원나라 자체도 정치적으로 무기력하여 중원 각 지방에서 동란이 심해졌다. 왕은 귀국하면서 변발을 없애고 전날 고려식으로 머리를 위로 올렸다. 왕은 본국의 권신이 많은 것을 보고 우선 기황후의 친족과 그 일파를 없애고 다시 쌍성총관부를 고려 외 영토로 .. 옛 이야기(고전) - 사부리 싸움(상) 경상도방어사 조경과 별장 정기룡은 의명대장 장지현과 군사를 합세하여 추풍령 앞 사부리에서 왜병을 막아냈다. 정기룡은 조방어사 앞에 단정히 서서 대답한다.「왜적이 우리나라를 침략해 들어오려고 생각한 것은 하루 이틀에 시작한 일이 아니라 여러 해를 두고 짜논 일이옵고, 저놈의 군사는 날쌔고 훈련이 되었는데 우리나라 군사는 승평세월에 아무런 단련도 되지 않은 오합지졸이니 백명 군사로 백명 적병을 당해 내기가 어려운 판인데, 장차 적병은 수십만명이라는 호대한 군사가 되고 보니 임전대결하기는 아직 어려운 일이라 생각합니다. 다만 기병을 써서 출기불의로 적병의 날쌘 기운을 이곳저곳에서 꺾어 버린다면 적병은 차츰차츰 정신이 산란해질 것이라 이 틈을 타서 다시 적병을 무찔러 버린다면 우리는 큰 공을 거둘 수 있으리라 .. 옛 이야기(고전) - 아랑낭자의 영혼 앞이 확트인 영남루 언덕위에서 쳐다보는 초생달의 아련함이 아랑 낭자는 심호흡을 하고 섰다. 강을 타고 대나무 사이로 불어오는 산들바람과 함께 4월의 초생달 빛이 교교히 그녀의 피부에 와 닿고 있었으며 달빛의 아름다움을 이렇게 실감할 수 있었던 것은 벌써 여러해 전의 일인 것만 같다. 초저녁 무렵 유모가 느닷없이 영남루에 달구경 가자고 꾈 때만해도 한가위도 아닌데 달은 무슨 달구경이냐고 별로 내키지 않는 걸음으로 따라왔는데 달을 본 순간 그녀는 잘 왔다고 희열같은 것을 느끼는 것이다. 강 건너 절이서는 초파일 연등제 준비가 한창인 듯 횃불이 환하게 타오르고있는 것 말고는 온 주위가 적막이 싸여 있기만 하다. 요즘처럼 울적한 나날은 이처럼 초생달빛이 차라리 적격이겠다고 아랑낭자는 생각하던 참이다. 벌써 수십.. 옛 이야기(고전) - 명당자리 강원도 어느 깊은 산골을 한 사나이가 정처 없이 헤매고 있었다. 그는 최씨라는 풍수지리에 능통한 풍수사였다. 풍수사였기 때문에 갑자기 돌아가신 선친의 무덤을 아무데나 쓸 수는 없었다. 어디엔가 있을 소위 명당 자리를 찾아 벌써 며칠을 이렇게 산 속을 헤매고있는 것이었다. 그러나, 명당을 찾기만 쉬운 일이 아니었다. 그가 터득한 풍수지리설을 가지고도 그렇게 쉽사리는 명당자리가 발견되지 않았다. 그는 힘없이 발길을 돌리고야 말았다 해는 벌써 서산으로 기을어지 오래였다. 「오늘도 허사였구나」 긴 한숨이 절로 나왔다. 아직도 운명한 그 자리에 그대로 누워 있을 선친의 시신을 생각하니 초조해지지 않을 수 없었다. 급한 생각 같아선 아무데나 모실수도 있겠으나 그것은 그의 풍수사로서의 자존심이 용납하지 않았다. 집으.. 옛 이야기(고전) - 기상바우 아지랑이 너울너울 춤추는 화창한 봄날이었다. 지금 이름하여 기상바우에 아릿답고 날렵한 몸매에 연분홍 조고리마 홍치마의 여인과 중절 모자를 쓴 중년신사가 기상바우에 오르고 있었다. 여인의 표정은 굳게 굳어있었다. 「옥매야 오늘은 웬일이냐 이렇게 산책을 다하자고 하니‥」 「·········」 「오늘따라 너의 옷맵시가 아름답기 이를데 없구나」 「··················」 「아-니 무슨 생각을 그렇게 하기에 내말을 못듣고 있지? 옥매야! 나는 이제 죽어도 한이 없다 허허··」 아무 대꾸도 없이 듣고만 있던 옥매 이윽고 조용한 어조로 「사사끼 어른 죽어도 한이 없다 하신 말 정녕 정말이십니까」 「허허‥·내가 그토록 사랑하는 사람을 내 사람으로 만들었으니 더이상 바랄 것이 무엇이 있겠느냐」 「·······.. 이전 1 ··· 55 56 57 58 59 60 61 ··· 86 다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