고려의 왕실은 충목, 충경 등 어린 두 임금이 재위하였으므로 영신(왜신)들이 득세하여 어지러워졌다. 이때 충숙왕의 왕비인 덕비의 소생인 공민왕이 서게 되었다. 왕은 일찍부터 원나라에 들어가 몽고의 풍속도 알았고 또 그들의 내부적인 부패도 알았다. 한창 고려의 정치가 문란할 때 공민왕은 원나라 황실의 근친인 위왕의 딸 노국공주를 상하여 원나라 황실과도 가까워져 무난히 고려의 왕으로 들어오게 되었다.
노국공주는 왕과 같이 들어와 왕의 정치를 도와주었다. 이때쯤은 원나라 자체도 정치적으로 무기력하여 중원 각 지방에서 동란이 심해졌다. 왕은 귀국하면서 변발을 없애고 전날 고려식으로 머리를 위로 올렸다.
왕은 본국의 권신이 많은 것을 보고 우선 기황후의 친족과 그 일파를 없애고 다시 쌍성총관부를 고려 외 영토로 만드는 등 대원정책의 큰 변화를 일으키었다.
그러던 중 왕의 재위 8년이 되어도 아직 공주와의 사이에 소식이 묘연하였다. 이 때문에 고려의 양가집 이제현의 딸 혜비를 모셔들였다. 왕자를 보자는 생각에서 나온 것이다. 이때도 왕은 공주의 승인을 맡고 혜비를 궁중에 들여온 것이다.
그러나 공주로서는 마음이 평온치 못하였다.
공민왕 10년에 중원의 변동으로 홍건적이 개성으로 쳐들어왔다. 왕은 공주와 같이 남쪽으로 달아났다. 이 때문에 개성은 도적의 떼가 들어와 분탕질하여 서울은 폐허가 되고 말았다.
다음해 겨우 서울을 회복하였으나 또다시 권신들의 싸움이 벌어졌다. 드디어 공민왕 12년에 왕이 있는 것을 보고 급습하였다.
이때 왕은 흥왕사에 숨어 태후가 거처하는 밀실에 담요를 쓰고 숨었으며 그 문 앞에는 공주가 굳센 태도로 앉아 남편 왕을 보호하였다.
이 싸움에 공민왕과 얼굴모습이 비슷하다는 신하가 피살되었을 뿐이었다.
공주는 왕과 사이가 좋아 아무런 마찰도 없었으며 화조월석에 서로 손을 잡고 은연중 속삭였다. 그러던 중 공주의 몸에 이상이 생기어 태기가 있었다. 왕은 기뻐하며 정차의 후계자를 기다리고 있었다.
공민왕 14년 공주는 산전으로 들어갔다. 미구에 새 생명이 나올 것이다. 왕은 죄수를 풀어놓으며 각 사찰에 기도 드리라는 명령을 내리었다. 명산 대찰에서 염불소리 들려오지만 공주는 난산으로 세상을 떠나고 말았다.
왕의 슬픔은 절정에 달하였다.
『전하 다른 궁궐로 옮기시지요. 너무 애통하시니 성체에 무슨 변괴가 생길 듯 하오』
하며 자리를 옮기라고 하였다.
『나는 공주와의 약속이 언제나 같이 있자고 하였소. 멀리 가고싶지 않소.』
왕의 슬픔은 더욱 복받치어 공주의 마지막 길을 화려하게 하라고 하였다. 특히 불교를 혹신하는 왕은 불교적인 행사를 잘하라고 7일마다 큰 재를 올려 공주의 명복을 빌었다.
장삿날이 되자 궁전에서부터 정릉까지 반개와 당 기치는 하늘을 가릴 만하였으며 바라 치는 소리, 북 두들기는 소리는 천지를 진동할 지경이었다. 아무리 공주의 마지막 길을 화려하게 보냈지만 조금도 심적 소득은 없었다. 다만 국고만 탕진될 뿐이었다.
왕은 친히 공주의 화상을 그리며 눈물로 세월을 보냈다. 3년간이나 육식을 금하였고 조신들에게 관리로 제수할 때나 밖으로 사신을 보낼 때는 모두 정릉에 나가 생시와 같이 능 앞에서 배례하라고 당부하였다.
이후 왕륜사 동쪽에 공주의 영전을 지으라고 하였다. 이 영전도 사치를 다하는 것으로 재목을 끌어들이는 소리는 천지를 진동하였고 이 때문에 나무나 돌에 치어죽는 사람까지 생겼다.
그래도 부족하여 왕은 정릉 앞에 정자각에서 군신들을 불러놓고 밤새도록 원나라 음악을 연주하며 공주의 영혼을 위로하였다.
공민왕은 공주가 세상을 떠난 후 성격적으로도 일변하여 전날의 왕은 아니었다. 응당 혜비의 처소로 돌아가 다시 단란한 생활을 할 듯 하였으나 한번 돌아선 성격적 파탄은 고칠 길이 없었다.
한편 정치적인 변동도 심하여 고려에 내려오던 모든 구세력을 일소하고 새로운 사람을 얻으려고 하였다. 옛날부터 내려오던 세신이나 명족들은 자기의 친당만을 등용하여 서로 패를 지어 뿌리깊게 박으러 들었고 학자들은 끼리끼리만의 출세를 보정하는 등 모든 것이 마음에 맞지 않았다. 그러므로 이번에 정치를 위임할 사람을 고를 때 아무도 근거가 없는 중 편조를 등용하였다. 그는 신돈이라는 새로운 이름으로 진평후까지 받았다.
그는 종래에 고려의 양반들을 싫어하여 우선 훈구 대신이나 공신을 몰아내고 새로이 자기의 정책을 시행하였다. 우선 전민변정도감을 만들어 강호들이 토지를 겸병한 것을 도로 농민에게 돌려주었다. 이 때문에 일시 그를 가리켜 성인이 나왔다고 떠받들기까지 하였지만 신돈에 대하여 반기를 든 사람도 많았었다.
『신등이 3월 18일에 전 내에서 볼 때 신돈이 재신의 열에 있지 않고 전하와 같이 앉았었소. 어디 이게 예라고 하겠소. 이는 신돈이 전하의 은혜를 너무 입어 국정을 전단한 까닭에 임금을 업신여긴 행동이요 처음에 신돈에게 영도첨의 판감찰의 명령이 내릴 때 그는 대궐에서 머리도 수그리지 않았으며 말을 타고 홍문을 출입하며 전하와 같이 호상에 걸터앉았소. 또 집에 있을 때도 재상들이 그 아래에서 하정배를 올렸소. 신돈이 전하와 같은 예를 받으면 이는 나라에 두 임금이 있는 것이나 무엇이 다르오. 이 때문에 근일 천재지변이 일어나는 것이요. 전하 신돈을 위하시려면 그를 머리 깎이고 가사를 입히어 사원에 두고 공경하시오.』
이러한 뜻의 상소를 올리는 자들은 결국 모두 쫓겨나고 말았다. 또한
『신이 잠시 보니 신돈의 그 골법이 옛날 사람 중 흉악한 사람의 골상과 비슷하오. 후환이 있을 듯하니 가까이 하지 마시오』
하였다. 이 말이 신돈의 귀에 들어가자 신돈은 왕에게
『근일 유학자들이 말하는 좌주문생이 내외에 널려있어 서로 간청하며 자기들 마음대로 행동하고 있소. 이제 현의 문생들은 지금 전국에 가득 차있어 나라를 도둑질하는 자들이요. 참으로 유학자들의 해는 큰 것이요.』
하여 응수하였다.
혜비는 집안이 좋았기 때문에 궁중에 들어왔으나 십 년이 가까와도 한번도 남편인 공민왕의 사랑을 받지 못하였다.
왕의 후사가 없어 걱정하는 사람은 왕의 생모 되는 명덕태후 홍씨이다. 왕은 어머니의 말을 거역할 수 없어 다시 후궁을 맞아들이기로 하였다.
공민왕 15년 왕이 후궁을 맞이한다 하여 여기저기 초롱불을 달아놓았다. 오색촛불이 휘황하게 비친 곳에 신부는 방을 정해 가지고 신랑인 왕을 기다리고 있었다.
혼인할 시각이 되자 왕은 그래도 위의를 갖추고 시신들에 싸여 들어왔다.
초례청은 판방 넓은 곳으로 왕에게는 재초인 만큼 간단한 식탁 하나만을 놓았다. 그래도 신부로서는 처음인 까닭에 곱게 몸단장하고 먼저 나와 상 앞에서 기다리고 있었다. 왕은 이날 곤룡포를 입고 면류관을 썼다. 먼저 신부가 절하자 왕은 다만 고개만 숙이고 다음에 다시 왕이 읍하며 신부가 절하는 등 서로 간단하게 식을 끝냈다.
이때 왕의 나이는 35세로서 아직도 청년이라고 할 수 있다. 그러나 그 동안 노국공주가 세상을 떠난 이후 너무 지나치도록 슬퍼하여 심지까지 잃어 벌써 40이 넘은 사람같이 보였다.
휘청휘청한 왕의 걸음은 때로는 위태로울 지경이었다.
화려한 동방이 촛불이 환하게 켜져 있는 곳에 원앙금침이 쌍쌍이 곱게 나란히 있다.
밤이 이슥한 후에 왕은 신방으로 들어갔다. 왕비 되는 익비는 마중 나와 상감을 모셔들이며 옷까지 풀어주었다. 밖의 날은 차고 방안은 훈훈하였지만 왕의 몸은 너무 찬 것 같다.
『상감 옥체가 차가웁니다. 어서 이불 안으로 드사이다.』
아무소리 않고 시키는 대로 옷을 벗고 아랫목으로 들어갔다. 이불 안은 봄날같이 따듯하다. 익비도 자기의 옷을 주섬거리고 이불 속으로 들어갔다. 여전히 왕의 몸은 풀리지 않아 차가웁다.
『상감 너무 심려하셔서 옥체에 해로운 것 같읍니다』
『그럴까』
『공주 생각은 고만하시지요. 누구나 한번 가는 길이 아니오니까.』
『그렇다마는 공주만한 여자가 있어야지.』
익비는 어느덧 뾰로통해졌다. 밤이 되어 모르지만 마음 한 구석이 섭섭하였다. 전에 명덕태후가 여러 가지 주의를 주어 상감의 상심을 사지 않도록 하려고 애쓰고 있다. 자기의 체온으로 상감의 체온을 녹여주었더니 얼마 후에는 몸이 따뜻해지며 그대로 잠이든 모양이다.
『상감 새벽이 되어오는 듯 하오이마.』
이 말에 잠이 깨었는지 다만
『엉!』
할뿐이었다.
『상감』
하고 부르며 다시 왕을 자극시켰다. 그래도 혼몽한 상태는 그대로 계속되는지 아무소리 없었다. 안타까운 심정은 금할 길이 없었다.
먼 곳에서 닭의 소리가 들려왔다.
왕은 무엇에 놀란 듯 벌떡 일어났다.
『기침하시렵니까.』
『벌써 날이 밝았구나. 공주의 영전은 누가 보살피는지 궁금하구나.』
『걱정 없읍니다. 도첨의가 보살핀다고 하옵니다.』
『그래도 내가 가보아야지.』
더 지체하지 않고 일어나 밖으로 나갔다. 익비의 마음은 섭섭하기 하량 없었다.
며칠 후 대신들은 왕을 대접한다고 또다시 판방암에 모여들었다. 이날 익비와 정비는 전과 같이 성장하고 왕의 좌우에서 왕의 시중을 들었다. 대신들이 제각기 축사의 말과 하례하는 물건을 바치고 연회석상에서 음식을 나누어먹고 있었다. 왕은 신하들이 권하는 대로 술을 마시었다. 나중에는 취한 모양이다. 취중에 역시 공주를 생각하는지 눈물을 흘리었다.
이러한 지경이 되면 대신들은 벌써 알아차리고 하나씩 둘씩 빠져나갔다. 익비는 왕을 모시고 자기의 침전으로 들어갔다. 왕의 용안에는 금시에 화색이 돌며 조금 전에 울던 얼굴과는 딴판으로 익비를 위로해준다.
『익비 오늘 내가 익비 같은 아름다운 사람을 두고 쓸데없이 눈물만 흘리게 해 안되었소.』
『아이유 상감마마두 별말씀을 하십니다. 상감의 용안에 화색이 도는 것을 뵈오니 신첩은 세상에 살맛이 있읍니다.』
『그래 그럼 마음 상하지 않게 해주지』
『상감!』
소리를 내 부르는 동시에 익비의 몸은 어느덧 상감에게로 안기었다. 청춘의 정열에 넘쳐흐르는 익비의 농익은 몸이다.
밤은 깊어 가는데 익비의 침전에서는 상감과 단둘이 소근대는 소리만 들렸다. 새벽이 되자 상감은 일어나 돌아앉으며 역시 무엇에 마음이 상했는지 길게 한숨만을 쉰다.
『공주만 못해.』
왕의 기운 없는 말이다.
『다 먹고 싱겁다는 말씀이시지요.』
『아니야 공주 생각이 나서 그래.』
『돌아간 공주는 생각해 무엇하시오. 정차 올 일을 생각하셔야지요.』
그래도 왕은 여전히 정신나간 사람처럼 먼 산만 바라보고 있었다.
다음 날은 정비 방으로 들어갔다. 역시 아름다웁기는 익비보다 낫다. 그러나 아직 나이 어려서 그런지 별다른 취미는 느낄 수 없었다.
『역시 공주가 제일이구나.』
홀로 중얼거리며 밖으로 나왔다.
이번에는 시중 유탁이 왕을 위하여 위로의 연회를 열었다. 이것은 고려 때의 풍속으로 왕이 신혼하였으므로 신하들이 초청하여 피로연을 열고 또 한편 왕의 마음을 위로해주는 것이다.
이날 왕은 조금 높은 탑상에 앉아있고 바로 그 아래 동쪽에 익비와 정비가 앉았으며 서쪽에는 신돈이 왕과 가까운 곳에 앉았고 시중 유탁은 왕과 정면으로 대해 앉았다.
주안상이 들어오자 유탁이 먼저 일어나 술을 부어 왕에게 올리며
『성수만세를 비나이다.』
한 후 읍하였다. 왕은 받아 마시며
『시중도 한 잔 드시오. 같이 듭시다』
『감사하오.』
뜰 아래에서는 어느덧 아악이 울려왔다. 술시중을 하는 기녀들은 꽃같이 장식하고 술상 사이로 왕래하며 술을 권한다. 유탁도 몇 잔 든 후 이번에는 익비에게
『익비마마 드사이다. 순한 술이올시다.』
하며 한 잔 권하였다. 익비는 서슴지 않고 받아 마시었다. 다음 정비도 한 잔 사양치 않고 마시었다.
왕은 술을 잘하는 관계로 늙은 유탁이 몇 번이고 권했다. 그럴 때마다 왕의 용안은 더욱 화려해지며 재치 있는 눈이 총명하게 빛났다. 신돈은 술을 그리 많이 하지 않으므로 몇 잔 들어가도 얼굴이 붉어지고 말이 많아진다.
유량한 아악소리에 이번에는 기녀들이 긴 당의를 입고 나비 날으듯 훨훨 춤을 추었다. 신돈은 만족한 듯이 바라보며 속으로 음란한 생각을 가지는 모양이었다. 두 젊은 왕비도 취흥이 도도해지는 모양이었다. 주인 유탁도 흥취에 못이기는 듯
『신이 전하께 송수의 춤을 올리겠나이다.』
하고 긴 음악에 맞추어 두둥실 춤을 추고 다시 술을 부어 올리며 송수의 노래까지 불렀다.
다음에는 익비가 일어나 왕을 위하여 헌수한다. 먼저 음악에 맞추어 춤을 추고 술을 따라 왕에게 바치며
『성수만세 하옵기 바라오』
하고 공손히 꿇어앉아 술잔을 바친다. 곱게 단정한 이마에는 구슬땀이 송굴송굴 비쳤다. 춤추는데 힘이 드는 모양이다.
당시는 군신이 화락하게 노는 풍속이 유행하였으며 또 몽고식을 따라 왕이나 왕비 혹은 공주들이 곧잘 노래하고 춤출 줄 알았다.
소란한 음악소리는 끝나고 좌석이 다시 조용해졌다. 신돈은 취기가 가셨는지 다시 정신 말짱하게 앉아 왕에게 무엇이라고 중얼댄다.
『전하 아직 두 비는 연소하지 않읍니까.』
『글쎄 그만하면 되었지 좀 연소한 편이지만.』
『그러면 아직 미련한 점이 있겠읍니다.』
『그렇지 않소. 두 비가 모두 영리하오.』
신돈의 물음은 방약무인한 태도이다. 이러한 까닭에 신하들이 들고일어나는 것이다. 자기 심중에는 딴 생각이 있어 하는 수작이다. 신돈도 조금 어색한지 이번에는 웃으며 말을 꺼냈다.
『전하 두 비를 거느리시느라고 성체 피로하시겠읍니다.』
왕도 이 말에 빙그레 웃으며
『글쎄 아직은 그렇게 피로한 줄 모르겠는데』
하고 두 비를 쳐다보았다. 나이 적은 정비는 얼굴이 붉어 무안한 빛을 나타내지만 익비는 지난 일을 생각하는지 생글생글 웃고만 있었다.
연회가 끝난 후 이번에는 왕이 정비의 침전으로 들어갔다. 정비로서는 그 동안 왕이 자기의 침전이 찾아오기는 두 번째이다.
연소하다는 정비는 더욱 왕을 잘 받들려고 하며 여러 가지로 교태까지 부리었다. 왕의 마음은 만족하였다.
이와 같이 오늘은 익비 내일은 정비의 처소로 다니며 놀고있을 때 왕의 몸은 쇠약해가기만 하였다.
신돈이 정권을 잡은 후 그의 문하에 벼슬 한자리하려고 모여드는 군상이 많았다. 그럴수록 신돈은 세상사람들의 야박하고 추한 일면을 보려고 하였다. 전 같으면 돌아보지도 않던 일개의 승려에 대하여 이제는 먼저 친하려고 하는 무리들이 얼마든지 있었다. 인심의 야박함을 탄하지 않을 수 없었다. 그의 집은 송악산 궁궐 뒤 조용한 곳에 있었다.
바로 자기집 옆에 이운목이 살고 있었다. 전에 벼슬을 다니었지만 근래는 한가롭게 놀고 있었다. 어느 날 이운목은 신돈을 자기 집으로 청했다. 옆집에서 살고 있으므로 청하는 대로 응하여 놀러갔다. 이운목은 두 손을 모아 코가 땅에 닿도록 절하며
『대감 누추한 곳에 오시게 하와 죄송하옵니다.』
하고 손을 비비고 꿇어앉았다.
『무슨 말씀이오. 어서 편히 앉아 이야기나 해봅시다.』
『소인이 먼저 가 뵈옵고자 하오다 세상의 이목이 부끄러워 가 뵈옵지 못했읍니다.』
『별말을 다하시오. 이웃간에 누가 먼저 오던 상관있는 일이오.』
『오늘 소인의 생일이 되어 적은 음식이라도 대접할까 하와 오시라고 청한 것입니다.』
『좋은 때 생일이구려.』
미구에 큰상이 들어왔다. 아주 어마어마하게 차리었다. 아무래도 계획적으로 하는 일 같아 신돈은 눈치만 보고 있었다. 주인이 앞에 꿇어앉으며 술을 부어 올렸다.
신돈이 몇 잔 받아 마시었다. 술이 얼근해지자 뒷방 문이 살그머니 열리며 아름다운 처녀가 방글방글 웃으며 상 앞으로 내려왔다.
『너 도첨의 대감께 절하여라.』
이 말에 처녀는 수줍은 것도 잊은 듯이 큰절을 하였다. 처녀는 술을 따라 올리며 노래도 부르고 춤까지 추었다.
아무리 보아도 잘 출 뿐 아니라 그 행동이 그럴듯하여 신돈의 마음은 끌리어갔다.
밤이 이슥해지자 주인은 나가고 처녀만이 그대로 앉았다. 신돈은 옳지 나에게 넘겨주는 처녀이구나 하는 생각이 들었다. 신돈은 더 참지 못하겠다는 듯이 말을 건네었다.
『여봐라 너는 주인과 어떻게 되느냐』
『바로 아버지올시다.』
『오 그러냐.』
신돈은 세상이 너무나 야박한 것을 속으로 생각하며 술상을 물린 후 다시 처녀를 데리고 옆에 꾸며놓은 침실로 들어갔다.
『너 아직 혼인 안 했냐.』
『예 그러하옵니다.』
어딘지 모르게 미안한 감이 있었다. 그러나 그녀는 여러모로 익숙한 면을 보여주었다.
아무래도 처녀와 같은 점이 없었다. 그 대신 이운목은 수일 후에 응양군 대호군이라는 벼슬을 하였다.
『벼슬을 위하여 자기의 딸까지 처녀라고 속여 바치는 세상이구나.』
한탄하며 그후도 때때로 그 집에 드나들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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