왕세자 탄생의 축하연이 벌어졌다.
명활성 내에 있는 궁중은 물론이요 서라벌에는 경축놀이가 계속되었다. 특히 왕가와 귀족들은 음식을 만판지게 차려놓고 춤과 노래를 열흘동안 벌여 왕세자의 탄생을 경축하였다.
신라 20대 자비왕은 용상에 도사리고 앉아 신하들의 배알을 받고 희희낙낙하였다. 왕세자가 탄생한지 십오일이 되던 날 상대등(높은 대신) 홍인관이 어전에 읍하여 아뢰었다.
『상감……』
『상대등 무슨 말인지.』
『상감 왕세자 탄생을 기념하여 신라 방방곡곡에서 기쁨과 노래 소리가 드높게 들리웁니다. 백성들은 상감의 성덕을 찬양하옵고 신라의 부강을 노래하고 있사옵니다. 이처럼 즐거운 경사가 또 어디 있사오리까. 하지만 우리 신라는 문화적으로 훌륭하오나 한가지 빠진 것이 있사옵니다. 그것은 마치 옥에 티와 같사옵니다.』
『상대등, 신라의 서라벌뿐 아니고 백제 고구려까지 떨치고 있는 줄 아는데 무엇이 빠졌단 말이오?』
상대등은 또 한번 이마를 조아리고 아뢰었다.
『신라에는 공예가 발달하여 건축, 분상, 회화, 검무 등에 있어서는 손색이 없사오나 음악이 부족하옵니다. 우리 신라음악을 두드러지게 창작하여 사해에서 떨치도록 하옵소서.』
『신라 음악? 희소곡 같은 음악이 있지 않소.』
자비왕은 희소곡을 말하였다. 그러나 홍인관은 또한 이마를 조아렸다.
『상감, 신라의 궁중아악을 창작하여 궁중에서 왕세자 탄생을 축하하도록 하옵소서.』
하고 귀족들의 음악을 창작해야 한다고 주장했다.
『그럼 상대등의 주관하에 궁중아악을 만들도록 힘쓰오.』
자비왕은 마침내 상대등 홍인관에게 분부를 내리었다.
홍인관은 전국에 이러한 방을 붙여 재주있는 악공사들을 모집했으며 궁중에 들어오는 악공들에게는 상당한 대우로 보수를 준다고 선전했다. 악공모집의 방을 본 악공들은 구름떼와 같이 모여들었다.
이때 낭산밑에 거문고를 잘타는 허길이란 사람이 있었다. 나이 오십이 되어도 혈육은 없고 헌 누더기를 걸친 아내가 있을 뿐 굶는 날이 먹는 날보다 많았다. 이를 테면 찢어지게 가난한 선비었다.
허길의 부인이
『여보 나라에서 악공을 모집한다는데 당신도 나가봐요. 돈을 주고 높이 대우한다니 이참에 우리도 거지꼴을 면해야하지 않겠소? 당신의 거문고는 따를 악공이 없을 터인즉 매일 들어앉아 하품이나 하지말고 출세의 길을 찾아요.』하고 등이라도 떠밀라치면
『치워요, 치워! 나는 출세할 재주도 없고 출세한들 무슨 소용이 있소.』
하고 흩어진 머리를 흔들었다.
『아니 그럼 단둘 살림이 이꼴인데 장차 굶어 황천에 가겠소? 이집을 봐요, 벽은 헐어지고 지붕은 비가 새고 먹을 것은 없지, 이런 속에서 거문고만 타면 세월이 좋아진대요?』
『치워요 치워! 나더러 궁중에 들어가 그 썩고 썩은 무리들 속에서 아첨을 하고 살란 말이요? 더구나 이번 악공모집은 귀족 왕가들이 즐겨 부를 궁중음악을 만드는 것이 목적이란 말이요. 나는 평생을 백성들이 함께 부르는 흥겨운 음악을 하는데 바치겠소.』
일테면 궁중음악이 아닌 서민음악을 하면서 살겠다는 뜻이다. 부인은 기가 차고 역정이 나지 않을 수 없었다.
『맘대루 하세요. 여편네 치마자락이다 찢어져도 모른다는 당신과는 평생해로를 못하겠소.』
『허어, 이젠 갈라지자니 나이먹고도 아직 철이 들지 못하고 철부지 생각밖에 못하오.』
허길은 이럴때면 답답한 심사를 실어 거문고를 탔다.
살림은 궁색하나 허길의 명망은 서라벌에 떨치고 있었다. 그래서 허길의 도를 배우고 찾는 선비가 많았으나 그는 우국지정으로 궁중의 안일과 사치와 부패를 배타하고 서민본위에서 근검과 결백하기를 역설했다.
한번은 상대등이 사자를 보내 궁중에 초청했지만 그는 초야에 묻혀 살겠노라면서 굳이 이를 거절했다. 백성의 생활을 모르고 정치하는 것은 귀족이나 왕가들이 잘 살기 위해 백성을 괴롭힐 뿐이라고 꾸짖어 보내기도 했다.
허길은 화랑정신을 고취하고 국가의 부유하기를 꾀하려면 군민이 한몸되어 무예를 닦고 희생정신을 가져야 한다고 역설하기도 했다. 내 한몸의 영화를 누리기 위해 백성을 머슴처럼 혹사하고 착취하는 건 큰 죄악이라고 말했다.
궁중의 사치, 신하의 부패를 탄식하는 허길은 곤궁한 생활에 허덕이는 백성을 대표하는 대변자이기도 하였다.
서라벌에서는 집집마다 설차림에 여념이 없었다. 궁중에서는 오색찬란한 장치를 하고 술과 떡과 고기 등 산해진미를 모아들이기에 바쁘고 악공들은 신년 연회에 연주할 궁중아악을 창작하고 연습을 하기에 바빴다.
허길선생이 사는 낭산 밑에서도 떡방아 찧는 소리가 들렸다. 설날에 먹을 떡을 하느라고 아녀자들은 떡방앗간에 열을 지었다.
쿵 쿵 쿵……
떡방아 찧는 소리는 허길선생의 귀에도 들려왔다. 가난한 백성들은 설날에 먹을 떡을 찧고 있었다. 그의 부인이 남편에게 말했다.
『마을에서는 집집이 떡을 하느라고 야단들인데 우리 집은 떡쌀은 고사하고 먹을 쌀도 없으니 설날은 내일 모렌데 장차 어찌 하겠소. 마을 집에서는 찰떡을 한다 인절미를 한다 송편을 한다 야단들이건만 우리 집은 수수떡도 못하니 이게 사람이 사는 몰골이요? 당신두 귀가 있거든 저 떡방아 찧는 소리를 들어봐요. 아이고 내사 설날을 맞이하기 전에 복장이 터져 죽겠시요.』
허길선생은 귀를 기울이고 떡방아 소리를 듣더니 입을 떼었다.
『설날은 누구나 맞이하게 마련이구 또 떡을 먹건 안먹건 한살 더 먹게되는게 아니요. 떡을 못 먹는다 서러워 말고 나이 먹는다고 서러워하오.』
부인은 울화통이 터져 죽을 지경이었다.
『나이 먹는 것도 원통한데 떡도 먹지 못하고 나이를 먹자니 기가 막힐 노릇이요.』
하고 남편을 원망하며 슬피 울었다.
그러나 허길선생은 태연하게
『떡을 못먹는 사람은 비단 우리 뿐이겠소.』
하고 떡방아 소리에 귀를 기울였다.
이날 밤 허길선생은 거문고에 설움을 담고 줄을 다루다가 피곤하여 잠이 들었다.
이때 문밖에서 사람발소리가 들렸다. 그는 문을 열고 눈이 쌓인 뜰을 내다보면서
『누구냐?』
하고 물었다. 마루앞에 서 있던 자는
『도둑이올시다.』
라고 대답했다.
『무얼 도둑질하자고 왔느냐?』
『쌀이나 가져갈까 하구……모래가 설날인데 떡쌀이 없어 떡을 못하고 있소. 마누라의 구박을 받다가 도둑질 나왔읍죠.』
『허허…‥너두 떡방아를 못찧느냐? 자 들어와서 쌀이 있거든 가지고 가거라.』
하고 방을 개방했다.
『죄송하옵니다. 용서하십시요.』
도둑은 방안을 살펴보았으나 쌀가마는 없었다. 잘못 들어왔다 생각한 도둑은
『댁에서두 떡방아를 찧지 못합니까?』
다른데 가서 쌀을 도둑질하면 떡살을 보태들이겠다고 하며 나가는 도둑을 불러세왔다.
『이놈아 떡을 못하면 못했지, 도둑질해 지은 떡을 먹고 속이 편하겠느냐? 사람은 다 제 분수대로 살아가는 거야. 떡쌀이 없다고 도둑질 나선다면 서라벌은 도둑천지가 되고 말 것이다. 아무리 가난해도 사람은 도둑심사를 버리고 부지런히 일해야지.』
『선생님 잘 알겠읍니다. 기실은 마누라의 성화에 못이겨 나서기는 했읍니다만……부끄럽습니다.』
도둑은 사과하고 돌아갔다. 오밤중인데도 방앗간에서는 떡방아 소리가 쉬지 않았다. 방아소리를 들으면서 허길선생은 잠이 들었다.
다음날 아침에도 방앗간에서는 떡방아 찧는 소리가 들렸다. 내일은 새해설날이다. 떡방아 소리는 쉬지 않고 들렸다.
쿵 쿵 쿵‥·… .
허길선생은 그 소리에 맞춰서 거문고의 줄을 골랐다. 그러나 방아찧는 소리를 나타내기란 어려웠다. 거문고를 빗겨 놓고 일어섰다. 방문을 나서 방앗간을 찾아갔다. 마을 부녀자들이 모여서 방아를 찧고 있었다. 그들이 발을 밟을 때마다 방아찧는 공이 올라갔다가 발을 떼면 방아공이 내려쳐 진다.
방아 찧는 모양을 한참동안 바라보던 그는 다시 집에 돌아왔다.
쿵 쿵 쿵 쿵당 쿵당 쿵당
한참을 골라도 방아찧는 흥과 설날의 기분이 잘 나타나지 않았다. 거문고를 타다가 손을 떼고 한숨을 쉬었다.
『잘 나타나지 않아…… 실감이 나지 않는건 보기만 하고 체험을 못한 까닭일까.』
그는 다시 방앗간을 찾아왔다.
『그 방아를 나두 좀 찧을까.』
하고 부녀자에게 말했다. 그 부녀자는
『남정네가 어찌 방아를 찧어요. 호호호… … 』
입을 싸 쥐고 웃었다.
『어디 한번 찧어 봅시다.』
『어이고. 망칙해라. 오십이 넘은 분이 망령이 들었나봐.』
여러 아녀자들은 까르르 웃었다.
『한번 찧어 봅시다.』
하고 다시 간청했다. 방아를 찧던 여자가 물러서며
『정녕 소원이라면 찧으세요. 한말만 찧으시면 설날 자실 떡을 드리죠.』
하였다. 그래서 한말을 찧었다.
쿵 쿵 쿵
한말을 다 찧은 그는 집에 돌아와서 거문고를 뜯었다. 밤중까지 거문고 줄을 골으면서 가사를 지었다. 가사에 맞춰 줄을 고르기도 하였다.
『됐다 됐어. 방아타령 됐다.』
그는 거문고를 밀어놓고 춤을 추었다.
부인은 남편이 부르는 노래와 춤을 바라보다가 저도 흥이 나서 방아타령에 맞춰 춤을 춘다. 부부가 끌어안고 노래하고 춤을 추자 방앗간에 모였던 마을여자들도 우우 몰려와서 구경을 했다.
마침내 구경꾼들도 합세하고 춤을 추었다.
오늘날 부르는 남도 방아타령과 서도 방아타령의 기원은 신라의 방아타령이 그 기원이며 구전으로 전한 것이다. 그리하여 신라의 문화는 백제 고구려까지 전파되고 후세 우리 민족의 얼이 되었던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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