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IT/옛날 이야기

역사속의 이야기 - 춘선과 유신 下

by 양화산장 2018. 11. 30.

그런 지 세월은 흘러 흘러 50년이 지난 후에 김유신은 삼국 통일대업을 자기 손으로 완성한지라 무엇에 유한이 있으랴!
전쟁이 진정되고 만민이 태평하니 가슴도 흐뭇했다.
이제는 슬슬 왕을 모시고 종묘사직에 배하고 또 이 뜻을 선조에게 고하기 위하여 산음현에 있는 가야국 증조 왕릉에 참배했다.
일생을 나라 위하여 몸을 바친 그는 모든 것이 소원대로 성취되어 부귀영화가 지극하니 세상에 태어났던 사내로서 무슨 유한이 있으랴마는 그래도 가만히 생각하면 저도 모르게 두 눈에서 눈물이 펑 돌곤 했다.
아무도 없는 방안에서 조용히 지내온 세상을 돌이켜 보니 나를 위하여 혹은 나라 위하여 몸을 바쳐 희생한 여러 충신 역사들이 눈앞에 암암하여 마음도 괴로웠다.
내가 이렇기 삼국통일에 성공하고 부귀 영화를 누릴 수 있는 현재가 하늘 공중에서 뚝 떨어진 바 아니다.
나라 위하여 나를 도웁다가 죽은 사람이 가령 만명이라면 그는 그 만명의 죽은 시체 위에 올라서서 큰 소리 치는 거나 무엇이 다르랴 생각함에 가슴도 에일 듯이 아팠다.
그래서 김유신은 그들의 영원한 명복을 빌기 위하여 취산사라는 큰 절을 지어 위패를 모셔도 주고 또 자기 자신도 때때로 명산대찰을 찾아 마음으로 염불도 했다.
이러는 동안에 김유신은 법화사에 이름난 원휴화상을 친히 알게 되었고 다시 그를 통하여 반야암에 있는 우담화상이란 여승도 찾아가서 만나보게 되었다.
듣건대 우담화상은 비록 여승이로되 도력이 천에 통하여 조화가 무궁하고 인간 미래를 만난 사람의 말 한마디에 척척 알아맞힌다 했다.
그렇다면 나도 한번 기어이 만나 보자는 생각에 김유신은 일부러 큰 맘먹고 그리로 찾아갔다. 따라서 마침 집에 있는 우담화상도 조용히 만나 볼 수 있었다.
만나니 과연 듣던 바와 다름이 없어 화상은 유신이 가서 말하기도 전에 벌써 그가 누군지를 알고 있음에 놀랐다.
인사 속으로 나오는 피차간에 한 줄기 문답이 무르익어 가다가
「그런데 김장군께서 최후에 쓰신 비결주머니는 어찌하셨지요?」
하고 묻기에 공은 가슴 뜨끔했다.
(비결 주머니에 대한 내용은 생략하였음)
「비결 주머니는 아직 찾지 않았습니다.」
「그리고 까마귀 울 때 찾아갔던 중이 누구신지 아시나요?」
공은 더 한층 놀래어 입이 딱 벌어졌다. 그것이 죄다 이 도사의 조화였었구나 생각이 나서
「스님 그 일을 어떻게 아십니까?」
우담은 저으기 미소를 띄우면서 그 말은 대답도 없이 다른 말을 꺼낸다.
「무열왕이 춘추공으로 계실 때 고구려로 청병 가던 도중에서 만난 세 가지 위험을 구해준 이인이 그 누구였는가를 춘추공에게 물어 보신 일이 없으신가요? 그리고 그 은혜를 무엇으로 갚았다나요.」
공은 하도 기가 막혀서
「아, 그 일은 또 어떻게 아십니까?」
우담은 역시 말끝을 웃음으로 흐리고 나서
「원래 사람이란 저 잘난 멋에 살지 남의 은혜는 모르는 법이랍니다. 어느 나라든지 영웅 호걸이 많다하지만 그러한 사람들의 신변에는 반드시 현모양처가 있답니다. 자기자신의 가진 실력과 재간을 가지고 훌륭하게 출사하는 것만으로 믿는 사람은 많아도 어머니 흑은 아내의 기특한 내조의 공이 크다는 깃을 아는 사람은 아마 드물 것입니다.」
「그도 그렇겠지만 사람이 어찌 다 같겠습니까?」
「그러면 장군은 어떠시오.」
「나는 자신이 있습니다.」
「그야 물론 그러실 테지요. 장군은 어머니 말씀을 옳게 듣고 말 목을 베인 효자이시니…… 그러면 아내에게도 자신이 계신가요?」
「있습니다.」
유신은 기탄 없이 딱 끊어서 대답하니 화상은 기가 막혀서 잠깐 말이 없다가 「그렇게 자신이 계시다니 장군은 아내 은혜를 아십니까? 장군의 성공을 위하여 아내 아닌 아내가 뒤에 숨어서 자나깨나 일구월심에 하루도 쉬지 않고 장군이 잘 되시라 축원 덕으로 오늘 부귀 영화를 혼자서 누리시지 않습니까? 그들 희생자들 위하여 취산사를 지어준 일 하나만은 좋아도 장군을 위해 한사코 신변을 따르면서 성공을 빌고 위험을 구해준 아내를 위하여 하신 일은 무엇입니까? 아시나요? 모르시나요?」
이 말 한마디에 그만 김유신은 얼굴에 모닥불을 끼얹은 듯하였다.
그렇게 삼국을 뒤흔들어 통일시킨 천하 영웅이라도 그만 화상 앞에 와서는 한사람의 어린애에 불과했다.
그래서 다시 무어라 사죄하러 우물 주물 하였더니 그만 화상은 흔적도 없이 살그머니 사라지고 말았다.
이런 일을 여지없이 당하고 김유신은 돌아오는 길에 또는 돌아와서 곰곰이 생각했다.
그러면 나는 일평생을 누구에게 야박하게 지난 일은 없는가? 그리고 누구 은혜를 지고 못 갚은 일은 없는가? 나 때문에 억울하게 죽거나 원망하며 지내는 사람은 없을까? 차례 차례로 따지고 들어가 보니 김유신은 한때 시절에 바람 피우며 지나던 첫 사랑의 춘선이가 생각났다.
(아, 참 그 일만은 내가 확실히 박절하였지…… 너무했어…….)
그러나 그 일은 이미 지나간 한 줄기의 꿈이다.
그러면 춘선이는 지금 어디 어느 구석에서 무엇하고 있는고? 시집을 가서 어느 누구의 아내로 귀여운 자식들의 어머니가 되어 한 가정을 이루고 있으면 오죽이나 좋으랴--.
그러나 춘선은 결코 가정을 가길 사람은 아니다. 후에 나는 춘선이가 건덕사로 들어가서 여승이 되었다는 말도 들은 바 있다.
어찌했던 그 여자는 나를 큼직이 원망하고 있을 게다. 이렇게 생각됨에 김유신은 사람을 건덕사로 보내어 그 소식을 알아보았으나 춘선은 명활산 반야암에 도사가 되어 이리 번쩍 저리 번쩍 오고가는 곳을 모른다 했다.
말하자면 구름을 타고 선간으로 오락 가락 하는 조화 무궁한 신인이라는 소식이 마지막으로 들어본 것이다.
「아--, 과연 춘선은 신인이 되었는가 그럴 법도 하지…… 그러면 가만 있거라…… 내가 저번에 반야암에 가서 만난 우담화상이 혹시 춘선이가 아니었던가 그렇기도 한 일이다. 그날 마지막으로 나를 따져 묻는 말이 이상도 했다.」
그래서 유신은 어느 날 다시 한번 반야암을 찾아가 스님을 보고 스승님께서는 춘선화상을 아시냐고 물었더니
「알고 말고요.」
「그러면 지금 어디 있나요?」
「이 산중에 있습니다.」
「그러면 지금 무엇하고 있습니까?」
「여승으로 있지요. 그러나 그 여승이야말로 참 가여운 여승입니다. 60평생을 마음으로 몸으로 한 사내를 위하여 다 바친 분입니다. 그 덕으로 성공한 사내는 그 여승의 정성을 몰라준다 합니다. 그 여승만 없었더라면 삼국통일의 대업은커녕 그 사내는 이 세상에 있지 못할 고인이 되고 말았을 것입니다. 한사코 그 사내의 신변을 쫓아다니며 위험을 구해준 생명의 은인이 여승이랍니다. 이러한 분의 수호 밑에서 제대로 성공하여 일국의 명재상으로서 부귀, 공명을 다하고 있으면서도 그 사내는 그 여승을 오늘 것 몰라보고 있다 합니다.」
「그 재상은 누구라 합니까?」
「바로 여기 앉은 장군이시죠.」하고 말끝이 나자 화상은 또 다시 간 곳 없이 사라지고 자기만이 방안에 자다 일어난 사람처럼 멍하니 앉아있었다.
김유신은 집으로 돌아왔다.
생각하면 생각할수록 우담은 춘선이가 틀림없는 것 같았다. 60이 지난 노파이신 지라 옛날 춘선의 모습은 가릴 길이 없다 하나 그 여승은 정영 춘선이리라 단정하고 사람을 시켜 그 전 춘추공이 적어 놓은 장을 가져다가 보았다.
보니 그 때 춘추공이 청병차로 고구려로 가던 도중에 세 번이나 위험한 장면을 만났으나 세 번 나타나서 미리 가리켜주는 이인의 은혜로 목숨이 살았다는 사실을 비롯하여 지난번 까마귀 울던 날 저녁에 술 먹고 있던 자리에 들어온 남승이 알려 주는 말을 신청하고 밤중에 숨어들은 자객을 무난히 붙들었다는 오승보흉기에 말하기를
「암만해도 이날 남승은 남승이 아니라 언제인가 천덕사에 처음 만났던 춘선화상의 모습이 틀림없다」라고 쓰여 있었다.
이리하여 모든 수수께끼의 실 끝은 여기서 완전히 풀리고야 말았다.
춘추공이 처음에 나를 만나게 된 첫 동기도 춘선에게 있었고 그때 나의 삼국 통일을 축원하고 있더란 여승의 정체도 과연 춘선임을 깨달았다. 다시 결론을 지어 말하자면 우담이 곧 춘선이라 결정을 지었다.
그렇다면 춘선이가 나를 위하여 얼마나 고마우신 은인이시었던가…… 나의 일생을 위하여 자기 일생을 아낌없이 바쳐 주신 아내가 아니었던가. 지난번 우담화상의 말과도 같이 오늘 나의 대성공을 위하여 나의 신변을 한사코 따르면서 위험을 구해 주고 나의 뒤에 숨어서 나의 대성을 축원해 주던 춘선은 나의 아내 아닌 아내가 아니었던가! 사실 남자란 자기 자신이 가진 실력과 재주로서만 출세하는 법이 아니요 기특한 내조가 반드시 그 남편의 출세와 완성을 시켜주는 것이되 그 내조의 공을 알뜰하게 알아주는 남편은 과연 드물 것이다.
그것이 바로 나를 비추고 하는 말이나 다름이 없다. 나 자신이 나의 실력에 한해서만 수만 명의 충신열사를 희생하여 준 은공도 지대하다 하겠지만 오늘 부귀 영화와 소원 성취는 그 전부가 춘선 내조의 공이며 큼이 아니었더냐--.
춘선이만 아니었다면 나는 이미 까마귀 울던 날 저녁 침실에 잠입한 괴한의 칼에 죽었을 것이요 춘추공 역시 춘선이 아니었다면 고구려 행 도중에서 이미 생명을 잃었을 것이다.
더구나 비결 주머니만 없었더라면 고구려 정복도 불가능한 동시에 삼국통일의 대 사업도 중단되고 말았을 것이니 삼국통일의 신라국위의 부귀 영화를 극하는 나의 금일 있는 소이도 그 전부가 춘선의 도력을 통한 절대적인 공에 있었다 보아서 잘못이 없다.
이렇게 감사 감격이 한대 뭉쳐서 일개 영웅의 속가슴을 울려 주는 것이니 그제 김유신은 무슨 달리 큰 결심이나 한 듯이 다시 춘선을 만나려 반야암을 찾았다. 춘선을 위하여 폐백을 후히 준비하여 가지고 암자를 찾았더니 이때는 이미 춘선은 반야암에서 자취를 감추었다.
제자에게 물으니 우담화상은 오늘 새벽에 천상국으로 구름을 타고 떠나셨다 하였다.
그러니 이게 다시 어디서 만나 볼 수 있을지 그 기한이 아득한 노릇이었다.
말하자면 지난번에 만났다 헤어짐이 그것이 마지막이었다 생각하니 김유신은 저도 모르게 눈시울이 뜨거웠다.
그때 우담화상이 거처하는 방안이나 한번 들여다보고 간다는 생각으로 문을 열어보니 이상한 향기가 코에 풍기며 벽에 두어 줄 글이 쓰여 있음이 눈에 띠었다.
「오는 것이 이러하고 가는 것이 이러하니 사파일생이 어이 그리 허무하노 은혜 원수 그 거리가 천척이되 처음 시작은 마음 일호 틀림이다. 그까짓 많은 폐백 나에게 무슨 소용 있으리오. 다만 진정한 당신의 후회로만 감사하게 생각하노라.」
이 글을 보고 난 유신은 벽 바람이 무너질 듯 한숨을 품어냈다.
그냥 돌아서자니 발길이 안 떨어진다. 어찌하랴. 토방위로 어지러이 오락가락하다가 김유신은 땅을 굽어보며 마당으로 내려서서 걸었다.
눈물이 죽죽 방울지어 떨어진다.
사내의 눈물이요 후회의 눈물이다. 이제는 춘선을 불러봐도 대답이 없고 찾아봐도 찾을 길이 없구나--.
인간으로 처음 맞는 슬픔을 뼈저리게 느끼며 유신은 맥이 없이 집으로 발길을 들리었다.
그러면 나는 이제부터 어떻게 처신하며 무엇으로 춘선을 대하랴. 에라 그까짓 부귀가 다 무엇에 소용되랴. 있는 재산 있는 재물 그 전부를 아낌없이 빈자에게 나누어주고 전사자의 유가족이게도 논밭을 죄다 팔아 분배하여 주면서 부디 길이 잘 지내라 위로를 했다.
이제는 김유신도 일푼 재산이 없는 깨끗한 사람이다.
그리고 춘선이 살던 곳에 많은 경비를 들여 천관사를 지어주고 그의 명복을 마음으로 빌었다.
그러다가 79세 되는 해부터 전신에 피곤이 날을 더하여 심해지면서 전신이 쏘고 가슴이 결리었다. 전선에서 다쳤던 상처가 다시 도지기 시작해서 증세가 날로 험해지더니 들어 누운 채 그냥 병상에 신음하다가 7월초에 이르러서는 그만 정신을 잃고 침식을 못하더니 나중에는 웃는 낯으로 잠자듯이 조응하게 이 세상을 떠나갔다.
삼국 통일을 위하여 80평생을 다사다난하게 해동영왕이라는 그 이름을 천하에 떨치면서 한세상 사내답게 보던 김유신도 살그머니 자취 없이 숨을 걷고 사라져 갔다.
아마 춘선을 따라 선간으로 가셨으리라.
문무왕은 부고를 들으시고 슬퍼하시다가 벼 2천석을 장비로 내리시고 금산서원에서 전무후무하게 성대한 국장을 마쳤다 한다

 

역사속의이야기

 


  역사속의 이야기 - 춘선과 유신 上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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