본문 바로가기

IT/옛날 이야기

(109)
역사속의 이야기 - 춘선과 유신 上 때는 신라 제26대 진평왕 34년의 옛날로 올라간다. 따뜻한 봄 실실이 흘러내리는 가는 비가 개인 지도 이미 오래다. 해마다 제 때를 잊지 않고 돌아오는 대자연의 봄이 그 어느 곳이라 다르랴마는 해마다 풍년들어 나날이 기름져가는 서라벌 이 땅에 골고루 찾아온 봄바람은 태평연월을 노래하는 이 나라 백성들의 흥을 더 한층 돋구어줌에 족하였다. 이 때 어깨가 으쓱으쓱 젊음의 몸을 가슴 벅차게 느끼는 청년 세 사람은 미리 약속이나 한 듯이 말머리를 돌리어 알천강 푸른 언덕으로 기분 좋게 휘파람을 불면서 걸어 나갔다. 강변 버드나무 가지가 나날이 푸르러가는 언덕 위에 말을 세우고 삥 둘러선 청년 세 사람은 모두 칼을 차고 화살을 메고 채찍을 들고 신라 서울에서만 볼 수 있는 화랑들의 늠름한 기품이었다. 이따금 불..
옛 이야기(고전) - 선비 송인수 사람이란 누구나 세상에 태어나면서 어떻게 하면 착하고 훌륭하게 살 수 있는가에 신경을 쓰게 된다. 멀리 이씨 조선 5백년 동안에도 많은 선비들은 겸허하고 착실하게 살아갈려고 몸부림을 쳤다. 선비라고 하면 한마디로 권력과 금력에 때묻지 않고 주색에 방황하지 말 것 등이 하나의 신조로 되어 있었을 것이다. 당시만 해도 선비들의 규율이 얼마나 엄했는지 여기에 십불고생을 적어보기로 한다. 1. 집을 돌아보지 말 것. 2. 재산을 탐내지 말 것. 3. 먹고 살아갈 것을 걱정하지 말 것. 4. 자식들을 돌아보지 말 것. 5. 가문을 돌아보지 말 것. 6. 친구를 돌아보지 말 것. 7. 여자를 좋아하지 말 것. 8. 술을 즐겨 마시지 말 것. 9. 벼슬을 탐내지 말 것. 10. 풍류를 즐기지 말 것. 등등이었다. 그..
역사속의 이야기 - 김유신 지 신라의 귀족들과 연결하지 않으면 출세의 길이 막히어 일생을 허송하게 된다. 때마침 신라에는 당나라에서 들어온 축국이 성행하였다. 바로 선덕여왕 초년에 김유신은 신라의 진골 김춘추와 친근할려고 하였다. 정월 보름날이 되면 모두 약식을 해먹고 이 날 하루를 즐거웁게 논다. 김유신은 이날 김춘추를 청해다놓고 자기 집 근처 넓은 마당에서 축국을 시작하였다. 이 축국은 농주하는 놀음이라고 하였다. 수족을 다 놀리며 차는 경기이다. 한창 재미있게 놀 때 김유신이 마음속에 큰 포부를 품었는지 김춘추의 당의 옷자락을 밟았다. 옷은 소리를 내며 뜯어졌다. 그래도 김춘추는 모르고 있었다. 한참 놀고 난 뒤에 김춘추가 가려고 할 때 소매자락이 터진 것을 보고 『너무 재미있게 노느라고 옷이 터진줄도 모르고 놀았네.』 하고..
옛 이야기(고전) - 석상의 화신 下 『떽기 무슨 말버릇이 그렇담? 알고 싶다면 좀 더 정중하게 물어야지!』 『예! 그럼 잘못했읍니다. 좀 알려주세요! 호호홋!』 『아니 아직 주인댁이 날 덜 믿는 것 같아! 그럼 더 믿도록 해주지!』 『어떻게요?』 『맞으면 맞고 틀리면 틀린다구 하라구 주인댁은 남편 몰래 부엌 밑바닥에다 항아리를 묻고 돈을 감춰둔게 있지?』 『네?』 주모는 순간 깜짝 놀라고 말았다. 남편조차 몰래 숨겨둔 돈을 알아내다니 귀신이 곡할 노릇이다. 그렇다고 막상 실토할 수도 없는 노릇이어서 『그렇다고 치고요! 또요!』하고 얼버무리자 『그래도 솔직하지 못하군! 그럼 그 돈이 전부 얼마나 되나 알겠는가? 아마 주인댁도 나만큼은 모를꺼요!』하니 주모는 얼결에 『글쎄 저도 얼마나 되는지 잘 모르겠어요!』했다. 그러자 노인은 『그렇게 나와..
옛 이야기(고전) - 석상의 화신 上 안동고을에 찢어지게 못사는 모녀가 살았다. 설상가상으로 어머니는 이름 모를 병에 걸려 자리에 누운지 여러 해가 되니 집안 꼴이야 말할 수 없게 되고 관가에서 삼천 량이나 되는 돈을 꾸어 빚방석에 앉게 되었다. 어린 달래가 남의 집 품팔이를 하면서 단 얼마라도 어머니의 약값에 보충해 보려고 애를 쓰는 것이었지만 큰 보탬이 되지 못했던 것이다. 그러다 얼마 전의 일이다. 갑자기 달래네 고을에 나라에서 보낸 암행어사가 내려온다는 소문이 나돌기 시작했다. 암행어사라면 탐관오리를 징계하는 것은 물론이요 그 고을에서 일어나는 대소 송사와 재정문제 등을 다스렸는데 안동부사는 암행어사가 내려 온다는 말에 즉시로 달래네 집에 군졸을 보내어 삼천 냥의 빚을 아무날 아무시까지 갚도록 하라고 전갈을 했던 것이다. 당시 포흠 ..
옛 이야기(고전) - 태종의 맏아들 양녕대군 원래 양녕은 태종의 맏아들로서, 세자로 책봉되어 춘방에서 거처하였다. 그는 왕자로서는 천고에 드문 재인이어서, 문장과 필법이 뛰어난 사람이었다. 태종이 경회루의 현관을 보고 그 웅건한 필치에 놀라, 아들 양녕의 필법을 무수히 칭찬했다고 한다. 그러한 양녕이 어찌하여 술과 계집에 빠져, 장차 지존에 오를 세자의 자리까지 내팽개치고 갖은 추잡한 행동과 미치광이 짓을 하였던가? 여기에는 그럴만한 곡절이 분명이 있었던 것이다. 그가 세자로 책봉된지 얼마 안되어 부왕의 침전으로 문안차 들어갔을 때였다. 그는 문밖에서 부왕 태종과 모후 민씨의 소근거리는 대화를 듣고 아연해 버렸다. 『참 아쉬운 일이야. 충녕과 양녕이 바꾸어 태어났다면, 장차 백성들이 어진 다스림을 받아 태평성고에서 살게 될 것을… !』 부왕 태종은..
옛 이야기(고전) - 애란의 비련 봄이라기 보다는 아직도 늦은 겨울이었다. 신라 서울의 서산인 선도산 동녘에 자리 잡은 애란과 도열의 집이 있는 동네에서 멀리 남산을 바라보면 양지가 바르지 못한 골자기에는 아직도 허옇게 눈이 쌓여 있었다. 『삼짓날이 인제 며칠 남았지?』 애란이가 가야금을 고르다가 손이 시려서 「호호」입김으로 녹히며 옆에서 노래를 부르던 도열에게 물었다. 『얼마 안남았어.』 『며칠?』 『가만 있거라. 응, 열흘밖엔 남지 않았구나.』 『열흘! 그럼 다 됐네?』 『그래 얼마 남잖았으니까 조금만 더 고생하면 되겠다. 자 어서 타라.』 애란은 도열의 말에 고개를 끄덕끄덕 하면서도 가야금을 쉬 타려고는 하지 않았다. 『애란아! 너희 아버지가 오시면 또 야단 마지려구…어서 타』 도열이 애란을 재촉했다. 『너는 그렇게 손을 바지춤에 ..
찾는 차사는 살아 돌아가지를 못하였다.(옛 이야기(고전) - 함흥차사) 저 남산에 가 돌을 깨니 정이 남음이 없네 정도전과 남은이 방원의 손에 죽을 것을 미리 예언한 동요로서 남산은 남은을 가리킨 것이며 정은 정도전을 가리켰고 남음이 없다는 남은을 뜻했다 전해진다. 한양에서 이 동요가 불리울 지음의 이야기다. 여기는 함흥 태상왕 행재소이다. 찾는 차사는 살아 돌아가지를 못하였다. 한사람의 차사가 왔다. 「태상께 금상으로 부터의 문안이오!」 「문안이라고? 세자를 없앤 것이……뉘없느냐? 저놈을 당장에 참하여라!」 태상의 말이 떨어질 겨를없이 차사는 달려온 근신의 칼에 쓰러졌다. 「금상으로부터 태상께 문안이요!」하고 행재소 뜰에 부복하였다. 「이 고얀것! 방석, 방번, 그리고 내사위를 죽인것이! 내 아직 활을 잡을 힘이 있거늘!」 명궁 태상의 손에 활이 잡히자, 차사는 퍽하고 땅..
옛 이야기(고전) - 가난한 선비 왕세자 탄생의 축하연이 벌어졌다. 명활성 내에 있는 궁중은 물론이요 서라벌에는 경축놀이가 계속되었다. 특히 왕가와 귀족들은 음식을 만판지게 차려놓고 춤과 노래를 열흘동안 벌여 왕세자의 탄생을 경축하였다. 신라 20대 자비왕은 용상에 도사리고 앉아 신하들의 배알을 받고 희희낙낙하였다. 왕세자가 탄생한지 십오일이 되던 날 상대등(높은 대신) 홍인관이 어전에 읍하여 아뢰었다. 『상감……』 『상대등 무슨 말인지.』 『상감 왕세자 탄생을 기념하여 신라 방방곡곡에서 기쁨과 노래 소리가 드높게 들리웁니다. 백성들은 상감의 성덕을 찬양하옵고 신라의 부강을 노래하고 있사옵니다. 이처럼 즐거운 경사가 또 어디 있사오리까. 하지만 우리 신라는 문화적으로 훌륭하오나 한가지 빠진 것이 있사옵니다. 그것은 마치 옥에 티와 같사옵..
옛 이야기(고전) - 왕건의 호사 / 농사꾼과 벼슬 고려 태조 왕건은 개성근처 예성강을 중심으로 화가위국(化家爲國)한 인물이다. 그의 아버지 왕융(王降)이 처음으로 이 부근의 호족(豪族)으로서 큰 뜻을 품었다. 소년 왕건은 아버지를 따라 예성강에서 수군에 대한 수련을 많이 하였으며 나이 二十세 되는 때는 벌써 궁예가 강성하여 여기까지 그의 세력을 미치게 되었다. 이때 왕건의 아버지 왕융은 아들을 데리고 궁예의 부하로 들어가 궁예왕의 충실한 일군이 될 것을 맹세하였다. 한 번 궁예의 부하가 되자 이제부터는 그 부근을 점령하여 궁예왕의 환심을 사기로 하였다. 우신 장군이란 신분으로 개성근처를 점령하고 정주로 내려가 행군하던 중 여름날이 되어 큰 버드나무 아래에서 쉬고 있었다. 마침 그 앞에 내가 있어 맑은 물이 흘러 내려가고 있다. 아름다운 풍경이었다. 살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