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IT/옛날 이야기

옛 이야기(고전) - 임금님의 유흥

고려의 성시도 예종 때부터 내려오기 시작하였으며 인종 때는 왕이 우유부단하여 일을 결단지게 처리하지 못하였다. 그것은 이자겸, 묘청의 반란 등이 있어 왕도 이것을 어찌하지 못하였으며 단안도 내리지 못하였다.
그래도 고려의 문물은 이때가 절정으로 발달되어 의종이 24년간 호유하여도 국가의 정치는 흔들리지 않았다. 그 동안 백년 내려오며 싸놓은 선왕의 덕택이라고 할 것이다.
의종은 일종의 풍류남아로서 경박하고 놀기를 좋아하는 귀공자의 타잎이었다. 그러므로 태자로 있을 때부터 인종이 항상 걱정하였다. 인종의 왕비 임태후도 태자의 경박을 싫어하여 차자를 왕으로 내세우려고 한 일까지 있었다. 이러한 사건은 사실상 의종의 반항적인 심리를 자극시켜 일로 유흥의 길로 박차를 가한 셈이 됐다.
왕의 유흥은 사실 예종 때부터 시작되었다. 이때 평화가 오래 지속되었으므로 글을 좋아하는 예종은 항시 각처로 다니면서 놀았다. 그래도 그때는 외척 경원 이씨들이 사직을 잘 보호해 주었으므로 무사하였다.
예종과 임 왕후간에는 아를 5형제를 두어 후사는 튼튼하였으나 태자로 있는 후일 의종될 사람이 너무 경박하여 항상 걱정으로 지냈다. 그 중에도 임 왕후는 태자가 경하여 다음 아들 대녕후를 임금으로 내세우려고 하였다.
이때 태자의 시독으로 있던 정습명이 어전에서
『폐하 태자를 쉽사리 갈아서는 안되오. 후일 신이 태자를 잘 보호하오리다』
하여 태자의 장래를 맡을 것을 은연중 약속하였다.
이 때문에 태자는 부왕에 대하여 불만을 품었고 다시 어머니 되는 임태후에 대하여도 석연치 않았다.
그러던 중 인종이 승하한 후 태자는 어머니 되는 임태후에 대하여 항상 불만을 품었다.
어느 날 정습명은 의종 앞에 상주하였다.
『폐하 신은 선왕의 부탁을 받은 신하이요. 전날 선왕이 불신하셨으나 신은 폐하를 현군으로 모시고자 하오.』
『경의 뜻은 좋은 말씀이오 마는 태후께서는 항상 과인을 불신하시어 앞날이 걱정이요.』
『왕태후에 대하여 그런 말씀을 하시면 신은 죽음으로써 폐하를 보필할까 하오. 조금도 태후의 말씀은 마시오.』
그러나 이때 왕태후는 왕의 침전 뒤에서 이 말을 들었다. 아무리 왕이라 하여도 자기의 어머니를 불신한다면 왕태후로서는 가만히 있을 수 없다. 태후는 즉시 맨발로 뛰어내려와 왕의 침전에서 잠시 머뭇거리다가 침전 밖으로 뛰어내려가며 하늘을 보고 맹세하였다.
『하느님 맙소서, 아무리 한들 폐하를 내보내려고 하는 왕태후는 아니오, 굽어살피소서』
하며 하늘을 향하여 무수히 절하였다.
별안간 난데없이 뇌성벽력이 일어나며 번갯불이 번쩍하였다. 동시에 번갯불은 왕의 침전까지 들어오는 듯하며 천둥소리에 침전의 산기둥이 울렸다.
『폐하, 태후마마를 모시어 들이시오』
정습명이 황급히 말하자 왕은 놀라며 태후 있는 곳으로 뛰어내려가 태후의 옷을 잡고
『태후마마, 소자가 잘못이오. 어서 침전으로 드사이다. 비에 젖나이다.』
하고 그 아래 엎드렸다. 정습명이 이 광경을 보고 급히 뛰어내려오며
『폐하 어서 태후마마께 사과하시오』
하자 왕은 할 수 없이 태후를 모시고 침전으로 들어갔다.
『태후마마, 폐하를 믿으시오.』
정습명이 옆에서 부목하고 상주하였다.
이 말에 태후는 겨우 노여움을 풀고 전각 안으로 들어갔다.
그러나 의종의 호탕한 마음은 이러한 태후의 제재로서도 어찌할 수 없었다. 그뿐 아니라 왕은 정습명에 대하여도 불신하기 시작하였다. 그럴수록 왕의 앞에서 아양떠는 신하 김존중이나 정함 등은
『정습명은 폐하의 불충한 신하요. 멀리 귀양보내도록 하오』
하는 말로 정습명을 해치러 들었다. 그러던 중 정습명이 병들어 죽게 되었다. 그의 자녀들은 약을 권하며 회춘하라고 하였으나 듣지 않고 약까지 내버리며 그대로 세상을 떠났다.
이제부터 왕은 굴레 벗은 말과 같이 되었다. 누구하나 바른말로 권고할 사람도 없었다.
조정은 환관 정함과 김존중의 일파로 되어갔다. 그중 정함은 왕의 유모의 남편으로서 그의 세력을 당할 사람이 없었다.
의종 5년 여름에 왕비 장경 김씨를 흥덕공주로 봉하며 피로의 곡연을 베풀 때 좌간의대부 왕식이 환관 정함의 서각띠(서각대)를 보고 대원들에게
『너희들은 눈도 없느냐』
하고 나무랬다. 눈치챈 어사잡단 이작승이 분하여 대리 이분을 시켜 정함의 서각띠를 잡아 끌렀다.
『환관이 어떻게 서각띠를 두르느냐.』
이 말에 정함은 역시 반항하였다.
『이 서각띠는 페하께서 하사하신 것이다. 어디다가 손을 대느냐.』
그래도 이분은
『남보다 하나 없는 놈이 어엿하게 대관이나 가질 띠를 둘렀구나』
하고 서로 한참동안 옥신각신한 끝에 정함의 띠를 뺏고 말았다. 정함은 자기를 무시한다고 왕에게 상주하였다.
왕은 노하여 이분을 잡으라 하였다. 그러나 이분은 왕이 노한 것을 보고 도망하였다.
연희가 파하자 왕은 다시 친히 자기의 서각띠를 정함에게 하사하고 동시에 정함에게 합문지후의 벼슬을 주었다.
이번에는 어사대에서
『환관에게 합문지후의 벼슬을 주는 것은 고례에 어그러지는 일이요. 어명을 환수하오』
하며 반대하였다. 왕은 할 수 없이 어명을 환수하였으나 정함을 더욱 신임하였다.
정함은 자기의 일에 대하여 반대하는 자가 의의로 많은 것을 알게되자 이번에 어사대가 대녕후를 내세우려고 한다고 무고하였다.
이 말을 들은 왕은 자기의 거대자 대녕후의 우익을 꺾으려고 우선 태후편 사람을 몰아내기 시작하였다.
정서는 태후 임씨의 여제의 남편으로 경박한 사람이다. 김존중이 정서는 대녕후와 교결하여 큰 뜻을 품고있다고 무고하였다. 가뜩이나 대녕후 쪽을 싫어하는 왕은 정서를 죄주라고 하였다. 그래도 부족하여 재상 최유청은 정서와 정함이 모두 소인으로 왕의 좌우에서 왕의 유흥을 돋아주는 인물이니 죄주라고 하였다.
왕도 할 수 없이 정서를 그의 고향인 동래로 내려보냈다. 귀양이 아니라 일종의 휴양 같은 것이다.
정서는 고향으로 떠날 때 왕에게 하직을 고하였다. 왕은 정서의 어깨를 만지며
『오늘 그대를 보내게 된 것은 과인의 뜻이 아니다. 조정에서 일어나 이렇게 된 것이다. 미구에 다시 불러들일 터이니 잠시 휴양할 겸 동래로 내려가 있어라』
하였다. 이 때문에 정서는 동래로 내려가 멀리 바다를 바라보며 어명이 내릴 때만 기다리고 있었다. 그래도 좀처럼 부른다는 소식이 없어 날마다 거문고를 뜯으며 자기의 신세를 한탄하였다.
왕의 유흥이 심해지자 거기에 따르는 궁녀들이 많아졌으며 아첨하는 신하들은 왕을 유흥하는 장소로 안내한다. 내시(내시-환관이 아님) 윤언문은 수창궁 북쪽 어원 근처에 가산을 모아놓고 작은 정자를 지어 이것을 만수정이라 하였다. 이 정자는 규모는 작지만 내부의 장치는 화려하였다. 황색 빛나는 비단으로 벽을 발랐으며 여기저기 향나무 기둥을 세워 미풍이 불어와도 향기는 코를 찌를 지경이었다.
윤언문이 왕의 행차를 청하자 왕은 궁녀를 데리고 정자로 놀러나갔다. 밤새도록 풍악소리 요란하며 여자들의 교성은 사방으로 흩어져 나왔다. 왕의 놀음은 한 번 시작하면 새벽이 되어야 겨우 그친다.
이러한 왕의 호유를 이용하여 내시부에 있던 사령 영의는 왕에게 불교를 숭상하여 명산대찰에 양회하라고 권고하였다.
『폐하 국가의 기업을 튼튼히 하고 인군의 수명을 빌려면 절에 나가 기도와 법석을 열어야 하오.』
『과인도 그런 뜻은 있소마는 비용이 많이 들듯 하여 생각 중이요.』
『폐하의 명령만 내리면 백성들이 기뻐하며 불공과 법회의 비용을 부담하오.』
『그럴까. 그러면 경이 뜻한 대로 행해보도록 하오.』
한 번 명령만 내리면 영의는 백성들을 긁어모으기에 열중한다. 각 지방으로 다니며
『어명으로 축성법회를 열어야 한다』
는 말로 각 지방의 수령들에게 관곡을 내노라고 하였다.
관곡은 국가의 재정인데 영의는 이것을 마음대로 갖다가 법회를 하는 척하고 모두 자기 주머니 속으로 집어넣었다.
도성 근처 안화사에 제석 관음보살 등의 화상을 만들어놓고 보살의 이름을 부르며 밤새도록 뜰 앞에서 돌고 있다. 이것을 연성법석이라 하였다. 이런 때면 왕은 안화사에 거동하여 영의에게 막대한 상을 내리며 칭찬해 주었다.
어느 날 정자 뜰 아래에서 악공들이 풍악을 울리어 더욱 흥취를 돋아준다. 그 중에도 행금 잘하는 자가 있어 춤에 맞추어 슬슬 받아넘기었다. 왕은 흥취에 못 이겨
『행금 뜯는 자가 누구냐』
『최예라고 아뢰오.』
『악공 놈의 성이 너무 과남하구나.』
『성은 최씨가 많으므로 붙인 것이옵고 예 자는 재주가 많아지리라고 붙인 것이옵니다.』
『그놈 말솜씨도 좋구나.』
최예는 더 말하지 않고 행금을 뜯었다. 행금 소리는 길고 가늘어 때로는 누구를 원망하듯 혹은 애원하듯 여러 가지 소리를 내며 만당의 군중을 매혹시켰다.
『그놈 쓸 놈이구나. 내시부에 두도록 하여라.』
한 번 어명이 내리자 다음날부터 최예는 내시부에서 왕의 비위를 맞춰주며 행금으로 세월을 보냈다.
그의 유흥은 또한 궁녀나 기녀의 집으로 발전해갔다.
이것을 보고 가만히 있지 않는 자는 바로 최예의 처이다.
『여보 밤낮 어디서 자고 다니는 것이요. 그전 시골서 살 때 어려웁게 살던 것을 생각하고 집안 일을 돌보아야 하지 않소.』
『집안 일이 어떻게 되어서 야단이야』
『당신은 잘 얻어먹고 다니지만 나는 쫄쫄이 굶고 있소.』
『먹을 게 있어야지 먹지 그 놈의 궁궐에 다닌다면서 그래 처자식 하나 못 먹여 살리오.』
말이 거칠어지며 여편네의 바가지는 더 심해갔다. 드디어 싸움은 크게 벌어졌다. 최예의 처는 보기 좋게 두들겨 맞고 분하여 정원으로 뛰어들어가
『최예가 대녕후의 집에 출입하며 음모를 꾸미고 있소.』
하는 쓸데없는 말을 늘어놓았다. 좋은 기회라고 생각하던 왕은 즉시 대녕후를 천안으로 귀양보내고 그 외에 그의 일파를 모두 몰아냈다. 이제는 왕의 앞에 아무도 대항할 사람이 없다. 왕으로 하여금 유흥의 길을 열어준 것이다.
왕의 호유는 궁녀 무비 한 사람뿐이 아니었다. 궁중의 연회 때마다 새로운 여성을 들이어 후궁은 언제나 아름다운 여성으로 차있었다. 그럴수록 왕의 사랑을 독점하고자 치열한 경쟁이 벌어졌다. 그 중에도 무비는 아이를 잘 낳았으므로 왕은 항상 그녀를 위하였으며 그녀의 말이면 무엇이든지 잘 들어주었다. 이 때문에 무비의 처소에는 사람들이 득실거리었다. 그 중에도 남경의 관노 백선연은 환관이라고 가칭하며 왕의 침전에 가까이 하였으며 동시에 무비의 처소에 무상 출입하였다. 왕은 백선연이 환관이었기 때문에 안심하고 내버려두었다.
밤이 되면 백선연은 무비의 침전에서 속삭이고 있었다.
『어찌하면 왕의 은총을 독점할까.』
옆에 있는 백선연에게 무비는 애원하듯 청했다.
『그야 그들을 저주하거나 그렇지 않으면 상대자를 없애야지.』 ·
『그렇게 많은 궁녀를 다 어떻게 없애냐.』
『하나씩 하나씩 없애야지, 한번에야 없앨 수 없지.』
『좋은 수를 써보아라.』
『그야 무비아가씨가 더 잘 알지 않을까.』
『어떻게.』
『쉽지.』
『그게 무슨 수야.』
무비는 입맛이 댕기는지 바싹 다가앉았다. 이럴수록 능청스러운 백선연은 무비의 풍염한 살결이 싫지 않았다.
『이리 와요. 내가 잘 아르켜 주지.』
『무슨 방법이냐.』
『그야 실지로 실행해야 하지.』
『망칙해라. 환관 녀석이.』
무비는 눈을 흘기며 새침해 하면서 백선연을 노려보았다. 그럴수록 그녀의 육체에서는 매력적인 애교가 풍겨 나왔다. 백선연은 무비를 품안에 넣고 말았다.
『환관이 제법 사람노릇을 하네.』
무비는 무심코 한마디 하였다.
『내가 겉만 환관인척 하지 속도 환관인 줄 아나.』
『듣기 싫다. 물러가거라.』
『물러가기는커녕 내가 하라는 대로만 하면 임금은 너의 독차지가 된다.』
『좋은 수가 있는 모양이구나.』
무비로서는 포류의 질이 연하고 부드러운 왕의 살을 접촉해 보았지만 이번에 씩씩하고 기운 꼴이나 쓰는 관노의 육체를 접촉해보니 또다시 새로운 면의 유열을 맛보게 되었다.
다음부터는 백선연이 풀방구리에 쥐 드나들듯 드나들었다. 그 동안 왕을 육체적인 쾌락의 도가니로 만들어 떠나지 못하게 할 묘안과 궁녀를 저주할 것으로는 닭의 그림을 질투의 상대자의 이불 속에 넣어두면 다른 사람이 접근하지 못하게 된다는 말을 믿어 후궁의 방에 닭의 그림을 많이 그려 몰려 집어넣었다
이러한 저주를 하며 무비는 무비대로 백선연의 품에서 떠나지 않았다.
나중에 화계가 탄로 나자 백선연은 김의보와 내시 윤지원(윤지원)의 짓으로 몰아 두 사람만 희생시키고 말았다.
이러한 일이 일어나자 좌정언, 문극겸은 어전에서 상소하였다.
『환관 백선연은 가짜로서 위복을 마음대로 떨치고 있소. 더구나 궁녀 무비와 추행을 마음대로 자행하여 궁중을 어지럽히고 있소. 영의라는 자는 잡술을 부리는 자로 영상에게 아첨하며 자기 집에 재물과 보화를 많이 모았소. 이 자는 폐하의 장수를 빈다고 각 사찰로 다니며 재물을 긁어모으고 있소. 한편 백선연과 부동되어 지방의 장관이나. 도의 안찰사가 내려갈 때는 두 사람이 위로한다고 자기 집에서 술과 음식으로서 호궤하면서 지방에 내려가 백성의 재물을 수탈해 가져오라는 수작을 하오. 백선연과 무비를 처참하고 영의를 귀양보내시오.』
왕은 상소를 보고 놀라 즉시 국청을 벌리고 사실 그런가 하고 대질까지 시켰다. 그러나 궁중이 모두 백선연의 편이므로 되려 문극겸이 난언했다는 죄목으로 쫓겨나고 말았다.
궁중에서 바른말하는 무리들은 하나씩 둘씩 물러나자 왕은 기분을 전환한다고 인지재로 놀러나갔다.
봄빛이 무르익어 새싹이 돋아 나오며 송악산의 푸른 비나무는 더욱 청청하고 시냇물은 흘러 더욱 아름다운 경치를 북돋아 주었다. 이 인지재는 바로 송악산 줄기에 있으므로 경치가 아름다웠다. 왕은 좌우의 신하들과 같이 이곳에 나와 놀며 흥취를 이기지 못하여 시를 읊기를 일삼았다.
왕은 친히 부르며 근신들에게 쓰게 하였으며 모두 왕의 시재를 칭찬하며 아첨하느라고 손뼉까지 쳤다. 그럴수록 재주 있는 왕은 다시 시를 읊었다.
왕의 시는 더욱 격이 높아갔다. 호탕하게 노는 반면 백성들의 생활은 어찌되어 갈는지 아랑곳하지 않았다.
왕은 한 번 어디서든지 경치가 좋으면 시간이 가는 줄도 모르고 놀았다.
다음날은 성동 사천 용연사 남쪽 석벽이 좋다는 말을 듣고 놀러나갔다. 과연 석벽이 수십 길 되어 그 아래 푸른 물이 흐르고 있다. 뒤에는 울창한 송림이 둘러있어 경치가 더욱 아름다웠다. 왕은 사천의 물이 적으므로 개울에 큰 보를 막게 하여 호수를 만들고 다시 그 옆에 연복정을 짓게 하였다.
호숫가에 아름다웁게 서 있는 연복정은 왕의 유흥터로 알맞았다. 다시 정자 좌우에 꽃과 나무를 심고 정자 앞 백사장에서 놀았다. 인공적으로 만든 호수가 터지면 언제든지 사람을 시켜 보를 수축케 하였으므로 그 근처의 백성들은 항상 불평을 말하였다. 왕은 이러한 백성들의 수고도 생각지 않고 거의 매일 이곳에서 놀았다.
밤이 되면 연못에 배를 띄우고 밤새도록 노래 소리와 풍악소리로 유흥하였다. 술에 취한 문신들은 물에 빠지기도 하고 혹은 자빠지는 등 취객을 군사들은 일일이 안내하며 집으로 돌려보냈다. 이러한 일도 무사들의 할 일 중에 하나이었다. 이러한 관계로 후일 무사들이 일어나 원한의 문신을 모조리 죽인 것도 일리 있는 일이었다.
왕의 유흥은 한 곳에만 정자를 짓지 않고 여기 저기다가 경치가 그럴듯하면 백성들의 괴로움도 생각지 않고 정자를 지었다.
청녕재 남쪽에 정자형의 정자를 짓고 다시 그 앞에 연못을 파고 호수를 만들어 중국의 서호를 모방한다고 하였다. 호수 언덕에 여기저기 모정을 지어놓고 다시 남방에서 갈대를 캐다가 심었다. 가을이 되어 갈대가 하얗게 되면 더욱 아름다웠다.
가을바람이 한번 휘몰아오면 희게 핀 갈대꽃은 한들한들하여 쓸쓸한 경치를 더욱 처량하게 만들어준다.
갈대꽃 핀 물가에는 기러기와 원앙새를 길러 강호의 자연을 연상케 하였다. 그 사이에 작은 배를 띄워놓고 어부를 불러 배 위에서 뱃사람들의 노래 소리를 내도록 한다. 때로는 펄펄 뛰는 서호의 농어를 상상하듯 큰 고기를 잡아 그 자리에서 어회를 쳐 탁주를 마시며 뱃사공 소리에 장단을 맞추어가며 즐거웁게 놀기도 한다.
이 남지는 규모가 상당히 커 연못을 팔 때 수많은 인부를 동원시켜 국가에서는 점심도 주지 않고 일을 시켰다. 이런 까닭에 부역으로 나와 일하는 농부들은 열심히 일하지 않으며 놀면서 일하는 상태이었다. 그런 까닭에 세월만 흘러갔지 공사는 지지부진이었다.
이런 중 한 농부는 집이 가난하여 점심을 싸 가지고 오지 못하였다. 점심때가 되면 여러 사람들이 한곳에 모여 서로 이야기하며 먹고 있었다. 그러나 점심을 가지고 오지 못한 농부는 남이 먹는 음식이나 바라볼 뿐이었다.
인심이 순후한 그때 사람들은 점심을 가지고 오지 못한 사람을 동정하여
『여보, 저기 점심을 못 가져온 사람이 하나 있는 모양인데 우리 조금씩 이 사람에게 나눠주는 것이 어떠하겠소』
하고 제안하였다.
『좋은 말씀이요.』
일시에 자기 밥그릇에서 조금씩 나누어 그 사람을 불러다가 먹이었다. 그 농부는 너무나 감격하여 눈물을 흘렸다.
『여러분의 은혜를 무엇으로 갚을는지 알 수 없읍니다.』
『그런 소리 마오. 은혜가 무슨 은혜요 십시일반이라오. 어려운 사람을 동정하는 것이 부처님에 뜻이라오.』
여러 사람들은 다시 희희낙락하며 점심을 먹었다.
다음 날도 그 농부는 역시 점심을 가져오지 못하였다. 그래도 여러 사람은 그를 동정하여 점심을 나누어 먹었다. 순후한 인심을 짐작할 수 있었다.
너무 여러 날 점심을 얻어먹었으므로 농부는 밤에 자기의 부인과 여러 가지로 공론하였다.
『여보, 요새 일하는 여러 사람들이 내가 점심을 못 가져오는 것을 보고 모두 점심을 나누어주는구려.』
『모두 고마운 사람들이군요.』
『그렇소, 그런데 나도 그 사람들을 대접해야겠는데 무엇이고 있어야지.』
『어떻게 대접한다는 말이요.』
『없어서 걱정이요.』
『글쎄 말이요.』
여자는 무엇인지 결심한 듯이 깊은 생각에 빠졌다.
『여보 너무 걱정 마오.』
남편이 위로해 주었으나 앞길은 깜깜하였다.
남편이 일하러 나간 새 그녀는 모든 것을 팔아 가지고 음식을 잘 장만하여 한 광주리 이고 일터로 나갔다. 우선 놀란 사람이 남편이다. 손수 묵직한 광주리를 내려놓아 주었다.
『아이구 이게 웬 음식이요.』
남편은 어이없어 하며 한편으로 기쁨을 감추지 못하고 말을 건네었다.
『그동안 낭군이 남에게 신세만 끼쳤다 하옵길래 내가 장만해 가지고 온 것이요.』
『너무 황송해 그러우.』
『어서 그 동안 신세진 분들을 모시어다가 같이 잡숫도록 하시우.』
농부는 점심때가 되자 전에 음식을 나누어주던 사람을 모두 청했다.
『오늘은 내가 여러분들에게 신세진 보답을 하게 되었읍니다.』
말을 마치고 광주리를 열었다. 거기에는 밥은 물론 떡, 술, 고기반찬이 들어있었다. 모두 모여들어 치하의 말을 주고받았다.
농부는 집이 어려운데 난데없는 음식을 보자 의아한 생각이 들어 여러 가지로 궁리하다가 자기 부인에게 물었다.
『여보 우리집이 어려운데 이런 음식이 어디서 났소. 누구의 집에서 얻어왔소.』
『아니오.』
『그럼 남의 것을 훔쳐왔소.』
『온 별말씀을.』
『그래도 의심이 나서 그러우. 혹시 남과 은근한 사랑을 속삭여 얻어온 것이요.』
그래도 여자는 아무소리 못하고 다만 앉아 있을 뿐이다.
(이년이 샛서방을 두고 그런 놈을 골러 음식을 차려온 것이 아닌가)
하는 생각이 들었다.
『여보, 바로 말하오. 어떻게 된 음식이오. 샛서방질이라도 했지.』
이번에는 얼마간 분까지 치밀어 소리를 질렀다.
『여보 말도 마오. 내가 얼굴이 못생겼는데 누가 나를 얻으려고 하겠소. 또 내 성질이 곧은 사람인데 남의 것을 훔칠 줄이나 아오.』
『그럼 어디서 났어.』
『당신이 남에게 너무 신세를 졌다고 하길래 내 머리를 잘라 다리 꼭지를 만들어 판 돈으로 장만해왔소.』
동시에 그녀의 눈에서는 눈물이 핑 돌았다. 다시
『자 보구려』
하고 쓰고있던 수건을 벗었다. 과연 머리는 승두가 되었다.
깜짝 놀란 농부는 음식이 목으로 넘어가지 않고 그대로 보고 있었다.
『여보, 당신의 청백을 내가 쓸데없이 못 믿었구려. 내가 잘못이요.』
하고 눈물을 흘렸다.
옆에서 이 광경을 보고있던 다른 사람들도 모두 눈물을 흘리며 먹던 음식을 먹지 못하고 있었다. 그럴수록 농부는 더욱 흐느껴 울었다. 구경하던 사람들도 흐느껴 울어 일시는 울음바다로 되어갔다.
이와 같이 농민들의 고통은 돌보지 않고 오르지 왕은 연못만 파게 하여 유흥장소를 만들었으며, 왕과 그 신하들은 그러한 애처로운 농부의 사연도 국사도 아랑곳없이 오직 유흥에만 잠기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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