본문 바로가기

조경

중국에서 가장 오래된 시집 시경에 나오는 복숭아

반응형

복숭아 꽃

이 책에는 근 3천년 전부터의 노래가 실리고 춘추시대에는 이미 선비들의 교양서적으로 되었고 논어나 맹자에 인용되고 있다.

 

도지요요(挑之夭夭)
작작기화(灼芍其華)
도지요요(挑之夭夭)
유분기실(有賁其實)
도지요요(挑之夭夭)
기엽진진(其葉진진)
『복숭아나무의 우거짐이여
그 꽃의 아름다움이여
복숭아나무의 우거짐이여
열매의 토실토실함이여
복숭아나무의 우거짐이여
그 잎의 싱싱함이여』


정말 아름다운 노래인데 이 노래의 주인공은 복사꽃으로 표현된 아름답고 싱싱한 젊은 여자아이다. 시집갈 날을 앞 둔 아이를 생각하게 하는 노래이다. 서로 잘 어울린다.
봄이면 꽃. 꽃 하면 봄인데 봄을 생각나게 하는 꽃은 수없이 많다. 할미꽃, 제비꽃, 민들레, 진달래, 살구꽃 그리고 복숭아꽃 헤아릴 수 없이 많다. 나의 살던 고향은 말 그대로 꽃피는 대궐이었다. 그 때 우리 또래는 자연이 추대해 준 왕의 아들들이었다.
그 때의 여섯 살, 일곱 살들은 맹랑한 아이들이었다. 셋 넷이 작당해서 높은 뒷산에 올라 파도처럼 밀려들어오는 봄 기운을 내려다보는 놀라운 아이들이었다. 검정고무신이면 그만이었고 짚신도 쓸 만했고 발걸음은 날 것 같이 가벼웠다.
진달래 꽃가지를 꺾어 만든 다발은 불방망이처럼 보였다. 이 때가 되면 지난 해의 봄 그 때처럼 우리는 소리치면서 산마루를 주름잡았다.
"꽃 꽃 장구대 꽃 줄까 바라라."
사투리 같은 이런 말을 열 번이고 스무 번이고 외치면서 피부가 터지도록 밖으로 쏟아져 나오는 힘을 느끼면서 산마루를 새끼노루처럼 달렸다.
이러한 외침은 고향의 말투이겠는데 지금도 이 외침은 그 곳 아이들에게 남아 있을 것으로 안다.
그 뜻은 단순하다. 『꽃 꽃 아름다운 꽃, 나의 꽃방망이 아름답구나 애들아, 동무들아, 이 꽃 탐이 나지. 이 꽃 가지기를 바라며 나를 부럽게 여겨라. 바라고 바라면 이 꽃 나누어줄지도 모른다.』
꽃을 한아름 안고 있다는 건 자랑이었고 영광이었다. 산마루에서 내려다보이는 깊은 산골의 우리 마을엔 살구꽃, 복숭아나무 꽃이 한창 피고 있었다. 그것은 온통 불바다 같은 꽃밭에 쌓여있는 동네였다. 집들이 모두 초가집이란 데서 자연의 위대성과 조화함을 찾아낼 수 있었다. 우리 동네는 먼 산골이었기 때문에 찾아오는 다른 동네사람은 대단히 드물었다. 이것이 또한 상황을 만들어주었다. 봄이 되어서 만발한 복숭아꽃을 여기저기에서 볼 수 있었다는 건 퍽 다행스러운 것이었다.

어느 모로 보아도 우리 동네의 봄은 그 복숭아꽃과 더불어 시 한 수를 생각나게 하는데 넉넉하고도 남음이 있었다.

 

모옥주래구(茅屋住來久)
산심인폐문(山深人閉門)
초생수정구(草生垂井口)
화락옹리근(花落擁籬根)
입원장추조(入院將雛鳥)
반라포자원(攀蘿抱子猿)
증봉이인설(曾逢異人說)
풍경사도원(風景似桃源)
내가 초가집(茅屋 모옥)에 살고 있는지가 이미 오래되는데 그것 살림살이가 넉넉하지 못함을 말해 주는 것이나 그렇다고 이것이 적은 행복을 뜻하는 것이 될 수는 없다.
산이 깊어서(山深) 찾아오는 사람이 없기에 항상 집의 문은 닫혀있는 것과 다름이 없다. 한없이 한가로운 시간만이 가득했었다.
글방에서 내다보니 풀은 우거져 우물을 덮었고(垂井口) 떨어진 복숭아꽃잎(花落)은 봄바람에 멀리 울타리 밑에 몰려 있다(擁籬根). 그대로의 자연이 이곳에 펼쳐지고 있다.
암탉(鳥)은 병아리(雛)를 몰(將)면서 뜰(院) 안으로 들어오고(入)있는데 봄은 이처럼 생명의 시작으로 치장되고 있다. 원숭이는 새끼를 안고(抱子猿) 담쟁이덩굴(蘿)를 타고 있다(攀). 어느 때인가 도사(曾) 한사람(異人)이 와서 말하기를(說) 이러한 풍경은 흡사 도원경을 닮아(似桃源)있다고 했다.
꽃대궐 같은 동네라면 무릉의 도화원이 아니고 무엇이 다르겠는가. 꽃을 보고 도원경을 떠나 또 어느 때 다시 오시겠오(看花出洞幾時回) 평안히 잘 가시오 손님이여. 제발 소문만은 내지 말아서 찾는 이를 없게 해주오. 꽃잎아 자랑 말라. 어자(漁子, 고기 잡는 사람) 알까 두렵다하는 것과 통하고 있다.
나는 이 시를 가지고 내가 살던 고향을 그리워 할 수 있다. 더욱더 아름다운 추억으로 고향을 생각하고 싶다.
그런데 복숭아나 복숭아나무는 행복과 부귀를 상징하는데 흔히 쓰여지고 있다. 나는 어릴 때 아버지로부터 배운 다음 두 줄의 시가 잊혀지지 않고 있다. 나는 아직까지 이 시를 어떤 책에서도 읽어보지를 못했다.


초색청연역로(草色靑連驛路)
도화난부인가(桃花暖覆人家)
초록색 풀은 마을과 마을 사이에 이어 있고 복사나무꽃은 따스하게 지붕을 덮고 있더라는 표현이다. 이 시는 구상이 좋게되어 있다. 풀과 복숭아나무꽃 그리고 이어짐(連)과 덮음(覆)이 또 길(驛路)과 집인가(人家)이 서로 대를 이루어 완벽하다. 무르익어 오는 봄기운이 선하게 눈에 보인다. 산에 오르니 봄은 들에 있고 들로 내려오니 봄은 산에 있더라(登山春在野 下野春在山)하는 광경에 통하고 있지 않는가. 봄은 위에도 있고 아래에도 있고 앞에도 뒤에도 있다.
때로 복숭아꽃은 상상의 봄을 형용하기도 한다. 여러가지(君臣佐使) 약이 있으니 병들 것을 걱정할 것 없고 자모전(子母錢)이 있으니 어찌 가난함을 두려워 할 것인가. 듣건데 그대는 단사(丹砂)를 구어서 선약을 만들고 있다는데 옥동(玉洞)의 복숭아나무 꽃은 또한 상춘(常春)을 이루고 있다지.
이것은 뜻이 맞는 고결한 인품의 두 사람사이에 있었던 이야기이다. 세속을 초월하고도 남음이 있다. 이때 자모전이란 것은 전설적인 이야기 같다. 즉 동전에 청부(파랑강충이)라는 풀벌레 모자(母子)의 피를 발라놓으면 돈을 사용하여도 그 돈이 되돌아온다는 것이다. 다시 말해서 한쪽의 동전으로 물건을 사면 그 돈이 남아있는 돈을 그리워해서 날라온다는 것이다. 그래서 암만 돈을 써도 축나는 일이 없다. 그러니 가난을 이겨낼 수 있다. 이것은 가난의 답답함을 유연히 이겨내는 심정으로서 배울 만하다. 회남자(淮南子)라는 책에도 『청부벌레가 돈을 되돌아오게 한다』라는 기록이 있다한다. 나도 청부벌레를 발견했으면 하지만 나에게 물건을 판 장사아치는 큰 실망을 하지 않겠는가. 생각컨데 청부라는 벌레의 모자간의 정은 지독하게 강인한 것 같다.
손오공은 백년만에 하나씩 익는 하늘복숭아를 먹고 괴력을 얻었다는 이야기인데 복숭아나무는 이처럼 무언가 뜻과 힘을 간직하고 있다. 천도(天桃)는 신령스러운 것이고 길상적(吉祥的)인 것이기 때문에 흔히 그림에 등장하고 있다. 특히 민화에 말이다.
그런가하면 복숭아나무는 타락한 여색을 상징하는 언령신앙(言靈信仰) 같은 것이 있어서 사람들이 꺼리고 집안에 심어서는 안된다는 믿음이 뿌리내리고 있는 것도 사실이다. 대나무와 소나무는 사람을 청아(淸雅)하게 만들지만 복숭아나무는 사람을 천하게 만든다는 것이다.
『달밤에 복숭아를 먹어라』하는 말에는 징그러운 복숭아벌레를 보지 않은 채로 먹어서 복숭아처럼 아름답게 되겠다는 처녀의 소원이 담겨져 있다. 아름다운 것을 먹으면 아름답게 된다는 이류보류(以類補類)의 생각에서 나온 것이다. 눈이 큰 잠자리를 구어 먹으면 시력이 좋아진다는 것과 같은 뜻이다. 우리네 조상들은 실지로 시력이 나빠질 때는 잠자리를 잡아먹었던 것이다.
복숭아의 모양과 성질은 여자의 비밀 부분에 흡사하다고 보아 복숭아를 음양사상(陰陽思想)에 집어넣기도 했다. 이러한 생각은 그 뒤의 사람들에게 그대로 이어졌다. 이런 것 저런 것 모아볼 때 복숭아는 다소 고상하지 못하다는 생각을 고정시킨 그런 면도 있다.
우리 나라에서도 그러하지만 옛날 중국에서는 기원전부터 복숭아나무를 신령스러운 나무라고 믿고 요사스러운 기운을 쫓아내고 잡스러운 귀신을 역누를 수 있는 힘이 있다는 것을 믿었다. 하늘의 해를 화살로 쏘아 떨어뜨릴 수 있는 큰 힘을 가진 예가 가정불화로 난폭 무도하게 놀아났는데 복숭아가지로 만든 막대기로 쳐서 끝내 그는 죽음을 당했다는 이야기가 회남자라는 책에 실려있다. 이러한 일이 있은 뒤부터는 귀신이 복숭아나무를 무서워하게 되었다는 것이다.
이러한 벽사(사악한 것을 물리침)의 신앙은 한나라 왕궁의 연중행사의 하나로 되어 정월탈묘일(卯日)에 복숭아나무 가지로 막대기를 만들어 잡귀신을 쫓아내는 의식이 행하여졌다고 한다.
이와 같이 복숭아나무와 잡귀신과의 사이는 나쁜데 이러한 생각은 확대되어 좋은 귀신을 모시는 데에도 복숭아나무는 멀리해야 한다는 믿음을 만들게 되었다. 사람이 죽어서 귀신으로 되는데 사실 털어서 먼지 안나는 사람 없다고 좋은 귀신이라 할지라도 털어보면 좋지 못한 점도 있고 해서 좋다는 귀신도 뒤가 염려되는 점이 많아 복숭아나무를 무서워했을 것이다. 그래서 우리가 제사상에는 복숭아를 올려놓지 않는다. 조상의 영혼이 복숭아 때문에 찾아올 수 없다면 그것은 자손으로서 제사상을 차린 뜻이 없어지기 때문이다. 그뿐만 아니라 집안에 복숭아나무가 서있기만 해도 좋은 신이나 나쁜 신이나 가까이 하기를 꺼려한다는 것이다. 이러저러해 복숭아나무는 문제를 만들고 있다.
복숭아나무가 이와 같이 귀신을 쫓아낸다는 힘에 대해서는 명나라 시대에 씌어진 식물학사전 본초강목에도 기록되어 있다. 이 책에 따르면 그 당시의 복숭아는 지금의 그것처럼 맛좋은 것이 아니고 맛이 대단히 시고 먹고 난 위 속이 편치 못했다는 것이다. 그래서 귀신이 복숭아를 무서워했다고 한다.
이와 같은 기록은 식물학 사전으로서는 생각해야 할 점이라 하겠으나 그 책에 설명된 『桃』자의 유래는 매우 수긍이 간다. 『복숭아나무로 말하면 열매가 많이 맺고 심으면 싹이 잘 트고 또 잘 자란다. 그래서 복숭아나무 도자는 나무목 변에 많을 조자를 곁들어 만든 것이다』라고 풀이하고 있다.
또 본초에 쓰기를 도인은 여름철 성숙한 복숭아에서 씨를 얻은 것인데 약으로 쓴다. 어혈을 삭히는데 효과가 있고 여자의 생리통, 그리고 변비를 고치는데 좋다고 한다. 접을 붙여서 개량한 복숭아나무에 도인을 얻을 것이 아니라 실생묘로 키운 재래종 복숭아 인이 더 효과적이라 한다. 어혈이라 하는 것은 타박상 등으로 피가 뭉쳐서 잘 돌아가지 못하는 나쁜 피를 말하는 것이다

 

- 출처 - 산림조합중앙회 WEBZINE

반응형