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 협도 곽쥐
한가위를 지난 더위가 바람도 없이 기승을 피우는 날씨였다.
이날, 한나절이 좀 지나서 <서울 장안을 휩쓸던 유별난 도둑(경사횡행희세절적) 곽지의는, 함거에 실려 이제 번화한 육주비전 거리를 돌아, 일률(사형)의 처형이 집행될 새남터로 향하는 길이었다.
거리에는 벌써부터 소문을 듣고 몰려온 군중이 인산인해를 이루고 있었다. 세상에 짜하게 이름난 대도 곽지의를 한번만이라도 보려고 모여 든 사람들은 서로 앞을 다투어 목을 늘였다. 그나마 영문을 모르는 사람까지도, 도대체 무슨 구경이기에 이다지도 야단법석들인가 싶어 어리둥절하면서, 역시 군중들 틈을 비집고 끼어드는 것이었다.
「저기 곽쥐 온다. 울지 마라!」하면 보채던 아이도 이내 울음을 그친다는 그다지도 떨치던 협도 곽지의, 이 곽지의를 항간에서는 흔히들 《곽쥐》라고 불렀다. 서울 장안 오부 중에서도 남촌 아랫대(하대)에 사는 빈민들에게 있어서는 곽쥐는 그야말로 고마운 신령님처럼 섬겨졌다. 끼니를 굶고 아침 죽거리가 엇는 집에는 의례 한방중이면 곽쥐가 바람처럼 나타나서 토방에 엽전 몇 닢 씩을 놓고 간다는 사실은 진작부터 널리 알려진 일로 젖먹이 아이까지도 곽쥐라면 모르지 않았다.
그 곽쥐가 오늘 형장에서 이슬로 사라지게 된다. 황소 한 마리가 끄는 달구지 함거 속에 갇힌 곽쥐는, 별로 슬퍼하거나, 괴로운 표정없이 아주 침착하고 태연스러웠다.
함거 앞에는 곽귀의 죄목을 크게 써붙인 방문을 치켜든 나졸이 앞장섰고, 둘레에는 군사와 사령이 따랐다. 상복사 검률 김인직은 그 뒤에 있었다.
군중의 눈길은 나졸이 치켜들고 가는 방문에 쏠렸다.
《여기 곽쥐라고 불리우는 곽지의 도둑놈은, 서울 장안에 있는 부자집이라면 빼놓지 않고, 그 곳간이나 다락의 자물쇠를 열고 스며들어 재물을 훔치되 몇몇해 동안에 훔쳐낸 도합이 놀랄지어라 구천 칠백 냥이 넘는도다.
이놈은 과연 곽쥐라고 할만큼 몸가짐이 날쌔어 바람처럼 날으듯이, 물처럼 스미듯이 소리없이 왔다가 자취없이 사라지니 그 흔적을 잡지 못하고 심지어 납짝한 쇠못하나로 어떠한 자물쇠라도 순식간에 벗기니 그 재간이 놀랍도다.
오늘날까지 도둑질을 하느라고 사람들을 상하지 않았음은 실로 기특하고 기기한 바이나, 너무도 엄청난 재물을 훔침으로써 민심을 흉흉케 하였으니, 그 죄 마땅히 대벽(대군 : 사형)에 당하다.
따라서, 만인의 본보기로 참형에 처하여 효수하노라》
이렇게 곽쥐의 죄상이 적혀 있었다.
곽지의가 《곽쥐》로 불리우는 연유는 이름이 쉽게 와전된 까닭도 있겠다. 이 또한 방문에도 씌어 있듯이 소리없는 행동과 신통력에 가까운 놀라운 손재주로, 짤막한 쇠못만 가지고도 아무리 든든한 자물쇠일망정 순식간에 열어 젖혀 버리는, 그 재간에 대한 별명이기도 하였디.
곽지의는 포도청에서 밝힌바와 같이, 서울 오부 장안을 신출귀몰하면서 탐학한 양반의 재물만을 몰래 들어냈으되 도합 구천 칠백냥이나 되는 거액을 무엇에 써 버렸는지, 그 용도에 대해서만은, 아무리 혹독한 형신(고문)에도 끝끝내 토설하지 않았다.
하지만 포도청으로서는 곽쥐가 그 훔친 재물을 어떻게 썼는지는 대강 짐작은 하고 있었다. 다만, 죄인 스스로 고음(증언)이 없이 함부로 추단을 할 도리는 없었다.
어느 학반댁에서, 혹은 아무개 호반 다락에서 얼마 재물을 훔쳤다는 자복은 피해자의 말과 조금도 틀림이 없었지만, 그것을 어쨌느냐는 추문에는 마치 갯가로 밀러난 대합조개 모양 다부지게 아물린 곽쥐의 입이 도무지 열리지 않았다. 피가 튀는 형장에도 무가내로 묵비였다.
그렇지만, 서울변두리 가난한 백성들이야 말할 것도 없고, 장안의 누구나 곽쥐가 훔쳐낸 재물을 어떻게 없앴는지를 너무도 똑똑히 알고들 있었다. 이들 빈민촌 사람들은 곽쥐를 일러 《분왕 신령님》이라 우러러 받들었다.
분왕이란, 분양왕을 잘못 일컫는 말이다. 옛날, 중국 당나라 명장인 곽자의는, 안록산의 난을 평정하고 토번을 쳐서 많은 공을 세워 분양왕으로 봉함을 받았는데, 돈 많고 공명있고 팔자가 좋아 세상에서는 오복을 갖추어 지닌 아주 팔자가 좋은 사람을 가리켜 《곽분양 팔자》라 했다.
말하자면, 부귀공명을 겸비한 분양왕 곽자의 팔자와 같다는 뜻으로 쓰던 말이 이제끔 가난한 사람들을 남몰래 도와주는 사람이 다름아닌 곽지의 곽쥐이니, 곽자의 분양왕의 화신 일시 분명하다는 존경심으로 어느덧 곽쥐를 《분왕 신령님》으로 부르게 되었던 모양이다.
사람들은 곽쥐의 모습을 한번도 본일이 없으면서도 그 음덕에 머리를 숙이고 입이 마르도록 칭송을 아끼지 않았다.
사실상, 곽쥐는 제몸을 위해서라면 한푼일망정 허투로 쓰지 않았다. 뿐만아니라, 자기의 내일을 위해 단돈 한푼을 모아 둘 생각도 않고 살았다.
포도청에 잡혀 갇히고 나서, 곽쥐가 홀로 살고 있던 수구문 유축 초가집 단간방을 훑어본 군관들은 그 살림살이가 너무도 무욕 청빈한 사실에 오히려 놀라서, 아연할 따름이었다.
곽쥐의 집에는 무엇하나 볼만한 것이라곤 없었다. 솥, 무쇠납비, 사발, 대접에 숟가락 한 벌과, 그리고 북덕이불 하나… 이것이 곽쥐의 전 재산이었다. 재물이 될만한 물건이거나 돈은 하나도 없었다.
그 숱한 전량 재물을 도둑했어도 자기로서는 무엇하나 욕심내어 차지하지 않은 곽쥐의 휘틋한 뜻에 포도청 군관들도 감탄하여 말문이 막혀 버렸다.
곽쥐 곽지의는 분양왕 곽자의와는 그 경우가 전연 다르지만, 장안 빈민들이 《분왕 신령님》으로 우러르는 까닭은 실로 이런데 있었는지 모를 일이다.
곽쥐는 숨이 탁 막히도록 무지막지한 추국에도 훔친 재물을 가난한 사람들에게 베풀어 준 사실을 끝끝내 불지 않았다. 그 까닭은 무엇인가. 그런 사실을 자복하면 어떻든 재물을 얻어 쓴 빈민들도 의례 포도청에 잡혀와 신문을 당할 것이 틀림없었다. 그러면, 훔친 돈을 함부로 썼다는 죄목으로 그들도 논죄되리라.
그렇게 되면, 차라리 빈민들을 구제해주었다기보다는 재앙을 빈민들에게 들씌우는 노릇이 되는 것이다. 은혜가 도리어 원수로 바뀌는 결과가 되겠기에 고통을 참으면서 끝내 의리를 지켰다.
의적으로서 곽쥐가 장안 빈민들 사이에 인기가 대만하다는 사실을 짐작하는 포도청에서도 그러므로 곽쥐의 자복을 꼭 받으려고 형신에 형신을 거듭하지는 않았다.
만약, 기어이 곽쥐가 그 재물을 모두 장안 가난한 사람들에게 나누어 주었다고 자백한다면 포도청으로서는 빈민들을 어떻든 한 번씩은 문초를 하지 않을수 없게 될 판이다. 그렇게 된다면, 포도청은 가뜩이나 백성들의 원혐을 받는 터에 더욱 빈민들까지도 원망을 퍼부을 뿐만 아니라, 오히려 곽쥐의 덕망을 마음깊이 새겨 기리게 될 것이 뻔했다. 포도대장이나 군관들로서는, 《자는 범에게 코침주기》와 같은 결과가 될까봐 그것을 은근히 두려워했다.
의적이라, 혹은 《분왕 신령님》이라 칭송하는 곽쥐의 인기를 그냥 눌러버리러면 곽쥐가 빈민들에게 훔친 재물을 나누어 준 일은 차라리 모른 채 묵살할밖에 없었다. 훔친 재물의 행방을 밝히지 못한 죄인을 그대로 처형 한다는 것은 포도청으로서도 꺼림직한 처분이지만, 그러나 어쩔 수 없이 추단을 내려야만 했던 것이다.
2. 새남터 가는 길에
곽쥐는 옥문을 나오기전에 몸을 씻고 새 옷을 갈아 입도록 허락받았다. 마지막 길을 깨끗하게 보내려는 자비심인가.
곽쥐는 코웃음치면서 그대로 했다. 함거 속에 갇히고도, 손과 발을 묶인 곽쥐는 실눈을 가느스럼히 뜨고 흔들리고 있었다.
달구지는 느릿느릿 굴러서, 그런대로 육주비전 거리를 중간 쯤이나 지났다. 길가에는 구경꾼들이 즐비하게 늘어서서, 겨우 행렬이 지나갈 정도였다.
『섰거라!』
형조검률 김 인직이 함거 뒤에서 영을 내렸다.
《흥, 사세구를 읊조리게 할 모양이로군》
팍쥐도 짐작이 갔다. 이렇게 사람들이 많이 모인 지점에서 일단 죄수를 세워 놓고, 그로 하여금 세상을 하직하는 시가를 부르게 하는 관례가 언제부터인지 있었다.
『사세구를‥·』
검률 김 인직은, 곽쥐에게 영을 내리듯이 엄하게 말했다.
『없소이다』
검률의 말이 채 끝나기도 전, 곽쥐는 두 눈을 번쩍 뜨면서 내뱉듯이 대했다.
『그렇다면, 아직 짓지를 못했다는 말인고?』
김인직 검률은 너그럽게 말했으나, 적이 심기를 상한 어조로 되물었다.
『생각도 안했소이다』
『이승을 하직하려면 누구나 사세구를 남기는 법이어늘, 그대 어찌 이다지도 망녕되뇨. 일찌기 충신으로서 세월을 잘못 만나 역적의 억울한 누명을 쓰고 새남터 이슬로 사라진 분들도 훌륭히 사세구를 읊조렸거니. 그대 비록 흉한 도적이라 할지라도 세상에 널리 알려진 의협남아로서, 어이 남겨둘 한줄 사연이 없을손가·‥』
『아직 빠르외다.』
곽쥐는 퉁명스레 내뱉듯 말했다.
『어인 말인고?』
『소인은 죽지 않겠소이다.』
『뭣이라고? 그 무슨 망녕된 소리뇨.』
『죽지 않으리다! 정녕 죽을 수 없소이다. 그러매, 사세구 따위가 어찌 당하리까.』
곽쥐는 이제 참수가 될 사람이라고는 여겨지지 않을 만끔, 의기 늠렬하고 싱싱한 목소리로 태연히 말을 이었다.
『어서 갈길이나 재촉해 주시오!』
그는 다시금 눈을 내리감고 유유자적 하는 몰골이었다. 검률 김인직은 시쁜 표정으로, 하는 수 없다는 듯 영을 내렸다.
함거는 다시 움직였다. 곽쥐는 함거 속에서 조용히 흔들리면서, 그러나 가슴이 터지도록 자기가 자기에게 타이르듯이 외쳤다.
《나는 결코 죽지 않는다. 나는 어김없이 묶인 끈을 풀고 새남터에서 행방을 감추고 말 터이다. 그리고는 반드시 김승상(영의정 김좌근)네 비고를 감쪽같이 깨뜨려 보이겠다. 꺽정이(임거정)이도 손재주에 있어서는 따르지 못한다는 천상천하의 유독한 곽쥐 곽지의로서, 김좌근이 탐학한 뇌물을 쌓아 둔 비밀 곳간을 털지 못했대서야, 어찌 의협 남아라고 할 것인가 제 아무리 양국(서양)맹꽁이 자물쇠일지라도, 기어이 열어 보이겠다. 김승상이 특별히 구해서 비고에 채웠다는 그 맹꽁이 자물쇠를 곽쥐로서도 끝끝내 열지 못하고 별수없이 저승으로 가버렸다면, 이 얼마나 수치스러운 일이겠느뇨. 지금 이대로 죽어선 결코 안된다. 꼭 그놈의 맹꽁이 자물쇠를 열고 죽더라도 죽어야 한다.》
오늘을 흘러간 석달 전, 첫 여름이 무르익어가는 그믐밤이었다.
암흑칠야의 괴괴한 삼경 바람처럼 달려와서 역시 바람결인 양 날렵하게 높은 담벼락을 홀랑 뛰어 넘은 곽쥐, 쥐새끼 걸음걸이로 소리없이 당대의 세도가인 영의정 김좌근의 장동 사저 안채 비밀창고로 다짜고짜 덤벼들었다. 이 곳간에는 소문대로라면 금은 보화가 가득할 것이다.
곽쥐의 눈은 어두울수록 오히려 빛났다. 쥐의 눈과 같았다.
창고에는 굉장히 다부진 자물쇠로 잠겨져 있다고 했다. 과연 처음 보는 맹꽁이 자물쇠가 걸려 있었다. 참으로 훌륭하게 만들어진 자물쇠였다. 곽쥐는 냉큼 그 맹꽁이 자물쇠를 매만지면서 감탄해 마지 않았다.
근래에 웬만한 곳간이나 다락을 자기집 드나들 듯이 횡행하는 절적이 있어 간담이 서늘해진 부민 양반집에서들은, 다투어 튼튼한 자물쇠를 구하게 되었거니와, 하물며 승상 김좌근 같은 재보를 지닌 집은 특별히 유의하여 만든 양국 맹꽁이 자물쇠를 잠그지 않고는 마음을 놓지 못했다.
때문에 김좌근 정승은 《어떠한 도둑일지라도 열쇠를 갖지 못하고는 절대로 열 수 없다.》는 다짐을 받고 양국의 맹꽁이 자물쇠를 맞추어 비밀 곳간에 채우게 되었다.
맹꽁이 자물쇠라고는 하지만, 서양에서 만든 자물쇠를 사들인 것은 아니고 그저 서양에서 새로 들여온 강철로써 특별히 견고하고 묘하게 공인이 만들어낸 신식 자물쇠였다.
《과연 잘 만들었군. 웬만해서는 꿈쩍도 않아, 어지간히 열기 힘들겠군.》
곽쥐는 자기 나름으로 만든 특수한 쇠못을 열쇠구멍에 꽂고서, 서너 번 비틀어 보고는 혀를 차며 중얼거렸다.
다른 예사 자물쇠 같으면야 서너번까지도 비틀 것 없이 쇠못을 구멍에 집어 끼우기가 무섭게 짤가당! 자물쇠가 제풀로 열려지게 마련이건만, 과연 이 맹꽁이 자물쇠만은 도무지 손끝으로 아무런 느낌도 전해 오지를 않았다.
강철로 만들었으니 쟁기가 없이는 깨뜰 엄두도 내지 못할 것이다. 이런 자물쇠는 어디까지나 재간으로 벗기는 도리 밖엔 없었다.
《절대로 안 열릴 리가 없으렷다! 양국 강철이라야 한껏 견고하달 뿐이지, 열쇠 얼개 짜임새까지도 다를 수는 없는 법이다. 이 따위 맹꽁이 자물쇠 쫌을 열지 못한데서야 어찌 곽지의 곽지가 <분왕 신령님>이란 대도로 으뜸이 될수 있단 말인가.》
오밤중 냉기가 어지간히 싸늘하건만 곽쥐는 이마에 비지땀을 흘리면서 일심전력으로 쇠못을 가누어댔다.
이 쇠못은 곽쥐가 스스로의 슬기와 온갖 정성을 기울여 만든 만능 열쇠로서 굳지도 않고 무르지도 않고 알맞은 강도를 지녀, 자물쇠를 열기에 안성마춤인 쇠못이었다.
곽쥐는 맹꽁이 자물쇠를 열기에 재주를 다했다. 이를 악물고 서너번째 쇠못을 비틀면, 웬만한 자물쇠는 짤가당 소리를 내고 열리게 마련이다.
그러나, 이번 자물쇠는 도무지 손끝에 느낌조차 전해 오지를 않았다.
『응야, 응호, 이놈은 정말 다부질세』
도대체 걸리지를 않는 것이다.
《이렇게 찔러도 안 걸리지. 그럼, 요쪽으로 저렇게 비틀고, 여기를 눌러서 응흐! 이래도 안되다니….》
곽쥐는 손등으로 이마의 구슬땀을 쓱쓱 문질렀다. 주위는 물속처럼 고요했다. 이렇게 적요할수록, 쇠못을 조심스럽게 움직이지 않으면 소리가 퍼져서 들킬 우려가 있다. 이런 조심성에도 상당한 신경이 쓰인다.
《내가 세상에서 으뜸 꼽히는 대도로서 후세에까지 이름을 떨치게 되고 못되고는, 모름지기 이 맹꽁이 자물쇠를 여느냐 못 어느냐에 결판이 달려있으렷다. 양짓골 몽태는 분명히 말했것다. <아무렴! 곽쥐 곽쥐의는 지금까지 숱한 곳간을 털었다는 걸 뉘 모를까. 놀라운 재주에 나는 머리를 숙이네만 말일세. 오늘날까지 열어 낸 자물쇠로 말하면 노리개 같이 우스광스러운 장난감이나 진배 없으리로세. 아무리 분왕이라는 곽쥐이기로소니, 장동 재상댁 비밀 곳간 맹꽁이 자물쇠만은 어림도 없을 것>이니라고 했것다.》
곽쥐는 맹꽁이 자물쇠에 매달려 온갖 비술을 다 쓰면서, 양짓골 녀석이 하던 말을 되뇌어 보는 것이다.
4. 양짓 골 몽태
양짓골 몽태는 이제는 손끝이 무뎌져서 직접일은 못하지만 앞이 열놈이나 졸개를 거느리고 그 훔친 재물로 우쭐거리고 행세하는 두목녀석이었다.
곽쥐는 외톨백이 협도로 다만 동사끼리의 의리라는 것을 생각해서 가끔 양짓골 몽태집으로 놀러가기는 하지만 무엇을 들고 가는 법은 한번도 없었다.
《그녀석한테 갔다줄 재물이 있으면 비록 한푼이라도 끼니를 굶주리는 빈민들에게나 나누워 주리라.》
곽쥐는 이런 뱃짱이기에 몽태와는 이십년이나 터울이 지는 연배지만 팽팽하게 터놓고 지내려했으며 몽태로서도 곽쥐의 건방진 태도가 속으론 달갑지 않았으나 그의 신묘한 재주에 눌러서 그런 아니꼬운 터수를 눈감아주고 지내왔었다. 그러나 젊은 졸개들은 여간 못마땅한게 아니여서
『두목 곽쥐녀석을 어째 내버려두슈, 그냥 두고보자니 눈꼴이 사나워서···. 그녀석 좀더 있으면 정말 <분왕>이라도 된듯이 아니꼽게 댕구(<거짓말>의 결말)를 펑펑 터뜨릴테니···. 일찍감치 끝장을 내버립시다.』
『그래도 곽쥐는 너희들 따위와는 물건이 다르니라, 한번에 오백냥이나 되는 엽전을 마치 제것인냥 의젓하게 빼오지 않어. 재주있고 통크고 늠름한 폼이 너희들관 판이 다르니라. 너희도 곽쥐에게 배워야한다.』
몽태두목은 일수 곽쥐를 두둔했다. 곽쥐가 자기 졸개가 되어준다면 하고 못내 아쉬움을 느끼는, 거추장스럽지만 그런대로 아끼는 보배와 같았다.
때문에 몽태두목은 곽쥐가 건방지게 굴어도 좀처럼 화를 내지 않았지만 졸개들은 무가내였다.
『여하튼 두목! 녀석이 우리집에만은 못오게 하슈』
『왜』
『녀석이 집에 오면 아주머니가·‥』
말끝을 맺지못하고 입을 다물었다. 두목의 안색이 변했기 때문이다.
하기야 말하지 않아도 두목은 너무도 깡그리 잘 알고있는 사실이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