본문 바로가기
IT/옛날 이야기

옛 이야기(고전) - 지경과 낭도

by 양화산장 2018. 7. 7.

신라 진성여왕 시대 어느 봄날 신라서울 경주의 남산에 있는 포석정에 한 무리가 놀이를 즐기고 있었다.
효종랑은 신라 화랑의 한 사람으로서 재상의 명문인 집안 그리고 서울 경주에서도 손꼽히는 부잣집 아들이었다. 지혜가 특출하고 덕이 있는 성품의 그는 여러 화랑들의 존경을 받을 만했다.
이날 효종랑은 자기 밑에 있는 많은 화랑도들을 데리고 포석정에 와서 놀이를 하는 것이었으니 머리에 꽃무늬를 수놓은 두건을 쓰고 베옷에 동철대를 두르고 삼신을 신은 예쁘장한 소년이 바로 효종랑이었다. 효종랑은 화랑도들과 함께 옛 화랑의 이야기도하며 유쾌하게 놀고 있었다.

한창 그렇게 놀던 중 화랑도 중의 한 사람이 손을 들고 일어서며 말을 꺼냈다.
「오늘은 이 포석정에 와서 아주 재미있게 놀았는데 내일은 또 어디 가서 노는게 좋을까요?」
효종랑이 대답했다.
「아무곳이든 구애받을게 있어요? 어디 여러분들 중에 어디 좋은 곳을 아는 사람이 있으면 말해 보아요.」
「문천에서 뱃놀이를 하는 것이 좋겠어요.」다른 낭도는
「우리 그러지 말고 다른 곳은 뒷날 가기로 하고 내일은 우화문도 다시 볼겸 황룡사로 예불감이 어떠하오?」
이렇게 의견이 구구하자 효종랑은 웃으며 끼어 들었다.
「여러분이 말하는 곳이 모두 좋으니 이제 말한 곳을 차례로 가보도록 함이 좋겠소.」
「그렇소 내일은 문천에 뱃놀이요」

이때 효종랑은 포석정 아래에서 낭도 두 사람이 뒤늦게 올라오는 것을 보았다.
늦게 올라온 두 낭도는 화랑들의 앞에 왔을 때 효종랑은 반가이 맞았다.
「웬일들이요? 몸이 아픈가 생각하였드니 ……」
「네, 오는 길에 차마 그냥 지나기 어려운 슬픈 일 보고 그만……」
효종랑과 모든 낭도들은 아연 놀랐다.
「그래 어디서 무슨 일을 보았소?」
「저 분황사의 동리로 지나오다가…」
늦게 온 그 낭도는 금방이라도 눈물을 흘릴 듯 슬픈 표정을 지으며 계속 말을 이었다.
「길가 조그마한 집에서 슬픈 울음소리가 들려 나오기에 처음엔 다만 이상스러워서 듣고만 있는데 점점 그 울음이 너무나 처량하고 창자를 끊는 듯하기에 참을 수 없어 마침내 그 집안을 드려라 보았지요.」
말이 끝나기도 바쁘게 모든 낭도들은 그에게 가까이 다가들었다. 그들 중 한 낭도 한 사람이
「그 조그마한 집안에는 십칠팔세의 어여쁜 처녀가 소경 어머니를 얼싸안고 서로 울고 있었소.」
그 낭도는 이렇게 말하며 얼굴에 한층 더 슬픈 표정을 짓는다.
「그래서 그 무슨 까닭인지를 알아보려고 이웃 사람에게 물어 보았지요.」
하고 말하는 것은 이러한 사연이었다.

분황사 동리에 권집이라는 사람이 살고 있었는데 집이 몹시 가난하여 밥 굶기가 허다하였다. 권집이 오랜 지병으로 자리에 누워 앓고 있었으나 집안 형편에 약 한번 제대로 지어먹지 못하였다. 설상가상으로 그 아내는 소경이요 아들을 두지 못하고 어린 딸 지경이 하나 밖에 없었으니 한술 밥이 그들의 처지에 잘 돌아오기 어려웠거늘 한 첩의 약인들 바랄 수가 없었다. 날이 갈수록 병은 심하여져 마침내는 그들을 불쌍하게도 남겨둔 채 영원히 이 세상을 하직하고 말았다.
모진 것이 목숨이라 부친을 잃은 슬픔으로 울고만 앉아 있기보다는 끼니끼니 닥쳐오는 허기를 면하기 위해서는 소경 어머니를 외로이 집에 두고라도 어린 딸 지경은 이 집 저 집을 찾아 문전걸식하며 어머니를 봉양해야 했다.
한술 두술 밥이 그릇에 차면 지경은 기쁜 얼굴로 집으로 돌아와 찬밥도 더운밥처럼 어머니와 마주 앉아 먹는 것이 그들의 살림이었다. 그렇게 남의 밥 벌어먹기를 하는 중 어떤 때는 어느 부잣집에 들어가 날이 밝도록 부엌일을 하고 밤이면 삯으로 벼를 얻어 방아에 찌어서 걸음을 재촉하여 집으로 돌아와 더운밥을 지어 드릴 수 있었다.
「어머니 오늘 저녁은 밥맛이 좋으세요? 어머니 많이 잡수셔요. 네?」
「오냐! 아가 너나 더 많이 먹어라 하루 종일 얼마나 고달펐겠냐?」
이렇게 저녁을 마친 뒤에는 호롱불을 돋구어 놓고 웃으며 이야기하는 것이 그들에게는 더할 수 없는 기쁨이었고 새벽녁이 되기까지 서로 안고 깊은 잠 속에 드는 것도 다시없는 행복이었다.
집집이 돌아다니며 한 술 한 술 얻어다가 어머니를 봉양할 때보다는 되로 받아 보고 되를 모아 말로 받아다가 어머니를 봉양하는 것이 어린 지경이에게는 더할 수 없는 기쁨이었다.
그러나 소경 어머니는 언제고 마음이 변하지를 않았다. 날마다 딸을 내보내고는 홀로 앉아 행여나 우리 아기 어디가 상할세라
「불쌍한 저것이 죄 많은 나를 위해 땀흘려 애쓰는 것이 마음이 아파…」
혼자서 눈물을 흘리고 혼자서 그 눈물을 닦는 게 그의 일이었다.

어느 날―
「얘 ! 지경아 요사이는 무슨 일로 내 마음이 이다지도 편치를 못하냐?」
「네? 어머니 무슨 말씀이세요. 왜 그러세요.」
하고 지경이는 하늘이나 무너진 듯 놀란 가슴을 움켜쥐면서 소경 어머니에게 가까이 다가 앉아 울음석인 음성으로 말하였다.
「얘야! 전날에는 껄끄러운 겨밥을 먹어도 마음만은 편했는데 요사이는 복에 겨운 기름진 밥을 먹는데도 어인 일로 칼로 베는 듯 가슴이 아프냐?」
소경 어머니는 이렇게 말하면서 흑흑 느껴 우니 지경이도 어머니 무릎에 엎드려 울면서
「어머니! 이 하늘 아래 어머니말고 모실 이가 또 어디 있겠습니까? 제 몸이 부서져 가루가 된다 하더라도 어머니 마음이 편안한 그것만이 소원이옵니다. 이 어인 말씀이세요?」
지경은 어머니의 목을 안고 한없이 우는 것이다.
「아가! 내말 한 마디로 네 마음을 상하게 하였구나 울지 마라 아가야 ! 」
어머니는 오히려 딸을 위로하였으나 지경은 터지는 듯 아픈 마음이 풀리지가 않았다. 그러나 지경은 너무나 안타까이 우는 그것이 오히려 어머니 마음을 괴롭히는 것인 줄 깨닫고 다시 말을 이었다.
「어머니 소녀의 하는 일은 조금도 고되지 않으니 염려 마세요.」
이말 한마디에 어머니와 딸은 다시 한번 같이 울었다. 딸은 소경 어머니의 얼굴을 우러러 보며 울고 또 울고 소경어머니는 딸의 머리를 쓰다듬으며 울고 울음은 방안을 새어 길에 들리었다. 이 울음 소리를 듣고 이 정경을 알고 모녀가 마주 잡고 앉은 것을 본 사람은 이웃이고 길손이고 할 것 없이 모두 함께 눈물을 흘리지 않을 수 없었다.

포석정으로 늦게 올라온 낭도는 이야기를 마치고
「그 광경을 보고 오느라고 이렇게 늦었거니와 어찌나 눈물이 흐르는지…」
하고는 눈물을 글썽이었다,
이야기를 다 듣고 난 효종랑은 두 주먹을 불끈 쥐고 자리에서 벌떡 일어났다.
「우리 신라의 1,360방을 통 털어놓고 보면 가난한 사람 불쌍한 사람도 많을 것이요 어버이에게 효를 하는 사람도 많을 것이지만 이제들은 지경이의 일이야말로 참으로 눈물겨운 일이요. 나는 쌀 백석을 내어 이 불쌍하고도 효도가 지극한 지경이를 도우렵니다.」
하고 낭도들을 둘러보았다. 거기에 모인 낭도들도 다 그 마음에 감동을 받아
「나도 돕겠소」
「나도 돕겠소」
하여 잠깐동안에 오백석을 모으니 그때의 화랑 낭도들은 의를 위해서는 물불을 가리지 않았으며 이러한 선행을 자랑으로 느꼈으며 생활의 정도로 삼고 있었다.
그리하여 화랑과 낭도들은 그 길로 내일을 약속하고 서로 헤어졌다.
효종랑은 급히 자기 집으로 돌아가 어버이에게 그 사연을 아뢰었다. 효종랑의 어버이도 그 말을 듣고 불쌍히 여겨
「얘야! 오늘 네가 한일은 잘하였다. 암 그래야지 애비의 자랑이로다. 너는 곡식을 보낸다 하니 나는 의복을 보내마」
이 기특한 두 부자의 마음은 해가 지기 전에 대궐 속에서도 알게 되었다. 진성여왕이 그 이야기를 듣고 또한 마음이 감동되어 벼 오백석과 집 한채를 하사하였다.
그리하여 곡성이 들린지 사흘이 못되어 지경의 집은 안락한 살림살이를 하게 되었다.

어느날 밤 지경은 소경 어머니를 자리에 안아 누이고 주무시게 한 뒤 혼자서 뜰에 나와 별들을 바라보며 그리운 아버지 생각에 멍하니 서 있는데……
이때 뒷담으로 칼든 도적 두 놈이 뛰어 들어 오며 지경이를 붙들고 호통했다.
「큰 소리 내지 말고 곡식과 옷을 내놔라!」
「으―윽……」
지경은 크게 놀랐으나 정신을 가다듬고
「그렇게 하지요 당신들은 남이 들을까보아 날더러 큰 소리를 지르지 말라고 하지만 나는 곤히 주무시는 어머니께서 깨실까보아 당신들의 큰 소리가 싫단 말이요.」
하고는 도적들에게 곡식 가져가는 것을 허락하였다.
이렇듯 지경의 효심은 평범함이 아니었다. 그 후 지성여왕은 군사 두 명을 보내어 밤낮으로 지경의 집을 지키도록 하였으며
또한 한집안을 다스려 나가는데는 가냘픈 아녀자의 힘으로는 벅차고 허전함이라 하여 나라에서 지경의 효심을 높이 치하한 나머지 효심이 지극한 지경처녀와 소경 어머니를 모시고 잘 살아갈 수 있도록 혼사를 주선하여 주었으니 지경은 자기 못지 않은 효도가 지극한 남편과 더불어 다섯의 자녀를 키우며 복되게 살아갔다


  옛 이야기(고전) - 산돼지의 인연

  옛 이야기(고전) - 오층탑의 인연

  옛 이야기(고전) - 천하장사 (상) 

반응형