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IT/옛날 이야기

옛 이야기(고전) - 장사못의 유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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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이구 깜짝이야 누구야?』
숙영낭자는 소스라치게 놀랐다. 뒤엔 높은 담장이요, 앞은 겹겹이 문이 있는 후원의 초당, 잡인의 출입이 금지된 성역같은 후원이다. 그러나 분명히 숙영낭자의 귀엔 낭자자신의 글귀에 화답하는 소리가 들린 것이다.
『누구세요. 거기 누구있어요?』
그말이 채 끝나기도 전에 그녀앞에는 어떤 건장한 사나이가 달빛을 가리며 다가와 서는게 아닌가.
『에그머니 누구야』
깜짝 놀란 숙영낭자는 치마자락을 거머쥐고 당황한 발길을 돌리려했다.
『작은 아씨 저올시다』
하는 그 사나이의 목소리는 분명히 귀에 익은 목소리였다.
『누구야?』
 『저 용칠이올시다』
하면서 그 사나이는 두말없이 숙영낭자의 섬섬옥수를 덥썩쥐었다.
『뭐 용칠이?』
용칠이라는 말에 숙영낭자는 조금은 안심이 되었으나 손을 잡히자 본능적으로 그것을 뿌리쳤다.
때는 지금으로부터 약 200여년전 이조 정조때.
곳은 황해도 신천읍에서 서쪽으로 조금 떨어진 반정이라는 마을.
이 반정이란 이율곡선생께서 1564년 명종 말년 황해도관찰사로 부임하셔서 지으신 이름으로 유래가 있는 고을이다.
그 반정고을에 사는 박정효는 만석지기까진 못되어도 수천석하는 양반으로 재물있겠다 시시한 시골출신의 양반이 아니요, 그의 선대에 관찰사까지 지낸 지체있는 양반으로 감히 고을의 원까지도 넘보지 못하는 세력있는 토호였다.
그 박정효에게 단 남매의 자녀가 있었으니 딸의 이름이 숙영으로 인물이 절색이요 재조와 글이 뛰어난 재색이 겸비한 낭자였다.
나이차매 숙영의 꽃다운 미색은 더욱 그 빛을 더했으며 아울러 학문이 깊은 재원이매 인근고을로 그 이름이 알려진바 있어 사방에서 매파를 넣어 청혼이 들어왔으나 마음에 드는 곳은 한곳도 없었다.
봄철 어느날밤 후원에서 홀로 글을 읽던 숙영낭자는 춘흥을 못이겨 뜰아래 내려서 화초사이를 돌아다니며 글 한수를 읊은 것이 화답하는 소리가 되어 들려 온 것이다.
용칠이란 자기집 종의 아들이다.
비록 태생은 천하나 사내답게 잘생긴 씩씩한 사나이로 숙영 낭자는 부모에게서 용칠이 얘기를 여러번 들어서 그 인물에 관해서는 익히 알고 있는 터였다.
어떤날 집에서 기르던 황소가 미쳐 날뛸적에 다른 사람은 얼씬도 못하는 것을 용칠이가 쫓아가서 순한 양을 다루듯 진경시킨 일이라던가, 또 한번은 한 양반의 어느 재상가에 급한 심부름을 시켰더니 오백리나 되는 한양길을 아침에 떠나서 곁두리때 돌아왔다던가, 또 용칠이의 겨드랑밑에는 비늘같은 날개가 돋혔다는등 용칠이에 관한 얘기는 남의 말 좋아하는 사람들에 의해 꼬리에 꼬리를 물어 거의 전설적인 얘기가 되다싶이 했었다.
그 아버지 박정효는 늘
『그놈이 상놈으로 태어나서 그렇지 양반의 자식으로 태어났으면 분명히 훈련대장깜인데 아깝지, 아까워』
하고 탄식하곤 했다.
이런 까닭에 숙영낭자는 용칠이가 비록 자기집의 종의 자식이라곤하나 다른 종들과는 다르마는 것을 잘 알고 있는 터 였다.
그러나 그 용칠이가 이렇게 낮도 아닌 야밤에 불쑥 후원에까지 들어와 더욱이 손목까지 잡는데는 망측하기에 앞서 당황하지 않을 수가 없었다.
『이게 무슨 짓이야』
 『아씨 용서하십시요』
 『아씨, 장사가 나매 용마가 나고, 군자가 있으매 숙녀가 있음은 정한 이치가 아니오니까. 아씨는 제가 종의 자식이라 망측하게 여기시겠지만 왕후장상이 어디 씨가 있느냐는 옛글을 읽으셨겠지요. 제가 비록 지금은 종의 자식으로 댁의 심부름이나 하는 처지이긴 하지만 저인들 후일 현달하지 말라는 법이 어디 있읍니까』
그말은 점잖으면서도 당당하고 우렁찼다.
숙영낭자는 할 말을 잃었다.
『아씨, 저는 아씨의 그 고운 자태와 아름다운 마음씨에 벌써부터 흠모하고 있었읍니다.』
용칠은 다시 숙영낭자의 손목을 덥썩 잡았다. 그손은 끓는 것 같이 뜨거웠다.
숙영은 마음이 끌렸다기보다 용칠이에게서 거역할 수 없는 위압감을 느끼고 뿌리칠 수가 없었다.
한동안 두 남녀사이엔 침묵이 흐르고 정지된 상태로 숨소리만 높았다.
『아씨』
한참후에 떨리는 용칠이의 소리가 정막을 깨뜨렸다.
『이거 놓아요. 누가 보면 어쩌자고 이러세요. 어서 고만 돌아가요. 다음날 조용한 틈이 있지않겠어요』
숙영낭자는 부끄러운듯 한마디하고는 살그머니 손을 빼고 초당으로 들어갔다.
한참동안 숙영의 뒷 모습을 바라보던 용칠의 입가엔 빙그레 웃음이 떠오르며 발길을 돌렸다.

다음날밤 용칠은 다시 후원에 나타났으며 숙영은 두말없이 그를 맞아 드렸다.
그후부터 넓은 후원에 외따로 떨어진 숙영낭자의 처소인 초당에서는 신분을 초월한 청춘남녀의 사랑이 밤마다 무르익었다.
그들은 이제 떨어질래야 떨어질 수 없는 사이가 되어 백년을 약속하게 되었다. 그러나 그것은 단 둘만의 약속일뿐 부모의 귀에라도 들어가는 날엔 든 변괴가 났다고 날벼락이 떨어질 판이다.
그러나 하루이틀도 아니고 거의 밤마다 만나는 그들의 사이가 집안의 많은 사람들의 눈에 띄지 않을리가 없었다.
삼라만상이 고요하게 잠들고 은빛같은 달빛만이 흐르는 어느날밤.
이날밤도 용칠이와 숙영낭자는 시간가는줄 모르고 꿀같은 사랑을 속삭이고 있었다.
호사다마격으로 이런 일이 있으리라고는 꿈에도 모르는 숙영낭자의 어머니되는 김씨부인은 밤늦도록 잠을 이루지 못하고 이리뒤척 저리뒤척하다가 딸의 방에나 다녀오리라 생각하고 후원으로 나와 초당이 이르렀다.
무심코 방문을 열어본 김씨부인은 소스라칠듯 놀랐다. 딸 혼자 있을줄만 알았던 이 방안에 이게 웬 일이냐. 어떤 젊은이 하나가 뒷문을 걷어차고 뛰어나가지 않는가.
아뿔사 김씨부인은 못볼걸 보고만 것이다.
그러면서 김씨부인은 뛰어나가는 젊은이의 뒷모습에서 흐릿하나마 자기집 종의 자식 용칠이의 뒷모습을 본 것이다.
그의 입에서는 자기도 모르게
『저놈 저놈!』
소리가 튀어 나왔다.
아무것도 모르는양 누워있던 숙영낭자는 짐짓 놀라는체 벌떡 일어나며
『어머니 웬일이셔요』
그 어머니의 얼굴을 쳐다 보았다.
그러나 그 어머니 김씨부인은 노기가 충천해서 뒷문을 바라볼 뿐 말이 없다.
『어머니 왜 그러셔요』
 『왜가 다 뭐냐. 이게 어떻게 된 일이냐』
여전히 노기가 풀리지 않은 김씨부인은 숙영낭자를 노려본다.
『아니 무슨일이 있었읍니까』
숙영낭자는 김씨부인의 질책을 이렇게 능청으로 넘길수 밖에 없었다.
『지금 용칠이란 놈이 이 방에서 뛰어나갔는데 너는 모른단 말이냐』
 『네?』
 『아니 정말 모르겠다는 말이냐』
 『용칠이가 여길 들어오다니요』
숙영낭자는 어쩔수 없이 끝까지 잡아뗄 수 밖에 없었다.
그 어머니 김씨부인은 숙영낭자가 너무나 시침이를 떼는 바람에 정말로 모르는 것으로 생각했다. 이것은 필시 그 용칠이란 놈이 불측한 마음을 먹고 자기딸이 자는데 뛰어들어 왔다가 자기의 인기척에 놀라 도망간 것이 분명하다고 생각하였다.
그리고 자기딸 숙영낭자에게 지금 자기가 방문을 열고 눈으로 본것을 얘기하면서 그놈이 분명 용칠이라고 못박으면서 그런놈을 그냥 놔 뒀다간 큰 일이 나겠다고 길길이 뛰며 내당으로 건너갔다.
한시를 그냥 둘수없다는 듯이 김씨부인은 잠자는 남편 박정효를 깨우고 아들을 불러 조금전의 이일을 이야기했다.
『그놈을 당장 주리를 틀어야지, 이대로 놔 두었다가는 큰 일이 나겠읍니다』
혈기왕성한 젊은 아들은 당장 요절을 낼듯이 분해했다.
그러나 용칠이의 비범한 재주를 아는 주인 박정효는 아들을 진정시킨다.
『용칠이는 보통놈이 아니다. 섣불리 다루다간 도리혀 해를 입는다. 놈은 겨드랑이에 날개가 돋친 장사야』
금방 뛰어나갈듯이 서둘르던 아들도 그말엔 잠시 주춤해서 아버지와 머리를 맞대고 의론했다.
옛말에 장사는 겨드랑에 비늘이 돋쳤는데 그 비늘만 뽑으면 힘을 쓰지 못한다는 말이 있으니 어떻게 용칠이의 그 겨드랑밑의 비늘을 뽑을 방도가 없겠느냐고 의견을 모았다.
이튿날 주인 박정효는 용칠이 몰래 하인들을 불러 모아 비밀히 이 일을 이야기하고 용칠이의 자는 틈에 그 비늘을 뽑으면 후한 상을 내리겠다고 당부했다.
그렇지 않아도 용칠이의 비범한 재주를 시기하던 하인들은 저마다 자기가 먼저 공을 세우려고 기회를 엿보면서도 한편 겹을 내어 근접하려들질 않았다.
그러던 어느날 정말 우연한 기회에 용칠이의 약점이 들어난 것이다.
정자나무밑에서 낮잠을 즐기던 어느날 갑짜기 쏟아진 소낙비때문에 모두가 놀래어 비를 피하기에 이리뛰고 저리뛰었으나 유독 용칠이만은 한차례의 소나기를 다 맞으면서도 세상모르고 자는 것이었다.
그만큼 잠귀가 어둡다는 것으로 한번 잠이들면 싫건 제 잘걸 다 자기전엔 업어가도 모를 정도로 코를 골고 자는 것이다. 때문에 용칠이 자신도 좀처럼 부모하고외에는 밖에서는 잠을 자는 일이 거의 없었다.
그러나 일단 이렇게 잠귀가 어둡다는 약점이 들어난 이상 그를 해치려는 하인들에게 그 약점은 더할수 없이 좋은 밥이랄 수 있었다.
그날밤 숙영낭자의 방에서 엉겁결에 뛰어나온 용칠이는 필시 무슨 하회가 있으려니 마음을 조이며 기다렸으나 아무 동정이 없자 숙영낭자 혼자 모든걸 뒤집어 쓰고 봉욕을 겪었으려니 생각하고 그 이튿날밤 뱃장좋게도 또다시 후원 초당으로 숨어 들었다. 그러나 숙영낭자는 이미 초당에서 안채로 옮겼기때문에 초당은 텅빈채로 아무도 없었다.
용칠이는 초조한 마음을 걷잡을수 없어 자기 어머니에게 넌즈시 숙영낭자의 동정을 물어 보았다. 그랬더니 어머니의 대답인즉 왜그런진 모르지만 안방마님이 숙영낭자의 처소를 갑짜기 안채로 옮기게 하더니 그후부터 어떻게 된 일인지 수색이 만면해서 아무리 좋은 일을 보아도 웃지도 않으며 글도 잘 읽지 않는다는 것이다.
그말을 전해들은 용칠이의 마음은 더 안타까왔다. 그러나 아무리 힘이 장사이기로서니 사람들이 들락날락하며 문이 첩첩한 안채에 남의 눈에 띄지 않고 숨어 들기란 사실상 불가능했다. 그래서 혼자서 애를 태우며 밖에서만 왔다갔다하며 안채의 눈치만 살피는게 고작이 었다.
그러던 어느날 숲속의 연못가에 있는 정자나무아래 거적을 깔고 누워 이생각 저생각 뒤척이다가 그만 잠이 들고말았다.
이때나 저때나 늘 용칠이의 뒤를 밟으며 기회만 엿보던 하인들은 용칠이가 잠든 것을 알자 때가 왔다 싶어 여러놈이 와르르 한꺼번에 달려들어 굵은 동아줄로 칭칭 동여메고 겨드랑이의 비늘을 뽑아버리고 말았다.
중과부적으로 갑짜기 이지경을 당하고 보니 아무리 힘센 장사라 하나 힘쓸 겨를은 커녕 미처 잠에서 깨어나기도 전에 비늘까지 뽑힌바되어 힘을 쓰지 못하게 되었다.
일의 하회를 연락받은 젊은 주인은 용칠이를 살려둘수 없다고 생각하고 하인들을 시켜 용칠이의 몸에 커다란 돌멩이를 붙들어 매게한 후 그대로 깊은 연못으로 던지게 했다.
몸의 비늘을 뽑힌바되어 조금도 힘을 쓸수 없는데다가 몸에는 커다란 돌멩이까지 붙들어매니 제아무리 용칠이가 장사라한들 살아날 도리가 없었다. 더구나 그 연못은 천길못이라는 깊은 못으로 그 깊이가 얼마가 되는지 아무도 아는 사람이 없는 못이었다.
하인들이 주인의 영을 받아 용칠이의 몸을 못속에 던지자 용칠이는 얼마동안 물속에 잠겨 있다가 한참만에 다시 불끈 물위로 상반신을 들어 내놓고 못가에서 지켜보고 서있는 젊은 주인을 향해
『일이 이쯤됐으니 이제 내가 살아본들 아무 쓸모가 없게 됐다. 그래서 이제 죽기는 죽는다마는 내가 죽으면 필시 숙영낭자도 따라 죽을 것이니 낭자가 죽거든 그 시체도 나와 한가지로 이못속으로 던져다오. 만일 내말을 우습게 알고 어기면 네 집안에 두고 두고 후환이 있을 것이니 그리 알아라』
하고는 다시 물속으로 갈아앉고 말았다.
그리하여 그뒤부터 그곳 사람들은 그 천길못을 장사못이라고 부르게 되었다.
불우한, 불출세의 역사 용칠이가 이렇게 무참히 죽은 그 이튿날 아침 김씨부인이 숙영낭자의 방에 이르러보니 어디갔는지 보이지를 않았다.
섬뜩 짚히는데가 있어 집안의 안팎을 찾아보니 숙영낭자는 후원의 초당 대들보에 목을 매어 자진한 시체로 발견되었다.
그도 정든 님 용칠이의 뒤를 따라간 것이다. 숙영낭자의 나이 열여섯으로.
서안위에서는
<<저의 시체도 용칠이와 같이 천길 못에 던져주셔요>>
하는 유서가 발견되었다.
그러나 체면과 지체만 고집하는 숙영낭자의 부모들은 사랑하는 딸의 유언을 들어 주지 않았다.
『양반집 규수의 시체를 체면이 있는데 종놈과 합장할 수는 없는 일이야』
그리하여 따로 날을 가려 장사를 지내고 땅에 묻었다.
그러나 그후부터 이집안에서 여아를 낳아 열여섯이 되기만하면 시름시름앓다 죽거나 급살을 했으니 박정효의 아들, 숙영낭자의 오빠의 딸이 연이어 두해 터울로 하나는 앓다가 죽었으며 하나는 연못에 빠져 죽었으며 다섯해의 터울을 둔 셋째딸 역시 열여섯이 되면서 하루 아침에 급사했다.
그래서 할수없이 용칠이가 죽은지 약20년후 날을 받아 굿을 하니 용칠이의 넋이 현신되어 만하길
<<왜 내말을 듣지 않느냐. 지금이라도 늦지 않았으니 낭자의 시신을 못으로 모셔라>>했다.
할수없이 숙영낭자의 봉분을 파헤치니 근20년이 지났음에도 옷매무시하나 흐트러지지 않고 그대로여서 그 시신을 못속으로 옮기니 그로부터 여자애가 죽는 일이 없었다고 하며 그 마을에서 굿이라도 할라치면 의례 용칠이의 넋이 나타나기 때문에 소나 돼지다리 하나씩은 반드시 못가에 묻어 주었다한다

 

고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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