본문 바로가기

IT/옛날 이야기

(109)
산의 전설 - 청주 선도산 악신과 애기바위 청주에서 동쪽으로 약 4킬로미터 지점. 청주의 명물 명암 약수터로 오르는 길에 명암못(명암호)이 있고, 거기서 방죽 거리를 지나 위쪽으로 올라가다 보면 오른쪽으로 용정동 저수지를 바라보면서 울창한 낙엽송 숲이 나타나는데, 이 산이 선도산이며, 그 산의 낙엽송 계곡을 마주한 곳에 부인상을 닮은 바위가 있으니 이 바위가 곧 애기바위이다. 그러니까 조선 광해군 때 일이었다. 알다시피 광해군은 온갖 난정을 저질러 많은 충신들이 화를 입고 조정을 떠났던 시기여서 크고 작은 사건들이 끊일 사이 없이 일어나 세상을 온통 침울하게 만들어 놓은 장본인이었다. 선도산의 애기바위도 그 무렵의 얘기인데, 이 바위에는 한성에서 벼슬을 버리고 청주 고을에 와 은둔 생활을 하고 있던 최참판 내외의 이야기가 서려 있다. 최참판 내외..
산의 전설 - 진안 마이산 부부산(夫婦山)의 여행 까마득한 옛날이었다. 아들 산 딸 산을 주렁주렁 낳고 금실 좋게 살아가는 어느 부부산이 있었다. 그들 부부 산은 이를테면 산신이었다. 한데 그들 부부산은 밤이면 밤마다 자꾸 얼만큼씩 자라면서 또 조금씩 조금씩 움직여 한양으로 올라가는 길에 마침 전라도 진안 고을에서 하룻밤을 유하게 되었다. 그 산이 그들은 아무에게도 눈에 뜨인 적이 없었는데 만일 사람의 눈에 뜨이게 되면 그들의 화목하고 즐거운 일생은 끝장이 나고 만다는 것이었다. 부부 사이는 금실이 무척 좋았지만 그렇다고 말다툼 한번 없이 살아가고 있다는 이야기는 아니었다. 남편 산은 사람이 모두 잠이 든 사이에 빨리 커서 하루빨리 한양에 닿자고 하였다. 아내는 반대였다. 『여보. 그렇게 고집부리지 마세요. 빨리 움직이면 아이들이 피로할 테니까 한숨 푹..
산의 전설 - 공주 봉황산과 계룡산 왕도(王都)의 기운 충남 공주 읍내에는 시내 제민천 위에 옛 백제시대의 사적유적지의 하나인 「대통다리」가 남아있고 사찰 경내에 세워졌던 당간지주가 그 많은 풍상을 견디며 오늘까지 버텨오고 있는 것을 볼 수가 있다. 대통사는 백제가 웅진(공주)에 도읍을 정하고 있을 때 가장 큰 절로 전해온다. 그 무렵 봉황산 밑에는 한 중이 살고 있었다. 어느 날 그는 꿈 속에서 산신령을 만났다. 『사문아, 듣거라!』 산신령은 첫눈에 보아도 봉황산을 지키는 산신인 것 같았고 무엇인가 긴한 이야기를 전해주려고 현몽한 것임을 그 중은 단박에 알아낼 수가 있었다. 『예― 말씀하십시오. 산신령님.』 『너는 장차 이 봉황산 밑에다 크나큰 절을 지어야 하느니라.』 『산신령님 뜻이라면 지어야 하고 말굽쇼.』 『절을 짓는 것만 가지고서는 아니 되느니.』 ..
산의 전설 - 강화 화개산 문무정(文武井) 경기도 강화군 교동면 고구리에 있는 화개산에는 문무정이라는 두 개의 우물이 있었다고 한다. 동쪽 산기슭에 있는 우물을 문정, 서쪽 산기슭에 있는 우물을 무정이라 불렀는데, 그 두 개의 우물에서 솟아 나오는 맑고 깨끗한 물이 어떻게나 맛이 있었던지 찾아오는 사람들이 장꾼처럼 줄을 이었다고 한다. 문무정에서 나온 물은 시내를 이루어 마침내 바다에 이르렀다. 우물물이 솟기 시작하면서 놀랍게도 교동에서는 문·무관이 속출하여 많은 인재를 조정으로 내어 보낼수가 있었는데, 이는 두말할 것도 없이 문무정의 은덕 때문이었다고들 하였다. 그런데 문관과 무관의 배출 인원수와 두 우물의 수량에는 아주 밀접한 관계가 있었다. 『참으로 기이한 일이로세. 문정의 물이 넘치면 문관이 많이 나오고 무정의 물이 넉넉하게 솟으면 무관의..
산의 전설 - 대덕 식장산 은어송의 윗대 묘(墓) 식장산은 충남 대덕군과 충북 옥천군의 군계에 우뚝 버티고 선산이다. 어느 때인지는 자세하지 않지만, 옛날 그 식장산 기슭의 웃터새말(지금의 가오리 근처)에 은어송이란 젊은이가 머슴살이를 하면서 늙은 홀어미를 모시고 살았다. 십 년 동안이나 머슴살이를 했지만, 형편은 매양 그 모양 그 꼴이어서 나이 삼십이 가까왔는데도 아직 장가를 들지 못한 처지였다. 은어송은 십년을 하루 같이 식장산 중턱에 올라 땔나무를 해 나르는 사이 점심때가 되면 싸 가지고 간 점심을 그 산 중턱에 사는 가난한 절의 중 법흠과 함께 나누어 먹었다. 「은총각 정말이지 이 은혜 어떻게 갚아야 할지 모르겠네.」 법흠은 밥을 나누어 먹을 때마다 고마운 마음을 전했다. 그때마다 은어송은 고개를 저으며 「온 별말씀을 다 하세유. 지가 은혜 갚음..
산의 전설 - 국사봉(國士峰)과 퇴혼(退婚)고개 청주의 남산이라고도 부르는 국사봉은 남일면 소재지인 효촌리에서 남쪽으로 약 5킬로미터 떨어진 곳에 자리 잡은 높지 않은 산이다. 높이 281미터밖에 안 되는 산이지만 이 산에는 꺾일 줄 모르는 항일 정신도 스며 있고 청주 한 씨 시조에 얽힌 이야기도 전해 온다. 일정 때 일이었다. 청원군 남일면 초대 면장 한인구는 비록 일제의 식민지 치하였지만, 면장이란 자기 직책을 십분 활용하여 어떻게 해서든지 수탈 당하는 조선 사람들에게 무엇 하나라도 이득이 되는 일이 있으면 앞장서 도와주는데 보람을 느꼈다 「공출」이라는 이름으로 빼앗긴 조선 쌀은 일본인들의 식량을 보충하기 위해 한해도 거르는 일이 없이 마을을 빠져나갔다. 말하자면 농사는 조선 사람이 짓고 먹기는 일본 사람이 먹는 꼴이었다. 어느 해던가 그 해에도 ..
산의 전설 - 춘천 봉의산 (몽고전란의 혈육장) 고려 고종 때 몽고군이 온 나라를 짓밟고 지나갈 때 일이다. 봉의산에서도 관군과 몽고군의 혈전이 벌어져서 피아간에 희생이 컸다. 봉의산을 점거하고 있었던 관군은 무엇보다도 식수가 걱정이었다. 산중에는 우물이 한 곳밖에 없어서 도무지 장기전을 펼 수가 없었던 것이다. 「공격하라. 사력을 다하여 진군하라.」 몽고군의 선봉장은 부하들을 독려하면서 칼을 뽑아 들었다. 봉의산 속에 있는 춘주(춘천) 주민과 관군들은 완강히 저항했지만 몽고군이 산 아래서 성책을 쌓고 우물을 판 다음 장기전으로 돌입하자 일은 점점 더 어렵게 되어 갔다 「식수가 바닥이 났습니다,」 「말을 잡아서 그 피를 마시도록 하라,」 「장군. 말이 없으면 어떻게 저들과 항쟁을 합니까,」 「하는 수 없는 노릇이다. 우물에 다시 식수가 고일 때까지 말..
산의 전설 - 시루밑에서 돋아난 고사리 충북 청원군 남일면 소재지는 「효자가 난 마을」이라 하여 효촌리라 부르고, 이 효촌리에서 동남쪽으로 약 4킬로미터쯤 가다 보면 255미터의 그리 높지 않은 산을 만나게 되는데, 그 산의 정상으로 시루봉이라 부른다. 경연(1455∼1494)은 조선 세조와 성종조에 바로 효촌리에서 살던 사람으로 좌랑 신직의 아들이요 호를 남계라 하였다. 학식이 높고 효성이 지극한 그가 아버지의 병환을 맞게 되자 보던 책을 아예 덮어 버리고 아버지 곁에 붙어 앉아 시중을 들게 된 것은 당연한 일이었다. 병석의 아버지는 아들의 극진한 보살핌에도 차도가 있지 않았다. 병자는 다 꺼져가는 몸에 입술을 겨우 움직여 잉어회가 먹고 싶노라고 했다. 아들은 어구를 급히 마련해 가지고 앞 도랑가 웅덩이에 이르렀다. 허나 철기가 마침 엄동설..
옛 이야기 - 꼬마 현초동(때는 이조 문종 때) 해마다 열리는 과거에서 전국 방방곡곡의 선비들이 모여 시제를 앞에 놓고 훌륭한 문장을 써내려고 온갖 안간 힘을 다하고 있었다. 이윽고 얼마만에 답안지를 쓴 사람들이 하나 둘 퇴장하는 모습이 보였다. 시험이 끝난 것이다. 선비들이 다 퇴장하고 나서 한참만에 호명관이 『장원에 현초동이요』하고 외쳤다. 이 때 사람들은 저마다 장원으로 호명된 사람을 찾는양 고개를 두리번거렸다. 『아니 저럴수가?』 『저건 꼬마가 아니야?』 『누가 아니래 글쎄 ?』 저마다 놀라움에 찬 말들이 장내에 가득찼다. 그도 그럴 수 밖에...... 장원으로 뽑힌 사람은 이제 불과 열살이 되었을까 말까 한 코흘리개 정도의 애숭이었기 때문이다. 호명관을 비롯한 참관인들이나 밀양부사마저 이 사실에 어안이 벙벙할 따름이었다. 어쨌든 장원은 결정된..
역사속의 이야기 - 춘선과 유신 下 그런 지 세월은 흘러 흘러 50년이 지난 후에 김유신은 삼국 통일대업을 자기 손으로 완성한지라 무엇에 유한이 있으랴! 전쟁이 진정되고 만민이 태평하니 가슴도 흐뭇했다. 이제는 슬슬 왕을 모시고 종묘사직에 배하고 또 이 뜻을 선조에게 고하기 위하여 산음현에 있는 가야국 증조 왕릉에 참배했다. 일생을 나라 위하여 몸을 바친 그는 모든 것이 소원대로 성취되어 부귀영화가 지극하니 세상에 태어났던 사내로서 무슨 유한이 있으랴마는 그래도 가만히 생각하면 저도 모르게 두 눈에서 눈물이 펑 돌곤 했다. 아무도 없는 방안에서 조용히 지내온 세상을 돌이켜 보니 나를 위하여 혹은 나라 위하여 몸을 바쳐 희생한 여러 충신 역사들이 눈앞에 암암하여 마음도 괴로웠다. 내가 이렇기 삼국통일에 성공하고 부귀 영화를 누릴 수 있는 현..