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IT/옛날 이야기

옛 이야기(고전) - 목부용 서린 정을(하)

by 양화산장 2018. 5. 12.

몽태의 아내 부용은 스물하나의 젊은 계집이다. 예쁘장하게 생긴 모습에 매끈하게 풍염한 몸매는 쉰살의 중늙은이 도둑놈의 첩으론 좀 아까운 계집이었다.
부용은 원래 백정의 딸로 태어난 저주스련 운명을 가눌길 없어 어렸을 때부터 도벽이 생겨 열일곱살 때에는 어느덧 몽태일당에 끼게 되었다.
부용은 여간 남자 못지않게 도둑질솜씨가 비상했었다. 열아홉살 봄에 몽태 두목에게 강제로 몸을 망치고 그냥 늙은 두목품에 안기긴 했지만 진정 싫은 노릇을 할수없이 살아오고 있었다.
이럴무렵 곽쥐를 처음 보고 그만 마음이 온통 쏠렸으니 부용이 곽쥐를 사모하는 마음은 날이 갈수록 굳어갔다.
오늘쯤 곽쥐가 찾아올 성 싶은 날이면 부용은 공연히 마음이 들떴으며 그녀의 화장은 정성이 깃들고 한결 얼굴에 화색이 돌았다.
한번은 몽태가 없을때 마침 곽쥐가 찾아와서 부용이 안방으로 곽쥐를 끌어들여 정을 쏟으며 매달리는 광경을 졸개들에게 들킨 일이 있었다.
곽쥐도 부용이 좋았다. 될수만 있다면 부용을 아주 자기 아내로 삼고 싶었다. 그러나…… 그들의 사랑은 그늘에서 꽃필 뿐이었다.
몽태도 이런 기미를 전연 모르는 바는 아니었기에 다른 문제와는 달리 제계집의 일로 꼬집히고 보니 그 역시 약한 사내일수밖에 없었다.
그 다음날 곽쥐가 찾아왔을 때 얘기끝에 몽태는 슬그머니 이런 말을 했다.
『정말 자네는 훌륭하네, 탐학한 양반놈들을 털어서 한푼도 사사로히 쓰지 않고 빈민들을 위해 뿌리니 이야말로 우리 도씨의 정도요 귀감이네. 하지만 그쯤으론 아직은 세상에서 으뜸가는 대도는 못되네』
 『............』
 『장동 호랑이 김정승이 요새 새로 맹꽁이 자물쇠를 장만해서 비밀곳간에 채웠다는데, 제아무리 곽쥐라도 이것만은 열지 못할꺼라고 큰 소리치더라는 소문이 났더군』
 『그까짓 한번 해보겠소.』
 『과연 <분왕>곽쥐답군. 두목깜으로 받들어 모셔야겠지만 그것만은 김정승댁 맹꽁이 자물쇠를 열고 털고난 후로 미루겠네』
 『실수없이 해치우면 그땐 나를 으뜸가는 대도로 모시겠단 말이군』
 『이르다뿐이오. 이 몽태 당장 임자 졸개가 되겠네』
 『틀림없소? 몽태영감』
 『아무렴 내 졸개들도 함께 맏기겠네』
 『그뿐이오?』
곽쥐의 눈길이 술쩍 안방쪽을 돌아보았다.
몽태의 눈치도 잽쌌다.
『부용이도 어김없이 자네차지네』
 『좋소. 두말않기요』
곽쥐는 머리를 끄덕였다. 그 눈망울이 유달리 빛나면서.
『언제쯤?』
 『오늘밤 삼경』
 『내일 아침엔 좌우 포청에서 쏟아져 나오는 관에 장안이 떠들썩하겠군. 자네가 이번에 맹꽁이 자물쇠까지 열어젖히면 제아무리 일국의 영상이라도 울상이 되겠군. 그 꼴을 구경하자니 지금부티 신바람이 나는군』
 『뭘 그까짓걸 가지고…… 탐학한 앙반놈들 울상을 보느니, 차라리 수구문밖 빈민촌으로 나와서 가난한 그 사람들이 기뻐하는 모양을 보구려』
-그날 곽쥐는 몽태뿐아니라 부용이 엿듣는 자리에서 호언장담했다.
무엇보다도 그 푹신하고 말랑한 예쁜 부용을 마음놓고 품을 수 있다는 조건이 곽쥐의 마음을 불태웠다.
때문에 곽쥐는 무슨 수를 써서라도 기어이 맹꽁이 자물쇠를 깨뜨려야겠다는 결심을 굳혔다.
5. 함정의 뒤안길
<<열리지 않을리가 없으렸다. 이럴수가 있단말인가. 맹꽁이 자물쇠란 이쪽이 꼬부라져서 여기서 걸리면, 요렇게 찌르고 요렇게 비틀어서 살짝 낚아채면 잘가닥 열리게 마련인데…>>
곽쥐는 오늘밤 이 맹꽁이 자물쇠를 기어이 열어야만 했다. 그러나 김좌근영의정이 아낌없는 공전을 내놓고 공인으로 하여금 온갖 재주와 솜씨, 정성을 기울여 만든 이 양국 맹꽁이 자물쇠는 좀처럼 열릴 가망이 없었다, 아무리 애를 써도 손끝이 전해와야 할 반응이 도무지 없었다.
곽쥐로선 자물쇠라는 자물쇠는 어떤 것이든 그 얼개의 됨됨이를 훤히 알고있다고 자신했었다.
 <<아무리 양국맹꽁이 자물쇠라도 사람이 만들었음엔 틀림없으려니 이치에 어긋나는 얼개란 있을 수 없어>>
곽쥐는 필사적이었다. 온갖 기술을 다해서 목숨과 진배없는 쇠못을 열쇠구멍에 꽂고 요리조리 가눔질했다.
잘까닥!
비로소 반응이 나타났다. 첫번째 열림쇠가 풀린 것이다.
 (옳지)
곽쥐는 마음속으로 쾌재를 불렀다. 첫번째 열림쇠가 풀렸으니 이 맹꽁이자물쇠를 여는 것도 시간문제였다.
곽쥐는 다시금 손 끝에 온 정신을 모아 쇠못을 가누었다. 일초, 이초, 삼초···바야흐로 마지막 열림쇠가 쩔거덩소리도 요란하게 열리려는 찰나-.
탁!
등뒤의 어둠속에서 무엇인가 날라와서 곳깐 문짝에 부딛쳐 박살이 났다.
달걀이었다.
달걀은 깨지면서 동시에 희뿌연 가루를 퍼뜨렸다. 곽쥐는 창졸간에 그 희뿌연 가루를 얼굴에 뒤집어썼다. 그 순간 매콤한 냄새가 코를 찔러 콧구멍이 간질간질하더니, 재채기를 쏟았다. 그 바람에 가루가 눈으로 스며들었다.
『어이쿠』
곽쥐는 아찔했다. 그것은 고춧가루와 재를 섞은 실명소였다.
 <<아차 실수로다!>>
황급히 맹꽁이 자물쇠에서 손을 데면서 쇠못을 벽 틈사이에 끼웠다.
그때 연거푸 여남은 개의 달걀이 날아들면서 깨어지는대로 가루가 곽쥐를 휩쌌다.
『곽쥐도적 오라를 받아라』
마치 벼락치듯한 고함소리가 울리면서 손에 손에 횃불을 치켜든 포도군사가 개미떼처럼 몰려들었다.
곽쥐는 눈을 뜨지못하면서도 본능적으로 몸을 날렸으니 이미 때는 늦었다. 어느결에 겹겹이 둘러싸여서 이대로 결박을 당하고 말았다-.
곽쥐같이 날렵한 광적을 사로잡자면 이렇게 갑짜기 떼를 지어 덮치지 않고서는 도리가 없음을 알고 있었기에 포도대장은 어둠속에 군사들을 잠복시켜놓고 곽쥐가 자물쇠를 열기에 골몰할 때까지 기다렸던 것이다.
 <<계략에 속았구나>>
포도군사들에게 엎치고 덮치면서 곽쥐는 이를 갈며 분해했다.
 <<양짓골 몽태놈 짓이군. 놈이 나를 함정에 몰아넣을 심뽀인줄은 몰랐구나>>
몽태가 밀고하지 않았다면 오늘밤, 이시각에 포도군사들이 여기와서 숨어있을 까닭이 없었다. 더구나 만반의 준비까지 갖추고-.
곽쥐는 몽태의 신의없는 능글맞은 상판에 침을 뱉어주리라 별렀다.
6. 신념
 곽쥐는 흔들리는 함거속에서 눈을 감고 그날밤의 일을 돌이켜보고는 구역질이 날만큼 역거워졌다.
 <<몽태야 네놈은 나를 속여 배반했지만 나는 포청에서의 무서운 고신(고문)에도 동사의 의리로 너를 팔진 않았다. 이놈 두고보자. 내가 죽을즐 알고. 나는 새남터에서 막바지에 발승술로 몸을 빼어 달아나리라. 그리하여 이번에야말로 실수없이 김좌근 승상이 자랑삼는 맹꽁이 자물쇠를 열고 비밀곳간을 몽땅 털어, 너와 나의 언약을 반드시 지키고 나서 죽어도 죽겠다. 너한테 할말을 할 자신이 있어서 네놈의 그 흉측한 행적을 고하지 않았느니라.>>
함거 달구지는 어느덧 장통교를 건너서 황토마루도 지나고 이제 모전다리로 해서 구리개에 다다랐다.
장동 김좌근 정승집앞을 지날 때는 정승택 사내종놈이 쫓아와서 함거속의 곽쥐한테 볶은 콩을 뿌리면서
『쉬이! 마귀야 가거라! 쉬이!』
했다. 흉악한 도둑놈이니 넋까지 쫓아버리자는 수작인가.
곽쥐는 한쪽 눈을 지긋이 뜨고 종놈의 그런 꼴을 보면서
『그 콩일랑 맹꽁이 자물쇠 곳간 앞에나 뿌려두거라. 오늘밤엔 틀림없이 곳간을 털테니 미리 잡귀신이나 쫓게시리·‥…』
이렇게 종놈을 향해, 소리 질렀다.
그러나 곽쥐의 호통은 누구에게나 미친놈의 죽기전 발악으로밖에 들리지 않았다. 도대체 말이나 될법한가. 함거에 갇혀서 이제 새남터에 닿으면 지체없이 망나니의 한칼에 모가지가 썽둥 달아날 죄인이, 오늘밤 곳간을 털겠다니…….
하지만 곽쥐는 꼭 새남토에서 탈출해서 오늘밤으로 반드시 김좌근 정승댁 맹꽁이 자물쇠를 열고야 말겠다는 신념이 용솟음쳤다.
 <<맹꽁이 자물쇠를 깨뜨려 보이겠다는 언약은 비단 몽태에게만의 약속은 아니다. 서린방옥에 있는 여러 사람들한테도 장담을 했느니라. 어김없이 발승술로 몸을 빼쳐 죽지않겠다고. 이 곽쥐의 멋진 발승술을 똑똑히 겪어본 그 친구들의 놀란 꼴이라니‥·‥>>
발승술이란 팔다리를 묶은 포승줄을 몸을 움츠려 풀어헤치는 술법이다. 그는 어렸을 때 우연히 이 술도의 스승을 만나 익혀둔 명수이기도 했다.
곽쥐는 죄목이 결정되어 서린방 전옥서로 옮겨져 갇히면서 <덩이>때문에 실랑이를 당한 일이 있었다.
 <덩이>란 옥에 새로 감힌 죄수가 옥정(죄수좌상)에게 바쳐야되는 돈으로 이 <덩이>를 못 내놓으면 죄수끼리도 무척 하대를 받게되니 요즘의 <신고식>과 비슷했던 모양이다.
곽쥐는 그 <덩이>를 가지지 못했기에 다짜고짜 덤벼든 고참 죄수들한데 묶여서 대들보에 대롱대롱 매달렸었다.
그런데, 곽쥐는 어느결에 발승술로 포승을 풀어헤치고 의젓이 옥정 앞으로 걸어와 앉자, 모두들 눈이 휘둥그래 놀랐다.
『허어 희한한 놈이로세. 임잔 발승술을 아는 모양인데 여태 뭘해먹었누?』옥정은 빙그레 웃으면서 물었다.
『그저 좀도둑 노릇이나 했소』
 『기왕 도둑질을 할양이면 곽쥐처럼이나 하지』
 『곽쥐가 그렇게 대단하오?』
 『허어 건방진 놈이군. 생판 곽귀이름도 못들었구먼』
 『이름이야 알지요. 옥정은 곽쥐를 만나 보았소』
 『아직 못보았지만 듣자니 훌륭한 협도라드군』
곽쥐는 그만 큰소리로 웃음을 터뜨렸다. 옥정의 눈살이 날카롭게 비틀리면서 금방 후려칠 기세로 쏘아붙였다.
『왜 웃나?』
 『고정하오. 실은 내가 곽쥐 곽지의요 그제서야 옥정의 얼굴이 풀리면서
『그런걸 내 미쳐 몰랐구려.,..... 그럼 발승술도 하면서 어째 삼십육계를 놓지 않고 끌려왔소?』
곽쥐는 자기의 과거지사를 쭉 얘기했다. 그러면서
『나는 새남터에서 망나니의 칼날이 떨어지기 직전에 발승술로 몸을 풀고 도망칠 작정이오』
옥정은 고개를 끄덕였다. 이미 곽쥐의 발승술을 목격한 그로서는 넉넉히 곽쥐가 새남터에서 탈출할 수 있으리라 믿었다.
그래서 오늘 마지막으로 옥에서 끌려나가는 곽쥐에게 옥정은 당부까지 했다.
『아무쪼록 뜻을 굽히지 마오. 당신뜻대로 성취하기를 천지신명께 빌겠소』
옥정은 새남터 막바지찰나에 묶인 포승을 풀어버릴 수 있다는 곽쥐의 끈덕진 신념을 애처롭게 여기면서도 한편 성공하기를 빌며 곽쥐를 떠나 보냈다.
7. 이마음 담긴 꽂을
 달구지가 끄는 함거는 곽쥐의 이러한 가지가지 사연을 뿌리면서 이제는 새삼터 가까이에 당도하였다.
여기서도 곽쥐가 타고오는 함거를 기다리고 있는 사람들이 떼를 지어 몰러있었다.
달구지가 문득 서는 바람에 곽쥐는 번쩍 눈을 뜨면서 얼굴을 들었다. 늦더위에 함빡 땀이 흘러 갈증이 났다.
『나 물 좀 주시오!』
검률 김인직이 영을 내려 곽쥐에게 물을 주라고 하였다.
사령 하나가 길가 주막에서 샘물 한바가지를 철철 넘치게 떠다가 곽귀 입에 대주자 곽쥐는 그 물을 단숨에 들여 마셨다.
『이제야 정신이 드는군!』
그 소리를 듣고 옆에 있던 사령은
『금방 죽어 자빠질 놈이, 정신은···』
곽쥐는 그말에 그저 빙그레 웃을 따름이었다.
『곽쥐어른께 이 꽃을······』
그때, 군중속에서 튀어나온 젊은 아낙이 함거 곁으로 다가와서 곽쥐에게 하얀 목부용 한송이를 내밀었다.
『오오 부융······』
치마 저고리를 하얗게 차려입은 소복의 여인! 그는 부용이었다.
몸은 비록 몽태에게 얽매어 있으나 마음은 항상 곽쥐를 따르고 있는 순정의 여인 부용-. 그 부용이 제마음을 담은 목부용 하얀송이를 품고 이제 여기 새남터에서 마지막 가는 그리운 님을 위해 목부용과 아울러 마음을 영원히 바치려고 왔다.
부용의 눈매에는 이슬처럼 맑은 슬픔이 함초름히 맺혀서 소리없이 울고있었다.
의지의 사나이 곽쥐 곽지의도 정에는 여리어 목이 메었마. 그러나 이내 정신을 가다듬고 초롱초롱한 빛 나는 눈동자로 부용을 보고 빙그레 웃어보였다.
곽쥐는 무엇인가 말하고 싶었다.
《아니 나는 안죽소. 그러매로 이별을 ?어할 까닭이 없소. 나는 반드시 결박을 풀고 다시금 김좌근정승 비밀곳간으로 달려가 기어이 맹꽁이 자물쇠를 열고 말겠소. 몽태와 언약한 대로 으뜸대도가 되고 몽태를 졸개로 거느리면서, 정말로 부용! 당신을 아내로 맞아 품에서 놓지않겠소. 결코 이별이 아니오. 잠깐만 기다려주오. 오, 부용 부용!>>
그러나 부용은 곽쥐의 이런 마음속 외침을 알수가 없었다. 곽쥐는 마냥 안타까웠다.
8. 생시련가 꿈이련가
 이욱고 우거진 수풀속 형장을 향해 함거는 들어섰다. 사람들은 형장가까이까지 쫓아와서 의적 곽쥐의 마지막을 지켜보고 있었다.
사령 여섯사람이 함거에서 곽쥐를 끌어내어 한복판에 막힌 말뚝아래 꿇어앉히고 손 발 허리를 꼼짝못하게 결박지어 놓았다.
이제 망나니가 시퍼런 장검을 휘두르면서 춤을 추기 시작했다. 망난이 춤은 사람을 베기 전에 귀신을 불러 고하는 전례였다.
이와 동시에 향타바깥에 모여있던 구경꾼이 지르는 아우성소리가 마치 해소인양 은은하게 곽쥐의 귓전으로 스며들었다.
곽쥐는 될 수 있는대로 마음을 가라앉히고 정신을 차분하게 가다듬으며
<<당황하지 말지어다. 침착하게 최후가 닥아온 순간 몸을 빼쳐야 되느니라>>
끝내 신념을 지니고 여기 이르러서도 결코 낙심하지 않았다. 기회는 한순간에 온다고 믿었다.
어느덧 저녁해가 한가람(한강) 물결위에 넘실거리며 반짝반짝 무늬를 일으키고 있었다.
『해가 멀어지기전에 어서……』
검률 김인직이 사령에게 영을 내리자 사령은 망나니에게 전했다.
사령의 팔이 후들려지자 망나니는 여전히 칼을 들어 춤을 추면서, 빙글빙글 곽쥐주위를 싸고 돌았다.
『어흐허, 어이흐허, 호허이야…‥·』
텁텁한 목소리로 영문모를 소리를 곡조를 붙여가며 불렀다. 이런소리가 나오면 언제 어떻게, 치는지 모르게 번개처럼 망나니의 칼이 내려온다.
 <<침착하게, 서둘지 말고‥·‥>>
곽쥐는 스스로에게 타일렀다. 저바깥 맨 앞에, 하얗게 소복입은 부용의 손모아 비는 모습이 또렷이 보였다.
곽쥐는 무엇보다 저 부용을 위해서라도 꼭 살아야겠다고 다짐했다.
『우호어, 우우호··…·헛!』
망나니의 소름끼치는 곡조와 함께 망나니의 칼이 번쩍하며 날랐다. 그러나 그보다 먼저 찰나의 일이었다.
『우욱』
곽쥐의 몸뚱이가 말뚝위로 솟구쳤다. 몸을 움츠리고 기회가 오기를 기다리던 팍쥐의 발승술이 성공한 것이다.
곽쥐는 말뚝에서 벗어나자 잠깐 땅위에 머물러섰다. 바다와 같은 함성이 들리는 것 같았다.
곽쥐는 날렵하게 몸을 움직여 망나니에게 달려들어 칼을 뺏어 단칼에 베어버리고는 그대로 쏜살같이 수풀속을 빠져나갔다. 소란한 소리가 등뒤에서 들려왔다.
한가람은 그다지 머지않았다. 곽쥐는 기슭에 이르러 뒤쫓아온 사령군관 놈들을 망나니칼로 쫓고 풍덩! 푸른 물속으로 깊숙히 파고들었다.
곽쥐는 물속깊이 숨었다가 숨을 쉬기 위해 떠올랐다하면서 해가 지기를 기다렸다.
《드디어 살았다. 이젠 김정승집으로!)
어둠을 타고 기슭에 닿은 곽쥐는 냉큼 평지로 올라오자 부리낳게 장동으로 달렸다.
김정승댁 담밑에 다다랐을 무렵엔 이미 캄캄한 밤이여서 훌렁 담을 넘자 비밀곳간으로 내달았다. 아무도 없이 너무나 고요했다.
곽쥐는 전에 여기서 잡힐 때 식못을 감춰둔 벽틈을 더듬어서 쇠못을 찾았다. 쇠못은 그 자리에 그대로 박혀있었다. 쇠못을 찾아든 곽쥐는 미친듯이 맹꽁이 자물쇠와 대결했다. 열쇠구멍에 쇠못을 끼우고 손끝을 움직였다. 몇번 가누어서 짤가당!
첫번째 열쇠가 열렸다.
비술로 가눔질을 계속했다.
쩔그렁!
묵직한 소리와 함께 드디어 맹꽁이자물쇠는 열리고야 말았다.
열었노라! 곽쥐는 눈물이 쏟아질 만큼 큰 희열을 느꼈다.
 <<나는 으뜸 대도가 되었도다. 나를 배반한 몽태놈도 내 졸개가 됐느리라. 부용은 내 아낙 오오 부용!)
곽쥐는 떨리는 손으로 자물통을 꼰아잡고 쭉 눌러 뽑았다. 어김없이 쑥 뽑혀 늘어졌다.
『열렸노라! 드디어‥·으뜸 대도--』
라고 외치려다가 곽쥐의 목은 뎅겅 잘리우고 말았다. 핏줄기가 솟구쳤다.
두번째로 비스듬히 선을 긋고 날아간 망나니의 장검이 아주 곽쥐의 모가지와 몸뚱이를 바로바로 갈라놓았고 그와 동시에 곽쥐가 입술에 물고있던 흰빛 목부용 꽂송이가 핏물에 빨갛게 물들며 땅에 떨어졌다.
이제 마지막 넘어가는 저녁해가 붉은 노을의 여광을 남기고 관악산넘어로 사라졌다. 놀빛에 비낀 곽쥐의 얼굴은 피빛이었다.
저쪽 울밖에서는 언제까지나 천지신명께 곽쥐의 넋을 비는 나지막한 여인의 울음섞인 목소리가 가늘게 퍼져나갔다.
그 맹꽁이 자물쇠를 기어이 열었노라고 믿고 죽어갔는지.
곽쥐의 얼굴에는 이윽고 아련한 미소가 어리고 목부용 꽃송이가 그옆에 쓸쓸히 놓여있었다

고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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