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IT/옛날 이야기

옛 이야기(고전) - 의병장 장지현 (상)

by 양화산장 2018. 7. 10.

방어사의 진 밖이 떠들석하면서 많은 군사와 병마의 소리가 요란하게 들린다. 이윽고 군관 하나가 방어사 조경의 앞에 나타나 거래를 드린다.
「황간 의병대장 장지현 어른께서 의병 이천여명을 거느리고 오셔서 사또를 보입기 청합니다.」
방어사 조경의 입이 빙긋이 벌어진다.
「의병대장 장삼괴 선생이 오셨단 말이냐? 빨리 이곳으로 들어오시게 해라.」
삼괴란 장지현의 아호다.

조금 뒤에 나이 육십이 가까운 기상이 늠름한 인물이 군관에게 안내되어 들어오는데, 갑주에 투구쓰고 긴 칼을 옆에 차서 위풍이 당당하다.
방어사 조경은 신을 거꾸로 끌고 급하게 당아래 내려서 의병대장을 맞아들인다.
「삼괴선생 어려운 출입을 하십니다. 이렇게 몸소 싸움터까지 찾아주시니 우리 전체의 영광이 옵니다.」
방어사 조경은 장지현의 손을 덥석잡아 당 위로 이끌어 올린다.
「천만에 말씀이요. 일찍부터 조방사의 높으신 선정을 우뢰처럼 들었소이다마는 이제 대해뵙게 되니 일생의 한이 풀린 셈이요.」
장지현은 섬돌 위에 오르면서 대답한다. 주객은 자리를 잡아 정돈해 앉은 뒤에 방어사 조경이 다시 말끝을 꺼낸다.
「소문에 들어 압니다마는 이번에 선생께서는 나라와 겨레를 위하여 늙으신 몸을 돌보지 아니하시고 충청도 황간에서 수천명의 의병을 일으키시어 쳐들어 오는 왜적을 막아내신다 하니 감사한 말씀 이루 다 사뢸 수 없고 미약한 관군의 장수된 사람으로 도리어 부끄럽기 짝이 없소이다.」
「내가 늙다니 무엇이 늙었소이까? 나이 겨우 육십이 늙었다니 말이 됩니까. 아마 영감보다도 몇 살 아니 더 먹었으리다. 그는 그렇다하고 오늘 내가 영감을 뵈러 온 것은 잠깐 의논할 말이 있어 온 것이요.」
「무슨 의논이십니까?」
「지금 왜적이 세 길로 쳐들어와서 수도 한양을 함락시키려는 판인데 아까옵게 조령 죽령 일인이 당관에 만부가 막개(만부막개)할 좋은 천험지를 지키는 장수가 없어서 왜적들은 춤을 추고 노래를 부르면서 좋아하고 평지넘듯 넘었다 하오. 추풍령은 칠천일백여척이나 되는 높고 험한 긴 고개요. 경상·충청 두도의 분수령으로 낙동강 금강을 남북으로 갈라논 장산이요. 이 천험의 요새를 또 다시 지키는 사람이 없다면 조선 사람으로 어찌 얼굴을 들고 천하에 행세하겠소. 내가 황간에 오래 산 사람으로 차마 팔짱만 끼고 앉아서 나라망하는 것을 바라만 볼 수가 없어서 의병을 일으켜 추풍령을 지켜보려 하니 장군의 의사가 어떠하신지요?」
의병대장 장지현은 말을 마치자 방어사 조경의 기색을 살펴본다.
방어사 조경은 벌떡 자리에서 일어나서 의병대장 장지현에게 절을 한 뒤에 다시 두 손을 덥석 붙든다.

의병대장 장지현은 대대로 내려오는 호반으로 전라도례땅 명문의 자손이었다.
그의 아버지는 호를 백곡이라 하고 이름을 필무라고 부른다. 일찌기 경상좌병사를 지냈고 호반이면서도 글을 좋아하고 도덕을 숭상해서 항상 손에 책을 놓지 아니하였다. 당시에 유명하던 높은 선비 남명 조식선생을 사모하여 제자되기를 원한 일도 있었다.
장지현은 이러한 엄격하고 학식 높은 훌륭한 아버지한테 가정 교육을 받았던 것이다. 젊어서부터 의기를 숭상하고 가도가 엄숙하니 향당에서는 그를 추앙하는 사람이 많았다.
지현이 과거를 보지 않고 진에 있을때 신립이 전라병사가 되니 그의 천거로 부장이 된 일이 있고 나중에 나라에서는 감찰이란 벼슬을 주었으나 그는 얼마 아니 되어서 벼슬을 버리고 고향에 돌아와 청년들의 자질을 가르치고 있었다.
임진왜란이 일어나니 그는 나라의 위급한 모습을 차마 그대로 앉아 볼 수가 없어서 사사로운 재물을 흩어뜨려서 칼과 창이며 활을 만들어 시골군사 이천여명을 모아 스스로 의병대장이 되어 왜적을 막을 계획을 세우고 있다가 추풍령으로 왜적이 넘는다는 소식을 듣자 군사를 거느려서 경상방어사 조경을 찾았던 것이다.

한편 지난날 청년장군 정기룡은 어떠했는지! 정장군은 조방어사 앞에 단장히 서서 사뢰인다.
「왜적이 우리나라를 침략해 들어오려고 생각한 것은 하루 이틀에 시작한 일이 아니라 여러 해를 두고 짜논 일이옵고, 저놈의 군사는 날쌔고 훈련이 되었는데 우리나라 군사는 화평 세월에 아무런 단련도 되지 않은 오합지존(오합지졸)이니 백명 군사로 백명 적병을 당해 내기가 어려운 판인데, 항차적병은 수만명이라는 호대한 군사가 되고 보니 임전대결하기는 어려운 일이라 생각합니다. 다만 기병을 씨서 신출괴몰로 적병의 날쌘 기운을 이곳 저곳에서 꺽어 버린다면 적병은 차츰차츰 정신이 산란해질 것입니다. 이 틈을 타서 다시 적병을 무찔러버린다면 우리는 큰 공을 거둘 수 있으리라 생각하오」
방어사 조경은 정기룡의 말을 듣자 더 한층 믿는 마음이 굳어진다.
「지금 적병의 제삼군과 제육군이 김해를 함락하고, 창원 창령을 거쳐 들어오는데 이놈들의 예기를 우선 주저 앉혀야 할터인데, 장군의 생각은 어떠한가?」
「소인에게 말탄 군사 오십여기만 주신다면 시험해 볼 일이 있아옵니다.」
「어디로 가려는가?」
「산골 깊은 거창으로 가겠읍니다.」
「좋은 의사일세!」

방어사 조경은 호반이었다. 벌써 정기룡의 방책을 확실하게 짐작할 수 있었다. 손으로 무릎을 쳐서 찬동하고, 정기룡에게 말탄 군사 오십기를 쾌히 내어준다. 돌격장군 정기룡은 오십여명의 튼튼한 군사를 거느리고 거창으로 말을 달린다. 청년장군 정기룡의 나이는 겨우 설흔살이었다. 이때 외병들의 후속부대는 계속해서 상륙을 해서 들어오는데, 혹전장정의 제삼군의 뒤를 이어서 제육군 일만오천명이 사월 중순에 부산에 상륙하여 낙동강을 건너 들어오고, 다음에는 제팔군의 대장 모리휘원이 삼만명을 거느리고 동래로 돌아와서 오월 초순께는 창령, 현풍, 고령, 거창으로 향하고 있었다. 청년장군 정기룡이 오십명 기병을 거느리고 거창으로 내려가는데 신창이란 곳에 당도하니 모리휘원이 거느린 삼만명 군사의 선봉 오백명이 산길 앞에 당도해 나타났다. 청년장군 정기룡은 날쌘 군사 오십여기를 산골 밑 숲속에 두군데로 나누어 매복해 두었다가 왜병 오백명이 마음놓고 지나간 뒤에 한패는 앞을 막아나오니 적병들은 마음이 흠씬 풀렸던 뒤끝이라 별안간 산골에서 쏟아져 나오는 수십기의 기병을 만나자 혼비백산이 아니될 수 없었다.
이때 장기룡은 바른 손에는 장검을 들고, 왼 손에는 장창을 잡았다. 말을 달려 소리쳐 시살하니 화경 같은 두눈이 번쩍거리는 곳에 왜병의 목은 가을바람에 떨어지는 낙엽과 같았다.
정기룡은 동에 번뜩 서에 번뜩 호통을 질러 왜적을 꾸짖고 단판 싸움에 정병 백여명을 목베이니 피는 흘러 내를 이루었고 산은 울고 골짜기에는 티끌이 자욱했다.
정기룡의 뒤를 따르는 양편으로 갈라선 오십여기의 날쌘 군사들은 의기가 충천했다. 골짜기 외산길에 들어선 적병들을 쥐잡듯 에워싸고 몰아쳐 두들겨패니, 적병은 산골 낭떠러지로 뛰어 달아나다가 떨어져 죽은 자도 부지기수였다.
청년장군 정기룡은 오백명 왜병의 일진을 쾌하게 무찔러 죽인뒤에 왜병의 목을 전부 오십여명 군사에게 골고루 나눠주어 방어사 앞에 공을 세우게 하니, 군사들의 의기는 더 한층 솟구친다.

모리휘원의 군사 오백명이 선봉으로 거창, 신창에시 함몰을 당한 뒤에 왜병들은 다시 거창 땅을 감히 밟지 못했다.
모리휘원은 하는수 없이 제삼군의 뒤를 따라 금천 금산 길을 취하여 올라섰다.
청년장군 정기룡은 일진을 사살한 뒤에 개선장군이 되어 방어사를 도와 추풍령에서 적병을 막아싸우려 하니 하회가 어찌될지 만만하기 어려웁다.
청년장군 정기룡을 거창에서 모리휘원의 선봉부대 오백여명을 도륙한 위에 다시 방어사 조경의 영문으로 돌아오니 방어사 조경의 기뻐함이 이루 다 글로 형용해 그려낼 수가 없었다.
조경은 청년장군 정기룡이 거느리고 갔던 오십여기 군사들에게 상과 술을 주어 쉬게한 뒤에 다시 돌격장 정기룡을 청해서 의논한다.
「이일이 상주에서 패하고 신립이 충주에서 꺾인 것은 모두 다 정보를 얻지 못한 탓이라 생각하오. 지금 왜적이 제삼로로 쳐들어오는 추풍령은 험하기가 문경 새제에 견줄 곳은 못되나 영남과 충청도 접경에 솟아 있는 하늘이 주신 요새라 이곳을 지켜서 적과 한번 싸우지 아니하면 백대의 부끄러운 추명을 들을지라 나는 이 곳을 사수하려 하니 그대의 뜻은 어떠하오?」
청년창군 정기룡은 주저치 않고 대답한다.
「사또의 뜻이 이렇게 확실하게 스셨다면 소인은 죽고 삶을 헤아리지 않고 한번 적병과 정면으로 대적해서 싸워보리다.」
돌격장군 정기룡도 추풍령을 지킬 것을 쾌하게 대답한다.

「삼괴선생 그러지 아니해도 유격장 정기룡과 함께 추풍령을 사수하자고 막 의논하고 있는 판이올시다. 진정으로 말씀이지 불감청이언정 고소원이 올시다. 돌격장군 정기룡 자네 선생께 뵈입게.」
청년장군 정기룡이 의병대장 장지현에게 공손히 절을 올린다.
「이번에 거창서 왜장 모리휘원의 선봉진 오백여명을 단지 마병 오십기로 진살해 죽인 돌격장 정기룡이 올시다.」
조방어사는 정기룡을 의병대장에게 소개한다. 의병대창 장지현이 황망히 답례를 한 뒤에,
「아아 정기룡! 무과급제를 하고 이름을 부를때 상감의 꿈에 용이 하늘로 날아가는 것을 보시고 깜짝 놀라 깨시어 기룡의 이름을 내리셨다는 그 정기룡인가?」
「그렇습니다.」
조방어사가 대신 대답한다.
의병대장 장지현은 손을 내밀어 정기룡의 두 손을 꼭 잡는다. 아들벌이 확실히 되는 이 청년장군! 단기로 적병 오백여명을 시살했다는 이 용감한 정기룡을 바라볼 때 더우기 그 화경 같이 번쩍거리는 두눈을 응시해 보니 진실로 마음이 든든하지 않을 수 없었다. 천하의 기남아인 것을 지각할 수 있었다.
「고마우이, 삼만명이나 거느렸다는 모리휘원의 선봉 오백명을 한칼에 추풍낙엽처럼 베냈으니, 왜병인들 어찌 담이 떨어지지 않았겠나? 내가 허소한다고 노하지 마소. 참으로 조선에도 사람이 있다는 것을 한번 반드시 보여주었네.」
「천만의 말씀이올시다.」
청년장군 장기룡은 공손히 대답한다.
「그래 추풍령에서 어떻게 적병을 막아낼 방법이 있는가?」
「전체로 보아서 원체 적병의 군사 수효는 흑전장정의 군사 이만명에다가 모리휘원의 군사 삼만명을 합한다면 오만명이나 되는 대군입니다. 우리 군사의 오백배나 됩니다. 승산은 없읍니다. 그러나 적의 사기를 꺽어 버리기 위해서라도 한번 싸워는 볼만한 곳입니다. 우리는 추풍령이라는 하늘이 주신 요새를 가져서 우리 군사의 약한 것을 얼마쯤 메꾸어 보자는 것입니다.
「옳은 말일세. 나는 죽을 땅을 얻었다고 생각하네. 사람이 한번 세상에 나서 장생 불사하는 것은 아니거든 언제든지 한번은 죽고야마는 것인데, 이처럼 국가가 어지러운 처지에 서서 구구하게 목숨을 보전하여 산다는 것보다 한놈의 적병이라도 막아 보다가 죽는다면 이것은 곧 내 아버지 내 할아버지가 살아 오시던 땅을 최후까지 힘을 다해서 지키는 것이니, 무엇이 부족하고 부끄러울 것이 있겠나. 나는 이천여명의 의병을 방어사께 바치고 함께 싸워서 추풍령의 귀신이 될까하니, 여러분은 힘을 합해서 싸워 지킵시다!」
의병대장 장지현은 말을 마치자 두눈에 눈물이 글썽글썽하다.
「염려 마십시요. 우리는 누구들처럼 좋은 자리를 버리고 달아나지는 아니 할 것입니다. 더우기 선생님께서는 이천여명의 많은 군사로 우리를 도와 주신다하니 기쁘고 든든하기 한량이 없읍니다.」
이번에 방어사 조경이 의병대장에게 감사한 치사를 보낸다.

이날 밤부터 추풍령에는 의병 이천여명과 관군 백여명이 진을 치고 훈련을 하기 시작했다.
김해, 창원, 창령, 현풍을 거쳐오는 제일군 흑전장정의 군사와 거창으로 선봉을 보냈다가 일진을 잃어버리고 다시 추풍령쪽으로 향하는 모리휘원의 군사삼만명을 이천여명 군사로 막아 보자는게다. 효용이 절윤하고 일신이 담덩어리로된 청년장군 정기룡은 장차 5만 적병을 어떻게 막아낼 것인가, 육순의 의병대장 장지현과 방어사 조경의 나라를 근심하는 심각한 얼굴에 기름하게 드리워진 흰 수염은 추풍령 높은 재의찬 바람이 소리없이 갑주위에 날리어주고 있다.
의병대장 장지현은 방어사 조경이 혼연히 맞아주는 너그러운 대접과 청년장군 정기룡의 씩씩한 기상을 살펴보니 뜻이 맞고 마음이 합해져서 한번 추풍령 위에서 싸워 죽을 것을 결심했다.
장지현은 의병대장으로 정기룡은 돌격장군으로 조경은 방어사의 자격으로 관군과 백성의 군사인 민군이 합세하여 추풍령 고개를 지키고 있을 때 이틀이 채 못돼서 과연 흑전장정의 선봉부대가 추풍령을 향하고 기어오르기 시작한다는 보발군사의 보고가 들어왔다. 용맹스런 장수 앞에 나약한 군사는 있을 수 없는 것이다. 거창에서 모리휘원의 선봉 오백명을 시살해 죽인 오십기의 기병을 위시하여 의병대장이 거느린 이천여명의 의병과 조방어사의 직계소속 관군백여명은 돌격장 정기룡을 앞에다 두고 세 진으로 진을 나누어 기엉르는 적병을 막아낼 준비를 하고 있었다.

오월 초순 아침결이었다. 적의 조총탄환이 어지럽게 고개위를 향하여 쏘아올라오기 시작한다.
이 편에서도 화살로써 적을 대항하여 막아냈다.
올라오는 것은 조총이요. 내려가는 것은 화살이었다.
평지에서라면 조총을 화살이 막아날수 없지마는 조총탄환은 평지에서 쏘아올리고 화살은 고개에서 내리 쏘아 맞히니 올라오는 조총에 맞아 죽기보다도 내리지르는 화살에 죽어 넘어지는 군사수효가 더 많았다. 문경 새재의 험하고 힘드는 관문을 노래하고 춤추면서 지났다는 정보를 들은 왜병들은 추풍령쯤이야 고개가 길기만 할뿐 조령 흉악한 곳에 비할바가 아닌 곳이라 해서 마음 놓고 기어오르던 왜병의 떼는 원체 비오듯 쏟아지는 화살에 거꾸러지고 쓰러지는 부상병들이 하두 많으니 적병은 그만 혼비백산이 되어 선봉진이 뭉그러져 달아나기 시작한다.
정기룡은 기회를 놓치지 않고 오십여기 날쌘 군사를 휘동하여 말타고 지쳐 시살해 내려가니 후진의 의병대장 장지현의 군사와 방어사 조경의 관군이 뒤를 받들어 꽹과리 치고 북을 울려 고함쳐 원기를 돋구어주니 산악은 크게 떨리고 골짜기는 메아리를 지어 수십만 대병이 추풍령 고개위에 결진하고 있는 것 같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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